876화
강진이 공터를 둘러볼 때, 최호 철이 말했다.
“나는 귀신들하고 근처에 다른 귀신들 있나 보고 올게.”
“많이들 데려오세요. 그분들도 식사 좀 하시게.”
“알았어.”
최호철이 경찰 귀신들과 함께 가자, 강진은 이곳에 오지 못하
는 경찰 귀신들을 하나둘씩 불러 들였다.
어제 만났던 경찰 귀신들과 오 늘 내려오면서 만난 귀신들까지 불렀는데, 어느새 일개 소대 정 도만큼의 경찰 귀신이 모였다.
“휴우! 오늘 손 바쁘겠다.”
여기 모인 경찰 귀신만 해도 오 십에 최호철이 주변에서 모아올 귀신들까지 하면 적어도 육, 칠 십은 될 것이었다.
평소 야외에서 맞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많은 숫자였다.
배용수가 중얼거리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좁아도…… 부를 수 있을 만큼 은 계속 불러 드리자. 나쁜 놈들 잡겠다고 고생들 하시니 우리도 고생하는 걸로.”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푸드 트럭 캡을 열었 다.
“준비하자. 오늘 음식 미리 좀 준비를 해야지, 안 그러면 손님
들 손가락 빨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푸드 트 럭 위로 올라갔다.
트럭에 올라간 강진은 커다란 물통에 물을 부었다. 푸드 트럭 에서 조리를 할 때는 뜨거운 물 이 필수라 일단 물을 끓이는 것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냄비를 불에 올린 강진이 야채 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게에 서 미리 손질해서 가져와도 되겠 지만, 이왕 맛있게 하려면 칼도 음식 하기 전에 닿는 것이 좋으
니 말이다.
흙 묻은 당근과 세척해 나온 당 근 중에 흙 묻은 당근이 더 맛있 는 것처럼 말이다.
강진이 야채를 정리하자, 배용 수가 고기를 꺼내 정리하기 시작 했다.
귀신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것 을 보던 강진이 삼겹살을 뒤집었
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만큼 강진이 만들어야 하는 음식 들도 많아졌다.
치이익! 치이익!
삼겹살을 뒤집던 강진을 배용수 가 툭 쳤다.
“ 응?”
그에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장대방이 음식을 먹지 않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냥 멍하니 서 있는 장대방의 모습에 강진이 아이스
박스에서 초코과자를 꺼냈다.
“대방 씨.”
장대방이 보자, 강진이 초코과 자를 던졌다.
휘이 익!
탓!
장대방이 초코과자를 잡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음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웃으며 초코과자를 뜯었다.
“정말 맛이 좋죠.”
“그런데 왜 안 드시고 무슨 생 각을 그렇게 하세요?”
“집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말을 하던 장대방은 고개를 저 었다.
“없더라고요.”
“ 없어요?”
“나쁜 의미로 없다는 게 아니고 요. 평일 낮이잖아요. 집에 사람 이 없는 것이 당연한 거죠. 그래
서 아빠도, 엄마도 없고 동생도 없더라고요.”
“그렇겠네요.”
평일 낮에 데려다줬으니 가정주 부가 아니라면 다들 직장이나 학 교에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못 만났어요?”
“네.”
“그럼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요. 저녁에라도 다시 데려다줬을 텐데.”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잘 지내고 있는 것 봤으니 됐어요.”
“가족을 못 만났는데 잘 지내는 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꼭 봐야 아나요. 집 가구나 식 기들 있는 거 보면 알죠.”
장대방은 미소를 지은 채 허공 을 보았다. 그가 보는 건 허공이 지만, 그의 눈앞에 그려지는 건 오늘 보고 온 집의 모습이었다.
“늘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리모 컨,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집…… 그리고 조금 물건이 가득 한 다용도실까지.”
말을 한 장대방이 웃었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다용도실 을 가득가득 채워 놓고 있더라고 요. 물건들 쌓여 있는 거 보면 우리 집 그래도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일상적이면 좋은 일이기는 하 죠. 하지만…… 대방 씨가 없는 허전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실 테죠. 안 그래도 제 방 에 들어가 봤는데 동생 물건들이 있더라고요.”
“대방 씨 방이 사라졌나 보네 요?”
“죽어서 집에 못 오는 아들 방 계속 비워 둘 수 있나요. 있는 사람이 써야죠.”
“그래도 서운했겠어요.”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은 그랬는데…… 안방에 가니 제 사진하고 핸드폰이 침대 옆에 놓여 있더라고요.”
“침대 옆에요?”
“아마 제가 가장 자주 쓰던 것 이니 안방에 두신 모양이에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죽고 나서 저한테 무슨 문자가 왔나 핸드폰 보고 싶었는데……
장대방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이 손으로는 핸드폰을 만질 수
가 없더라고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대방 씨 기억하는 사람들이 연 락을 많이 남겼을 거예요.”
“남겼어도 보지 못하는걸요.”
장대방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 는 사이 강진은 잠시 생각에 빠 졌다.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죽은 사람 친구나 형 역할로 핸
드폰 가져다준 건 처음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 이 장대방을 보았다.
“추억은 소주와 함께 하면 더 좋죠. 음식 식기 전에 드세요.”
“고맙습니다.”
장대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어묵국에 어묵을 더 넣다가 그를 보았다.
“혹시 동네에서 오래 살았어 요?”
“동네요?”
“신림요.”
“신림에서 태어나고 계속 자랐 어요.”
“요즘은 같은 동네 살아도 서로 잘 모르기는 하는데, 혹시 채송 화라고 그 동네 살던 아가씨 모 르세요?”
“채송화?”
채송화라는 이름에 장대방이 잠 시 생각을 하자 강진이 말했다.
“올해 스물일곱인데.”
“모르겠는데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기 는 했지만 알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즘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인데, 같은 동네에 산다고 알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왜요?”
“광현 형 집에 지박령으로 계시 더라고요.”
“스물일곱이라고 하셨는데 벌써
죽으신 건가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죽는 것이 나이와 상관이 있나 요.”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아.” 하 고는 주위를 보았다. 주위에 있 는 경찰 귀신들은 대부분 젊었 다.
물론 삼십에서 사십 대라 엄청 젊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 기에는 아주 아까운 나이였다.
그리고 자신만 해도 그렇고 말 이다. 이십 대 초반…… 그것도 아주 초반에 자신이 죽을 줄 누 가 알았겠는가.
생각을 이어나가던 장대방이 입 맛을 다셨다.
“그 말이 맞네요. 죽는 건 나이 하고 상관이 없죠.”
장대방의 말에 그를 보던 강진 이 한숨을 쉬었다.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네요.”
“아니에요. 사실인 걸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제가 저승식당 영업을 하고 이 렇게 귀신들과 가까이하다 보니 죽음에 대해 좀 무감각해진 것 같습니다 . 사과드리겠습니다.”
강진이 재차 사과하자 장대방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사장님 상황이면 그럴 것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다시 는 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슬프 고 힘든 건데…… 사장님은 이렇 게 죽은 사람을 보고 가까이 있
으니 죽음에 무감각해질 만한 것 같습니다.”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이게 또 직업병이네.’
만나는 귀신들마다 음식을 만들 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도 저승식 당 주인의 직업병인 모양이었다.
작게 고개를 저은 강진은 삼겹 살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새로 고 기를 올렸다.
치이 익 ! 치이익 !
맛있게 구워지는 소리에 귀신들 이 고기를 리필 받으려고 하나둘 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맛있게들 드세요.”
남원에서 경찰 귀신들을 상대로 한 장사를 마친 강진은 으를 통 해 가게로 돌아왔다.
강진이 설거지 거리가 담긴 아 이스박스를 주방으로 옮기자, 이 혜미가 말했다.
“쉬세요. 정리는 저희가 할게 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 잠시 나갔다 와야 해요.”
“어디 가시게요?”
“신림에 장대방 씨 데려다주고 오려고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무장갑 을 벗었다.
“잘 생각했다. 집 멀쩡한 거 보 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부 모님하고 동생 얼굴 못 본 것이 얼마나 아쉽겠어. 가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너도 가게?”
“이 늦은 시간에 너만 혼자 어 떻게 보내냐?”
“호오!”
강진의 감탄성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이상한 소리 하면 안 간다.”
배용수의 말에 막 입을 열려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한다 고……
배용수가 정말 안 간다고 할까 싶어 뒷말은 삼킨 강진이 직원들 을 보았다.
“그럼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지금 시간이면 차도 없으니 드 라이브한다 생각하고 가면 돼 요.”
강진은 배용수와 함께 뒷문으로 나와서는 차에 올라탔다.
“아까 술을 왜 안 먹나 했더니 장대방 씨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 구나.”
“네 말대로 집에 가서 가족 얼 굴도 못 보고 온 것이 얼마나 그 렇겠어. 그리고 나야 술 줄여야
하기도 하고.”
“맞아. 요즘 또 술이 늘었어. 술 좀 줄여.”
“ 알았다.”
말을 하며 시동을 켠 강진은 신 림으로 차를 몰았다.
신림에 도착한 강진이 장대방을 불렀다.
“장대방, 장대방, 장대방.”
화아악!
모습을 드러낸 장대방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는 미소를 지 었다.
“고맙습니다.”
강진이 자신을 왜 불렀는지 안 것이다.
“집 여기서 멀어요?”
강진이 웃으며 묻자 장대방이 고개를 저었다.
“골목으로 조금 걸어가면 있습 니다.”
“차 들어갈 만해요?”
“그럼요. 요즘 차 안 들어가지 는 골목이 있나요. 아! 그런데 여기서 가까워서 저 혼자 걸어가 도 돼요.”
“같이 가요.”
“저 혼자 가도 되는데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골목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핸드폰 보고 싶다면서요.”
“네.”
“나중에 제가 부모님 뵙고 핸드 폰 보여 달라 할게요. 그때 제 옆에서 같이 보세요.”
“어떻게요?”
“제가 이런 쪽으로는 경험이 많 아요.”
이야기를 나누며 골목을 걷던 강진은 최광현의 집을 지나쳐갔 다.
‘광현 형 집 근처네.’
최광현의 집을 올려다보던 강진 이 말했다.
“광현 형 집이 여기예요.”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집을 보 다가 물었다.
“혹시 사 층이에요?”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저 집에 이사 왔던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갔거든요. 그래서 동네에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어 요.”
“그래요?”
“이사 온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가서 터가 안 좋다는 말도 있었 고 귀신이 있다는 말도 있었죠. 터가 안 좋으면 다른 충에 사는 사람들도 못 살아야 하는데 저 사 층에 사는 사람만 그렇게 이 사를 갔거든요. 그래서 귀신 들 렸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말을 한 장대방이 집을 올려다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귀신 들린 집이었 군요.”
장대방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최광현이 사는 집을 보았다. 살
았을 때 동네 소문으로 듣던 귀 신 들린 집에 정말 귀신이 있다 고 하니 신기한 것이다.
정작 자신도 귀신인데도 말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