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7화
빌라를 올려다보던 배용수가 눈 을 찡그렸다.
“저 집 소개해 준 부동산 업자 나쁘다.”
“귀신 들린 집 소개해 줘서?”
“그래. 그런 소문이 있는 집이 면 미리 말을 해 줘야지.”
“소문까지 말을 할 필요가 있 나. 사람이 거기서 자살을 해서
죽은 것도 아니고……
강진이 피식 웃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았다.
“무슨 개소리야?”
이렇게 귀신 둘을 양옆에 두고 가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니 말 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보통은 그렇게들 생각한다는 거지.”
그러고는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부동산 주인이 이야기 는 해 줬어야 한다는 건 동감이 다. 집에서 사람이 죽지는 않았 더라도 그런 소문이 있으면 귀신 을 믿든 안 믿든 이야기는 해 줬 어야지.”
“맞아. 말을 해 줬어야지.”
둘의 말에 장대방이 슬며시 말 했다.
“그러면…… 그 집에 들어갈 사 람 없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 나는 들어갈 것 같은 데요.”
“귀신 소문 난 집을요?”
“월세가 십만 원이나 싸잖아 요.”
“그래도 십만 원에 그렇게 하기 에는……
“십만 원 정말 큰돈이에요. 그 리고 귀신보다 무서운 게 돈이 죠. 나라면 조금 찝찝해도 집값
십만 원 아낄 수 있다고 하면 들 어가겠어요. 귀신을 믿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던 강진이 웃으며 배용 수를 보았다.
“물론 저승식당 하기 전에 말이 야.”
강진은 고개를 돌려 최광현의 집을 보았다. 집엔 불이 켜져 있 었다.
“귀신 심심하지 말라고 불을 켜 놨나? 아니면 아직 안 자나?”
강진이 집 앞에 와 있는 것을 모르는 최광현은 상을 펴고 있었 다.
상을 펼쳐 놓은 그는 소주와 반 찬들을 올려놓고 있었다. 반찬은 강진이 가져다준 음식들이었다.
강진이 연구실에서 먹으라고 가 져다준 것이었지만 연구실 후배 들에게는 저녁에 삼겹살과 술을 사 주고 이건 집에 가지고 온 것 이다.
거한 저녁 식사로 반찬을 바꾼 셈이었다.
후배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연구실에서 2차로 술을 마신 최 광현은 방금 막 집으로 온 것이 다. 후배들은 늘 그렇듯이 연구 실에서 잘 테고 말이다.
집에 돌아온 최광현은 채송화 먹으라고 강진이 가져온 반찬으 로 술상을 차린 것이다.
술상 세팅을 마친 최광현은 자 리에 앉고는 맞은편에 노트와 연 필을 놓았다. 그러고는 맞은편
허공을 보며 말했다.
“일단 좀 앉으세요. 앉으시면 연필 좀 살짝 건드려 주시고요.”
최광현의 말에 채송화가 연필을 손으로 툭툭 쳤다. 연필이 움직 이는 것을 보며 최광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같이 살기로 한 첫날……
말을 하던 최광현이 고개를 저 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같이 있기 는 했으니 첫날은 아니네요. 하
지만 공식적으로 서로 같이 살자 고 한 건 오늘이 첫날이라 그냥 보내기 그래서 소주 좀 사 왔습 니다. 그리고 이 반찬들은 강진 이가 만든 거라서 귀신한테도 맛 이 좋을 거예요.”
말을 한 최광현은 앞에 있는 노 트를 보았다. 채송화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다.
허공으로 살짝 떠오른 연필이 슥슥 글자를 만들어냈다.
〈고마워.〉
‘고’라고 쓰고 잠시 뜸을 들이다 가 ‘마워’를 마저 쓰는 것에 최광 현이 말했다.
“어떻게, 통닭이라도 하나 시킬 까요?”
〈괜찮아. 반찬이 술안주로도 좋 아.〉
채송화의 글에 최광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주를 따서는 그녀 의 잔에 따랐다.
“다 마시고 새로 따라 달라고 적으세요. 아니면 연필로 잔을 두들기거나.”
최광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필이 잔을 두들겼다.
타타탓!
빠르게 잔을 때리는 연필의 모 습에 최광현이 피식 웃고는 잔에 담긴 소주를 자신의 잔에 따르고
는 새로 소주를 따랐다.
그렇게 오늘 같이 살기로 한 사 람과 귀신이 소주를 나눠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광현은 오늘 채송화와 술을 마신 것을 후회하게 된다. 술을 마시면 취하는 사람과 달 리, 귀신인 채송화는 취하지 않 으니 말이다.
* * *
최광현과 채송화가 동거 첫날을 기념하며 소주를 마실 때, 강진 은 한 빌라 앞에 섰다.
“여기예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빌라를 보다가 말했다.
“몇 호예요?’’
“303호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보았다.
“시간이 늦어서 자는 모습밖에
는 보지 못하겠지만 들어가 보세 요.”
장대방은 집을 올려다보다가 미 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그럼 내일 저녁에 봐요.”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고개를 저었다.
“내일은 저 안 불러 주셔도 돼 요.”
“왜요? 음식이 마음에 안 들어 요?”
“그게 아니라 오늘 보니 귀신 손님들이 많더라고요. 내일은 다 른 손님들 대접해 주세요.”
장대방의 말에 그를 보던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많으면 저희가 음식 더 장만해도 되니 그런 생각 하지 마시고 내일도 오세요.”
“다 대접하고 싶으신 마음 알겠 지만 그래도 손님이 너무 많으면
힘드세요.”
웃으며 장대방이 빌라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그 모습을 보 다가 몸을 돌렸다.
“착한 분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사람이 일찍 죽는 것 같 아.”
“욕을 먹어야 오래 산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오래 사 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그 말도 맞나 보다. 그래서 정 치인들이 오래 사나 보다.”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점심에 그 손님 안 오 셨더라.”
“그러게. 지민 씨 안 오셨지.”
“무슨 일이 있나? 연락 없이 안 오실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러게…… 무슨 일이 있으신 가?”
어제 가게에 왔던 시각 장애인 오지민은 오늘 점심에 오기로 했 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은 오실지도 모르지.”
“그럼 내일 점심도 떡볶이하고 순대 준비해?”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잠시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점심에 반찬처럼 나갔는 데 내일도 겹치는 건 좀 그렇다. 손님이 지민 씨 한 분인 것도 아 니고 다른 분들도 생각해야지. 내일은 아침에 들어오는 재료 봐 서 음식 하고, 혹시 지민 씨 오 시면 그때 조금 하자. 순대는 삶 기만 하면 되고, 떡볶이도 오래 안 걸리잖아.”
“그건 그렇지.”
이야기를 나누며 강진은 힐끗
최광현의 빌라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집을 보 던 강진은 고개를 젓고는 차로 걸음을 옮기다가 중얼거렸다.
“대방 씨한테 여기 수사 좀 맡 겨야겠다.”
“ 수사?”
“채송화 씨가 왜 집에 묶여 있 는지 아는 귀신이 있는지 찾아보 려고. 이런 걸 탐문 수사라고 하 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았다.
“자기도 왜 묶여 있는지 모르는 데 동네 귀신들이 알겠어?”
“점쟁이도 자기 점은 못 치는 법이다. 바둑도 옆에서 보는 사 람이 더 잘 보는 법이고, 중도 제 머리 못 깎는 거고.”
연달아서 몇 가지 비유를 하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웃었다.
“하긴, 뭐라도 하나 얻어걸리면 좋겠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라도 하나 얻어걸려서 송화 씨 승천하면 얼마나 좋겠 어.”
강진이 차에 올라타자, 배용수 가 조수석에 스며들어왔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피곤하다. 어서 가서 자고 싶 다.”
“오늘은 손님이 많았지. 가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시동을 켜고는 운전하기 시작했다.
* * *
점심 장사를 거의 마무리한 강 진은 마지막으로 남은 손님 테이 블을 보고 있었다.
“후우!”
얼큰한 콩나물국을 단숨에 마신 손님이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일어났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늘 맛있게 먹고 갑니다.”
웃으며 말한 손님은 돈을 꺼내 아크릴 통에 넣고는 같이 온 일 행들과 함께 가게를 나섰다.
“그럼 내일 또 봐요.”
“네. 감사합니다.”
강진은 손님을 따라 가게 앞으 로 나왔다. 마지막 손님이니 배 웅도 하고 가게 문도 잠그려고 말이다.
“또 오세요.”
“그럼요. 또 와야죠.”
손님들이 가는 것을 보던 강진 은 몸을 돌리다가 멈춰 섰다. 가 게 옆 인도에 오지민이 지순이 목줄을 잡고 서 있는 걸 본 것이 다.
“오셨어요?”
강진이 인사를 하자 오지민이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제 예약하고 못
와서 죄송해요.”
“그럼요. 죄송해하셔야죠.”
“네?”
“예약하고 안 오면 얼마나 큰 문제인데요. 요즘 그런 손님들 때문에 식당 하시는 분들 얼마나 힘드신지 아시죠?”
“아…… 정말 죄송해요.”
오지민이 다시 사과를 하자 강 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에요. 사실 예약도 제가
좀 반강제로 한 거잖아요. 그리 고 메뉴를 말씀하신 것도 아니 고.”
“네……
여전히 미안해하는 오지민을 보 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음에는 연락 한 번 해 주세요. 많이 기다렸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마음을 풀어 주려고 웃으며 한 말인데, 오지민이 더 미안해하는 것 같자 강진이 쓰게 웃으며 말
했다.
“들어오세요.”
강진은 슬며시 팔꿈치를 내밀고 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들겼 다.
“제 팔 잡으세요.”
그에 오지민이 손을 들자, 강진 이 그 손에 자신의 팔꿈치를 가 져다 댔다. 그렇게 강진은 오지 민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 다.
강진과 오지민과 들어오는 것에
홀을 정리하던 직원들이 흠칫 놀 래며 둘을 보았다.
강진이 문을 닫을 줄 알고 나와 서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따라 들어오니 말이다.
굳어 있던 직원들은 같이 들어 온 사람이 오지민인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이 보 이지 않으니 자신들이 그릇을 들 고 움직여도 괜찮은 것이다.
강진이 오지민을 자리로 안내하 자, 이혜미가 서둘러 와서는 가 게 문을 잠갔다.
“손님 없을 시간에 오기는 왔는 데…… 손님 없으세요?”
“방금 전에 마지막 손님들 가셨 어요. 그러니 편하게 식사하세 요.”
“네.”
오지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지순이도 맛있는 것 좀 해 줘야겠다.”
멍.
아주 작게 울음을 토하는 지순 이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머리 를 마저 쓰다듬었다.
“작게 짖는 거 교육을 시킨 건 가요?”
“따로 교육은 안 시켰는데 사람 있는 곳에서는 알아서 작게 짖어 요.”
“정말 똑똑하네요.”
강진의 말에 오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게는 친여동생이나 마찬가
지예요.”
오지민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원한 오미자차를 가지고 나왔다.
“식사하기 전에 이것 좀 드세 요. 시원한 오미자차예요. 식전에 드시면 입맛이 더 좋으실 거예 요.”
“감사합니다.”
오지민이 손을 더듬거리자 강진 이 그녀의 손 앞에 잔을 놓았다.
“그럼 식사 곧 가져올게요.”
“고맙습니다.”
오지민의 답에 강진이 웃으며 주방에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이 미 배용수가 음식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왜 안 오셨대?”
“안 물어봤어.”
“왜?’’
“지민 씨를 하루밖에 안 봤지만 쉽게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런 분이 안 오셨으면 오지 못할 사정이 있으셨겠지.
그래서 안 물어봤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정이 있으시니 못 오 셨겠지.”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오종철 이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뭐 맛있는 거 주나?”
잔뜩 기대한 얼굴로 웃으며 들 어오는 오종철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어제 오실 줄 알고 떡볶이에 순대 해 놨는데.”
“어? 그럼 오늘은 없어?”
오종철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순대하고 떡볶이가 어려운 것 도 아니고 물론 해 드려야죠. 대 신 순대하고 떡볶이는 좀 기다리 셔야 해요.”
“기다리는 거야 내가 참 잘하 지.”
오종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하긴…… 기다리는 건 익숙하 시겠네.’
눈이 안 보이는 딸이 심부름 가 는 게 걱정되어서 그 뒤를 천천 히 따라가곤 했던 오종철에게 있 어 기다림과 느림은 익숙한 것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