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화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오지민의 옆에 강진이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괜히 저 때문에 답답하시죠?”
오지민이 미안한 듯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꼭 빠르게 걸을 필요는 없지 않아요?”
“네?”
“가끔은 천천히 걸어도 되는 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다 빠
르게 걷는 것 같아요. 약속도 없 고, 할 일도 없으면 그냥 천천히 걸으면서 햇살도 받고 주위를 한 번 더 봐도 좋을 텐데 말이에요. 그게 여유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고는 강진이 길을 보며 말 했다.
“이렇게 햇살 따스한 날이 앞으 로 얼마나 남았겠어요. 곧 있으 면 더워서 걷지도 못할 텐데…… 햇살 좋고 날씨 그리 뜨겁지 않
은 날 천천히 걷는 것도 복이 죠.”
“그러게요. 곧 있으면 엄청 더 워질 텐데.”
“아스팔트에 둘러싸인 도시에 있으면 그게 바로 지옥이죠.”
이야기를 나누며 공원에 들어선 강진이 오지민을 보았다.
“여기부터 공원이에요.”
“그런 것 같아요. 나무 냄새도 나고 풀 향도 나고.”
오지민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는 미소를 지었다.
“좋네요.”
그러고는 지순이 머리를 쓰다듬 으며 말했다.
“순이도 오니 좋지?”
멍.
작게 짖는 지순의 모습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공원이니까 크게 짖어 도 돼.”
“그래, 순이야. 크게 짖어.”
오지민의 말에 지순이 크게 짖 었다.
멍! 멍!
그런 지순을 보며 강진이 웃었 다.
“애가 말을 참 잘 들어요. 어떻 게 이렇게 말을 잘 듣죠?”
“가끔 보면 사람 같아요.”
오지민이 웃는 것을 보며 강진 이 말했다.
“여기가 제가 애들 밥 주는 공 원 정자예요.”
말을 하며 강진이 정자 바닥을 손으로 짚게 해주자, 오지민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 지순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지순이는 마킹 안 하나 요?”
“오줌요?”
“네.”
강진이 본 애완견들은 산책을
나가면 여기저기 마킹을 했었던 것이다.
“잘 안 해요.”
“그래요?”
“다른 애들은 한다고도 하는데 우리 지순이는 안 하더라고요. 볼일 보고 싶으면 저한테 신호를 주거나 참았다가 집에 가서 볼일 올 봐요.”
“그렇군요.”
이해가 되었다. 시각 장애인들 과 함께 사람들이 있는 실내를
오가야 하는데 그 안에서 마킹을 하면 안 되니 말이다.
그에 따른 교육을 받은 모양이 었다.
“그래도 여기는 마킹해도 되는 데.”
강진의 말에 오지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또 지순이가 잘 알아서 해요.”
“알아서 요?’’
“공원 같은 곳 오면 사람 없으 면 알아서 마킹하고 그러더라고 요.”
“이거 물어봐도 되나 싶은
데……
“물어보세요.”
“애가 마킹하는지 어떻게 아세 요?”
강진의 물음에 오지민이 웃으며 말했다.
“순이가 멈췄는데 쉬하는 소리 가 들리잖아요.”
오지민의 말에 강진이 “아.” 하 고는 웃었다.
“소리가 우렁찬가 보네요.”
“참았다가 하는 거라서 그런지 많이 하더라고요.”
“그 TV에서 보니까 개들은 마 킹하고 냄새 맡는 것이 정신건강 에 좋다고 하던데.”
“사장님도 동물 방송 보시나 보 네요?”
“찾아서 보지는 않지만 TV에서 나오면 보기는 하죠. 멍하니 보
기에 좋잖아요.”
동물 나오는 방송은 별다른 내 용이 없어도 그냥 보게 되니 말 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어디선가 강아지 몇 마리가 뛰어 왔다.
후다닥! 후다닥!
빠르게 뛰어온 강아지 세 마리 가 강진의 발밑에 와서는 몸을 비볐다. 그 강아지들을 지순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지순이가 보든 말든 강아지들은 강진에게 몸을 비비며 애교를 떨 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아이들을 보았다.
이 아이들은 유기견이었다. 그 중에서도 강진이 준 JS 사료를 먹은 아이들이었는데, 먹고 난 후로 더 강진에게 친밀감을 드러 내고 있었다.
눈썹에 은색의 털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강진 이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물의 징조가 은색 눈썹인
가?’
돼랑이 가족들의 은색 눈썹을 떠올린 강진은 아이들 머리를 쓰 다듬다가 말했다.
“여기 누나하고 인사해.”
강진은 강아지 한 마리를 조심 스레 안아 들고는 지순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자신의 얼굴 앞 에 들이밀어진 강아지에 지순이 가 코를 들이밀고는 냄새를 맡았 다.
그 행동에 강아지도 코를 벌렁
거리며 지순이 냄새를 맡았다.
그렇게 서로 냄새를 맡는 강아 지들을 보던 강진이 아이를 내려 놓았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 보면 인 사도 하고.”
멍
강진의 말에 답을 하는 것처럼 강아지 중 하나가 크게 짖었다. 그것을 강진이 볼 때, 오지민이 소리가 들린 곳을 보았다.
“강아지들 왔어요?”
“저한테 밥 먹는 애들이 놀러 왔네요. 순이하고 인사 시켰어 요.”
“그럼 지금 애들 뭐해요?”
“서로 냄새 맡네요. 근데 순이 는 의젓하게 앉아 있고 다른 애 들이 붙어서 냄새 맡고 그래요.”
“그렇구나.”
오지민은 손을 뻗어 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을 본 강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순이 머리를 잘 찾으시
네요?”
강진의 말에 오지민이 웃으며 말을 하려다가 문득 자신의 손에 잡힌 지순이의 머리를 매만졌다.
“그러게요. 몰랐어요.”
“네?”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묻는 강진 을 향해 오지민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손을 내밀면…… 늘 제 손이 닿는 곳에 순이가 있었거든요.”
오지민은 두 손으로 지순이의 머리를 잡고는 볼을 위로 밀었 다.
주우욱!
그에 볼살이 두툼하게 올라온 지순이의 얼굴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댄 오지민이 미소를 지었 다.
“우리 순이 내 손 닿는 곳에 늘 있어 주었구나.”
멍.
오지민의 말에 지순이가 작게
울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지순 이를 보았다.
‘지민 씨 손 닿는 곳에 늘 있었 구나.’
그래서 눈이 보이지 않는 오지 민이 바로 지순이의 머리에 손을 댈 수가 있는 것이다. 순이는 늘 오지민의 손이 향하는 곳에 머리 를 두고 있으니 말이다.
‘진짜 너는 사람보다 낫구나.’
눈이 안 보이는 주인을 위해서 늘 같은 곳에 같은 자리로 있었
던 것이다.
순이를 보던 강진은 오종철을 보았다. 그도 감동한 얼굴로 지 순을 보고 있었다.
“늘 그렇게 언니의 옆에 있었던 거구나. 너무 고맙고 또 고맙구 나.”
오종철이 손으로 쓰다듬자, 오 지민과 머리를 맞대고 있던 지순 이 고개를 살짝 틀고는 입을 벌 렸다.
그 순간 슬쩍 삐져나온 지순이
의 혀가 오종철의 손을 핥았다.
자신의 혀가 오종철의 손을 핥 는 것에 지순이가 놀란 듯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고는…….
멍! 멍! 멍!
오종철을 향해 크게 짖기 시작 했다. 그 모습에 오종철도 놀란 듯 지순이를 보았다.
“이게 어떻게? 지금 지순이가 나를 핥았어.”
오종철의 놀람에 찬 목소리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이럴 생각
으로 JS 사료를 먹인 것은 아닌 데…… 지순이가 JS 사료를 먹어 서 귀신을 만질 수 있게 된 것이 다.
지순이는 원래 오종철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쓰다듬을 받더라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었 는데, JS 사료를 먹어서 이제는 그걸 느끼게 된 것뿐만 아니라 핥을 수 있기까지 한 것이다.
멍! 멍! 멍!
오종철의 손맛을 본 지순이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몸을 푸르르
떨었다.
“순이야 왜 그래?”
멍! 멍! 멍!
오지민의 목소리에 지순이가 오 종철을 향해 크게 짖으며 그녀를 보았다. 마치 아빠 여기 있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멍! 멍! 멍!
크게 짖은 지순이 오종철을 향 해 뛰었다.
“아이쿠! 그래, 지순아. 아빠다.
아빠야.”
자신을 향해 뛰어든 지순이의 몸에 밀려 오종철이 쓰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순이는 정신 없이 그의 곁을 맴돌며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을 때, 오 지민이 의아한 듯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순아, 순아 왜 그래?”
갑자기 지순이가 흥분을 해서 짖으니 당황한 것이다. 그에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지순이가 기분이 좋은가 보네 요.”
“그래요?”
“애들하고 뛰어노네요.”
물론 뛰어노는 애들은 없고 대 신 드러누운 오종철이 있을 뿐이 었다.
“순이가 그런 애가 아닌데…… 그런데 정말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는지 얼굴 핥고 바닥을 뒹굴고 서로 그러고 있네요.”
말을 하며 강진은 지순이와 오 종철을 보았다. 오종철은 자신의 얼굴을 연신 핥으며 꼬리를 흔드 는 지순이의 몸을 껴안고 있었 고, 지순이는 그런 아빠의 몸에 다 머리를 마구 비비고 있었다.
그리고 지순이의 꼬리는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꼬 리 힘으로 하늘을 날 것 같은 기 세였다.
‘아빠를 만지고 핥을 수 있으니
정말 좋은 모양이구나. 하긴…… 순이 너한테도 아빠니까. 아빠와 오랜만에 노니 정말 좋겠지.’
오종철에게 오지민과 지순 둘 다 딸이라면, 지순이에게도 오종 철은 아빠인 것이다. 비록 눈으 로는 볼 수 있지만 만질 수도, 핥을 수도 없었던 아빠 말이다.
그런 아빠가 이제 만질 수 있으 니 지순이는 너무 좋았다.
멍! 멍! 하으!! 하악!
짖고 핥고 두 개를 동시에 하느
라 정신이 없는 지순이를 보며 강진이 웃을 때, 오지민이 미소 를 지었다.
“순이가 정말 기분이 좋은가 봐 요.”
“정말…… 행복해 보여요.”
강진의 말에 오지민이 미소를 짓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 는 핸드폰을 앞으로 하고는 뭔가 를 눌렀다.
“촬영하시는 거면 제가 찍어 드 릴까요?”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촬영 을 하는 건지 강진이 생각할 때, 오지민이 고개를 저었다.
“녹음하는 거예요.”
“녹음요?”
“동영상은 제가 못 보잖아요.”
오지민은 지순이 짖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다.
“저렇게 기분 좋게 짖는 순이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그래서 녹 음해 놓으려고요.”
웃으며 오지민이 핸드폰을 든 채 지순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순이가 행복해 보여서 정말 좋 아요.”
“보고 싶을 텐데…… 아쉽네 요.”
강진의 말에 오지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지금 보고 있어요.”
“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보고 있 다는 말에 강진이 되묻자, 오지 민이 말했다.
“눈이 안 보인다고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눈으 로는 보지 않지만…… 보여요. 지금 지순이가 어떤 표정을 지으 며 놀고 있을지요.”
오지민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눈이 안 보여도 보 이는 것이 있죠. 추억이나 기억 처럼요.”
“맞아요.”
강진의 말에 미소를 지은 오지 민이 지순이가 있는 곳을 보다가 말했다.
“강진 씨 덕에 오늘 지순이 행 복하게 웃는 소리도 듣고 좋네 요. 고마워요.”
“앞으로 자주 오세요. 공원에서 좋은 바람도 쐬고, 순이 애들하 고 놀면서 힐링도 하게요.”
“그래야겠어요.”
강진이 오지민과 이야기를 나눌
때 오종철이 강진을 보았다.
“우리 순이 목마른가 보네.”
오종철의 말에 강진이 오지민에 게 말했다.
“순이 목마른가 보네요.”
강진의 말에 오지민이 등에 메 고 있는 가방을 벗어 옆에 놓고 는 그 안에서 물통을 꺼냈다. 그 러고는 뚜껑을 열며 말했다.
“순이야 물 먹자.”
오지민의 말에 지순이 다가와서
는 물을 마셨다.
혀를 빠르게 움직이며 물을 핥 아먹는 소리에 오지민이 웃었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으면 이렇 게 목이 말라.”
멍! 멍!
지순이는 크게 짖으며 오종철을 보았다. 마치 ‘언니, 저기 아빠 있어. 아빠가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지순을 보던 강진 이 오종철을 보았다.
오종철도 기분이 좋은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후우! 오랜만에 순이하고 놀아 주니 나도 힘이 드는군.”
오종철은 물을 먹는 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