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3 화
임상옥 교수와 최광현에게 청구 를 한다는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핸드폰을 보다가 급히 말했 다.
“그 두 사람한테요?”
[일을 시키는 건 두 사람이니까 요.]
“하지만…… 정확하게 따지면 나라가 아닙니까? 정부에서 범죄 를 해결하려고 두 분한테 의뢰를
하는 거니까요.”
전화기 너머에서 신수호의 담담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두 분은 나라에서 주는 대가를 받지 않습니까. 무보수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닐 텐데요.]
“그건…… 네.”
강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잠 시 침묵하던 신수호가 말을 이었 다.
[제가 설명이 좀 부족한 모양이 군요. 설명 더 드리겠습니다.]
“듣겠습니다.”
[일단 경찰 귀신들은 임상옥 교 수와 최광현 씨의 지시로…… 정 확히는 임상옥 교수의 지시를 최 광현 씨가 전달을 하는 거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업무 지시를 받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래서 청구가 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최호철에게 미제 사 건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단서를 가져오게 만드니 말이다.
[쉽게 말하면 돈으로 귀신을 부 리는 셈입니다. 물론 그 돈이 이
승의 돈이 아닌 저승의 돈이지만 요.]
“그렇죠.”
[일을 시키는 건 두 사람이니 둘이 돈을 지불하는 겁니다. 대 신 그 둘은 이승에서 대가를 받 고 있지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십니까?]
“네.”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물었 다.
“그럼 두 분 계좌가 마이너스가
되는 것 아닌가요?”
[이승의 법도대로라면 마이너스 가 되겠지만, 저승의 법도대로라 면 플러스가 되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돈을 쓰는데 플러스가 된다고 요?”
[선행이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선을 하면서 돈을 쓰면 그 돈이 복리가 되어서 돌아오는 경우입 니다. 예를 든다면 나쁜 놈 하나 가 사람 백 명을 괴롭힌다고 가 정을 하겠습니다. 그 나쁜 놈을
잡으면 그 혜택은 직접적인 피해 를 입은 분들 말고도 다른 백 분 에게도 미칩니다. 그러면 그 백 명을 돕는 선행이 쌓이는 겁니 다.]
“백 명이나요?”
[그러니 돈을 쓰는 속도보다 돈 이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빠릅니 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더 생기는 것과 같지요.]
“그렇군요.”
[하지만 반대로 그 두 분이 사
적인 일로 귀신들을 부린다면 돈 이 기하급수적으로 나가게 될 겁 니다. 귀신을 돈으로 부릴 수는 있지만 어떠한 일로 부리느냐에 따라 지불해야 할 금액은 천지 차이입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법적으로 문제되는 일이 거나 나쁜 일을 사적으로 시킨다 고 해도 호철 형이나 경찰 귀신 들이 그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 까요.”
[그건 그렇군요. 어쨌든 더 궁
금하신 것은 없습니까?]
“그럼 경찰 귀신들도 잔고에 도 움이 되는 일이겠죠?”
[저승에서는 무료 노동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일을 하면 그에 다른 대가가 나옵니다.]
“그럼 시급은 어떻게 되는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 다. 알아보려면 저승 노동청에 문의를 해야 하는데, 바로 알아 봐드릴까요?]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
면서 돈이 들어오는데 액수가 적 으면 어떻겠어요. 그리고 액수가 적다고 안 하실 분들도 아니고. 설명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통화를 끝낸 강진은 핸드폰을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이혜미를 보았다.
“형수님.”
강진의 부름에 TV를 보고 있던 이혜미가 그를 보았다.
“네?”
“남편이 돈을 잘 버신대요.”
“돈요?”
의아한 듯 묻는 이혜미를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 알아봤는데 호철 형이 수 사하는 거 다 JS 계좌에 입금이 된대요.”
“어머! 진짜요?”
“그럼요. 지금 신수호 변호사님 한테 확인했어요.”
“정말 잘 됐어요.”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 다.
“남편이 돈을 벌어온다니 그렇 게 좋아요?”
“좋죠. 저승 물가가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둘이 열심히 벌어 야 월세 안 살죠. 애 키우면 돈 도 많이 들 텐데 최소한 전세로 는 시작해야죠.”
“아기는……
말을 하려던 강진이 입을 다물 었다. 귀신도 임신을 할 수 있냐
는 것을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 던 것이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임신을 못 하죠.”
“그럼?”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자 이혜미가 미소를 지었다.
“전에 강두치 씨 만났을 때 슬 며시 물어봤어요. 저희도 임신을 할 수 있는지요.”
“저승에서 임신할 수 있대요?”
강진이 놀라 묻자 이혜미가 미 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에 가면 삼신할미 산부인 과가 있대요. 그곳에서 진료받고 두 사람이 노력하면 임신할 수 있대요.”
“정말 잘 됐네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작게 한 숨을 쉬었다.
“근데 돈이 많이 든대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승은 다 돈이니까요.”
“그런 것도 있는데…… 보통 저 승에 남으려면 VIP는 되어야 한 다고 해요. 아닌 귀신들은 형벌 이 끝나면 얼마 안 있다가 환생 을 해야 한대요. 그래서 저희 둘 돈 많이 벌어서 VIP 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살아서 못 만난 것 만큼 거기서라도 오래 같이 있 죠.”
말을 하던 이혜미가 미소를 지 으며 허공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 나중에, 한참 나중에 오면…… 우리 집에 서 식사도 하고 늦은 손주 손녀 도 보고 사위하고 인사도 해야 죠. 그러니 우리 돈 정말 많이 벌 거예요.”
이혜미가 웃으며 강진을 보았 다.
“그러니 저 돈 모을 때까지 가 게 절대 접으면 안 돼요?”
“그럼요. 저도 열심히 장사해서 돈 많이 벌겠습니다. 아! 나중에 제가 좀 늦게 인사하러 가면 그
때도 제 가게에서 일해 주시는 겁니다?”
“그럼요. 제가 먼저 가서 한끼 식당 오픈하기 좋은 자리도 알아 보고 저승 손님들 식성이 어떤지 도 잘 파악해 놓을게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 다.
“저 올라가서 좀 쉬고 내려올게 요.”
“올라가서 낮잠도 좀 자고 내려
와.”
“그러려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2 층으로 올라갔다. 원래 강진은 낮잠을 자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걸렸던 일 이 해결이 되니 나른해진 것이 다.
그리고 날씨도 따스하고 습기도 없는 것이 바스락거리는 이불에 들어가서 자면 꿀잠을 잘 것도 같고…… 어쨌든 낮잠 자기 딱 좋은 마음과 날씨였다.
* * *
일요일이 되어 신림에 들른 강 진은 장대방, 최광현과 함께 빌 라 단지를 걷고 있었다.
“저기 할아버지 귀신이 채송화 씨에 대해 좀 잘 아시는 것 같아 요.”
“돌아가신 지는 얼마나 되신 것 같아요?”
“이 년 되셨어요.”
“혹시 아시던 분이에요?”
“어릴 때부터 동네에 있던 슈퍼 라서 가끔 갔어요.”
말을 하며 장대방이 쓰게 웃었 다.
“저 군대 가기 얼마 전에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 엄마한테 들었 어요.”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자 빌라 단지 골목에 위치한 작은 슈퍼에 도착했다.
요즘도 이런 작은 슈퍼가 있나 싶겠지만, 빌라 단지 깊숙한 곳 에 위치해서 안에 사는 사람들이 급히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올 때 편할 것 같았다.
물론 할인율은 조금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슈퍼를 보던 강진의 눈에 평상 앞에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는 할아버지 귀신이 보였다. 그 할 아버지도 장대방과 함께 오는 강 진을 보고 있었다.
“어르신.”
장대방이 고개를 숙이자, 할아 버지 귀신이 안타까운 눈으로 그 를 보았다.
“젊은 녀석이 너무 일찍 죽었 어.”
“그러게요.”
장대방이 작게 웃자, 할아버지 귀신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방금 전에 네 동생 라면 사 가 더라. 라면 끓여 먹을 모양이야.”
“집에 어머니가 안 계시나?”
“가끔은 라면도 먹고 싶은 거 지.”
두 귀신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한 발 앞으로 나선 강진이 고개 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강진입니다.”
강진이 인사를 하자 할아버지 귀신이 그를 보았다.
“저승식당 사장?”
“네.”
“대방이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그런데 많이 안 놀라시네요?”
보통의 귀신들은 자신을 보는 강진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 것 이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나 싶 었어.”
강진이 보자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셨다.
“귀신이 있으면 세상 나쁜 놈 들, 다른 사람 죽이거나 해를 끼 친 놈들이 어떻게 살아남나 싶었 거든. 그래서 귀신이 없다 생각
을 했어. 그런데 내가 귀신이 됐 잖아. 귀신도 있으면 귀신을 보 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그러니 놀랄 일도 없고.”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강진을 보 았다.
“귀신한테 밥 해 준다며? 만나 서 반가워.”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할아버지는 강진과 함께 있는 최광현을 보았다.
“저 친구도 귀신을 보나?”
“보지는 않고 귀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걸 알고 있구먼.”
귀신을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 는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그렇죠.”
“그래서 그 아가씨가 궁금하다 고?”
“네.”
“나도 그 아가씨가 우리 가게
가끔 오니 좀 본 거지, 잘은 몰 라. 그 아가씨 죽은 것도 나중에 노인정에서 들었으니까.”
“그럼 혹시 그 아가씨 누구하고 같이 물건 사러 온 적은 없습니 까?”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가끔 젊은 남자하고 물건 사러 오기는 했었지. 라면하고 햄하고 술 같은 것들 말이야.”
“젊은 남자요?”
“아가씨보다 몇 살 어려 보였 어.”
말을 하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 아가씨 죽 고 그 남자가 가끔 왔던 것 같 아.”
“ 가끔요?”
“전에는 군복 입고 여기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고 한참 있다가 갔고…… 작년에도 와서 커피 마 시고 앉았다가 갔던 것 같아.’’
“작년에는 어르신 돌아가시지 않으셨어요?”
장대방이 의아한 둣 보자, 할아 버지가 피식 웃었다.
“죽어도 나는 여기 앉아 있으니 까.”
“아…… 죄송해요.”
말실수를 했다 여겨 사과를 하 는 장대방을 보며 할아버지가 고 개를 저었다.
“같은 귀신끼리 무슨. 괜찮아.”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럼 작년에는 왔었고 올해는 요?”
“올해는 안 왔어.”
그것까지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젓는 것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할 때, 할아버지 귀신이 말했다.
“그래서 귀신한테 밥을 해 준다 고?”
“네.”
“그런데 나는 안 해 줘?”
“여기는 제가 딱히 가져온 것이 없어서요. 혹시 지박령이세요?”
“ 맞아.”
“아…… 지박령이면 제가 모실 수가 없는데. 다음에 제가 올 때 음식 좀 만들어 올게요.”
“여기서 뭐 하나 해 주면 안 돼? 자네가 밥을 해 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아쉬운 얼굴로 자신을 보는 할 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여기서 요리하기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가게를 가리켰다.
“할망구한테 삼천 원 주면 라면 하나 끓여 줄 거야. 대신 자네가 끓여서 먹고 싶다고 버너하고 냄 비 가져다가 여기서 끓여. 그러 면 자네가 한 라면 되는 거 아닌 가?”
“여기서 직접 끓여 먹어도 되나 요?”
“가끔 동네 영감들 여기서 라면 에 이것저것 넣고 끓인 거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하거든. 단골만 해 주기는 하는데 소주하고 햄 같은 거 사면 할망구가 내어 줄 거야.”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강진은 슈퍼 문을 열고는 안으 로 들어갔다. 슈퍼 안에서는 할 머니가 TV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