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6화
쪼르륵!
양은그릇에 따라지는 막걸리를 아저씨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 이, 골목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다가올 때는 별다른 기색이 보 이지 않다가 아저씨가 막걸리를 먹는 것을 보더니 눈을 찡그렸 다.
“여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주머니의 말에 장대방이 미소 를 지었다.
“우리 어머니예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아주머니가 의아 한 듯 그를 보다가 아저씨를 보 았다.
“아니, 무슨 점심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있어.”
아주머니의 말에 아저씨가 웃으 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덥석!
“왜 이래?”
놀라 자신의 손을 보는 아주머 니를 보며 아저씨가 미소를 지었 다.
“오늘 내가 기분이 너무 좋아 서…… 한잔했어.”
“기분이? 왜, 무슨 일 있어?”
아주머니는 슬며시 강진과 최광
현을 보았다.
“그런데 이쪽은……
아주머니의 말에 아저씨가 웃으 며 둘을 보았다.
“이쪽은 대방이하고 친한 형 이 강진, 그리고 이쪽은 대방이 경 찰서에 있을 때 상사였던 최광현 씨.”
아저씨의 말에 아주머니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대방이하고요?”
“그래.
웃으며 아저씨가 강진과 최광현 을 보았다.
“산책하고 올라오는데 강진이가 인사를 하더라고. 나는 기억을 못 했는데 전에 대방이하고 인사 를 한 적이 있다네.”
“그래요?”
“대방이 생각이 나서 광현 씨하 고 같이 여기서 막걸리 먹고 있 었더라고.”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아주머
니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나. 아들 친구가 대방이 생 각이 나서 여기에 이렇게 찾아왔 는데 말이야.”
아저씨의 말에 아주머니도 미소 를 지으며 강진과 최광현을 보았 다.
“우리 아들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런데 왔으면 우리 집에 오지
그랬어요.”
“그냥 여기에서 대방이 생각하 며 막걸리나 한잔하려고 한 걸 요. 그리고 말 편하게 해 주세 요. 대방이 어머니께서 존대해 주시니 민망하네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래. 대방이 형이면 나한테는 아들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럼 말 편하게 할게.”
그러고는 아주머니가 안주를 보
았다. 불어터진 라면과 봉지째 뜯겨 있는 햄을 보며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안주를 좋게 놓고 먹어야지.”
“괜찮아. 젊을 때는 이렇게도 먹어 보는 거지.”
그러고는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보았다.
“김치는?”
“상황 설명을 좀 해 줘야 가져 오지. 나는…… 아니지,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집에 가요. 집
에 가서 한 잔 더 해요.”
“그래. 그렇게 해. 편하게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아저씨의 말에 강진이 할아버지 를 보았다. 그 시선에 할아버지 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나는 괜찮아.”
웃으며 말을 하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어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처럼 사람과 이야기를 했고 술도 한잔 했으니 말이다.
동네 귀신들과 가끔 이야기를 한다지만 사람하고 이야기 나누 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 를 숙이고는 아저씨를 보았다.
“그럼 잠시 들르겠습니다.”
“잠시 들르기는. 편하게 와.”
그러고는 아저씨가 몸을 일으키 자, 강진이 먹다 남은 음식들을 보다가 슬며시 물었다.
“저기 혹시 이 음식들은 어떻게 하나요?”
“이건 내가 치울 테니까 당신이 애들 데리고 집으로 먼저 가요.”
말을 하며 아주머니가 먹은 자 리를 정리하려 하자, 강진이 급 히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할게요.”
“아니야, 아니야. 먼저 들어가 있어. 내가 할게.”
“그래. 어서 가자고.”
아저씨가 웃으며 걸음을 옮기는 것에 강진이 불편한 눈으로 정리 하는 아주머니를 보다가 급히 말
했다.
“그럼 같이 정리하고 가시죠. 이렇게 가기에는 제 마음이 좀••…
“그래? 우리 대방이 형 마음 불 편하면 안 되지. 하하하!”
아저씨는 서둘러 아주머니 옆에 가서는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그 에 아주머니가 피식 웃었다.
“대방이 형이 오니 내가 편하 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음식 쓰레
기를 냄비에 담다가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해요?”
“수돗가 옆에 보면 음식물 쓰레 기 담는 통 있어.”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냄비를 챙겨서는 수도 옆을 보았다. 아 주머니 말대로 수도 옆에는 편의 점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채반이 놓인 플라스틱 통이 있었 다.
거기에 음식물을 버린 강진은 수도 옆에 있는 수세미와 세제로
냄비를 씻으며 최광현을 보았다.
“형 컵하고 주전자 주세요.”
"응."
최광현이 주전자와 양은그릇을 가져다 주자, 강진이 그것을 씻 어냈다.
“두면 내가 할 텐데.”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 했어요.”
강진은 냄비를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이 닦아서는 햇빛 에 비쳐 보았다.
자기 가게 설거지도 깨끗하게 해야 하지만, 이건 남의 집 그릇 이니 더 깨끗하게 해서 줘야 했 다.
햇빛에 비춰 기름기가 남았는지 본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깨 끗하게 설거지가 된 것이다. 그 에 강진은 그릇들을 냄비 안에 담고는 그것을 버너 위에 올려서 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잘 썼습니다.”
“설거지까지 했어요?”
“제가 먹었는데 제가 해야죠. 그릇 깨끗하게 설거지했으니 따 로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디 보자.”
할머니가 웃으며 그릇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각이 설거지를 참 잘 했네. 아주 뽀득뽀득해.”
“그릇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다음에 또 와요.”
고개를 숙인 강진이 가게를 나 오자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웃으 며 말했다.
“그럼 어서 가요.”
두 사람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 기자 강진이 할아버지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종종 와서 막걸리 한 잔 줘.”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장대방의 집에 들어선 강진은 아저씨가 웃으며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대진아! 대진아!”
아저씨의 외침에 닫혀 있던 문 이 열리며 청년이 나왔다.
나오던 청년은 강진과 최광현을 보고는 멈칫했다. 그런 청년을 보며 장대방이 말했다.
“제 동생 대진이에요. 올해 대 학교 일 학년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장대진을 보았다.
“네가 대진이지?”
“네? 누구세요?”
“나 너희 형하고 친하게 지내던 형이야.”
강진의 말에 장대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희 형하고…… 친하셨어요?”
“ "응."
강진의 말에 장대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그래. 반갑게 맞이해 줘서 고 마워.”
“네.”
장대진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 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장대 진을 강진이 볼 때,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쪽으로 와.”
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거실로
데리고 가고는 웃으며 말했다.
“뭐 좋아해?”
“저희는 아무거나 좋습니다.”
“김치찌개나 좀 끓여.”
아저씨의 말에 아주머니가 강진 을 보았다.
“김치찌개 괜찮겠어?”
“그럼요.”
“그럼 여기 앉아 있어. 내가 곧 만들어 줄게.”
죽은 아들과 친하다는 말에 친
근하게 대해주는 아주머니를 볼 때, 아저씨가 바닥을 가리켰다.
“자, 앉아 앉아.”
아저씨가 웃으며 먼저 자리에 앉자 강진이 그 옆에 앉으며 슬 며시 말했다.
“아버님.”
“왜?’’
“저 대방이 핸드폰 좀 볼 수 있 을까요?”
“대방이 핸드폰?”
“대방이 생각이 나서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잠시만.”
그러고는 아저씨가 방으로 들어 가더니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 자.”
아저씨가 핸드폰을 주자, 강진 이 핸드폰을 두들겼다.
톡톡!
그러자 화면이 켜졌다.
“핸드폰 살아 있네요?”
“대방이……
웃으며 답하던 아저씨가 입맛을 다시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일 있고 대방이 핸드폰에 있는 번호로 부고를 보냈지.”
“직접 보내셨어요?”
“누구한테 해 달라 하기도 그렇 고……
잠시 핸드폰을 보던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아들 마지막 가는 길 안내하는 데 문자라도 내가 해야지.”
“그러셨군요.”
강진이 핸드폰을 보며 하는 말 에 아저씨가 쓰게 웃으며 말을 했다.
“아들 보내고 난 후에 핸드폰을 봤는데…… 아들 생각하는 사람 들이 가끔 문자를 보내더라고. 그거 보는 재미도 있고 아직 대 방이 소식 모르는 친구들이 있는 것도 같아서 살려 놨어. 혹시라 도 대방이 소식 모르는 친구들한
테 연락이 오면 답은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고는 아저씨가 손을 내밀자 강진이 핸드폰을 건넸다. 그렇게 다시 핸드폰을 쥔 아저씨가 웃으 며 말했다.
“그런데 친구들 문자보다 스팸 문자가 더 많이 오네.”
“스팸 문자요?”
강진의 물음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한 놈들이 죽은 사람 핸드
폰인 줄도 모르고 스팸을 보내더 라고. 돈 필요하면 연락하라거나 보험 들라는 스팸인데 죽은 사람 이 돈하고 보험이 무슨 필요라고 말이야. 바보 같은 놈들.”
작게 고개를 저은 아저씨가 강 진을 보며 웃었다.
“그런데 스팸 문자 오는 것도 좋더라고.”
“스팸 문자 오는 게요?”
스팸 문자처럼 귀찮은 것도 없 다. 자다가 수신음에 깨서 확인
했는데 스팸 문자면 열받기도 하 니 말이다.
의아한 듯 보는 강진을 보며 아 저씨가 말했다.
“아들 핸드폰에 문자가 오는 거 보면 그래도 이 녀석한테 연락하 는 사람이 아직도 있구나 싶어서 말이야. 그게 스팸이라고 해 도…… 후! 아들 핸드폰에 띵동 소리가 나면 좋더라고.”
아저씨는 웃으며 핸드폰을 강진 에게 내밀었다.
“자, 봐.”
그러고는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 어났다.
“여보, 다른 건 뭐 없나?”
아저씨가 주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핸드폰을 보다가 장 대방을 보았다.
장대방은 주방에 있는 아저씨의 등을 보고 있었다. 그런 장대방 에게 강진이 핸드폰을 밀었다.
“봐요.”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장대방을 보던 강진은 문 자 앱을 켰다. 그러자 주르륵 나 오는 문자들을 보며 장대방이 웃 었다.
“스팸 문자가 정말 많기는 하네 요.”
최근에 온 문자들이 모두 스팸 이었으니 말이다.
‘스팸 문자는 정말로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지 않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스르륵! 스르륵!
그러자 스팸 메일 사이로 장대 방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보 낸 문자들이 보였다.
〈대방아, 네가 없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잘 지내고 있
지? 나는 뭐 여전히 그렇기는 한 데…… 모르겠다. 잘 지내라.〉
〈내 친구 대방이 너무 보고 싶 다.〉
〈대방아…….>
문자들은 긴 것도 있고, 그저 이름만 간단히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보고 싶 다는 마음만은 길든 짧든 잘 느 껴졌다.
장대방은 피식 웃으며 문자가 보내진 시간을 보았다.
“이 자식, 새벽 세 시에 어디서
술 처먹다가 술주정을 나한테 했 네.”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문자가 온 시간이 새벽 3시 조금 넘은 시간 이었던 것이다.
강진은 웃으며 다시 문자를 확 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친구들 이 보낸 문자들을 하나씩 볼 때 마다 장대방이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친구들이 보내온 문자들 이 그의 마음을 따스해지게 했 다.
웃으며 문자를 보던 장대방은 문득 강진을 보았다.
“사진 파일로 좀 가 주시겠어 요?”
“문자는 안 보고요?”
“그건 나중에요. 보고 싶은 사 람이 있어서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사진 파 일을 클릭해 들어갔다. 그러자 장대방이 미소를 지었다.
주르륵 뜨는 사진 중에서 여자 친구의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여전히 예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