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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87화 (885/1,050)

887화

핸드폰 속 여자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는 장대방을 보며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부모님 서운하겠다.’

부모님은 죽은 아들 친구가 왔 다고 저렇게 좋아하며 음식을 하 고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고 하는데…… 죽은 아들은 여자친 구 사진 보며 좋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 자식이었으면 뒤통수를 후려 칠 일이었다.

‘그렇게 여자가 좋나?’

젊을 때는 부모님보다는 여자친 구 말을 더 잘 듣기도 한다. 가 끔은 사랑과 효도가 서로 충돌할 때가 있는데…… 젊을 때는 사랑 이 늘 이기는 것이다.

장대방을 보던 강진이 그의 머 리를 살짝 툭 쳤다.

“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대방

을 보며 강진이 부모님이 있는 부엌을 가리키자,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오랜만에 봐서 좋아서 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저을 때, 아저씨가 웃으며 상을 들고 왔다.

상 위에는 두부조림과 멸치볶 음, 그리고 김치 같은 밑반찬이 놓여 있었다.

“아이고 아버님

최광현이 받으려 하자, 아저씨 가 고개를 저었다.

“다 왔는데 받기는 뭘 받아.”

“부르시지.”

“됐어. 됐어.”

웃으며 아저씨가 기분 좋은 얼 굴로 상을 놓았다.

“찌개 될 때까지 이걸로 한잔하 자고.”

아저씨의 말에 최광현이 웃으며 말했다.

“반찬이 안주죠. 멸치볶음 아주 맛있겠네요.”

“대방 엄마가 음식을 아주 잘 해.”

말을 하며 강진을 보던 아저씨 는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 고는 미소를 지었다.

“경진이는 잘 지내고 있나?”

아저씨의 말에 장대방이 말했 다.

“여자친구 이름이에요. 경진, 노 경진.”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저는 경진 씨 말만 들었고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

“아버님은 보신 적 있으신가 보 네요?”

“애 장례식 날 봤지.”

아저씨가 소주병을 잡으려 하 자, 최광현이 급히 그것을 대신 잡아서는 뚜껑을 열었다. 그에 아저씨가 웃으며 잔을 들었다.

“장례식 와서 펑펑 울었지. 그 리고 우리한테 죄송하다고, 죄송 하다고……

“ 죄송하다고요?”

최광현이 소주를 따르며 묻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때문에 거기로 발령받아 왔다고…… 서울에 발령 났으면 안 죽었을 거라면서 펑펑 울던데 정말 안쓰럽더라고.”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날 우는 거 보고 얘는 어떻

게 사나 걱정을 했는데…… 뭐,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겠지. 그 리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사귀다 가 그렇게 된 거니까.”

그러고는 아저씨가 강진을 보았 다.

“그럼 강진이는 경진이 소식 모 르겠네.”

“네.”

“잘 지내야 할 텐데......

아저씨가 핸드폰을 보다가 쓰게 웃었다.

“그날 우리 마누라가 참 모질게 했는데.”

아저씨의 말에 순간 부엌에서 고함이 들렸다.

“모질기는 뭐가 모질어! 그 애 아니었으면 내 아들 지금도 내가 해 주는 밥 먹으면서……!”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다가 돌 연 멈추자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주방을 보았다.

그러고는 강진과 최광현을 보았 다.

“미안해. 잠시만.”

“괜찮습니다.”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일어나서 는 주방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싱크대에 기대고 있는 아주머니 에게 다가갔다.

싱크대에 손을 대고 있는 아주 머니의 뒤에 다가간 아저씨가 작 게 말했다.

“여보.”

“경진이만 아니면 내 새끼, 내 가 깨워 주고…… 밥 먹여서 학

교 보냈을 텐데.”

작게 떨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에 아저씨가 그 등을 보다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그게 경진이 탓인가. 그날 술 처먹고 염병을 한 개놈 때문이 지. 경진이 잘못이 아닌 거 알잖 아.”

“여자가 뭐가 그리 좋다고...... 집 떠나서 타지 생활을 해.”

“그 나이대 남자들은 다 그런 거야. 그리고 당신도 알고 있었

잖아. 대방이 여자친구 보러 거 기 지원한 거 말이야. 그때 당신 그냥 웃었잖아.”

아저씨의 말에 아주머니가 한숨 을 쉬며 싱크대를 잡고는 몸을 기댔다.

“나도 알아. 경진이 잘못 없는 거 나도 아는데... 근데 대방이

가 너무 보고 싶어.”

아주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아저씨가 한숨을 쉬고는 그 머리 를 쓰다듬었다.

“그래. 나도 보고 싶어.”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뒤에서 안 아 주었다.

아주머니를 달래는 아저씨를 멍 하니 보던 장대방이 울먹이는 얼 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미안해요. 내가…… 그 때 그냥 음주운전한 새끼 그냥 못 본 척할걸. 조금만 더 느리게 움직일걸. 그냥 내가 놓칠걸. 그 때 왜 차에 뛰어들어서... 엄마

미안해. 아빠 미안해. 정말 너무 미안해.”

장대방은 그날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진 못했다. 하지만 장례식에 온 경찰들의 말 에 의해 상황은 대충 알고 있었 다.

그래서…… 그날로 돌아간다면 정말 그냥 음주운전 차를 막아서 지 않고 놓아 주고 싶다고 수십, 수백 번 생각한 그였다.

순간적인 오기로 부모님의 마음 을 이렇게 아프게 한 것에 대해

너무 후회스러운 것이다.

장대방이 울먹이는 것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저을 때, 방문이 작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윽!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장대진은 주방에 있는 부모님을 보고는 작 게 숨을 토했다.

“후우!”

그런 장대진의 모습에 장대방이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형이…… 정말 미안 해.”

부모님을 동생에게 맡기고 떠나 버린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미안 한 나머지 장대방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런 장대방의 목소리를 듣던 강진이 장대진을 보았다.

“대진아.”

강진의 부름에 부모님을 보던 장대진이 그를 보았다.

“이리 와요.”

강진의 부름에 장대진이 슬며시

옆에 와서는 앉았다.

“괜히 우리가 와서 분위기

가……

강진이 부모님을 보며 말을 하 자, 장대진이 장대방 핸드폰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형들이 오셔서 좋아요.”

“그래?”

“형들 와서 엄마 아빠가 형 생 각하잖아요. 어쨌든 잘 오셨어요. 두 분 오셔서 부모님들 다 좋아

하세요.”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아주머 니를 달랜 아저씨가 다가왔다.

“갑자기 분위기가 좀 이상하게 됐네.”

“아닙니다.”

웃으며 자리에 앉던 아저씨가 장대진을 보았다.

“제가 불렀어요.”

“자네가?”

“대진이도 대학생인데 같이 한

잔해도 되잖아요. 그리고…… 아 버님 대진이하고 소주 한 잔 나 누신 적 없으실 것 같고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그를 보 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먼.”

아까 자신이 장대방과 소주 한 잔 못 나눈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강진이 장대진을 앉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고마웠다. 큰아들 과 소주 한 잔 못 한 것이 그렇

게 한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작은아들과도 마찬가지로 소주 한 잔 못 해 본 것이다.

작은 아들도 이제 대학에 들어 가서 술을 마셔도 될 나이가 됐 는데 말이다.

그에 아저씨가 장대진을 보고는 웃었다.

“그러고 보니 너하고도 한잔한 적이 없구나.”

“네.”

“그런데…… 아들은 왜 술 안

마셔? 너희 형 신입생 때 보니까 그렇게 술을 마시고 들어오던데. 아빠는 네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저씨의 말에 장대진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 술 안 좋아해요.”

“대학생 됐으면 술도 좀……

말을 하던 아저씨가 문득 장대 진을 보았다.

“혹시 너 형 때문에 술을 안 마 시는 거니?”

아저씨의 말에 장대진이 잠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술 마신 놈 때문에 그렇 게 됐잖아요. 그래서 술이 싫어 요.”

장대진의 말에 아저씨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두들겼다.

그러고는 잠시 장대진을 보던 아저씨가 소주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때문이 아니야.”

“네?”

“술을 개가 먹어서 그렇지. 술 잘못이 아니야.”

“아버지……

아저씨는 잔을 들어서는 내밀었 다.

“ 받아.”

“아버지, 저는……

“일단 받아.”

장대진이 마지못해 잔을 쥐자, 아저씨가 소주병을 내밀며 물었 다.

“그럼 술은 안 마셔 본 거니?”

“네.”

장대진의 말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너 아빠가 무협 소설 좋아하는 거 알지?”

“네.”

“내가 좋아하는 무협 소설에 보 면 이런 대사가 있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물 을 마시면 독이 된다.”

아저씨의 말에 장대방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예요.”

강진이 보자 장대방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같은 밥 먹어도 누구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누구 는 해를 주는 사람이 된다는 말 을 자주 하셨어요. 같은 밥을 먹 었으면 남에게 해를 주는 사람보 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면서 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었다. 같은 밥을 먹었다고 다 똑같이 사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같은 물을 마신 독사나 소처럼 말이다.

‘아저씨가 무협지 보고 대방이 를 훌륭하게 키우셨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건 저승에서 가장 크게 보는 덕목이 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아저씨가 소주를 보며 말 했다.

“이 술도 마찬가지다.”

아저씨는 소주 뚜껑을 땄다.

드르륵!

뚜껑을 딴 아저씨는 소주를 장 대진을 향해 내밀었다. 그에 장 대진이 머뭇거리자 아저씨가 웃 으며 말했다.

“ 받아.”

장대진이 두 손으로 잔을 들자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술을 마시고 개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진솔해지는 사람도 있지. 개가 술을 마시면 미친개가 되지만 친구가 술을 마 시면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되지.”

잔에 소주를 따른 아저씨가 병 을 놓고는 자신의 잔을 들어 내 밀자, 장대진이 병을 쥐고는 공 손히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인생에 백해무익한 건 담배고, 인생에서 반은 나쁘고 반은 좋은 건 술이다. 좋고 나쁜 것이 반이 라면 경험 삼아 해 보는 것도 좋 은 일이야. 술을 많이 마시면 몸 이 상하지만, 적당히 즐길 줄 알 면 마음이 맞는 친구와 사람들을 사귈 수도 있어.”

그러고는 아저씨가 장대진을 지 그시 보았다.

“네 형이 술 마신 개에게 물 렸……

말을 하던 아저씨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작게 숨을 토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가 술을 안 마시려고 하는 거 아빠는 이해해. 하지만 아빠는…… 네가 적당히 술도 즐 길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 다. 너도 앞으로 살다 보면 아빠 가 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게 될 거야.”

장대진이 잔을 내밀었다.

“술이 몸에 나쁘지만 적당히 즐 길 줄 알면 삶이 조금은 더 재밌 어진다는 걸 말이다.”

아저씨의 말에 장대진이 그를 보다가 슬며시 잔을 가져다 댔 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소주 를 마셨다.

꿀꺽!

단숨에 소주를 마시는 장대진의 모습에 아저씨가 웃었다.

“어때?”

“써요.”

장대진이 눈을 찡그리며 하는 말에 아저씨가 웃었다.

“그게 달게 느껴지는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때 우리 아들이 어른이 되는 거지.”

“달게요?”

장대진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는 둣 보자 아저씨가 웃으며 소 주병을 들었다.

“한 잔 더 받아.”

아저씨의 말에 장대진이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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