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2화
“이름을 부르면 이 아이가 저를 너무 좋아할까 봐서요.”
강진의 말에 최향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네?”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나누는 것이 이름이잖아요. 그리고 이름 을 부르다 보면 친해지고요.”
“친해지면 좋지 않아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 아지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오지 민이 의아한 듯 묻자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개들도 자기 이름을 알잖아 요.”
강진은 태호와 지순이를 보고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태호야, 지순아.”
강진의 부름에 태호와 지순이가 그를 보았다. 그런데 강진이 여 전히 뒤를 보고 있자, 지순이가
발을 들어 강진의 무릎에 올렸 다.
착!
마치 자기 여기 있는데 어디 보 냐는 듯 말이다. 그에 강진이 웃 으며 몸을 돌려 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애들이 자기 이름은 지 순이고 태호인 줄 알잖아요.”
지순이 머리를 쓰다듬던 강진이 아이들을 보았다.
“제가 저 아이들 이름을 지어줬
다가…… 다른 사람에게 안 갈까 봐서 이름을 안 지어줬어요. 그 리고 너무 친해지면 헤어질 때 힘들 것 같고요.”
“그러셨구나.”
“그래서 그냥 ‘얘들아’ 하고 불 러요. 혹시라도…… 좋은 사람이 아이들 보고 예뻐서 데려가실 수 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애들 머 리가 좋아서 좋은 주인 만나면 충분히 그 가족이 돼 예쁨 받으 며 살 수 있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최향미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움직여 오지민의 손 을 잡았다. 그에 오지민이 최향 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고마워서.”
“뭐가?”
“좋은 분 소개해 줘서 말이야.”
“소개팅 주선한 거 아닌데.”
오지민의 말에 최향미가 얼굴을 붉히며 급히 말했다.
“그런 말 아닌 거 알잖아.”
최향미는 강진이 있는 곳을 향 해 고개를 돌렸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좋은 분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고 한 거였어요. 아셨죠?”
당황해서 급히 말하는 최향미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아는데…… 이거 저 상처받을 것 같은데요?”
“네?”
최향미가 보지는 못하지만, 강 진은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가
슴을 쓰다듬었다.
“영문을 모르고 차인 것 같아서 요.”
강진의 말에 최향미가 급히 말 했다.
“그런 거 정말 아니에요.”
“압니다. 농담한 거예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배용 수가 어딘가를 보고는 말했다.
“누님 오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강혜가 오혁과 함께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 다.
오혁은 전에 쓰던 보조 보행 기 구가 아닌 자기 발로 천천히 걸 어오고 있었다.
“강진아!”
자신을 보고 반갑게 손을 드는 오혁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손 을 들었다.
“매형.”
매형이라는 말에 오혁이 기분이
좋은 둣 크게 웃으며 걸음을 빠 르게 하려 하자, 이강혜가 급히 그를 잡았다.
“천천히요.”
“알았어. 알았어.”
이강혜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다시 걷는 속도를 늦추고는 강진 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지팡이 안 짚으시네요.”
“조금 힘들기는 한데…… 후! 나처럼 젊은 놈이 언제까지 지팡 이 짚고 다니겠어. 지팡이는 산
에서만 짚는 걸로.”
오혁이 기분 좋게 웃으며 주위 를 보았다.
“여기 되게 시원하네.”
“그러게요.”
방금 전까지 푹푹 찌는 더위였 는데 정자 안으로 들어오자 바로 시원해지는 것에 이강혜가 의아 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늘 속과 밖이 천지 차이네 요.”
“그러게 말이야.”
대답하던 오혁은 강진을 툭 쳤 다.
“그런데 어쩐 일로 아가씨들하 고 같이 있……
웃으며 말을 하던 오혁은 아가 씨들을 보다가 멈칫했다. 햇살 뜨거운 날이라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건 그러려니 했지만, 밑에 앉아 있는 강아지들은 누가 봐도 안내견들이었으니 말이다.
오혁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참! 제가 이렇게 똥매너 는 아닌데 아가씨들한테 제 소개 도 안 하고 말을 하고 있었네요. 안녕하세요. 저 강진이 매형 오 혁입니다.”
오혁의 인사에 오지민과 최향미 가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 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 여인이 인사를 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 손님들이세요.”
“손님?”
“저희 가게 단골손님들이신데 날씨 좋아서 산책하러 왔어요.”
“아! 그랬구나.”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말 했다.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옆에 좀 앉겠습니다.”
“그러세요.”
주춤거리며 두 여자가 공간을
만들어 주려고 하자, 오혁이 웃 으며 말했다.
“저 그렇게 덩치가 막 크고 그 러지 않습니다. 편히 계시면 저 도 편히 앉겠습니다.”
그러고는 오혁이 정자에 앉았 다.
“끄응!”
오혁이 살짝 신음을 토하는 것 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아직 몸이 좀 불편하신가 봐 요.”
“몇 년을 침상에서 누워 잠만 잤는데 이 정도 불편한 건 감수 해야지.”
“그럼 지팡이 계속 짚으시죠? 그거 하나 짚어도 부담이 많이 덜할 텐데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아까도 이야기했잖아. 지팡이 는 산에서 짚는 걸로. 그리고 좀 저리기는 한데 근육통 정도라 걸 을 만해.”
오혁은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 다.
“고통은 형을 약하게 만들지 않 는다. 고통은 나를 단련시켜 주 지.”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피식 웃 으며 말했다.
“중2들이 오빠한테 형, 형 하겠 네.”
“중2 애들한테 내가 동생은 아 니잖아.”
오혁은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그래도 병원 돌팔이 말이 이렇 게 회복 속도가 빠른 환자는 살 다가 처음 본다네.’’
“돌팔이요?”
강진이 보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 의사 친구 있어요.”
“아! 친구분한테 진찰받으시는 구나.”
“그 돌팔이가 출세했지. 내 친 구니까 그 돌팔이가 내 담당이 된 거지, 보통은 어림도 없지. 나
담당하고 싶어 하는 교수들이 어 디 한 줄인 줄 알아?”
“그렇겠죠. 아, 여행은 좋으셨어 요?”
이강혜와 오혁은 얼마 전에 국 내 여행지로 둘만의 여행을 다녀 왔었다.
도원규도 동행하지 않고 단둘이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딱히 목 적지를 두지 않고 차를 타고 가 다가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거 기서 하루 자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강진도 오혁을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 많더라. 경치가 그림 같은 곳이 진짜 많 아.”
오혁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형이 이번에 가서 보고 온 데 나중에 데려가 줄게. 정말 좋은 곳 많더라.”
“그럼 좋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을 보며 미소 짓던 이강혜의 시
선이 오지민에게 닿았다.
“안녕하세요.”
이강혜의 목소리에 오지민과 최 향미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 개를 돌렸다.
“저는 강진이 누나인데…… 사 실은 저도 강진이 가게 손님으로 만났어요.”
“그럼 친누나가 아니신가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강진이 를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강진이 도 그럴 거예요.”
“그러시구나.”
오지민이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강혜가 슬며시 말했 다.
“핸드폰은 좀 쓸 만하세요?”
“네?”
“그거 저희 회사에서 만든 거거 든요. 점자폰 쓰는 분을 보니 사 용하기 어떠신지 궁금해서요. 보 고서로 설문 조사가 올라오기는 하는데 그건 종이에 적힌 내용이 고, 이렇게 직접 쓰는 분을 보기
는 어려워서요.”
이강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개선할 점이 있으면 개선해서 신상품에 반영하겠습니다.”
“아! 그 강진 씨가 이야기하신 분이……
“강진이가 제 이야기를 했어 요?”
“점자폰 만드는 회사에 아는 분 이 계시다고.”
“맞아요. 그게 바로 저예요.”
싱긋 웃은 이강혜가 말했다.
“그래서 고객 만족도를 물어보 려고 해요. 어떻게, 사용하시는데 불편하지 않아요?’’
이강혜의 물음에 오지민이 핸드 폰을 보다가 말했다.
“저는 불편한 것이 없어요.”
“그래요? 그래도 불편하신 것이 있으실 텐데?”
“점자폰인데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죠.”
“그럼 불편한 것이 있기는 하신 거네요. 괜찮으시다면 말씀 좀 해 주세요.”
이강혜가 뭐든 말을 해 달라는 것에 잠시 있던 오지민이 입을 열었다.
점자폰 쓰면서 자신이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이 강혜가 핸드폰을 꺼내 그 말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옆에서 보던 강진이 최 향미를 보았다. 최향미는 손을 내밀어 한 손으로는 태호를 쓰다
듬고, 한 손으로는 유기견을 쓰 다듬고 있었다.
“제가 사진 찍어 드릴까요?”
“사진요?”
“이렇게 화창한 날 강아지들과 함께 있는 사진 찍어서 보내면 어머니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최향미가 잠시 있 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 여기 크게 찍어서 주시겠 어요?”
“여기 다 나오게요?”
“네.”
답하며 핸드폰을 내미는 최향미 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사람도요?”
“그럼요.”
최향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볼 때, 오종철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 엄마한테 보내려는 거 야.”
강진이 보자, 오종철이 재차 웃
었다.
“가짜 엄마가 있는데 진짜 엄마 가 없겠어?”
그러고는 오종철이 최향미를 보 았다.
“가짜 엄마한테 자기 먹은 사진 보내는데 친엄마한테 안 보내겠 어? 걱정을 해도 친엄마가 더 할 텐데 말이야. 그래서 음식 사진 찍으면 가짜 엄마한테도 보내고 친엄마한테도 보내는 거야.”
말을 한 오종철이 입맛을 다시
며 고개를 저었다.
“가짜 엄마라고 말하니 좀 이상 하네. 그냥…… 둘째 엄마라고 하세. 어쨌든 지금 사진은 친엄 마한테 보내려는 거야. 자기 여 기에서 이렇게 사람들하고 잘 어 울리고 있다고 말이야.”
오종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핸드폰으로 사람들과 개들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최향미의 손에 가져다 댔다.
그에 최향미가 핸드폰을 받아
몇 번 터치를 하고는 미소를 지 으며 핸드폰을 다시 내밀었다.
“저기 한 컷 더 부탁해도 되나 요?”
“그럼요.”
“그럼 여기 강아지들하고 주위 사진 좀 찍어 주시겠어요? 사람 들은 안 나오게 찍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강진이 핸드폰을 받자, 오종철 이 말했다.
“이건 둘째 엄마에게 보내는 사 진인가 보네.”
오종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으로 강아지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진을 찍을 때, 핸드폰 상단에 문자가 떴다.
〈엄마: 우리 딸 오늘 향미하고 좋은 데 갔네. 개들 너무 이쁘 다. 밥은 맛있게 잘 먹었어?〉
본의 아니게 문자 내용을 봐서
그녀의 강진이 웃으며 사생활을 침범한 것 같아 당황해할 때, 최향미가 말했다.
“저희 요.” 엄마한테 문자 온 거예
“보려고 한 건 아닌데 상단에 떠서 보게 됐네요.”
“괜찮아요. 별 내용도 없는 걸 요.”
최향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녀를 보았다.
“그런데 문자 오신 걸 어떻게 아셨어요?”
핸드폰은 자기가 들고 있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최향미가 웃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 다. 그리고 귀에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가리켰다.
“ 아.”
“문자 오면 읽어 주거든요.”
“그렇군요.”
“핸드폰 없으면 어떻게 살지 모 르겠어요.”
최향미의 말에 강진이 핸드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고마워요.”
최향미는 핸드폰을 받아 터치하 기 시작했다. 아마도 두 번째 엄 마에게 문자를 보내는 모양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