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5 화
아파트로 걸음을 옮기며 오지민 이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신호 준 거 야?”
오지민의 말에 최향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말씀하시는 게 과거형이었어.”
“과거형?”
“바닐라 향을 좋아했습니다.”
최향미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좋아해요.’가 아니라 ‘좋아했습 니다.’라니, 과거형이잖아.”
“아……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안 오지민 이 고개를 돌렸다가 한숨을 쉬었 다.
“식당에 사모님 모시고 가보시 라고 했는데 어떡해.”
“이해하실 거야. 네가 좋은 의 미로 말한 거 아실 테니까.”
최향미의 말에 오지민이 한숨을 쉬었다.
“다음에 바닐라 향이 나는 택시 를 타면 그때 사과드려야겠어.”
“그래.”
두 여자는 최향미네 아파트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 집에서 좀 더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한편, 아가씨들이 아파트 단지 로 가는 것을 보던 아주머니 귀 신이 슬며시 조수석에 스며들었
다.
“뭐 해요? 출발 안 하고?”
그러다 택시 기사가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는 것에 아주머니 귀신이 고개를 내밀었다.
〈한끼식당 단톡방입니다.〉
“한끼식 당?”
잠시간 단톡방을 보던 택시 기 사는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
다.
그러고는 바닐라 향 방향제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에 바닐 라 향이 더 진해졌다.
“여기가 그리 맛있다네. 이따 저녁에 한 번 같이 가 보자. 당 신 맛있는 거 좋아하잖아.”
방향제를 보며 웃은 그는 새로 운 손님을 태우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돌기 시작했다.
* * *
몇 없는 저녁 손님들을 접대한 강진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혁이 형 온다고 했는데 늦네?”
저녁 식사를 하러 온다고 했는 데 벌써 7시가 다가오니 말이다. 한잔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저 녁 식사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 이었다.
강진이 시계를 볼 때, 가게 문 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들어온 남자는 오택문의 비서 이
종범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웃으며 이종범이 인사를 하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그 뒤를 보았다.
“회장님 오셨어요?”
“차에 계십니다.”
말을 하며 이종범이 실내를 스 윽 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보안 검사하시는 건가요?”
전에도 그랬으니 말이다.
“사장님 가게면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안에 어떤 분들이 있는 지는 알아야 해서요.”
“손님들요?”
“사업하다 보면 원한 살 일이 많습니다.”
“그래요?”
“사람한테 웃는 얼굴만 보여 줄 수 없는 것이 사업 아니겠습니 까?”
웃으며 가게 손님들을 보던 이 종범이 말했다.
“술은 드시지 않았네요?”
“저녁에 일하시는 분들이 많아 서요.”
강진의 말에 이종범이 슬며시 말했다.
“평소 오시는 분들입니까?”
“네.”
강진의 말에 이종범이 손님들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를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오택 문과 이강혜, 그리고 오혁이 가 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냈나.”
“잘 있었습니다. 여기 앉으세 요.”
강진이 자리를 가리키자, 오택 문이 그곳에 앉았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오혁과 이강혜가 자리
를 했다.
자리에 앉은 오택문은 식탁을 손으로 쓰다듬고는 살짝 웃었다.
“왜 웃으세요?”
이강혜가 묻자, 오택문이 미소 를 지으며 오혁을 보았다.
“혁이가 기억을 할지 모르겠지 만, 전에 너와 같이 앉은 자리구 나.”
“그래요?”
“그래. 그때는 네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
오택문은 웃으며 강진이 가져다 놓은 컵에 물을 따르려 했다. 그 에 이강혜가 급히 물통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제가 할게요.”
“아니다. 내가 따라주고 싶구 나.”
오택문은 고개를 젓고는 잔에 물을 따랐다.
쪼르륵! 쪼르륵!
컵에 물을 따라 아들과 며느리 앞에 놓은 오택문이 미소를 지었 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의자에 앉아서 내가 따라 주는 물을 받 는구나.”
정말 기분 좋은 얼굴로 오혁을 보던 오택문이 말을 이었다.
“정 원장한테 연락 받았다. 몸 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구 나.”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이야기 들었다. 수고했 다.”
“앞으로 더 수고해야죠.”
오혁이 웃으며 컵을 들었다.
“물부터 한 잔 드시죠.”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일상생활에는 무리가 없다고 하던데?”
“혼자 화장실 갈 정도는 되니까 요.”
싱긋 웃는 오혁의 말에 오택문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는 동안이라도 일 좀 하는 것이 어떠냐?”
“아이고, 우리 영감님 또 왜 이 러실까.”
오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 었다.
“저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부려먹으려 하세요.”
“일을 본격적으로 하라는 건 아 니다. 그저 아빠 하는 일 좀 배
우면서 쉬엄쉬엄하라는 거다.”
“쉬엄쉬엄하는 것도 싫어요. 한 일 년은 몸 회복하고 한 이 년은 그동안 누워서 못한 일 해야죠.”
“그동안 못한 일?”
오택문이 보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영감님도 막내아들네 손주 안 아 봐야 하지 않겠어요?”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웃었다.
“그래. 그런 일이라면야 다른
일을 하면 안 되지.”
웃으며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럼요. 이 일만큼 중요한 일 이 어디 있나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근데 저 어디 일 맡기시려고 요? 설마 전자 쪽은 아니죠?”
“전자 쪽이야 강혜가 잘하고 있 으니 너한테 맡길 생각은 없다. 그리고 네가 그렇게 하지도 않을 테고.”
오택문의 말에 오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L전자 제1 주주는 오혁이 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L전자를 맡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 다. 하지만 오혁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럼 어디요?”
“일하기 싫다면서 네 손에 뭘 쥐여 주려는지 그건 궁금하냐?”
“궁금하죠. 이왕이면 좋은 걸로 쥐여 주면 좋겠는데요.”
오혁이 웃으며 하는 말에 오택 문이 그를 보다가 주머니에서 명 함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거다.”
오택문의 말에 오혁이 손을 내 밀어 명함을 받았다.
〈이슬 후원회
오혁 본부장〉
자신의 이름이 박혀 있는 명함
에 오혁이 의아한 듯 오택문을 보았다.
“명함까지 만드셨어요?”
“네가 맡았으면 좋겠다.”
오택문의 말에 오혁이 다시 명 함을 보았다.
“이슬 후원회? 뭐 하는 곳이에 요?”
오혁의 물음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이 개인적으로 만든 봉
사 후원 단체예요.”
“봉사 후원 단체?”
오혁이 의아한 듯 오택문을 보 았다.
“그룹에서 운영하는 봉사 재단 있는데 따로 만드신 겁니까?”
“봉사 재단이 하나일 필요 있겠 니. 도움 필요한 사람들은 많으 니…… 만들어 놓으면 어디든 도 움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 겠지.”
“그건 그렇죠.”
“그리고 이슬 후원회는 내 개인 재산으로 운영하는 것이니 그룹 재단과는 다르다.”
그러고는 오택문이 피식 웃었 다.
“내가 따로 후원회를 만들어서 싫으냐?”
오택문의 말에 오혁이 그를 보 며 웃었다.
“제가 싫을 것이 뭐 있나요. 영 감님이 만든 건데요.”
“후! 다행이구나. 네 형들은 반
대를 하던데.”
“형들이요?”
“그룹 차원에서 하는 봉사 재단 이 있는데 개인 재산으로 또 만 들 필요가 있냐는 게지. 후! 나 중에 나 죽고 받을 재산이 줄어 들까 싶은 게야.”
“설마 그러겠어요.”
“설마가 맞을 거다.”
“형들 그렇게 욕심 많지 않아 요.”
오해라고 말하며 오혁은 오택문 의 컵에 물을 채웠다. 물이 반쯤 남아 있었지만 괜히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물을 따른 것이다.
“그래서 이슬 후원회 어떠냐?”
“마음에 들어요.”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그룹 에서 운영하는 재단과 비교하면 구멍가게 수준이지.”
“크기가 중요한가요. 어떻게 운
영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다른 형제들처럼 회사가 아닌 데도 괜찮으냐?”
혹시 자신이 실망할까 싶어 다 시 묻는 아버지를 보고 오혁이 고개를 저었다.
“회사야 이미 강혜가 운영하고 있는데 저까지 무슨……. 그리고 회사 주신다고 해도 할 생각이 없어요.”
“그래?”
오택문이 보자, 오혁이 웃으며
명함을 보았다.
“봉사 단체 마음에 들어요.”
오혁이 웃으며 명함을 이강혜에 게 보여 주었다.
“강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 건을 만들고, 나는 필요한 물건 을 사람들에게 주면 딱 좋겠네 요.”
“네 마음에 든다니 됐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오혁은 한쪽에
서 있는 강진을 향해 손을 들었 다.
“강진아 주문할게.”
그에 강진이 웃으며 다가왔다.
“음식은 어떻게 드릴까요?”
“매운 닭발하고 돼지껍데기볶 음, 계란찜, 그리고 계란말이.”
오혁의 주문에 강진이 오택문을 보았다. 그 시선에 오택문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네.”
“그럼 거기에 추천 메뉴 하나 더 추가해도 될까요?”
“ 뭔가?”
“맛있는 겁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추천하는 음식이라…… 기대가 되는군.”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주문 들어왔다.”
“매운 닭발하고 돼지껍데기볶 음, 계란찜, 계란말이. 그리고 네 가 추천하는 메뉴는 뭐야?”
이미 들어서 아는 듯 배용수가 묻자 강진이 말했다.
“누나 좋아하는 삼겹살 고추장 볶음에 김밥 상추쌈.”
“그거 맛있지.”
“그리고 금방 되잖아.”
“오케이.”
“아! 그리고 어묵국 좀 끓여. 계란찜 있기는 한데 국물 떠먹기 에는 어묵국이 좋으니까. 고추 넣어서 칼칼하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을 만들 준비를 했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홀로 나왔 다. 오혁 가족 외에도 다른 손님 들도 살펴야 하니 말이다.
강진이 다른 손님들을 살필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 오는 아저씨를 본 강진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아까 저 아저씨 봤는데 기억하세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태운 두 아가씨가 여기 가 그렇게 맛있다고 칭찬을 하셔 서 먹으러 와 봤습니다.”
안으로 들어온 아저씨는 택시
기사였다.
“여기 앞에 차 세웠는데 혹시 딱지 뗍니까?”
딱지를 떼냐는 택시 기사의 말 에 강진이 힐끗 그 뒤를 보았다. 남자 뒤로 아주머니 귀신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듯 살짝 저는 아 주머니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새벽에는 안 떼는데 지금 시간 에는 단속할 수 있어요.”
“이런......"
“여기 가게 뒤로 골목 있거든 요? 그쪽에 차 대세요.”
“골목에 상가들 있어서 차 대면 싫어할 텐데.”
“제 건물 뒤에다 대시면 됩니 다. 보시면 푸드 트럭 한 대 있 거든요. 거기에 바짝 세우세요.”
“아! 알겠습니다.”
택시 기사가 다시 가게를 나가 자, 강진은 아주머니 귀신에게 웃으며 눈인사했다. 그에 아주머
니 귀신이 마주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승식당 음식 맛을 볼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