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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898화 (896/1,050)

898화

“어디서 후원을 받는 건지, 아 니면 자기 시간 쪼개서 하시는 건지 보려고 말이야.”

강진이 보자 오혁이 말을 이었 다.

“저분들은 몸이 불편하신 분들 을 위해 자기 시간을 쪼개서 하 시는 거잖아.”

“그렇죠.”

“그리고 네 말대로 몸이 불편하 신 분들을 위해 움직이시면 돈 되는 콜보다 그런 분들 콜을 더 받으실 텐데. 그럼 시간도 많이 쓰시고 수입도 줄을 거 아니겠 어?”

“그것도 그렇죠.”

휠체어를 싣고 내리는 것만 해 줘도 5분은 잡아먹을 테니 말이 다.

5분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자 신이나 가족이 아닌 타인을 위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쓰기에는

큰 시간이었다.

그리고 5분이면 손님 한 명 태 워서 가까운 거리 한 번 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마저도 가까운 곳에 있는 비장 애인 손님보다 몸이 불편한 손님 들의 콜을 우선해서 움직일 것이 다.

“그래서 알아보려고.”

오혁은 주머니에 넣어 둔 이슬 후원회 명함을 들었다.

“장애인, 아니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한 첫 번째 사업은 그 런 분들을 위한 교통수단이야.”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눈을 찡 그렸다.

“그거 내 사비 내서 하는 거라 그리 큰 규모도 아니고 운영 자 금도 많지 않다.”

“누가 크게 한다고 했나요. 그 냥 천사족에 숟가락만 올리는 거 죠. 말 그대로 후원할 생각이에 요. 그런 콜을 받고 운행하면 단 돈 천 원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 도록요.”

“천 원?”

천 원이라는 말에 오택문이 보 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천 원은 지금 생각한 거고, 알 아봐서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죠.”

오혁이 무턱대고 말한 것이 아 닌 것 같자 오택문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다면 L카드와 이야기해서 그런 카드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 구나. 결제하면 자동으로 기사들

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말이 다.”

“그것도 괜찮네요. 그럼 셋째 형하고 이야기해야 하나?”

“내가 이야기해 두마.”

“무슨 아버지가 이야기를 해요. 이런 건 제가 형하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던 오혁이 웃으 며 말했다.

“L카드에서 이런 후원 카드 만 들면 기업 이미지에도 좋으니 형

한테도 이익이네요.”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이윤이 아닌 복지를 위한 카드를 만들면 기업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이 다.

게다가 신규 발급되는 카드도 늘어날 테고....

다만 그 할인 혜택이 너무 적으 면 있으나 마나 하니 실무진들을 통해 현장을 확인한 뒤 조정할 계획이었다.

오택문이 생각을 하는 것을 보 던 오혁이 이강혜를 보았다.

“당신은 뭐 보고 있었어?”

“나는 몸 불편하신 분들을 위한 앱이 있나 보고 있었어요.”

“ 앱?”

“천사족 앱 같은 것이 있으면 손님이 전화 걸어서 콜을 할 필 요 없잖아요.”

“그건 그러네. 그래서 있어?”

“없네요. 앱 만드는 것 좀 알아

봐야겠어요. 그리 어려울 것 같 지도 않고.”

두 사람의 대화에 강진이 웃으 며 오택문을 보았다.

“저는 말만 했는데…… 이 두 분은 도울 방법을 찾으시네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미소를 짓다가 작게 말했다.

“저 두 사람은 나중에 좋은 곳 에 가겠지?”

자신이 저승식당 사장인 것을 아는 오택문의 물음에 강진이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두 분이 안 가면 누가 가 겠어요. 그리고 회장님도 좋은 곳에 가실 겁니다. 회장님이 번 돈이 좋은 일로 향하는 거니까 요.”

“그러면 좋겠구먼. 그래야 나중 에 우리 아내 얼굴을 다시 볼 테 니 말이야.”

오택문은 기분 좋은 얼굴로 소 주를 마셨다. 아팠던 자식과 함 께 잔을 기울이는 것이 행복했 고, 자신이 번 돈을 가치 있게

쓰는 아들 내외를 보니 흐뭇했 다.

‘그래. 돈이라는 건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게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 떻게 가치 있게 쓰는지도 중요한 일이었다. 가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찾을 수 있는 것도 능력 이니 말이다.

오택문이 잔을 내려놓자, 오혁 이 소주병을 들었다.

“어쨌든…… 이번에 아버지 돈

좀 흥청망청 쓰겠습니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에 오택문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곧 정색하 고는 그를 보았다.

“계획서 잘 만들어서 가져와야 할 거다. 마음에 안 들면 숭인 안 해 준다.”

“와, 부자지간에 그렇게 꼼꼼하 게 보신다고요? 게다가 이건 좋 은 일에 쓰려는 건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꼼꼼 하게 보지 않으면 돈이 사라진

다. 일억이면 될 일이……

“일억 오천이 들고, 오천은 잡 놈들 호주머니로 사라져 버리는 거죠.”

“맞다. 들어가야 할 돈이 들어 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 호주머니 로 들어간다. 돈이란 건 써야 할 곳에 들어가야지, 들어가지 말아 야 할 곳에 들어가면 화근이 되 는 법이다.”

오택문이 오혁을 보았다.

“봉사 단체 일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여 서 돈을 쓰지만, 중간에 가야 할 곳이 아닌 곳에 가는 경우도 있 다. 그러니 잘 확인하고 돈이 움 직이는 흐름을 최소화해야 한 다.”

“유통 물류 사업하고 비슷하네 요.”

오혁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사람의 손을 거치면 거 칠수록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 가게 되어 있다.”

“알겠습니다. 드세요.”

오혁이 잔에 소주를 따르자, 오 택문이 병을 받아 그의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저는 이것까지만 마실게요.”

“그래. 자제할 줄도 알아야지.”

“하지만 한 잔으로 하루 종일 마실 수도 있죠.”

오혁이 웃으며 하는 말에 오택 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취하려고 도 마시는 것이 술이지만, 분위 기를 즐기기 위해서도 마시는 것

이 술이다.

분위기 즐기는 데에 술의 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입가를 적시는 것으로도 족했다.

아저씨는 밥을 먹으며 옆자리를 간간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입맛을 다셨다.

“왜요? 한잔하고 싶어요?”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 아주머니 귀신이 웃으며 말하고는 음식들 을 보았다.

“하긴 안주가 이렇게 많은데 마 시고 싶겠다.”

아주머니 귀신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아저씨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사장님.”

아저씨의 부름에 강진이 젓가락 을 놓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식사하시는데 불러서 죄송합니 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 세요. 제가 더 죄송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필요하신 거 있 으면 계속 불러 주세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 한잔하려고 하는데 혹시 차…… 여기다 세워 두고 내일 아침에 가지러 와도 되겠습니 까?”

“그러셔도 됩니다.”

강진의 답에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 소주 한 병 주십시오. 내일 일찍 와서 차 가져가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강진이 냉장고에서 소주잔과 소 주를 가지고 오자, 아저씨가 말 했다.

“잔 하나만 더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강진이 이유를 묻지 않고 잔을

가져다 주자, 아저씨가 웃으며 시계를 힐끔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도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오늘 일 쉬시려고요?”

“이 반찬들을 보니 술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곧 있 으면 택시 손님들 많을 시간인 데?”

“하하하! 제가 이래 보여도 개 인택시라 제가 사장입니다. 사장 이 일하기 싫으면 하루쯤 영업

쉬는 거죠.”

웃으며 아저씨가 소주병을 잡으 려 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첫 잔은 제가 따라드릴게요.”

“그럼 감사하죠.”

강진이 뚜껑을 따자, 아저씨가 잔을 내밀었다.

쪼르륵!

강진이 잔을 채워주자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 김치찜을 죽은 제 아내가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셨군요.”

“물에 말은 밥에 김치 척하고 올려 먹는 걸 그리 좋아했는 데…… 이걸 보니 아내 생각도 나고 소주 한 잔 안 할 수가 없 네요.”

아저씨가 웃으며 옆자리를 보고 는 말을 이었다.

“아내 살아 있을 때 가끔 이렇 게 반주도 하고 했는데.”

“젊을 때 몇 번 마신 걸 그렇게

포장을 하네. 애들 낳고 언제 우 리가 반주를 했다고.”

아주머니 귀신이 퉁명스럽게 하 는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고는 작게 웃었다.

“아내분께도 한 잔 따라 주세 요.”

강진의 말에 아저씨가 웃으며 소주병을 받아서는 소주잔에 술 을 따랐다.

쪼르륵! 쪼르륵!

맑은 소리와 함께 잔이 채워지

자, 아저씨가 그것을 옆자리 밥 그릇 앞에 놓고는 자신의 잔을 거기에 가져다 댔다.

툭!

“많이 먹어.”

그러고는 아저씨가 한 잔을 쭈 욱 마시자, 아주머니 귀신도 잔 을 들어 한 잔 쭈욱 마셨다. 그 것을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제가 한 잔 더 따라 드릴게 요.”

“일하셔야 하는데 저 때문에.”

“아닙니다. 한 잔만 더 따라 드 릴게요.”

강진은 아저씨가 내민 잔에 소 주를 따르며 말했다.

“귀…… 아니, 영혼들도 술을 마신대요.”

죽은 사모님을 귀신이라고 말하 는 건 실수인 것 같아 강진은 영 혼이라고 말을 바꿨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정말 신통 한 무당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

이 가끔 영혼을 모셔서 술을 드 시거든요.”

“무당이요?”

아저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보니까 영혼 마시라고 놓은 술을 자기가 마신 다음, 새 로 술을 따라서 그 앞에 두시더 라고요.”

“귀신 잔을 자기가 먹고 새로 따라줘요?”

의아해하는 아저씨를 보고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만요.”

강진은 아저씨 잔을 아주머니 귀신 앞에 두고, 아주머니 잔을 아저씨 앞으로 가져왔다.

“이렇게요.”

“혹시 귀신이 마셔서 새 술을 따라주는 겁니까?”

“ 맞아요.”

강진이 소주잔을 보며 말했다.

“귀신이 먹는지 안 먹는지 모르

겠지만…… 그래도 한 잔으로 때 우는 건 좀 그렇죠. 그분도 오셨 다면 새로 따라 준 술을 마시고 싶을 테니까요.”

“하긴, 그 말도 맞네요.”

아저씨가 웃으며 옆자리를 보았 다.

“우리 아내가 술을 좋아해서 앉 은 자리에서 두 병도 먹었는데 이 한 잔으로 계속 마시라고 하 면 먹으면서도 욕을 하겠어요. 그리고 술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 고 말입니다.”

귀신이 먹는다고 술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술을 아낄 이유도 없었다.

그저 아내가 마신 술을 자신이 마시면 될 일이었다. 물론 정말 아내가 옆에 와서 술을 마실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에 아저씨가 잔을 들어 옆의 잔에 살짝 가져대고는 술을 마셨 다.

“아내가 먹었다 생각하고 먹으 니 더 맛있네요.”

아저씨가 웃는 것에 강진이 고 개를 숙였다.

“필요하신 것 있으면 불러 주세 요.”

강진은 오택문의 옆에 가서 앉 았다. 그러자 오택문이 슬며시 말했다.

“아내 생각하면서 한잔하는 건 가?”

“들으셨어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대화 소리가 대놓고 들릴 정도는 아니

었다.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 눈 것도 아니니 말이다.

“보고 있으니 들리더구나.”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멸치 김치찜이 아내분께서 좋 아하던 음식이었대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소주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그는 소주를 마시고는 빈자리에 놓인 소주잔을 자신의 앞에 놓 고, 빈 잔을 옆자리에 놓고는 다

시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오택문이 입맛을 다셨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소주를 마시는 남자를 보니 그도 아내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나도…… 아내가 보고 싶다.’

오택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참 많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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