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00화 (898/1,050)

900화

빈자리에 놓인 소주잔에 소주를 따른 아저씨가 오택문의 옆을 보 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앞에 있는 소주잔을 하나 가지고 왔 다.

툭!

오택문 옆에 잔을 놓은 아저씨 가 그 잔에 소주를 채웠다.

쪼르륵!

“사모님도 한잔하셔야죠.” 아저씨의 말에 오택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마누라도 한잔해야

지.”

오택문의 말에 아저씨가 옆자리 를 보다가 말했다.

“그……

잠시 입맛을 다신 아저씨가 웃

으며 말했다.

“우리 아내가 젊을 때 고생을

해서 허리가 안 좋았습니다.”

“고생하면 허리가 안 좋지.”

“허리가 안 좋으면 다리도 안 좋더군요. 그래서 다리도 좀 불 편하고 걷는 것을 힘들어했습니 다.”

아저씨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던 강진이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아저씨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강진이 한숨을 쉬 었다.

‘허리가 안 좋아서 다리가 불편

하신 거였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오 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흠……

작게 헛기침을 한 아저씨가 입 을 쉽게 열지 못하자, 오택문이 소주잔을 들었다.

“한잔하세.”

오택문의 말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자리에 놓인 소주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히고는 술 을 마셨다.

단숨에 술을 마신 뒤 잔을 내려 놓은 아저씨가 오택문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워 주었다.

이번에는 오택문이 술을 따라 주었는데, 아저씨는 술이 담긴 잔을 옆에다 놓았다.

“왜 거기다 놓나?”

오택문이 의아한 듯 보자, 아저 씨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사장님이 그러는데 영혼

도 술을 마실 거라고 해서요. 그 럼 한 잔으로 계속 마셔야 하 니…… 새 술로 바꿔 주는 겁니 다.”

아저씨의 말에 오택문이 강진을 보았다. 그러다가 그도 옆에 놓 여 있는 잔을 자신의 것과 바꾸 어 놓았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그러 려니 하겠지만, 귀신을 상대하는 저승식당 사장이 한 말이라 믿음 이 가는 것이다.

물론…… 아저씨와 달리 오택문

의 아내는 승천해서 이 자리에 없지만 말이다.

아내가 승천해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택문은 그녀를 위해 소주를 따라 놓았다.

그러는 사이 강진은 아저씨가 먹던 음식들을 모두 주방으로 옮 겼다.

“오래 걸려?”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냄비를 보며 말했다.

“다 됐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가 하 는 음식을 보았다. 배용수가 끓 이고 있는 건 홍합탕이었다.

깨끗하게 손질한 홍합을 물에 넣어 끓이고 파와 청양고추를 넣 어서 칼칼하게 맛을 내면 되는 것이었다.

소금을 넣을 필요도 없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소주와 잘 어울리 는 안주였다. 국물도 되고, 홍합 까서 먹는 재미도 있으니 말이 다.

하얀 거품을 덜어낸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다 됐다.”

“오케이. 그럼 오징어 하나 구 울 테니 담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냄비에 홍합탕을 덜자, 강진이 오징어를 하나 꺼내 굽기 시작했다.

반 건조 오징어를 살짝 촉촉하 게 굽는 것을 본 배용수는 청양 고추를 썰고 마요네즈와 간장을 섞어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고추장도 살짝 하나 담

는 人}이, 강진은 오징어 몸통에 가위질을 했다. 주방에서 잘라 가지고 나가도 되겠지만 오징어 는 직접 뜯어서 먹는 맛이 있으 니 말이다.

그렇게 안주를 만든 강진이 쟁 반을 들고는 홀로 나왔다.

“안주 나왔습니다.”

웃으며 강진이 홍합탕과 반건조 오징어를 놓고는 의자를 하나 가 져다가 옆에 놓았다.

그에 오택문이 웃으며 그를 보

았다. 두 사람의 옆자리가 빈자 리기는 해도, 두 사람에게 있어 선 빈자리가 아니었다. 옆엔 자 신의 아내가 앉아 있으니 말이 다.

그래서 강진이 따로 의자를 가 져다가 옆에 붙인 것인 걸 보고 흐뭇했던 것이다.

“무슨 이야기 하고 계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오택문이 소주잔 을 내밀자, 강진이 그것을 받았 다.

쪼르륵!

오택문이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 다.

“있을 때 잘 해 주지 못한 못난 남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택문의 말에 아저씨가 쓰게 웃었다.

“맞습니다. 있을 때 잘 해 주지 못한 못난 남편이자 남자 이야기 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우리 아내 생각하면 내가 못 해준것만 생각나고…… 마

음 아프게 했던 일만 생각이 나 더군.”

오택문이 쓰게 웃으며 소주잔을 들자, 아저씨도 잔을 들었다. 그 에 가볍게 잔을 부딪힌 오택문이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말 한 마디 좋게 해 줄 것을…… 왜 그리 모진 말을 해 서 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는 지 말이야.”

오택문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

데…… 왜 그런 일로 그 사람 마 음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어. 그냥 내가 한 번 져 주고 좋은 말로 넘어가면 될 일 이었는데. 굳이 왜 내 여자에게 이기려고 했는지 말이야.’’

오택문의 말에 아저씨가 잠시 소주잔을 보다가 잔을 들어 쭈욱 마셨다. 그렇게 비운 잔을 아주 머니 귀신이 있는 곳에 놓고 새 로 술을 따라주었다.

그러고는 아주머니 귀신 앞에 있던 잔을 자신의 앞에 놓고는

입을 열었다.

“제 아내가 고생을 좀 많이 해 서 허리가 안 좋았습니다.”

아까 들은 이야기지만, 오택문 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을 하면 허리나 관절이 먼 저 고생들을 하더군.”

“못난 남편 만나서 고된 일만 하다 보니…… 나중에는 다리도 절어서 걷는 것도 힘들어했습니 다.”

아저씨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었다.

“같이 잘 살자고 열심히 일한 거지, 무슨 당신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해. 당신도 열심히 살았 잖아.”

아주머니 귀신의 말과 함께 아 저씨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음……

말을 꺼내기 힘든 듯 잠시 한숨 을 쉰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아침밥 일찍 먹고 출근을 하려 는데 아내가 저를 부르더군요.”

-여보, 점심때 집에 좀 오면 안 돼?

- 왜?

-나 다리가 너무 저려서 병원 에 좀 가서 주사 좀 맞으려고.

-밖에서 일하다가 어떻게 들어 와. 택시 타고 가.

-그게....

_왜?

-혼자 가기 좀 무서워서 그래.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주사 한두 번 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한데…… 안 돼?

-근처에 오는 손님 있으면 오 고 아니면 혼자 가.

-그럼 전화 줘.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병원에 같이 안 가 준 것 이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합

니다. 그리고 그날 결국 전화도 못 해 줬습니다. 못 가면 못 간 다고 전화라도 해 줄 것을……

아저씨의 말에 그를 보던 오택 문이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신의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에 아저씨가 잔을 받자, 오택 문이 소주를 따라주었다.

“ 나는......"

잠시 말을 멈춘 오택문이 한숨 을 쉬었다.

“자네가 크게 잘못을 했나 싶었

는데.”

“큰 잘못이 맞습니다.”

“맞아. 큰 잘못이지. 그런데 들 어보니…… 나도 그랬군.”

오택문의 말에 아저씨가 그를 보았다.

“어르신도요?”

“자네가 한 일은 남편 대부분이 하는 잘못이니…… 나라고 다르 겠나.”

오택문이 재차 한숨을 쉬며 말

을 이었다.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일 에 미쳐 살았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내 아내도 병원 갈 때 같 이 가고 싶다는 말을 몇 번 했었 어. 그리고 나도……

오택문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옆자리를 보았다.

“자네처럼 같이 가주지 못했 지.”

“그러셨군요.”

“그리고 몸이 안 좋다고 하면

병원을 가라는 말만 했어.”

오택문이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원한 건 병원 가라는 말이 아니라 ‘어디가 아파?’ ‘많 이 안 좋아?’ ‘내일 나하고 같이 병원 가세.’라는 말이었을 텐데 말이야.”

한숨을 쉬며 오택문이 아저씨를 보았다.

“세상 많은 남편들이 그런 것 같아. 가족을 위해 돈을 벌지 만…… 정작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지를 못해.”

“그런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 해서 돈을 버는 건 가족을 위해 서인데, 정작 가족을 위해서 시 간을 내지도 못하고 2순위로 밀 려 버리네요.”

“그러게 말이야.”

오택문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쉬 며 고개를 저었다.

“내 아내와 자네 아내에게 하는 비겁한 변명이지만…… 정말 가 족을 위해 일을 하는데…… 가족

을 뒤로 미루면 안 되는데 말이 네.”

씁쓸함이 담긴 오택문의 말에 아저씨는 자신이 비운 소주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에 오택문이 잔을 받자, 아저씨가 소주를 따 라주었다.

“어르신이나 저나 참 못난 남편 입니다.”

“못난 남편이고, 못난 남자네.”

고개를 젓는 오택문을 보던 아 저씨가 한숨을 쉬었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마누라 다리 도 불편한데 혼자 병원 다니고 했을 거 생각하면……

아저씨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자신의 아내도 혼자 병원에 다 녔다. 물론 이 남자의 아내처럼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아픈 몸 으로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아내의 곁엔 수행비서와 운전기 사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같이 병원에 갔으면 좋겠다는 말

을 귓등으로 들었다.

작게 한숨을 쉰 오택문이 입을 열었다.

“있을 때 잘 해 줘야 하는 데……

“그러게 말입니다.”

“못난 남자들끼리 못난 이야기 를 하는군.”

작게 중얼거린 오택문은 아저씨 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에 아저 씨가 잔을 받자 오택문이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그럼 천사족 봉사는 아내한테 미안해서 하는 건가?”

오택문의 말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 죽고 아내가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가 봤습니다. 다리 저리 고 하면 가던 병원인데, 거기 가 보니 아주머니들이 많더군요.”

한숨을 쉰 아저씨가 말을 이었 다.

“그리고…… 남편이나 자식들이

아내, 엄마 가방을 손에 쥐고 진 료실에 같이 들어가더군요.”

아저씨가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말했다.

“그걸 보니 우리 마누라 정말 외로웠겠다 싶었습니다. 혼자 들 어갈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을지.”

말을 하던 아저씨가 티슈로 눈 가를 닦았다.

“그 이후로 천사족을 하게 됐습 니다. 우리 아내처럼 몸 움직이

기 힘든 분들을 도와주고 싶었습 니다.”

아저씨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자네는 의미 있게 외양 간을 고치는군.”

“늦었지만 뭐라도 하고 싶었습 니다.”

고개를 저은 아저씨가 오택문을 보았다.

“이거 제 이야기만 했습니다. 어르신도 가슴에 담아 둔 이야기

가 하고 싶어서 저를 부르셨을 텐데요.”

아저씨의 말에 오택문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내 이야기가 하고 싶군.”

오택문은 잠시 있다가 입을 열 었다.

“나는…… 평생을 내가 하고 싶 은 일만 하고 살았다네. 평생 남 의 이야기는 안 듣고 살았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은 오택

문이 말을 이었다.

“그런 내 옆에서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어. 잔정 많은 사람이라 내가 자식들한테 모질게 할 때마 다 눈물도 많이 흘리고 나와 자 식들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

오택문이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 를 하나씩 꺼낼 때마다, 아저씨 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죠.”

“사모님 마음을 이해해 주시

지.”

자신이 이야기를 할 때, 오택문 이 답을 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 다.

그렇게 아내에게 못한 것이 많 은 두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했던 일들을 안주 삼아 술잔을 나누었 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