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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06화 (904/1,050)

906화

라면 먹는 걸 알았다는 말에 최 창수가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 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최창수의 물음에 창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주방 보면 알지.”

“아빠가 흔적 없앤다고 라면 먹 고 봉지 다 가져다 버리고 설거

지도 다 했는데?”

믿지 못하겠다는 최창수의 말에 창수 어머니가 웃었다.

“그래서 알았지. 평소 쓰레기 버리라고 해도 ‘있다가’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던 양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봉투하고 재활용 쓰레기까지 버려 놨으니.”

“아……

“그래서 알았어.”

“아빠가 너무 완벽하게 숨기려 다가 오히려 걸린 거네.”

최창수의 말에 창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안 혼냈어?”

그렇게 먹지 말라는 라면을 먹 었는데 왜 혼을 안 냈는지 의아 한 것이다. 평소라면 정말 많이 혼냈을 텐데 말이다.

“얼마나 먹고 싶으면 그렇게까 지 먹었겠어. 그리고 자주 먹는 것도 아니고. 몰래 먹는 것까지 틀어막으면 너희 아빠 낙이 없잖 아. 그렇게라도 숨을 쉬게 해 줘 야지.”

창수 어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밖에서도 사 먹을 수 있는데, 밖에서 안 먹고 집에서 먹잖아. 그래서 짠하더라고. 이 양반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이 렇게까지 해서 먹었을까 하고 말 이야.”

“완벽하게 했는데…… 그걸 그 렇게 알아내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 최고 진을 보던 강진이 문득 창수 어 머니를 보았다.

“아버님이 라면을 좋아하셨어 요?”

“제일 좋아했던 건 제가 해 준 비빔국수인데…… 그건 제가 안 해 주니 라면을 먹더라고요.”

창수 어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 었다.

“매콤하게 비빔국수를 해 주면 입맛 없다고 할 때도 두 그릇을 뚝딱 먹었어요.”

“비빔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셨군 요.”

“그런데 그이 당 맞고 그 좋아 하던 국수를 한 번 못 해 줬네 요. 의사가 밀가루가 당뇨에는 아주 안 좋다고 해서요.”

“어머니가 비빔국수를 정말 맛 있게 잘 만드시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최창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어머니 비빔국수 정말 맛 있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도 맛 좀 보여 주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창수 어머니가 의 아한 듯 그를 보았다.

“여기서 요?”

“식당이라 재료는 다 있으니까 귀찮지 않으시면 좀 해 주세요. 저도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좀 먹고 싶네요.”

강진의 말에 최창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엄마. 나도 오랜만에 엄 마가 만든 비빔국수 먹고 싶네.”

“그럼 그럴까?”

“제가 재료 챙겨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창수 어머니가 기 분 좋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강진 이 주방에 들어가자 최창수가 입 맛을 다셨다.

“표정이 안 좋네?”

최동해가 의아한 듯 묻자, 최창 수가 주방을 보다가 말했다.

“아빠가 비빔국수를 좋아해 서……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엄 마가 그동안 잘 안 해 줬어.”

“아버님 비빔국수 못 해 준 것 이 마음에 걸리셨나 보구나.”

동해 어머니의 말에 최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신 것 같아요. 음……

잠시 말이 없던 최창수가 입맛 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저희도 어머니께 비빔국수 해 달라고는 잘 안 했어요. 멍하니 비빔국수 보고 있으실 때가 많았 거든요.”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이다 보

니 남편 생각이 많이 나셨나 보 네.”

동해 어머니의 말에 최창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을 보았 다.

칸막이 때문에 주방 안은 보이 지 않았지만, 덜그럭거리는 소리 가 들리는 것을 보면 음식을 준 비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비빔국수 어머 니도 맛있게 드실 것 같아서 일 부러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아 직 소방학교도 가야 하고 정식으

로 소방관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아 버지가 좋아하던 음식 먹으면서 아빠 생각하면 엄마도 좋아할 것 같아서요.”

최창수의 말에 동해 어머니가 안쓰러운 듯 그를 보았다.

“그래. 어머니도 전에는 비빔국 수를 보면 마음이 안 좋았겠지 만, 지금은 우리 창수 소방관 합 격한 거 남편한테 알려준다 생각 하고 기분 좋게 음식을 드실 거 야.”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최창수와 동해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최고진은 주방과 홀의 중간에 서서 홀을 보고 있 었다.

아내가 자신이 좋아하는 비빔국 수를 한다고 해서 따라 들어가려 다가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듣던 최 고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 맛있는 음식 맛있게 먹으 면 되는 건데…… 왜 내 생각을 그렇게 해.”

최고진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배용수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잡 았다. 그러고는 힘내라는 듯 가 볍게 주무르며 말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잘 못 해 줘서 어머니 마음이 안 좋으 셨나 보네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내 몸을 상하게 하니 해 줄 수가 있나. 그리고 맛있는 음식보다 건강식

이 더 만들기가 어려워.”

“그걸 아시네요.”

최고진의 말대로 건강에 좋은 음식은 맛있는 음식보다 더 만들 기가 어려웠다.

“그럼. 우리 아내가 요리하는 거 보면 공부하면서 만들더라고. 양념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맛있 게 만들려고 말이야.”

“맞아요. 맛있게 하는 건 MSG 하고 소금 설탕만 잘 넣으면 되 지만, 건강하게 만드는 건 많이

힘들죠. 그리고……

배용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건강한 맛은 딱히 맛이 없잖아

요.”

배용수의 말에 최고진이 주방 한쪽에 놓여 있는 라면 봉지를 보다가 말했다.

“아내가 없을 때 편의점에 막 뛰어갔어. 라면 두 개를 사서 집 까지 또 뛰어오고 라면을 끓여 먹으면 그게…… 너무 행복한 거 야.”

“먹고 싶었던 거 참았다가 먹으 면 정말 맛이 좋죠.”

웃으며 최고진을 보던 배용수가 물었다.

“그런데 왜 집에서 끓여 드셨어 요? 라면이 먹고 싶으면 밖에서 사 드시면 될 텐데.”

라면이 먹고 싶어서 아내가 없 을 때, 후딱 끓여 먹으려고 편의 점에 뛰어가는 성의까지 보인다 면 차라리 밖에서 사 먹고 들어 와도 되지 않나 싶은 것이었다.

라면 정도는 동네 어느 식당에 서도 다 팔 테니 말이다.

배용수의 물음에 최고진이 웃으 며 말했다.

“창수도 한 번은 그걸 묻더군.”

“창수도 의아했겠죠. 엄마한테 아버지 혼나는 것도 걱정이 될 테고요.”

배용수의 말에 최고진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소도둑 될까 봐.”

“소도둑요?”

배용수가 되묻는 것과 동시에 강진이 힐끗 그를 보았다. 창수 어머니가 있어서 말을 걸지는 못 하지만 최고진의 말에 의아한 건 강진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진은 국수를 삶고 있는 아 내를 지그시 보다가 말했다.

“슈퍼 가서 라면 사 오고 끓이 는 거…… 생각보다 더 귀찮아.”

“그렇겠죠. 게다가 막 먹고 싶 을 때면 더.”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최고진이 말을 이었다.

“편의점에 라면을 사러 가는 건 귀찮은데 밖에서 이천 원, 삼천 원 내고 라면을 사 먹는 건 너무 편하잖아.”

“그러니 밖에서 사 드시면 되지 않아요?”

“그럼 내가 너무 자주 사 먹을 것 같았어. 내가 정말 면 귀신이 거든. 그렇게 내가 라면이든 국 수든 막 밖에서 몰래 人} 먹고 들 어오면 내 몸 생각해서 맛대가리

없는 건강식 해 주는 우리 마누 라 고생이 헛것이 되잖아.”

“아……

배용수가 살짝 놀란 눈으로 자 신을 보자 최고진이 고개를 저었 다.

“그래서 정말 라면이나 면이 먹 고 싶을 때, 몰래 라면 사 가지 고 와서 집에서 끓여 먹었던 거 야. 귀찮게 사러 가고 끓여 먹어 야 내가 면을 덜 먹을 테니까.”

그러고는 최고진이 웃으며 말했

다.

“면을 먹고는 싶은데…… 마음 대로 먹으면 아내한테 미안해서 집에서 먹었던 거야.”

‘아내한테 미안해서 집에서만 몰래 드셨구나.’

최고진을 보던 강진이 창수 어 머니를 보았다. 그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국수를 옆에 두고 양 념을 만들고 있었다.

깍두기를 얇게 채 썰던 창수 어 머니가, 채 하나를 집어 입에 넣

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깍두기가 새콤한 게 아주 맛이 좋아요.”

“이번에 깍두기가 맛있게 잘 익 었더라고요.”

“이 깍두기도 사장님이 직접 담 근 건가요?”

“네.”

“정말 음식 솜씨가 좋네요.”

“맛있으면 제가 이따가 좀 챙겨

드릴게요.”

“그럼 죄송하지만 좀 받을게 요.”

“거절 안 하시는 것을 보면 맛 이 좋기는 한가 보네요.”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음식 장사하는 집에 음식 모자 를 일은 없으니 미안해하지 마시 고 집에 가서 맛있게 드세요.”

“그럼 염치 불고하고 좀 받아 갈게요.”

창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일을 하다 보니 음식 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렇 게 맛있는 반찬 보면 욕심이 나 네요. 집에 가져다 두면 애들이 알아서 밥 먹을 때 맛있게 먹을 것 같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깍두기만 못 드리겠네요. 제가 집에 가실 때 골고루 싸 드릴게요.”

“정말 미안한데 감사히 가져갈 게요.”

“맛있게 드세요.”

웃으며 강진이 국수를 보다가 찬물을 떠서는 말했다.

“찬물 좀 부어야 할 것 같아 요.”

“내 정신 좀 봐. 그래요.”

강진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국 수 면발에 찬물을 부었다.

국수가 삶아질 때는 면발은 가 장자리에서 가운데로 둥글게 말 리는 형태로 끓어오른다. 그럴 때 찬물을 좀 넣으면 끓어오르는

것이 가라앉고, 면발이 쫄깃해진 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끓어오르는 면에 찬물을 부우면 면이 잘 익 는 것이다.

국수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 창 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은 음식을 누구에게 배 웠어요?”

“친한 친구가 운암정이라고 한 식집 출신이에요. 그 친구한테 배웠어요.”

“용수라는 분요?”

“창수가 말해 줬나 보네요?”

“주방에 수줍음 많은 주방장 형 이 한 명 있다고 들었어요. 여기 오래 다닌 동해도 아직 못 만났 다면서요?”

“그 친구가 수줍음이 좀 많아 요.”

강진의 말에 창수 어머니가 주 방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 친구가 일은 잘하나 보네요.”

“주방 보시면 아세요?”

“아까 냉장고 보니 재료나 반찬 들이 정리가 잘 되어 있더라고 요. 그리고 여기 주방 용기들도 사용하기 쉽게 정리가 되어 있 고.”

창수 어머니가 다시 강진을 보 았다.

“이것만 봐도 참 꼼꼼한 분인 것 같아요.”

“어머니가 참 사람을 잘 보시 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너 꼼꼼한 거야 내가 잘 알지.’

배용수 일 잘하는 것이야 장난 으로라도 ‘너 일 못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런데 용수 씨는?”

“오늘은 일찍 퇴근시켰어요.”

“어머…… 그럼 이 음식을 모두 사장님이 준비한 거예요?”

“용수가 준비해 놓은 거 내놓기

만 한 거죠.”

웃으며 강진이 국수를 보았다.

“국수 다 삶아진 것 같네요.”

“그런 것 같네요.”

“이건 제가 할게요.”

강진은 솥을 들어서는 큰 뜰채 에 그대로 부었다.

촤아악!

살짝 투명해진 면발이 채에 그 대로 쏟아졌다. 그것을 본 최고 진이 미소를 지었다.

“저 면만 봐도 너무 맛있어 보 이네. 저걸 한 젓가락 집어서 후 루룩 입에 넣으면……

꿀꺽!

최고진이 침을 삼키는 것에 강 진이 그를 힐끗 보고는 웃었다.

‘확실히 이 상태로 후루룩 먹어 도 맛있기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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