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화
일요일 점심 무렵, 강진은 푸드 트럭을 끌고 소방서 주차장에 들 어서고 있었다. 강진의 차가 들 어오자 홍보팀 김강은이 웃으며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김강은이 맞이해 주자 강진이 차에서 내리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렇게 번 거롭게 해 드리는 이강진입니
다.”
강진의 농에 김강은이 웃었다.
“번거롭기는요. 이런 번거로움 은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김강은은 강진을 따라 차에서 내리는 최동해와 최창수를 보았 다. 그러고는 웃으며 최동해에게 다가갔다.
“합격 축하해요.”
“네?”
“이번에 소방 시험 합격했던데
요. 최동해…… 설마 동명이인이 합격한 건 아니죠? 그럼 나 엄청 미안할 것 같은데?”
김강은이 웃으며 하는 말에 최 동해가 웃었다.
“다행히 이인이 아니라 동명일 인이네요. 그런데 저 합격한 거 어떻게 아셨어요?”
“합격에 힘을 쓸 위치는 아니지 만,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 확인 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닌걸요. 어쨌든 소방관 되고 싶다고 했던 것 이룬 거 축하를……
말을 하던 김강은이 입맛을 다 셨다.
“해 줘야 하나?”
경찰이나 소방관이나 요즘 젊은 이들이 취업 준비하는 유망 직종 중 하나지만 공무원이라는 것 하 나 빼면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르 는 직종이기도 했다.
자기 주변 사람이나 자식한텐 권유하고 싶지 않은 3D 직종 중 하나인 것이다.
김강은의 반응에 최동해가 웃었
다.
“그때도 어지간하면 다른 일 알 아보라고 하시기는 하셨죠. 그래 도 축하는 해 주세요. 저 시험 본다고 정말 공부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이 정도 노력했으면 축하는 받아야죠.”
“알았어요. 그럼 정말 축하해 요.”
김강은이 웃으며 다시 손을 들 어 보이자, 최동해가 그 손을 강 하게 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 던 강진이 말했다.
“일단 캡 열고 음식들 꺼내라.”
“네.”
최동해와 최창수가 푸드 트럭을 여는 것을 보던 강진이 김강은을 보았다.
“그런데 저 올 때마다 늘 계시 는 것 같아요. 일요일에 안 쉬세 요?”
“쉴 때 있고, 안 쉴 때도 있는 데 오늘은 사장님 오신다고 해서 줄근했어요. 봉사하러 여기 오시 는 분도 있는데 저라도 있어야
죠.”
“그럼 감사하네요.”
그러고는 강진이 최창수를 보았 다.
“저 녀석도 이번에 시험 합격했 어요.”
“그런 것 같았어요.”
김강은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눈빛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눈빛이 다른가요?”
강진의 물음에 김강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최창수를 보았다.
“신입 소방관의 눈빛이라고 할 까요?”
말을 한 김강은이 웃으며 두 사 람에게 다가갔다.
“그쪽도 이번에 합격했어요?”
“네.”
씩씩하게 답하는 최창수를 보고
김강은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축하해요. 하지만 지금부터 시 작인 거 알죠?”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 겠습니다.”
최창수의 말에 김강은이 그를 보다가 아이스박스를 꺼내는 최 동해를 보았다. 그 모습에 강진 이 최동해를 툭 쳤다.
“쉬어라. 나머지는 형이 할게.”
“제가 할게요.”
“아니야.”
강진이 김강은을 보자, 최동해 도 그녀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고는 김강은의 앞에 최 창수와 함께 섰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김강은이 말했다.
“사실…… 저도 현장직이었어 요. 지금은 홍보팀에 있지만. 현 장직 선배로서 하나만 말을 해 드릴게요.”
잠시 뜸을 들이던 김강은이 두
사람을 보았다.
“소방서에는 여러 팀이 있어요. 그리고 그 팀들은 모두 자신의 손안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겪어 요. 불 끄는 팀도, 구조대 팀 도……
사람이 죽는다는 말에 두 사람 이 침을 삼켰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김강은이 말을 이었다.
“처음 죽음을 대하면 힘들 거예 요. 구하고 싶은데, 구할 수 있는 데. 일 분, 아니 십 초면 될 것 같은데.”
김강은은 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현장에서 일 분, 십 초가 정말 어렵거든요.”
표정이 굳어지는 두 사람을 보 며 김강은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죽음에 발목이 잡히 면 안 돼요. 죽음에 힘들고 괴로 워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해 요. 그래야 다른 구조자의 죽음 을 막을 수 있어요.”
죽음이라는 단어에 두 사람이 말을 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자, 김강은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게 안 됐지만요.”
작게 중얼거린 김강은이 두 사 람을 보았다.
“앞으로 하다 보면 제가 한 말 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거예요. 어쨌든 앞으로 파이팅 하세요.”
“네.”
최창수의 답에 김강은이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수레 보이죠? 가져와요. 이거 싣게.”
최창수가 수레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자, 김강은이 최동해를 툭 쳤다.
“소방관은 같이 들어가서 같이 나오는 거예요. 동료를 불속에 두고 혼자 나올 거예요?”
“아닙니다!”
최동해가 급히 최창수의 뒤를 따라 뛰어가자, 김강은이 팔짱을 끼고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그 런 김강은을 보던 강진이 말했 다.
“그……
강진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 추자, 김강은이 쓰게 웃었다.
“맞아요. 저는 발목이 잡혔어 요.”
김강은은 수레를 끌고 오는 두 청년을 보았다.
“저 둘은 발목이 안 잡혔으면 좋겠어요.”
“그…… 제가 심리학과 출신인 데, 정신과 상담을 좀 받아 보시 죠.”
“정신과 상담요?”
“옛날에는 정신과 상담이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걸로 여겨졌지 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그저 분위기 좋은 찻집 같은 곳에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 는 거예요.”
“말씀 고마워요. 생각해 볼게
요.”
김강은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악몽도 꾸실 것 같은데.’
죽음에 발목이 잡혔다고 표현하 는 것을 보면 마음의 짐이 상당 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짐은 악몽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 니…….
외면하고 싶은 그 순간을 악몽 을 통해 계속해서 봐 왔을 것이
었다.
강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김강은 을 볼 때, 최창수와 최동해가 수 레를 끌고 왔다.
“자, 실어.”
강진은 아이스박스를 수레에 실 으며 김강은을 보았다.
“오늘은 몸에 특히 좋은 걸로 가져왔습니다.”
“뭔데요?”
“삼계탕입니다.”
“아직 초복도 아닌데요?”
“초복에는 저도 장사해야죠. 그 래서 미리 삼계탕을 준비해 왔습 니다. 그것도 산삼이 들어간 겁 니다.”
강진이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만든 삼계탕에는 정말 산삼 이 들어가 있었다. 어제 강원도 에 가서 돼랑이한테 먹을 거 주 고 몇 뿌리 캐 온 것이다.
허연욱이 보면 기겁을 할 일이 었다. 전에 강원도에서 수육을 할 때 산삼을 넣는 것을 보고 기
겁을 했었으니 말이다.
“산삼요?”
최동해가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너도 한 그릇 해.”
“저는 다이어트……
“초복 대비한다 생각하고 먹어. 정말 산삼 들어간 삼계탕이다.”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그를 보 다가 슬며시 말했다.
“몇 년짜리요?”
“왜, 오래됐으면 먹게?”
“오래됐으면…… 약이다 하고 먹어야죠.”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너도 남 자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말했 다.
“오래된 거다.”
“그럼 몇 뿌리나?”
“맞을래?”
“농담이에요.”
최동해가 웃으며 최창수 어깨를
툭 쳤다.
“몸보신하겠다.”
“너는?”
“보약 먹으면 살찐다.”
입맛을 다시는 최동해의 모습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몸에 좋은 거야. 이건 먹고 한 시간 뛸 만해.”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스박스를 수레에 올리던 최 동해가 눈을 찡그렸다.
“근데 왜 이렇게 무거워요?”
“국물이라 그래.”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거운데 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김강은을 보았다.
“소방관 한다는 애들이 이렇게 힘이 없어서 어쩌죠?”
“그러게요.”
김강은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 다.
“불이 난 현장에서 사람을 업고 뛰어야 할 때도 있는데 무겁다고 그냥 두고 올 거예요?”
“아닙니다!”
김강은의 말에 최동해가 급히 답을 하고는 아이스박스를 마저 수레에 실었다.
그런 최동해와 최창수를 보며 강진이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강진과 김강은이 걸음을 옮기자, 아이스박스를 모두 실은 최동해 와 최창수가 그 뒤를 따라 걸었 다.
아이스박스를 구내식당에 옮기 던 강진에게 김강은이 말했다.
“식사 언제부터 돼요?”
“가게에서 다 끓여서 온 거라 그냥 드셔도 되기는 한데 뜨겁게 먹어야 맛있잖아요. 십 분 후쯤 부터 식사하러 오시면 된다고 해 주세요.”
“네.”
김강은이 몸을 돌리려 하자, 강 진이 급히 말했다.
“산삼 들어갔다고 꼭 드시라고 하세요.”
“알았어요.”
김강은이 걸음을 옮기려 하자, 최동해가 급히 그녀에게 다가갔 다.
“저……
뭐라고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 을 하던 최동해가 뒷말을 이었 다.
“선배님.”
선배님이라는 말에 김강은이 피 식 웃었다.
“왜요, 후배님.”
“저 소방학교 생활하고 앞으로 저희 진로에 대해서 가르침을 구 하고 싶습니다.”
최동해의 말에 김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방학교하고 그 후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겠어요. 이리 오세요. 이런 거 이야기하는 녀석 있으니 가면 소
방학교에서 먹는 삼시세끼 반찬 스타일까지 알려 줄 거예요.”
김강은이 웃으며 최동해와 최창 수를 데리고 가려다가 문득 강진 을 보았다.
“그런데 이 두 분 안 도와줘도 되는 건가요?”
“있어 봐야 짐만 됩니다. 짐 좀 치워 주세요.”
강진의 농에 김강은이 웃으며 두 사람을 데리고 구내식당을 나 섰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고개
를 돌렸다. 그 옆에는 차종석이 웃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네가 안 오니까.”
그러고는 차종석이 주방에 들어 갔다.
“삼계탕이 몸에 좋은 거지?”
“여름 되기 전에 몸보신으로 많 이 먹는 거니 몸에 좋죠.”
“우리 은미 실한 걸로 줘야 해.”
“다 실한 걸로 삶아 왔어요.”
강진은 가게에서 미리 끓여 온 삼계탕들을 조심히 국통에 옮겨 담았다. 최대한 닭 모양이 망가 지지 않도록 조심히 담은 강진이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화르륵!
업소용처럼 강하게 피어오르는 불을 보던 강진이 내부를 둘러보 았다. 몇 번 와 봐서 그런지 실 내는 눈에 익었다.
저번과 다른 점이라면 배식구에
반찬이 없다는 건데, 오늘 음식 봉사를 갈 거라고 미리 전화를 해뒀던 터라 음식을 차려 놓지 않은 것 같았다.
강진은 배식구에 있는 반찬 통 들에 자신이 가져온 음식들을 담 았다.
반찬은 간단했다. 삼계탕과 어 울리는 새콤한 깍두기와 겉절이, 그리고 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육볶음이었다.
반찬을 모두 담은 강진이 조심 히 유리통을 꺼냈다. 유리통 안
에는 이끼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안에 산삼 두 뿌리가 담겨 있었 다.
‘마음 같아서야 한 분당 한 뿌 리씩 드리고 싶지만…… 그게 어 디 쉽나요.’
사실 삼계탕에 산삼이 들어가기 는 했지만 그건 한 뿌리 정도였 다. 물론 한 뿌리라고 해도 그 가격을 생각해 봤을 때 ‘고작 한 뿌리’가 아니지만 말이다.
가격을 떠올려 보던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가격을 생각하면
감히 삼계탕에 넣을 수 있는 것 이 아니니 말이다.
일부러 가장 큰 한 뿌리는 삼계 탕에 넣고, 그보다 작은 두 뿌리 는 따로 이렇게 챙겨 온 것이다. 소방관들에게 이런 산삼이 들어 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 다.
그래야 소방관들도 산삼이 들어 갔다는 것을 알고 더 힘이 날 테 니 말이다. 일종의 플라세보 효 과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만복 형이 아끼는 산삼
밭인데 그걸 다 캐어 올 수는 없 지.’
강진을 좋아하는 만복이지만 그 에게 산삼을 많이 주지는 않았 다.
올 때 한 뿌리나 두 뿌리 정도 줄 뿐이었다. 그래야 다음에 왔 을 때 또 가져갈 수 있다면서 말 이다.
만복을 통하지 않더라도 돼랑이 를 통해 얼마든지 산삼을 캐 올 수 있었지만, 강진은 그렇게 하 지 않았다. 만복이 아끼던 산삼
밭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번엔 그도 강진이 산 삼을 캐 간 걸 좋아할 것이다. 소방관들이 먹고 힘을 내서 사람 들을 도울 테니 말이다.
유리통에 담긴 산삼을 꺼낸 강 진이 그것을 잘 보이는 곳에 놓 고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