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화
차종석이 삼계탕을 먹을 때, 최 동해가 최창수와 함께 식당에 들 어왔다. 그들 옆에는 대원이 한 명 있었다.
“형 혼자 힘드셨죠?”
“너희가 있다고 뭐 도울 것이 있나. 이야기 잘 들었어?”
“여기 선배님이 잘 이야기해 주 셨어요. 여기는 고인수 선배님 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동생들이 많이 귀찮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귀찮기는요. 귀여운 후배들이 들어오는데요.”
그러고는 고인수가 최동해를 보 았다.
“게다가 여기 봉사하러 왔다가 소방관 되기로 마음먹고 합격까 지 했다니 기특하잖습니까.”
고인수의 말에 최창수가 말했
다.
“시간 날 때 와서 장비들 보고 가라고 이야기도 해 주셨어요.”
“장비들?”
강진의 물음에 고인수가 웃으며 말했다.
“군대에서도 장비 명칭 외워야 하는 것처럼 여기도 외워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학교 가면 가 르쳐 주기는 하지만 미리 조금이 라도 외우고 가면 가서 덜 고생 하겠죠.”
“고맙네요. 아! 식사하세요.”
강진은 자연스럽게 산삼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게 오늘 삼계탕에 들어 간……
강진이 플라세보 효과를 기대하 며 산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 자, 고인수가 웃으며 식판을 잡 았다. 산삼에 대한 관심보다는 배고픔이 더 급한 모양이었다.
그때, 소방대원들 몇이 후다닥 들어왔다.
“우와!”
산삼을 보며 감탄을 토하는 이 들은 아까 밥을 먹고 간 대원들 이었다.
“다시 오셨네요.”
강진의 말에 소방대원이 급히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이거…… 삼천만 원이 넘을 거 라는데요?”
한 대원이 놀라 조금 큰 소리로 말을 하자, 식사를 하던 대원들 이 그를 보았다.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자, 큰 목소리로 말했던 대원이 급히 자 신의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제가 산삼이 어떤 것 같으냐고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는 데 심마니 한다는 분이 한 삼천 은 되는 귀한 거라고 댓글을 남 기셨더라고요.”
“삼천?”
삼천이라는 말에 밥을 먹던 대 원이 놀란 눈으로 삼계탕 그릇을
보았다.
“삼천?”
자신들이 그냥 먹고 있던 삼계 탕에 차 한 대가 들어가 있다니 얼떨떨한 것이다.
대원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핸 드폰 주인은 자신의 물음 밑에 적힌 댓글을 읽었다.
“사진으로 봐서 정확하지 않지 만, 대략 삼천에서 사천 사이는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물 건은 워낙 잘 안 나오고 귀해서
주인만 잘 만나면 부르는 것이 가격이죠. 그런데 이 산삼은 어 디서 구하신 건가요? 사진 배경 보니 어디 식당인 것 같은데, 혹 시 판매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쪽 지 보내 주세요.”
댓글 내용을 들은 사람은 당황 스러운 눈으로 삼계탕을 보았다.
산삼이라고 해서 몸에 좋은 게 들어갔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 게 고가의 산삼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요즘은 십만 원 정도로도 살 수
있는 산삼들도 판매를 하니 말이 다. 물론 그건 산삼이라기보다는 장뇌삼이지만…….
어쨌든 그저 보양식이라고 생각 했던 음식이 자동차 한 대 값이 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마른침 을 삼켰다.
꿀꺽!
그러던 중, 한 중년의 남자 대 원이 슬며시 뚝배기를 들고는 입 에 가져다 댔다.
꿀꺽! 꿀꺽!
단숨에 국물을 마셔 버리는 대 원의 모습에 다른 대원들도 급히 삼계탕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보 기다려.’
‘영미야, 오빠 삼천만 원짜리 산 삼 먹었다.’
남자 대원들이 서둘러 삼계탕을 마시는 것에 여자 대원들도 서둘 러 뚝배기를 들었다.
남자들만큼 몸에 좋은 것에 민 감하진 않지만, 값어치가 값어치 인 만큼 서둘러 먹는 것이다.
그런 대원들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사장님 정말…… 이 산삼이 이 런 겁니까?”
여전히 핸드폰을 들고 있는 대 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가격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제 가 아는 한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산삼을 삼계탕에 넣어서 먹는 걸 아주 싫어하시죠. 어떻게 이 귀 한 걸 삼계탕에다 넣는 거냐면서 요.”
맞다 아니다 말을 하지는 않았 지만, 강진의 말에 소방대원이 홀린 듯이 산삼을 보았다.
“와……
작게 감탄하며 산삼을 보던 대 원이 강진을 보았다.
“이렇게 귀한 걸 왜 삼계탕에?”
“그야 먹으려고요.”
“ 먹으려고요?”
“먹으려고 캐 왔으니 먹어야
죠.”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곧 복날도 다가오는데 고생하시는 분들 몸보신도 하고 요.”
“그래도 이건…… 삼천만 원짜 리 산삼인데요?”
“비싸기는 하죠. 근데 팔려고 캔 것도 아니고 먹으려고 캔 걸 요. 그러니 맛있게 드시고 올해 도 역시나 더울 이 여름에 힘내 서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강진의 말에 대원이 그를 보다 가 웃으며 말했다.
“가끔 구의원이다 뭐다 하는 정 치인들이 와서 격려해 준답시고 되지도 않는 이야기 한참 하는 데…… 그 긴 말보다 맛있게 먹 고 힘내서 사람들 도우라는 게 더 마음이 찌릿하네요.”
대원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산삼에 찌릿한 건 아니고요?”
“그런가? 설마 벌써 약효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는
대원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삼이 몸에 잘 받나 보네요. 어 떻게, 삼계탕 국물이라도 좀 더 드실래요?”
“ 남았나요?”
“국물은 좀 남을 겁니다.”
“그럼 먹겠습니다.”
대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뚝 배기에 국물을 덜어 주었다.
사실 삼계탕은 좀 더 남아 있었 다. 하지만 강진은 국물만 떠 주
었다.
남은 건 오늘 비번인 대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니 말이 다.
식사를 한 대원 증 당장 할 일 이 없는 대원들은 구내식당에 모 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강 진은 술을 담그는 통 안에 산삼 을 넣은 뒤 소주를 붓고 있었다.
“담금주가 오래되면 좋기는 하
지만 일 년 정도만 숙성이 되어 도 약 성분이 술에 녹아들어서 약주가 될 겁니다. 그러니 잘 놔 뒀다가 대원분들 모두 같이 쉬는 날……
‘그런 날이 있나?’
말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동사무소 공무원들이야 주말 에 쉬겠지만, 소방서는 안 쉴 것 같았다.
아니, 쉴 수가 없을 것이었다. 사건사고는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당장 눈앞에만 해도 일요일에 출근한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다 쉬는 날이 있나 모르겠지 만, 어쨌든 많이 쉬시는 날 다 같이 보약 먹는다 생각하고 드세 요.”
강진의 말에 대원들이 웃으며 산삼을 보았다.
“산삼주를 말로만 들었지, 이렇 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일 년이라…… 일 년을 어찌 참아.”
대원들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최동해와 최창수를 보았다.
“운이 좋아서 여기로 발령 나면 너희도 산삼주 먹겠다.”
“그러게요.”
두 사람의 대답을 들으며 강진 이 담금주 통 뚜껑을 닫았다.
“자, 됐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김강은을 보았 다.
“주방에 삼계탕 남았거든요? 저
녁에 출근하신 분들께 한 그릇씩 드리고, 오늘 출근 못 한 대원분 들께도 연락해서 드시러 올 수 있으면 드시러 오라고 해 주세 요.”
“많이 남았어요?”
“오늘 쉬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준비를 좀 더 해 왔거든 요.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드신 분들 얼마나 아쉽겠어요.”
“알았어요. 산삼 들어간 삼계탕 이라고 하면 당장 차 키 들고 올 사람들 많아요.”
김강은의 말에 강진이 소방대원 들을 보았다.
“식사 대접을 한 김에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강진의 말에 소방대원들이 의아 한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거창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 니다. 그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늘 우리 곁에서 우리 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시는 여러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 습니다. 고생들 해 주셔서 늘 감
사하고 고맙습니다. 곧 많이 더 워질 텐데 더위 조심하세요. 감 사합니다.”
강진이 깊게 고개를 숙이자, 김 강은이 그를 보다가 손뼉을 쳤 다.
짝! 짝! 짝!
그에 대원들도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힐 끗 차종석을 보았다. 그런 강진 의 시선에 차종석이 웃으며 잘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감사 인사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차종석이 한 말이 생각이 나서 감사 인사 를 한 것이다.
말 한마디로 여러 사람이 기분 좋아진다면 이것만큼 남는 장사 도 없었다.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저는 이만 정리하고 가야겠네요.”
강진이 주방 정리를 하러 들어 가자 대원들이 하나둘씩 담금주 통으로 다가갔다.
“산삼주라.”
“그런데 담금주는 좀 노란색으 로 변하지 않나?”
“정말 무식한 말입니다.”
“왜?”
“담금주는 말 그대로 담그고 한 백 일은 지나야 술 색이 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지금 부었 는데 어떻게 색이 그렇게 나오겠 습니까?”
“그렇구나. 우리 후배…… 아는 게 많아서 선배한테 무식하다고
하는구나. 내가 호랑이를 키우고 있었네?”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 죠.”
“그런데 이거 어디다 두지? 주 방에 두기는 그렇잖아. 사람들 오고 가다 깨뜨릴 수도 있고.”
“서장님 방에다 둘까요?”
“서장님 술 안 드시잖아.”
“그러니 서장님 방이 가장 안전 하죠.”
“하긴, 일리 있네.”
“그런데 술 안 드셔도 삼천만 원짜리, 그것도 한 뿌리도 아니 고 두 뿌리나 들어간 산삼주면 드시지 않겠어요?”
“몸 생각해서 술 안 드시는 분 이니 몸에 좋은 이걸 안 드시지 는 않겠네.”
대원들이 수군거리는 사이 강진 은 김강은, 차은미와 함께 주방 을 정리했다. 차은미가 치우는 걸 도와주겠다고 주방에 남은 것 이다.
자신이 먹은 그릇들이야 대원들 이 각자 알아서 설거지를 다 했 지만, 그걸 정리해서 담고 주방 에 남은 흔적들을 치우려면 손이 필요하니 말이다.
아이스박스에 뚝배기를 넣고 주 방을 정리할 때,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에 차은미가 급히 고무장갑을 벗었다.
“출동이에요. 더 도와주지 못해
서 죄송해요.”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뛰어 나가는 차은미를 보던 김강은이 강진에게 말했다.
“저도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정리는 제가 하고 갈 테니 가 보세요.”
“미안해요. 가서 큰 출동 아니 면 다시 올게요.”
그러고는 김강은도 서둘러 주방 을 나갔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배식대 위에 앉아 있는 차종석을
보았다.
그 시선에 차종석이 웃었다.
“사람을 구하러 거야.”
“보통 사람에게는 큰일인데…… 저분들에게는 저게 일상이네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직업이니 까. 너 같은 평범한 사람하고 비 교하면 안 되지.”
차종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은 사람을 한 명만 구해도 뉴스에 나오고 신문에 나온다.
어디 사는 누가 누구를 구했다 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 소방 서에 일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구 해도 그저 누가 구조됐다는 내용 만 나온다.
아니면 아예 나오지도 않거나 말이다. 사람들에게 소방관들은 사람을 구하는 게 당연한 사람들 인 것이다.
‘당연한 것이 참 대단한 일인 데……
귀가 아플 정도로 사이렌이 크 게 울렸지만 강진은 그 소리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건 사람 들을 구하는 소리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