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화
재료를 산 뒤 트럭을 타고 빌라 로 간 강진은 주차장에 차를 세 우고는 최광현 집으로 올라갔다.
삐삐 삑!
강진이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를 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부산에 간다고 하더니 일찍 왔 네?”
조금 반가운 듯한 채송화의 목
소리에 강진이 웃었다.
‘잘 지내고 있나 보네.’
최광현 온다고 반기는 것을 보 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문을 열고 들어갔 다.
“광현 형이 아니라서 실망하시 겠어요.”
강진의 말에 채송화가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급히 말했다.
“실, 실망은 누가 실망을 했다
고 그래?”
“왜요? 삐삐빅! 소리 들리기 무 섭게 반기는 목소리가 들리던 데.”
“누가 그랬다고 그래!”
작게 소리를 친 채송화는 거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가서는 털썩 앉았다. 그 모습에 웃던 강진이 문득 소파를 보았다.
“소파 전에는 없었는데?”
“광현이가 사 왔어.”
“ 소파를요?”
소파 쓸 일이 뭐가 있나 의아해 하던 강진은 그 위에 채송화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화 씨 앉아 있으라고 산 모 양이네요.”
“그런 것 같아.”
강진이 소파를 보고 있자, 채송 화가 리모컨을 눌러 TV를 컸다. 그에 강진이 놀라 그녀를 보았 다.
“어떻게 쓰신 거예요?”
“뭐가?”
“ 리모컨요.”
강진의 말에 채송화가 리모컨을 보다가 “아하.” 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리모컨 버튼에 광현이가 연필 로 칠을 해 놨어.”
“ 연필요?”
채송화가 보라는 듯 리모컨을 가리키자, 강진이 다가와서는 리
모컨을 보았다. 리모컨 숫자 칸 에는 모두 검은 연필 자국이 남 아 있었다.
“아, 저승 연필로 칠해 놨군요.”
“ 맞아.”
“똑똑하네요.”
연필 자국도 저승의 것이니 귀 신의 손에 닿을 것이었다.
“확실히 똑똑하네. 우리는 장갑 을 끼고 하는데 말이야.”
“그러게.”
대답을 하며 리모컨을 보던 강 진이 그것을 내려놓고는 채송화 를 보았다.
“여기 올 일이 있어서 잠시 들 렀어요. 그리고 들른 김에 음식 도 좀 해 주려고요.”
“음식 뭐? 아, 그리고 말 놔.”
“존대가 습관이라…… 후, 알았 어.”
어색하게나마 말을 놓은 강진은 봉투를 작은 식탁에 올리고는 말 했다.
“광현 형이 너 햄버거 좋아한다 고 해서, 햄버거 해 주려고.”
“햄버거 해 줄 거야?”
급히 다가오는 채송화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햄버거 빵은 못 사서 샌드위 치.”
“샌드위치?”
“샌드위치도 맛있어. 빵만 달 라.”
“그런가?”
“햄버거 빵이 좋으면 햄버거 빵 사 와서 그걸로 해 줄까?”
강진의 말에 채송화가 꺼내 놓 은 식빵을 보다가 손을 저었다.
“됐어. 그냥 그걸로 해 줘.”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시작하자.”
“재료 꺼내.”
강진이 재료들을 꺼내자, 배용 수가 식재들을 잠시 보다가 말했
다.
“일단 패티부터 만들자. 대패삼 겹살 먼저 좀 다져.”
“대패삼겹살? 햄하고 맛살 섞어 서 만든다며.”
“대패삼겹살 넣으면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 게다가 햄버거 패 티에 고기 안 들어가는 것도 아 니고.”
배용수가 대패삼겹살을 보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대패삼겹살 상태 좋
네. 독일산인가?”
“독일산이 좋아?”
“삼겹살 오는 것 중에 독일 쪽 이 고기가 좋지. 몰라?”
“우리 가게는 국산만 오잖아.”
“하긴…… 돼지고기 먹으면서 어디 고기인지 보고 먹는 사람은 없으니 모르겠다.”
그러고는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 다.
일단 대패삼겹살 한 장 구워봐
라. 보는 것과 구웠을 때 맛이 다르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대패삼겹 살 한 장을 프라이팬에 구웠다. 강진이 고기를 굽는 것을 보던 배용수가 코를 벌렁거리다가 말 했다.
“돼지 냄새는 안 나는 것 같은 데? 너는 어때?”
“나도 돼지 냄새는 안 나는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기를
보다가 말했다.
“됐어. 이제 햄하고 맛살 다져 서 뭉쳐. 아! 대패삼겹살도 몇 장 다져서 같이 해.”
“안 먹어 봐도 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네 손 닿아서 MSG 첨가 됐어. 맛으로는 구분 못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대패삼겹 살을 보다가 물었다.
“근데 정말 대패삼겹살도 넣어? 햄하고 맛살만 넣는 것이 아니 라?”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햄하고 맛살만 넣고 하면 육즙이 안 터질 것 같 아.”
“육즙?”
“입에 넣었을 때 기름 터지는 거 말이야. 수제 햄버거는 또 그 런 맛이 있어야지.”
“아하! 그래서 대패삼겹살 넣으 라고 한 거구나.”
“대패삼겹살이 기름 많이 나오 니까. 그거 다져서 넣으면 육즙 처럼 기름이 터질 거야. 육즙이 라고 해도 따지고 보면 기름이니 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수한테 또 하나 배우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햄과 맛살, 그리고 대패삼겹살을 다졌
다. 그리고 다진 재료들을 볼에 넣고 주무르며 섞었다.
그렇게 고깃덩이를 치댄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내용물을 보고는 말했다.
“전분 좀 섞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전분을 섞은 물을 볼에 조금 넣었다.
“됐다.”
강진이 다시 패티 재료를 꾸욱 꾸욱 누르며 섞고는 둥글게 만든 뒤 번갈아 던지며 치대기 시작했
다.
“이제 숙성.”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이걸 숙성까지 해?”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배용수의 답에 작게 고개를 저 은 강진은 접시 바닥에 식용유를 살짝 바른 뒤 그 위에 패티 모양 으로 만들어진 고기를 놓았다.
그것을 랩으로 싸서 냉장고 안
에 넣은 강진이 손을 씻고는 야 채를 집어 들었다.
“이제 야채 손질.”
강진은 샌드위치에 들어갈 양상 추와 피망을 손질했다. 손질이라 고 해도 사이즈 맞게 썰어 놓는 게 다지만 말이다.
토마토도 하나 동글게 썰어 놓 자, 배용수가 말했다.
“이제 소스.”
강진은 케첩과 마요네즈를 두 숟가락씩 그릇에 넣고 슈퍼에서
사 온 머스터드소스도 두 숟가락 넣었다.
소스가 잘 섞이도록 젓자 배용 수가 말했다.
“냉장고에 보니까 피클 있더 라.”
“피클? 광현 형 피클 같은 거 안 먹을 텐데?”
피클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피클 을 집에 비치해 두지, 보통은 집 에 두지 않으니 말이다. 음식 장 사를 하는 한끼식당에도 피클은
없었다.
“피자 시키면 주는 피클 있어.”
“ 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자를 시키면 피클이 오는데 최광현은 피클을 안 먹으 니 냉장고에 넣어둔 것이다.
배용수의 말에 냉장고를 열어 본 강진은 계란 칸에 있는 일회 용 소스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 머스터드 이렇게 있을 줄 알았으면 안 사 올 걸 그랬다.”
봉지에 담겨 있는 작은 소스들 을 뒤적거리는 강진을 보며 배용 수가 말했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지. 피 클 몇 개 꺼내서 다져서 소스에 섞어.”
“ 피클을?”
“소스 먹을 때 피클도 조금씩 씹히면 식감도 있고, 상큼한 맛 도 있잖아. 다져서 섞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클을 꺼내 다져서
는 소스에 넣고 비볐다.
그렇게 소스까지 만든 강진이 채송화를 보았다.
“요즘 지낼 만해?”
“지낼 만해.”
채송화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광현이가 집에 올 때 군것질거 리 많이 사 와.”
“먹는 재미가 있겠네.”
“맞아. 먹는 재미가 아주 좋아.”
TV를 보던 채송화가 웃으며 말
을 하자,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남자친구 기억나는 것 없어?”
“남자친구?”
“ O »
강진의 말에 채송화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말했다.
“태산이……
“이름이 태산이야?”
“응. 오태산이야. 그런데 태산이 는 왜?”
“남자친구가 많았어?”
강진의 물음에 채송화가 눈을 찡그렸다.
“여자한테 그런 걸 묻는 건 실 례야. 여자친구한테 그거 물으면 바로 싸대기 날아올걸.”
최악이라는 듯 자신을 흘겨보는 채송화를 보고 강진이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고…… 여기 앞에 할 머니가 운영하는 슈퍼 알아?”
“할아버지 슈퍼?”
“ 맞아.”
“근데 왜 할머니 슈퍼라고 해?”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거든.”
“아…… 그렇구나. 거기 할아버 지 사람 참 유쾌해서 좋았는데.”
채송화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 다.
“그런데?”
“거기 할아버지가 너를 기억하 더라고. 너하고 가끔 술하고 안 주 사 가던 남자도 기억을 하고. 그 남자가 그 오태산인가 해서 물어본 거야.”
“그럼 그 남자가 오태산 맞아. 여기 이사 와서 사귄 남자는 태 산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채송화를 보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 남자가 가끔 슈퍼 들를 때 여기 보고 간다고 하더라.”
멈칫!
“태산이가?”
“ "응."
“그랬구나.”
채송화가 멍하니 허공을 보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만나고 싶어?”
“귀신이 전남친 만나서 뭐해.”
입맛을 다시던 채송화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보고 싶 네. 군대 가서 자주 못 봤거든.”
“군대?”
남자친구가 군대를 갔다는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
다.
“나보다 어렸어.”
“아……
“그래서 자주 왔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왔다 가는 모양이야.”
강진의 말에 채송화가 웃었다.
“하긴, 나처럼 매력적인 여자를 잊기는 쉽지 않겠지.”
기분 좋게 웃는 채송화를 보며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 모양이네.”
이야기를 나눌 때, 배용수가 말 했다.
“패티 숙성 이만하고 굽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냉장고에 넣은 지 20분 정도 지난 상태였다. 숙성이야 조금 더 하면 좋겠지만, 20분 정 도라도 어느 정도 숙성이 됐을 것이다.
그에 강진이 프라이팬을 가스레 인지에 올린 뒤 불을 켰다.
곧 프라이팬이 뜨거워지기 시작 하자 식용유를 살짝 붓고는 그 위에 패티를 올렸다.
촤아악! 촤아악!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리자 강진 이 미소를 지으며 프라이팬을 앞 뒤로 흔들었다.
촤아악! 촤아악!
프라이팬이 흔들리며 안에 든 패티들도 앞뒤로 흔들렸다. 이렇 게 해야 프라이팬에 눌어붙는 것 이 막아지는 것이다.
“자! 수제 햄버거입니다.”
강진이 웃으며 소파 앞 밥상에 햄버거를 놓았다. 물론 빵은 식 빵이라 햄버거라기보다는 샌드위 치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맛있겠다.”
채송화가 웃으며 샌드위치를 보 자, 배용수가 말했다.
“먹어 봐. 햄버거 빵이 아니라 좀 서운하겠지만 이것도 맛있을 거야.”
그러고는 강진이 장대방을 보았 다.
“대방 씨도 드세요.”
강진의 말에 장대방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저한테도 말 놔 주세요. 살아 서도 죽어서도 제가 형보다 나이 가 어린 걸요.”
“그래. 그럼 동생 대우해 버린 다.”
“대우해 주세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샌드위치를 집었다.
“먹자.”
그러고는 먼저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아삭!
갓 잘라 아삭한 양상추에 이어 조금은 따뜻한 패티가 씹혔다.
대패삼겹살 덕에 육즙이 제법 나오는 패티는 소스와 잘 어우러 져 맛이 괜찮았다.
게다가 샌드위치 빵을 기름 안 두른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서 그 런지 슈퍼에서 파는 식빵치고는 맛이 좋았다.
‘확실히 빵은 구워야 맛있어.’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샌드위 치를 먹으며 채송화를 보았다.
‘그 오태산인가 하는 친구 만나 면…… 송화 씨 승천을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