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화
드르륵!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아저씨 는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할머니가 웃으며 반기자, 아저 씨가 강진을 보았다.
“가서 재료 골라.”
강진이 재료를 고르러 들어가 자,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저녁식사 하셨어요?”
“지금이 몇 시인데 벌써 저녁을 먹어.”
“그것도 그러네요. 이따가 저 친구가 가게 앞에서 음식을 좀 할 건데 할머니 저녁 따로 챙겨 드시지 마시고 거기 오셔서 드세 요.”
“음식을? 무슨 음식을 여기 앞 에서 해?”
“저 친구가 푸드 트럭을 가지고 와서요.”
“장사를 하겠다는 건가?”
할머니가 의아한 듯 묻자, 아저 씨가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가……
잠시 말을 멈춘 아저씨가 웃으 며 말했다.
“제 큰아들 대방이 기억나세 요?”
“기억나지. 인사 참 잘 하
는……
말을 하던 할머니가 안쓰러운 눈으로 아저씨를 보았다. 말을 하다 보니 장대방이 죽었다는 것 이 떠오른 것이다.
“에휴! 자식 먼저 보내서 어떻 게 해.”
할머니의 말에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나쁜 짓하다 간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하다 사고를 당 했으니…… 좋은 곳에서 저하고
대방 엄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말을 하던 할머니가 한숨을 쉬 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할머니 를 보던 아저씨가 강진을 보았 다.
“저 친구가 대방이하고 친한 형 이에요.”
“그래?”
“전에 대방이 생각이 났다고 저 희 집에 왔더라고요.”
아저씨의 말에 할머니가 재료를 고르는 강진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우리 가게에서 막걸리 샀던 총각 같 네?”
“맞아요. 그 총각.”
웃으며 대답한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푸드 트럭에서 음식 먹어 보는 것도 재밌을 거라고 트럭을 가져 왔더라고요. 그리고 할머니 식사 도 좀 챙겨 드리겠다고 여기 앞
에서 음식 한다고 하는데 괜찮을 까요?”
“나한테도?”
“이왕 음식 하는 거 다른 분들 한테도 해 드리고 싶다네요. 할 머니 가게 앞에서 하는 것이니 허락받고 하려고요.”
아저씨의 말에 할머니가 웃었 다.
“내가 허락 안 하면?”
“그럼 저희 빌라 쪽으로 옮기든 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죠.”
아저씨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나도 모처럼 맛있는 거 먹겠네.”
“맛있는 거 해 줄 겁니다. 음식 을 참 잘한답니다.”
“대신 먹고 청소는 하고 갈 거 지요?”
“그럼요. 깨끗하게 치우고 갈
겁니다.”
아저씨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 는 사이 강진은 배용수와 함께 재료들을 골랐다.
“수타 할 줄 알아?”
강진이 작게 묻자 배용수가 웃 으며 말했다.
“수타 할 줄은 아는데 그걸 푸 드 트럭에서 어떻게 해? 그리고 사람들도 보는데 내가 수타를 쳐? ‘세상에 저런 일이’에 나올 일 있어?”
“그러네. 그럼 자장면 면은 뭐 로 하지? 국수로 할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왕이면 면으로 하는 것이 좋 지. 밀가루 반죽해서 칼국수처럼 해.”
“칼국수 반죽?”
“모양은 좀 달라도 국수보다는 그게 더 낫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밀가루와 감자, 양파들을
집어 들었다.
고기가 좀 아쉽기는 하지만, 대 패삼겹살로 만들면 모양은 좀 이 상해도 재료가 나오기는 할 것이 었다.
거기에 춘장도 하나 집어 든 강 진이 식재들을 할머니 앞에 놓으 며 말했다.
“아버님 몇 분이나 부르실 거예 요?”
“세 명.”
“그런데 아버님 친구분들이면
가족들 있을 텐데, 그분들은 안 오세요?”
“잔치하는 것도 아니고 이 좁은 골목에서 우르르 몰려서 먹기 힘 들어. 제수씨나 애들만 고생하는 거지.”
아저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도 다 나와서 먹으면 좋겠지만, 그의 말처럼 골목길에서 먹는 거라 불편할 것 이다.
“그럼 음식만 좀 더 할게요. 음 식 맛있으면 포장해 가시면 되겠
죠.”
“괜찮겠어? 많이 하면 힘들 텐 데.”
“많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오 인분 하나 십 인분 하나 차이 없 으니까요.”
“일단 우리 먹을 것만 하고, 애 들이 맛있다고 하면 더 하든가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강진은 냉동고에서 대패삼겹살 을 모두 꺼내고 콩나물도 더 꺼
냈다.
그렇게 재료를 모두 산 강진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푸드 트럭으로 재료들을 옮겼다.
트럭 안에 있는 찜통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던 강진은 랩으로 덮여 있는 반죽을 보았 다. 반죽은 보기 좋게 부풀어 올 라 있었다.
“반죽은 된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반죽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그래도 좀 놔둬. 자장면 할 때 칼질하 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보았다. 슈퍼 앞 평상에는 아저씨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방이가 좋은 사람을 사귀었 나 봐.”
“그러게 말이야. 아는 동생 죽 었다고 그 집 부모님에게 인사하
러 오는 것이 어디 쉽나.”
친구들의 말에 아저씨가 웃었 다.
“그게 다 대방이가 좋은 녀석이 고 착한 사람이라 그래. 어디 좋 은 친구 좋은 형이 일방적인가. 내가 좋은 동생이고 좋은 사람이 어야 상대도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관계가 되는 거지.”
“그래. 그 말이 맞네.”
친구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다 가 슈퍼를 보며 말했다.
“음식 되려면 좀 먼 것 같은데 우리 소주라도 하나 가져다가 마 시면서 기다릴까?”
“무슨 소리야. 곧 있으면 음식 될 테니 그때 같이 한잔하자고.’’
아저씨의 말에 친구들이 입맛을 다시며 강진의 푸드 트럭을 보았 다. 그러다 강진과 시선이 맞닿 자,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오래 걸리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럼 맛있는 소주 안주가 될 겁니다.”
“김칫국 냄새가 좋은데 그것만 으로도 소주 한 병은 되겠어.”
아저씨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옆에서 끓고 있는 김치콩나물국 을 보았다. 닫혀 있는 뚜껑 틈으 로 칼칼함이 느껴지는 김이 뿜어 져 나오고 있었다.
강진이 그걸 보고 있을 때, 아 주머니가 장대진과 함께 푸드 트 럭으로 다가왔다.
“여보.”
“어, 왔어?”
아저씨가 손을 들자, 아주머니 가 강진을 보고는 웃으며 다가왔 다.
“왔으면 집으로 오지.”
“어머니 주무신다고 해서요.”
“일어나니까 남편은 없고 쪽지 로 강진이 왔다고 일어나면 여기 오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웃는 아주머니를 보던 강진이 장대진을 보았다.
“잘 있었어?”
“네.”
“형 가게 한번 오지 그랬어.”
“제가 강남은 잘 안 가서요.”
“강남이라고 해도 그냥 사람 사 는 곳이야. 강남에도 놀러 와. 거 기 오면 아가씨들 많다.”
강진의 농에 아주머니가 웃었 다.
“그러는 강진이는 아가씨가 있 고?”
“저야 장사하는 사람이니까요.
놀러 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웃으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전에 대방이가 부모님들 좋아 하는 음식 이야기 해 준 것이 생 각이 나서 그걸로 좀 준비했어 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멈칫하 다가 강진의 앞에 놓인 솥들을 보았다.
“대방이 가?”
의아해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강 진이 말했다.
“일단 아버님은 김칫국에 콩나 물 넣고 끓인 것 좋아하신다고 해서 그거 준비했어요.”
“대방이가 그래도 아버지 입맛 은 알고 있었나 보네. 그 양반이 김칫국을 좋아하기는 하지. 반찬 없어도 그거 해 주면 밥 한 그릇 그냥 다 먹어. 술안주로도 좋아 하고 술 먹고 난 후 해장으로도 좋아하고.”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강진은 찜통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 분 다 고기 좋아하 신다고 해서 대패삼겹살 콩나물 찜도 있어요.”
“대패삼겹살 콩나물찜?”
처음 들어보는 메뉴에 아주머니 가 의아해하자, 강진이 설명을 해 주었다.
“콩나물 깔고 그 위에 대패삼겹 살 얹고 다시 콩나물로 덮은 걸 찌는 거예요. 그렇게 층층이 시 루떡 찌는 것처럼 해서 만드는 음식이죠. 그렇게 하면 대패삼겹 살은 수육처럼 부드럽고, 돼지기
름이 콩나물에 흡수돼 양념간장 에 찍어 먹으면 아주 맛이 좋아 요.”
“말만 들어도 맛있을 거 같네. 고기는 부드럽고 콩나물은 아삭 하고.”
“잘 아시네요.”
“맛있겠어.”
“아주 맛이 좋습니다.”
웃으며 아주머니를 보던 강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서운하시죠?”
“서운?”
“대방이가 아버님 식성은 잘 아 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건 말을 안 해 줘서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었 다.
“그게 왜 서운해. 엄마들은
잠시 말을 멈춘 아주머니는 씁 쓸하게 웃으며 장대진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였다.
“자식이 좋아하는 게 엄마가 좋 아하는 음식인걸.”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하고 어 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은 전혀 다 르죠.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은 어머니가 해 주고 싶은 음식인 거죠.”
“그런가?”
“그럼요.”
강진은 밑에 있던 골뱅이 캔을
떡하니 선반에 올렸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건 바로 이 거잖아요.”
아주머니는 골뱅이 캔을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대방이가 나 골뱅이 좋아한다 고 얘기했어?”
“어머니가 골뱅이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골뱅이가 비싸서 자주 못 드신다고 하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맞아. 나는 골뱅이가 정말 좋 아. 그런데 이 캔 하나에 만 원 이나 해서 보통은 비빔국수에 넣 어 먹거나, 야채 잔뜩 넣고 무쳐 먹거나 했지.”
아주머니의 말을 듣던 장대방이 웃으며 골뱅이를 보며 중얼거렸 다.
“그리고 엄마는 먹고 싶은 골뱅 이는 나하고 대진이 많이 주 고…… 엄마는 자잘한 거하고 국 수나 야채를 많이 드셨죠.”
골뱅이가 참 맛있고 좋기는 한
데 비싸다. 한 캔에 만 원 정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까서 보면 양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보 니 차라리 그 돈으로 돼지고기를 사서 김치찌개를 끓이면 더 맛있 게 한 끼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머니는 골뱅이 를 좋아하지만 잘 먹지 못했다. 모처럼 큰마음 먹고 한 캔을 사 도 자식들 먹으라고 골뱅이를 올 려주고 자기는 국수나 야채를 더 많이 먹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많이 샀어
요. 많이 드세요.”
“골뱅이 비싼데.”
“비싸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 죠. 오늘은 대진이 주려고 하지 마시고 어머니가 많이 드세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골뱅이 캔을 보았다.
“대방이가 나 골뱅이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구나.”
아주머니는 웃으며 골뱅이 캔을 보다가 장대진을 보았다.
“엄마 골뱅이 좋아해.”
아주머니의 말에 장대진이 웃으 며 그 손을 잡았다.
“알았어. 내가 꼭 기억하고 있 다가 자주 사 줄게.”
“그래. 그리고 국산으로 사야 해.”
“국산? 골뱅이 캔에 국산이 있 고 외국산이 있어?”
장대진이 의아한 듯 보자, 아주 머니가 웃었다.
“응. 국내산이 있어. 그러니까 꼭 국내산으로 사 줘야 해 아 드 w
“알았어. 내가 형 몫까지 두 배 로 사 줄게.”
“그래. 고마워, 아들.”
아주머니의 말에 장대진이 웃으 며 손을 꼬옥 맞잡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장대방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막둥이가…… 형 몫까지 국내산 골뱅이로 두 캔씩 사 드
려. 그리고 큰 거 꼭 어머니 드 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