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화
장대진이 자장면을 들고 아저씨 에게 가는 사이 할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는 중국집이 시골에는 많 지가 않았어.”
“하긴, 옛날에는 시골에 중국집 이 없었죠.”
아주머니의 말에 할머니가 그녀 를 보며 웃었다.
“아네?”
“저도 할아버지 집이 시골이라 서요. 동네에 작은 슈퍼 하나가 전부였어요. 게다가 그 슈퍼도 농사 바쁠 때는 문 닫혀 있기 일 쑤였어요.”
“시골은 그렇지. 쌀집도, 슈퍼도 모두 농사가 중심으로 돌아가니 까.”
“그런 것 같아요.”
아주머니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 며 말했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 끙끙 앓았 는데 그다음 날에도 자장면이 더 먹고 싶은 거야. 그래서 남편이 밥 먹고 약 먹으라고 밥상 차려 왔기에 자장면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화를 내더라 고.”
“ 화요?”
“지금 어디서 자장면을 가져 오 냐고, 어서 밥이나 먹으라고 말 이야. 그래서 그게 너무 서운하 더라고.”
“그런데 동네에 중국집이 없기
도 하고…… 그리고 어르신 때면 차도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때는 우리 집에도 차 가 없었어.”
할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으면 가서 먹고 오자 고 말이라도 예쁘게 해 주면 얼 마나 좋아. 그때 서운해서 밥 몇 숟가락 먹고 다시 누웠는데 남편 이…… 논에 갔다 온다고 나가더
라고.”
할머니의 말에 아주머니가 미소 를 지었다.
“그리고 읍내 가서 자장면을 사 오셨나 보네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
“방금 강진이가 어르신 아프셨 을 때 할아버지가 자장면 사다 주셨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아…… 그렇지.”
할머니는 앞에 놓인 자장면을
지그시 보다가 말을 이었다.
“점심때를 한참 지났는데 영감 이 안 오는 거야. 나는 아파 죽 겠는데…… 오면 내가 화를 내야 지, 다음에 이 영감 아프면 그때 내가 밥 차려 주나 봐라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여보, 나 왔 어!’ 하면서 영감이 크게 나를 부르며 들어오더라고. 그것도 한 손에는 주전자를 들고 말이야.”
“주전자요?”
“막걸리를 받아 오던 주전자가 있어. 한 이만 했던 거.”
할머니는 손동작으로 주전자 크 기를 설명하고는 웃었다.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들어오 기에 이 인간이 미쳤나? 마누라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있는데 막 걸리를 받아왔나? 싶어 화가 벌 컥 나더라고.”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급히 말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거야? 이 사람아, 내가 아무리 철이 없 어도 마누라 아픈데 막걸리를 사 러 갔겠어? 나를 뭐로 생각을 하
고 있던 거야?”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고는 다시 할머니를 보았 다. 강진의 시선에 할머니가 젓 가락으로 자장면을 비비며 말했 다.
“화는 나는데 화를 낼 힘도 없 고 그래서 황당한 눈으로 보는 데, 그 사람이 주전자를 앞에 놓 고는 밥상을 들고 오더라고. 그 때 더 화가 나더라고. 아픈 사람 앞에 두고 술을 마시려고 하나 싶어서 말이야. 그런데......
-밥 먹고 약 먹자고.
-밥맛없어요. 그리고 아픈 사람 앞에 두고 무슨 막걸리야.
-막걸리? 무슨 소리야. 자장면 먹고 싶다며. 내가 자장면 사 왔 어.
- 자장면?
젊은이는 미래를 보고 살고, 노 인은 과거를 보고 산다고 하는
데……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그 날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자장면을 사 왔다고 하는데 자 장면이 안 보이는 거야. 그런데 영감이 밥상에 주전자를 올리고 는 웃으며 그러더라고. 자장면 여기에 담아 왔다고.”
할머니는 자신의 앞에 있는 자 장면을 지그시 보다가 말을 이었 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주전자 뚜 껑을 여는데…… 그 모습이 꼭 목을 긁어 달라는 강아지 같더라
고.”
“어허! 이 사람이. 남편 보고 강아지라니.”
할아버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딱 봐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 신에게 좋았던 기억이 할머니에 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 때문에 말이다.
“주전자에서 자장면을 꺼내는 데…… 하!”
할머니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 를 저었다.
“열어 보니 자장면이 떡이 되어 있는 거야.”
“읍내 가서 사 오신 것이니…… 그렇겠네요.”
“그걸 보고 남편이 무척 당황해 하더라고. 그렇게 될 줄 몰랐나.”
웃으며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 다.
“그래서 황당한 눈으로 남편을 보는데, 옷이 흠뻑 젖어 있더라 고.”
“옷이요?”
“아마 남편도 자장면 불까 봐 정류장에서 집까지 뛰어온 모양 이더라고. 그거 보니까……
말을 하던 할머니가 웃으며 눈 가를 손으로 닦았다.
“내가…… 시집을 잘 왔……구 나.”
눈물을 홀리는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과 아주머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사이 강진은 티슈를 꺼내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그에 아주머니가 티슈를 받아 할머니 에게 건네주었다.
티슈를 받은 할머니는 눈가를 마저 닦고는 입을 열었다.
“그날 먹었던 자장면 맛이 아직 도 기억 나. 다 불어 터져서 젓 가락으로 비비려고 하는데 비벼 지지가 않더라고.”
할머니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드셨어요?”
“남편은 먹지 말고 자장 소스만 건져서 밥 비벼 먹으라고 하는 데…… 어떻게 안 먹어. 남편이
읍내까지 가서 사 온 건데. 그래 서 남편하고 한 입씩 베어 먹었 어.”
“그러셨군요.”
할머니는 자장면을 한 젓가락 집어서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맛있게 한 젓가락을 먹은 할머 니가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맛있네.”
“많이 드세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며 아주머니를 보았다.
“가끔은 원수 같고 인간이 어쩌 면 저러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 도 남편이 좋은 거야. 자기도 남 편이 원수 같을 때 있겠지만 좋 았던 기억 가지고 살아.”
“알겠습니다.”
아주머니의 대답에 할머니가 웃 으며 말했다.
“자장면 먹어. 불겠네.”
“어르신도 많이 드세요.”
“그래.”
할머니가 자장면을 다시 먹는 사이,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려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고 있는 남 편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왜 웃으세요?”
“저 사람은 내가 아프다고 하면 내가 먹고 싶은 걸 구해올까 싶 어서요.”
“구해 오시겠죠. 그리고 할머니 때와 다르게 요즘은 배달도 잘 되잖아요.”
“그런가? 언제 배달 앱 살펴서 배달 안 되는 음식으로 먹고 싶 다고 한 번 해 봐야겠어요.”
“괜히 싸움 나는 거 아닌지 모 르겠네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장대진 에게 슬쩍 눈짓을 주었다. 그 시 선에 장대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 였다.
어머니 모르게 아버지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주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고, 그에 장대진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작게 속으로 웃었 다.
‘어머니 모르게 대진이가 말을 해 주면, 집에 싸움은 나지 않겠 지.’
일부러 하는 걸 알면 아저씨도 일부러라도 음식을 구해다 줄 테 니 말이다.
후루룩! 후루룩!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맛있게 자 장면을 먹는 것을 보던 강진이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할머니를 보고 있 었다.
“그래도 내가 사다 준 자장면이 더 맛있었지?”
할아버지의 말에 피식 웃은 강 진은 배용수를 툭 치고는 자장면 을 한 그릇 만들어서 옆에 놓았 다. 그에 배용수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어르신, 여기 와서 자장면 한 그릇 하세요.”
“그럼 그럴까?”
푸드 트럭 위로 올라간 할아버 지는 배용수의 옆에 자리를 잡고 는 젓가락을 들고 자장면을 크게 떠서 입에 가져갔다.
후루룩! 후루룩!
자장면을 먹던 할아버지는 웃으 며 할머니를 보았다.
“역시 내가 사다 준 자장면만 못 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날 그거 드시고 이틀 동안
속 안 좋았다고 하셨으면서.’
강진이 속으로 웃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맛있게 자장면 을 다 먹고는 웃고 있었다.
“참 맛있네.”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날 할아버지가 주전자에 담 아온 자장면과 비교하면 어떠세 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었다.
“비교할 수가 있나.”
“그때 드셨던 것이 더 맛이 있 으셨나 보네요?”
“그럴 리가. 그때 먹었던 건 다 불어 터져서 그냥 밀가루 떡에 자장 발라 먹던 맛인 걸……
할머니는 빈 자장면 그릇을 보 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버스 타고 읍내 나가서 자장면을 사 오고 불까 싶어 뛰 어 왔던 사람은 우리 영감 단 하 나지. 그래서 그날 먹었던 자장
면은 기억이 많이 남아.”
“그런 음식은 기억에 남는 법이 죠.”
“정말…… 비교할 수가 없지.”
할머니의 목소리에 은은한 여운 이 느껴지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비교할 수가 없죠.”
맛이야 강진이 지금 만들어낸 자장면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 다.
음식은 바로 만들어서 먹으면 가장 맛이 좋다. 그리고 그건 면 음식일수록 더 차이가 컸다.
면은 시간이 지나면 불어 버리 니 말이다. 그래서 음식으로서의 맛은 지금의 것이 당연히 더 좋 았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를 사랑하고 생각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맛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 마음이 담긴 자장면은 제 아무리 맛있는 자장면이라도 해도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빈 그릇을 보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자장면 한 그릇 더 드 릴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며 그릇을 내밀었다.
“그럼 한 그릇 더 주겠어? 맛이 좋네. 면이 쫄깃해.”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그릇에 면을 담고 자장 소스를 부었다. 그러고는 다시 돌려주자 할머니 가 그릇을 받아 자장면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할머니가 자장면을 먹는 것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그녀를 보았 다.
“맛있게 꼭꼭 씹어 먹어요. 그 래야 소화가 잘 돼.”
할머니를 보며 할아버지가 미소 를 지었다.
“정말 맛있게 먹네.”
할머니를 지그시 보던 할아버지
가 강진을 보았다.
“내가 하는 말 좀 전해 줄 수 있겠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멈칫했 다.
‘돈 빠져나가는 거 아니야?’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나중에 전해 주면 문제가 안 될 것 같은 데, 할아버지는 지금 전해 달라 고 하니 말이다.
전해 주는 거야 전혀 어렵지 않 지만 할아버지의 JS 잔고가 걱정
이었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얼떨결에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꼭 전해 드려야겠 다.’
돈이 나갈지 안 나갈지 모르겠 지만, 할아버지가 생전에 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잘 말을 하면 귀신이 전하는 말 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고.
강진은 머릿속으로 해야 할 말 을 정리하고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 자장면을 많이 좋아하 시나 보네요. 어르신이 할머니 드시라고 읍내까지 자장면 사러 가신 것을 보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자장면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아해.”
“그럼 평소에는 좀 시켜 드세 요?”
강진의 물음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 사는데 음식 시켜 먹기 어디 쉽나. 그리고 한 그릇은 배 달도 안 해 주고.”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한숨 을 쉬었다.
“맞아. 그래서 우리 마누라 먹 고 싶은 것도 시켜 먹지를 못해. 일 인분은 배달을 안 해 주니 까.”
할아버지는 강진을 간절한 눈으 로 보았다. 자신이 한 말을 잘
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 자기가 먹고 싶은 것 먹고 자기 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라고 말이다.
강진을 보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가게를 보았다.
“저 가게…… 그만뒀으면 좋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