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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18화 (916/1,050)

918화

“저 가게…… 그만뒀으면 좋겠 어.”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나 살아 있을 때야 우리 소일 거리도 하고, 손주 놈들 오면 용 돈이라도 주고 애들 가게 상품들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가져다 먹게 하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지 금은……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가게를 보았다.

“저 가게 때문에 내 할망구가 늙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보았다.

“내 여자가 지쳐.”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어르신이 정말…… 애처가시 네.’

내 여자가 지친다는 말이 강진

에겐 정말 로맨틱하게 들렸다.

어르신을 보던 강진은 애써 밝 은 얼굴로 할머니를 보았다.

“중국집에서 일 인분은 배달 잘 안 해 주죠?”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 있을 때는 입맛 없고 밥 하기 싫으면 자장면 시켜서 먹고 는 했는데…… 혼자가 되니 일 인분은 배달을 안 해 줘.”

할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최소한 만이천 원짜리 세트는 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나 혼자 먹는데 세트를 시켜서 먹기도 그 렇고 말이야.”

“그러게요. 혼자 살 때는 음식 배달시키는 것도 일이죠.”

“그치.”

할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감이 가장 보고 싶을 때 도…… 밥하기 싫을 때야. 영감 이 있으면 영감 먹이려고 뭐라도 하고, 그것도 싫으면 배달이라도

시킬 텐데 영감이 없으니 나 혼 자 먹으려고 음식 하기도 귀찮고 배달은 더 안 되고.”

할머니가 씁쓸하게 웃었다.

“살아 있을 때는 밖에서 밥 먹 고 온다고 하면 그렇게 좋더 니…… 이제는 그 사람 없으니 끼니때가 걱정이 도fl. 뭘 먹어야 하나. 이번에는 뭐로 끼니를 때 우나.”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드시고 싶은 것 드시면 되죠.”

“이 나이 먹으면 먹고 싶은 것 도 별로 없어.”

할머니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었 다.

“그럴 리가요. 저희 어머니는 나이가 어르신보다도 많지만 여 전히 먹고 싶은 것이 많으신데 요.”

“정정하신가 보네.”

“아주 정정하세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었 다.

“새우젓 양념해서 먹는 걸 좋아 하셔서 그걸 자주 해 오라고 하 세요.”

“그게 어디 새우젓만 먹고 싶어 서겠어? 그렇게라도 한 번 더 찾 아오라는 거겠지.”

“저도 알아요. 그래서 어머니가 새우젓 드시고 싶다고 하시면 우 리가 안 간 지 좀 됐나 보다, 하 고 애하고 아빠 데리고 시골에 다녀오고는 해요.”

“그래. 살 날 얼마 안 남은 노 인들 서운하게 하지 마.”

할머니가 말을 하며 씁쓸해하 자,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그걸 그리 잘 아는 사람이 왜 애들한테는 보고 싶다는 말을 안 해? 애들이 바빠서? 일 있다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당신 말 대로 살 날 얼마 안 남은 노인네 가 왜 애들 걱정을 해.”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가게를 보았다.

“가게는 하실 만하세요?”

“소일거리로 하는 거지.”

할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가게라도 있으니 이 렇게 내 몸 건사하고 건강하게 사는 거야. 사람이 일을 그만두 면 금방 늙고 약해져 버리거든.”

“그건 맞는 말 같아요. 우리 애 아빠 친한 형님이 계신데, 그분 도 은퇴하니까 할아버지가 된 것 처럼 세월을 바로 맞더라고요.”

“맞아. 그래서 늙어도 자기 일

은 있어야 해.”

두 사람의 말에 할아버지가 작 게 투덜거렸다.

“그것도 어린 육십 대들이나 그 렇지. 칠, 팔십 대 되면 일은 무 슨…… 그냥 그 나이대로 늙어가 는 거지.”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지.’

요새는 100세 시대라면서 일을 하는 나이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

다. 하지만 일흔이면 이제 쉬어 야 할 나이가 맞았다.

“할머니 말씀대로 일을 안 하면 더 늙고 몸이 약해질 수도 있어 요. 하지만 아까 할머니가 말씀 하신대로 살 날……

말을 하던 강진이 웃으며 할머 니를 보았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단어 선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살 날 얼마 안 남은 노인이라

는 말이면 편하게 해. 그 말이 맞기도 하고…… 총각이 나한테 좋은 의미로 말하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조금 편하게 말씀드릴게 요. 요즘 날씨가 좋잖아요.”

“날씨가 좋지.”

“이 좋은 날씨에 좋은 곳에 가 서 꽃도 보고 맛집도 가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고 싶기는 하지.”

“그럼 지금이라도 다니세요. 맛 있는 것도 드시러 다니시고, 꽃 도 보러 다니시고.”

“이 나이에 여행은 무슨.”

“이 나이시니 하셔야죠. 더 나 이 드시면 하고 싶으셔도 못 하 세요.”

말을 하던 강진이 웃으며 할머 니를 보았다.

“할머니 자장면 좋아하시잖아 요.”

“좋아하지.”

“그럼 자장면 집 여행을 다녀 보세요.”

“자장면 집 여행?”

의아해하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 이 말했다.

“할머니 여러 집 김치 드셔 보 셨죠? 옆집, 뒷집, 앞집, 친한 언 니네, 친한 동생네, 시댁, 처가 김치 등등요.”

강진의 입에서 나오는 김치 이 야기에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시어머니 김치가 정말 맛 이 좋았는데.”

“시어머니요? 보통은 엄마 김치 가 맛있다고 하지 않아요?”

강진의 물음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치는 우리 시댁이 정말 맛이 좋았어. 우리 어머니 성격이 좀 불같기는 했어도 정말 잔정이 많 으신 분이었는데.”

할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끔 내가 기분 안 좋아 보이

면 시어머니가 나 데리고 시장 가서 자장면 사 주시고는 하셨는 데…… 기분 안 좋을 때는 맛있 는 거 먹는 게 가장 좋다고.”

“좋은 어머니시네요.”

아주머니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친어머니 같았는데…… 어머님이 담그신 김치가 먹고 싶 네.”

할머니의 말에 아주머니가 미소 를 지었다.

“저희 할머니 김치도 참 맛이 좋았는데.”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을 하다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김치 이야기는 왜 한 거예요?”

“여러 집 김치 드셔 보셨죠? 특 히 시댁 김치는 맛이 있었고요.”

“맞아. 시댁 김치가 아주 맛이 좋았어.”

“그럼 집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도 아시죠?”

“그럼.”

할머니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김치는 집마다 다 맛이 달라요. 어떤 집은 양념을 많이 넣고, 어 떤 집은 젓을 많이 넣고요.”

강진이 웃으며 할머니를 보았 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처 럼, 자장면도 가게마다 조금씩 맛이 달라요.”

“그야 그렇겠지. 사람 손은 다 다르니까.”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 정도는 여기 도 먹어 보고, 저기도 먹어 보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진은 할머니가 비운 자장면 그릇을 슬쩍 보았다.

“어디 여행을 가라고 해도 당장

어디를 가야 할지 감이 오지도, 생각나지도 않으실 거예요. 그러 니까 가까운 중국집들부터 하루 에 한 곳씩 다녀 보세요.”

“하루에 하나씩?”

“그게 힘드시면 이틀에 한 번, 아니면 삼 일에 한 번이라도 괜 찮아요. 드시고 싶은 거 배달 안 해 준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드시 러 가세요. 이 근처에 중국집 이……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웃 으며 말했다.

“아마 많겠죠?”

“ 많아요.”

장대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있는 중국집 하루에 한 곳씩 가서 자장면을 한 그릇씩 드셔 보세요. 가게마다 다른 자 장면 먹다 보면 재미도 있으실 거예요.”

강진이 웃으며 할머니를 보았 다.

“저는 할머니가 그렇게 사셨으

면 좋겠어요. 자장면은 포기할 수 없죠.”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할머니는 가게를 보았다.

“가게 두고 가기는 어디를 가.”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할아버지하고 같이 하던 가게 라 그만 못 두시는 거죠?”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멈칫해서 는 그를 보았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할아버지하고 같이 사시고, 할 아버지하고 같이 물건 정리하시 고 식사하시던 곳이잖아요.”

강진은 평상에서 식사를 하는 아저씨와 친구들을 보았다.

“제가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했 지만…… 아마도 날씨가 좋은 날 에는 저렇게 평상에 밥상 가져다 놓고 두 분이서 식사를 하셨을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평상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 다.

“그랬지. 저기에서 버너 놓고 대패 삼겹살도 구워 먹고…… 국 수도 먹고 그랬지.”

“좋은 기억이시네요.”

“좋은 기억이지.”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어떠세 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었다.

“대패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 서 웃고 있네.”

“그럼 지금 할아버지는 어떠실 까요?”

“지금?”

의아해하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 이 말했다.

“아픈 아내를 위해 읍내로 자장 면을 사러 가신 할아버지는 지금 할머니를 보면 어떠실까요?”

“아프면 자장면 먹고 싶어 하시 는 할머니신데…… 이제는 아파 도 자장면을 먹을 수가 없잖아 요. 일 인분은 배달을 안 해 주 니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한숨을 크게 뱉었다.

“ 하아......"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온 것 같은 한숨을 토해낸 할 머니가 가만히 자장면 그릇을 보 았다.

“일 인분은…… 배달을 안 해 줘.”

작은 중얼거림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할머니는 지금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장면 이야기에 외로움을 느낀 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만…… 할 머니는 자장면 때문에 외로웠다.

할아버지가 있으면 배달을 해 줄 텐데. 별거 아닌데…….

하지만 그 별거 아닌 게 할머니 를 더 외롭게 했다.

할머니를 지켜보던 강진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스윽!

강진은 선반 위에 있는 할머니 의 자장면 그릇을 가져왔다. 그 것을 옆에 놓고는 새 그릇에 면 발을 담아서는 자장 소스를 부었 다.

스윽!

강진이 자장면을 내밀자, 할머 니가 그것을 받았다.

“저희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짜장면이 다 불었네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자장면을 보았다. 강진의 말대로 면발은 눈에 보일 정도로 좀 불어 있었 다.

원래라면 이런 불은 음식을 손 님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 지만....

강진이 준 자장면을 가만히 보 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젓가 락으로 그것을 비볐다. 면이 불 어서 잘 비벼지지 않았지만, 그

런대로 젓가락질에 면이 비벼졌 다.

“불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남편이 사다 준 면에 비하면 덜 불었네.”

“그럼. 당연히 내가 사다 준 짜 장면이 더 불었지. 이것에 비할 수가 있나.”

뭔가 이상한 것에 자부심을 표 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웃은 강진 이 할머니를 보았다.

“앞으로는 식사를 대충 때우지

마시고, 제대로 드세요. 할아버지 는 할머니가 저 작은 슈퍼 안에 서 식사하시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 드시러 밖에 나가시는 것을 좋아하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자장면을 집어 입에 넣었 다. 불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먹 을 만했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자장면이 네. 내가 자장면을 좋아해서 어 머니도 당신도 자주 사 줬는 데…… 이제는 사 주는 사람이

없네. 마누라가 자장면 한 그릇 마음대로 못 먹는다고 당신 참 슬프겠다.’

천천히 자장면을 먹으며 할아버 지를 생각하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내가 가서 사 먹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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