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화
불은 자장면을 천천히 씹어 삼 키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은 다른 음식을 준비했다. 강진이 골뱅이 통조림을 까자 아주머니가 웃으 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골뱅 이네.”
“골뱅이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야채하고 무쳐서 드릴까요?”
“그렇게 줘요.”
“알겠습니다.”
강진은 오이를 썰고 무를 채 썰 었다. 그러고는 양념장을 만든 뒤 섞은 강진이 마지막에 깨를 뿌렸다.
“완성.”
골뱅이무침을 뚝딱 만든 강진이 그것을 접시에 담아 아주머니에 게 내밀었다.
“특제 골뱅이 한 통! 무침입니 다.”
“골뱅이 한 통이 들어간 무침이
라니... 정말 호사스럽네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접시를 하나 더 꺼내 골뱅이무침 을 담았다.
“대진아, 이거 아저씨 가져다드 려.”
“네.”
장대진이 골뱅이무침을 가져다 주자, 아저씨가 웃었다.
“이야, 이거 오늘 정말 거하게 먹네.”
“그러게 말이야.”
“오늘 네 덕에 호강한다.”
“많이 먹어. 많이 먹어.”
아저씨는 기분 좋게 웃으며 강 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마주 고개 를 끄덕이고는 아주머니를 보았 다. 아주머니는 골뱅이와 오이를 같이 집어 입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맛을 본 아주머니가 웃 으며 말했다.
“골뱅이를 자르지 않고 통으로
했나 보네.”
“크게 드시라고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골뱅이 와 오이를 다시 집어 입에 넣었 다.
“아주 맛이 좋네.”
강진도 그릇에 남은 골뱅이와 오이를 집어 입에 넣었다.
“제가 만들었지만 아주 맛이 좋 네요.”
“골뱅이가 참 맛있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머 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어느새 자장면을 다 먹고 입을 닦고 있 었다.
“골뱅이무침도 좀 드세요.”
“많이 먹었어. 더는 못 먹을 것 같아.”
“배부르시면 조금만 드시지 그 러셨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선반에
놓인 티슈를 뜯어 입을 마저 닦 으며 말했다.
“배는 부른데…… 어쩐지 다 먹 고 싶었어.”
할머니는 웃으며 강진을 보았 다.
“마치 우리 영감이 총각을 나한 테 보낸 것 같아.”
“맞아. 내가 보냈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지그 시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 영감이 그러더라 고. 나중에 죽을 때 되면 나보고 먼저 죽으라고 말이야.”
“먼저요?”
아주머니가 의아한 듯 보자, 할 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없으면 당신 외로우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기 가 가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자 기가 먼저 죽으면 자기 장례식 당신이 챙겨야 하는데 힘들다고. 그러니 당신이 먼저 죽으면 내가 좀 더 살다가 당신 보러 가겠다
고.”
할머니가 웃었다.
“그때는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 냐고 뭐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우리 영감이 나 생각해 서 한 말인 것 같아 나 혼자…… 이렇게 살까 봐 걱정해서 그런 것 같아.”
할머니가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각 말이 맞아. 내가 좋아하 는 자장면도 한 그릇 마음대로
먹지 못하면서 가게에만 있는 거…… 우리 영감이 보면 기함을 할 일이야.”
강진을 보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자장면 먹으러 다닐지 모르겠 지만…… 총각 말대로 좁은 가게 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시 간을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그 말씀은?”
강진이 보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두 시 까지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거 야.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보고 싶은 것도 보고……
“가게는 안 접고? 접지 그래. 저거 운영한다고 돈이 많이 나오 는 것도 아니잖아.”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 를 보았다.
“가게 접지는 않으시고요?”
“가게를 접지는 않을 거야. 소
일거리라도 해야 그나마 살아 있 는 것 같으니까. 놀기만 하면 바 로 늙어.”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보았다.
“그리고 저 가게에 우리 영감 손때 묻은 물건들이 많아. 그래 서…… 나 죽을 때까지는 가게 하려고.”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녀 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편한 대로 해. 자네
가 먹고 싶은 것 먹고, 자네가 보고 싶은 것 보고…… 나나 여 기 총각이 뭐라고 하든 자네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게 정말 좋은 거겠지. 자네 하고 싶은 거 다 해. 대신 하나만 약속해 줘. 끼니 대충 때우지 말고 먹고 싶은 거 꼭 먹어야 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 를 보았다.
“앞으로는 혼자 드시더라도 끼 니 대충 때우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걸로 드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놓친 끼니는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대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네. 오늘 놓친 끼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 좀 번거롭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드세 요.”
“그래야겠네. 앞으로는 한 끼
한 끼…… 정말 소중하게 잘 챙 겨 먹어야겠어. 앞으로 먹어야 할 끼니가 이때까지 먹은 끼니보 다 적으니까. 앞으로 한 끼 한 끼 정말 소중하게 먹어야겠어.”
그러고는 할머니가 강진에게 살 며시 고개를 숙였다.
“오늘 정말 맛있게 먹었어.”
“그만 드시려고요?”
“많이 먹었어. 정말 잘 먹고 가 네.”
“더 드시라고 하고 싶지만, 과
식하면 안 좋으실 것 같으니 들 어가서 쉬세요.”
“그래.”
할머니가 웃으며 몸을 돌리려 하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어르신.”
강진의 부름에 할머니가 그를 보았다. 그에 강진이 국그릇에 김칫국을 떠서는 내밀었다.
“기름지게 드셔서 속이 좀 거북 하실 거예요. 불은 면도 드셨고 요. 이거 좀 개운하게 드세요.”
“거절해야 하는데…… 총각 말 대로 속이 좀 거북한 것도 같네. 고마워. 그리고 이거 안에서 먹 고 그릇 가져다줘도 될까? 내가 보는 드라마가 있어서 안에서 먹 고 싶네.”
“편하게 하세요.”
“고마워.”
할머니가 국그릇을 조심히 들고 가게로 향하자, 할아버지가 의아 한 듯 말했다.
“지금 시간에는 할망구 보는 드
라마 안 하는데?”
할아버지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 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야기 많이 하다 보 니 어르신 생각이 나서 사진이라 도 좀 보시려나 보죠.”
“호오!”
배용수의 말에 할아버지가 푸드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나도 잘 먹고 가네.”
말을 하며 할아버지가 서둘러
가게로 가려 하자, 강진이 배용 수를 쳤다.
툭!
“어르신.”
그에 배용수가 바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강진이 자신을 친 이유 를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할아 버지를 부르고 본 것이다.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자 강진 이 잘 했다는 듯 배용수의 무릎 을 토닥였다. 사람이 있어 차마 설명을 못 했는데 배용수가 용케
눈치를 채 줘서 고마운 것이다.
강진은 푸드 트럭에서 내리며 말했다.
“음식 냄새를 하도 맡았더니 질 리네요.”
“그래. 이제 그만하고 여기 앉 아서 같이 먹자.”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배용수가 “이거 때문이었구먼.”하고 중얼거리더 니 할아버지를 보았다.
“강진이 옆에 가서 서세요. 향 수 뿌려 줄 거예요.”
“ 향수?”
“귀신들 귀기 없애 주는 거예 요. 어르신 할머니 몸 상하실까 봐 가까이 오래 못 있잖아요. 향 수 뿌리면 하루 정도는 할머니 옆에 있으셔도 돼요.”
“정말?”
배용수의 설명에 할아버지가 서 둘러 강진의 옆에 가서 섰다. 그 에 강진이 웃으며 향수를 꺼내고
는 장대방을 보았다. 옆에 와서 서라는 의미였다.
그에 장대방이 할아버지 옆에 서자, 강진이 자신을 향해 향수 를 뿌리는 척하며 둘에게 뿌렸 다.
칙! 칙!
향수를 뿌린 강진이 두 귀신을 보았다.
“된 건가?”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할
아버지 귀신이 서둘러 가게로 뛰 어갔다.
스르륵!
닫힌 문을 뚫고 안으로 사라지 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던 강진이 장대방과 함께 어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이야! 이제 저도 좀 먹어 볼까 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방금 뭘 뿌린 거야?”
“방향제 같은 겁니다.”
“방향제?”
아주머니가 코를 벌렁거리며 냄 새를 맡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방향제라고 해도 향은 없어요. 그냥…… 기분 전환할 때 쓰는 거예요. 아, 그리고 말씀 편히 하 세요. 음식 만드느라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그래. 자, 너도 어서 먹으렴.”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칫국을 국그릇에 담은 뒤 수저로 떠먹었다.
“고기부터 좀 먹지 그래?”
“칼칼하게 이것 좀 먹고요. 김 치 맛이 좋아서 그런지 김칫국이 아주 맛있게 끓여졌거든요.”
“김치 들어가는 음식은 김치만 맛있으면 기본 이상은 하는 법이 지.”
아주머니가 웃으며 콩나물과 대 패 삼겹살을 싸서는 내밀었다.
“먹어 보렴.”
강진이 웃으며 대패 삼겹살을 받아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만들었지만 참 맛이 좋네 요.”
“그러게. 이렇게 손맛이 좋으니 장사가 정말 잘 되겠어. 다음에 강진이 가게에 가서 음식 좀 팔 아 줘야겠어.”
“그럼 저야 좋죠. 아! 대신 점 심시간은 피해서 오세요. 저희 가게에 직장인 손님들이 많아서 점심엔 자리가 없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좀 늦게 갈게.”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음식을 먹으며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 야기를 나누었다.
* * *
할머니는 늘 앉아있는 계산대 뒤쪽에 있는 담배 진열대를 천천 히 쓰다듬었다.
“당신이 참 손재주가 많았어.”
가게 안에 있는 상품 진열대들 은 모두 생전에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었다. 나무로 된 진열대를 손으로 쓰다듬던 할머니가 미소 를 지었다.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나무색 이었는데 지금은 손때가 다 타 서…… 나처럼 색이 다 변했네. 이 녀석도 늙나 봐.”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 며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은 여전히 이렇게 뽀얀데.”
“나도 젊었을 때는 참 예뻤는 데……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 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도 충분히 예뻐요.”
할아버지는 슬며시 할머니의 옆 에 앉았다. 그러고는 웃으며 걸 상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걸상을 내가 참 잘 만들었 어. 당신하고 내가 앉으면 부족 하지도 않고 남지도 않고 딱 좋 잖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잠시 보다 가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은 늘 이렇게 앉아 있었 다. 할머니는 왼쪽에, 할아버지는 오른쪽에…… 이렇게 둘이 앉아 서 손님을 맞거나 TV를 보았다.
“당신…… 늘 내 자리를 비워 두고 있었네.”
할아버지는 지금 앉아있는 자리 가 평소에도 계속 비어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없는 데도 할머니는 자신의 자리를 비 워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미소를 지은 할아버지가 앞을 보았다.
“이렇게 있으니 내가 살아 있던 때 같네.”
살아 있을 때, 이렇게 같이 앉 아서 같은 곳을 보았다.
젊었을 때는 사랑하는 여인과 좋은 곳을 보았고, 나이 먹어서 는 부부로서 자식을 같이 보았 다. 그리고 늙어서는 인생 대부 분을 같이 한 반려이자, 친구로 서 함께 가게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와 같은 곳 을 보고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멍하니 있는 할 머니를 슬며시 본 할아버지가 그 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걸 당신이 참 좋아했는데……
할머니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밀가루 많이 먹어서 속 안 좋 을 텐데 김칫국 마셔요.”
할아버지의 말을 듣기라도 한
둣 할머니가 김칫국을 보았다. 그러더니 김칫국을 들어서는 천 천히 한 모금 마셨다.
꿀꺽!
그렇게 맛을 보더니 마음에 드 는 듯 다시 몇 모금 마셨다. 그 리고…….
“꺼어억!”
개운하다는 듯 트림을 크게 하 는 것에 할아버지가 웃었다.
“하하하! 이 사람 트림 참 시원 하게 하네. 그래. 앞으로는 먹고
싶은 거 많이 먹고 이렇게 시원 하게 트림도 해 버려.”
웃으며 할머니를 보던 할아버지 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래. 이런 모습이었어. 당신과 내가 나이 들어서 보던 풍경은 말이야.”
할아버지는 슬며시 할머니 손을 잡았다.
“기다리고 있을게. 나 지긋지긋 하지 않으면…… 올라와서도 같
이 앉아서, 같은 곳을 보면서 같 이 살아 보세나.”
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화아악
그 말을 끝으로 빛과 함께 할아 버지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