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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20화 (918/1,050)

920화

펄럭! 펄럭!

눈앞에서 떨어지는 종잇조각에 강진이 고개를 돌려 가게를 보았 다.

‘가신 건가?’

가게를 보던 강진은 선반에 떨 어진 종이를 집었다.

옆에 아주머니와 장대진이 있었 지만 괜찮았다. 이 종이는 저승

과 관련이 있거나, 저승 음식을 먹은 사람만 볼 수 있으니 말이 다.

반으로 접힌 종이를 보던 강진 이 그것을 펼쳤다.

〈총각, 내 아내에게 맛있는 식 사를 대접해 줘서 너무 고맙네.

이 고마운 마음 얼굴 보고 고개 라도 숙여 인사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가게 되어서 인사를 할 시간이 없었어.

그래도 고마운 마음은 진심이니 글로라도 내 마음 알아주기를 바 라네.

그리고 미안하지만 한 가지 부 탁을 하고 싶어. 가끔 시간이 날 때 한 번씩 우리 마누라 잘 지내 는지 밥은 잘 먹는지 들여다봐 줬으면 해.

강한 사람이라 혼자서도 잘 지 내겠지만, 그래도 인사하러 오는 이들을 보면 그리 좋아해. 그리 고…… 시간 되면 얼마 안 되지 만 이걸로 맛있는 거라도 좀 사

다 주고.

자네도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곳 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을 어서 만났으면 좋겠어. 같은 곳을 보 고 같이 손을 잡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라네.

고맙네.〉

종이에 적힌 글을 읽은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같은 곳을 보고 같이 늙 어갈 사람을 만나면 너무 좋겠네

요.’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푸드 트럭에 앉아 있는 배용수를 보았다.

“잘 가셨대?”

종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짐 작을 한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먼.”

조금은 씁쓸한 배용수의 목소리 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배용수가 피식 웃었다.

“부러워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 해는 하지 마. 나는 지금도 즐겁 다. 그냥…… 가셨다고 하니 마 음이 묘하네.”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신세였던 귀신이 승천을 했 다니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실 때, 아 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강진이는 왜 안 먹어?”

“먹고 있습니다.”

“음식 한 사람이 안 먹고 있으

니 먹고만 있는 내가 민망하네.”

그러고는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

다.

“다음에는 우리 집에 와. 내가

맛있는 거 해 줄게.”

“그렇게 할게요.”

웃으며 답을 한 강진이 골뱅이

무침을 가리켰다.

“맛 어떠세요?”

“말해서 뭐해. 아주 맛이 좋지.”

웃으며 아주머니가 강진을 보았

다.

“대방이 살아 있을 때 좀 오지 그랬어. 그럼 정말 좋았을 텐데.”

“그러게요. 대방이 살아 있을 때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강진이 웃으며 장대방을 보았 다.

‘대방 씨 살았을 때 만났으면 정말 좋은 동생 삼았을 텐데.’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속 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웃으며 골 뱅이무침을 집어 입에 넣었다.

새콤한 양념이 밴 아삭한 오이와 골뱅이가 씹히는 것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제가 만들기는 했지만 정말 맛 이 좋기는 하네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었 다.

“내가 그랬잖아. 아주 맛이 좋 다고.”

그러다가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말고 강진이도 한잔하

지그래? 대진이하고 같이 한잔

해.”

“저는......"

트럭 때문에 거절을 하려던 강 진은 장대방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 그럴까요?”

“그래. 그렇게 해. 기다려. 내가 술 사 올게.”

“제가 살게요.”

강진이 일어나려 하자 아주머니 가 웃으며 그 어깨를 잡았다.

“맛있는 음식 대접받았는데 술 은 내가 살게.”

아주머니가 가게로 술을 사러 가자, 강진이 장대진을 보았다.

“여기 대리기사님 오지?”

“서울에 대리 안 오는 곳이 있 나요. 그리고 저희 동네에 대리 하시는 분들 꽤 있으세요. 운 좋 으면 출근하다가 오실 수도 있어 서 금방 잡힐 거예요.”

“그럼 다행이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장대 방이 말했다.

“형, 대진이하고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강진이 보자 장대방이 말을 덧 붙였다.

“제가 살아 있으면 대진이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텐데…… 저 나이 때는 사회나 대학에 이 런저런 이야기해 줄 사람이 필요 하잖아요.”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대학 생활 이나 그런 것에 대해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니 대신 술 좀 마셔 달라고 눈빛을 보낸 것 이었다.

그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동생 걱정을 많이 했나 보네.’

하긴 걱정이 될 것이다. 동생은 나이를 먹어도 동생이다. 부모님

이 장성한 자식을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듯 걱정하는 것 처럼 동생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장대진을 보았다.

“대진이 요즘 학교생활은 어 때?”

“ 괜찮아요.”

“술은 여전히 안 마셔?”

그는 형 죽은 것이 술 때문이라 생각을 해서 술을 안 마셨으니 말이다.

“아뇨. 전에 형하고 아버지하고 술 먹은 후로는 친구들이 술 먹 자고 하면 가서 한두 잔씩 해 요.”

“그래?”

“아버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

잠시 말을 멈췄던 장대진은 가 게를 한 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술이 잘못이 아니라 그 술을 자제하지 못하고 마시다가 사고 를 낸 놈이 잘못인 거더라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잖아요.”

장대진은 술을 마시고 있는 아 버지와 아저씨들을 보며 말했다.

“술이 진짜 친구들을 만드는 데 에 도움은 안 될지 몰라도 처음 보는 애들하고 친해지게 되는 데 는 도움이 된다고요. 그리고 속 에 있는 마음 전하는데 술만 한 것도 없는 것 같고요.”

“속마음?”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장대진 이 머리를 긁었다.

“얼마 전에 좋아하던 여자애한 테 고백했어요.”

“오!”

장대진의 말에 장대방이 감탄을 토하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장대방이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 에 강진이 웃으며 그 말을 전했 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술 마시고 용기 내서 고백했는

데…… 그 친구가 술 깨고 나서 도 그 마음이 그대로면 제대로 말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눈 풀 려서 고백하는 건 똥 매너라면서 요.”

“하! 그래, 인마. 좋아하는 여자 한테 고백할 거면 멀쩡한 정신으 로 제대로 얼굴 보면서 고백을 해야지, 무슨 술을 잔뜩 먹고 고 백을 해.”

장대방은 장대진의 머리를 쥐어 박는 시늉을 했다. 그런 장대방 을 보며 강진이 작게 웃었다.

“그래서? 다시 고백했어?”

“다음 날…… 정말 식은 땀 줄 줄 흘리면서 고백을 하니까 그 친구가 웃으면서 받아 주더라고 요.”

“오! 내 동생 여친이 생긴 거 야? 어떻게 생겼어? 예뻐?”

“예뻐?”

강진도 궁금했던 터라 그대로 묻자, 장대방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뻐요.”

“역시 내 동생!”

정말 기분 좋다는 듯 웃는 장대 방의 모습에 강진이 피식 웃다가 말했다.

“부모님은 아셔?”

“여자친구 사귄 것 정도로 뭘 이야기를 해요.”

“여자친구 사귄 것이 얼마나 대 단한 일인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단한 일이지.”

강진은 아저씨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말씀드려라. 아버지 좋아하시 겠다.”

강진의 말에 장대진이 머뭇거리 자, 장대방이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물론 장대진은 그걸 느끼 지 못하지만 말이다.

“여자친구 있다고 하면 아빠가 용돈 따로 더 챙겨 준다. 그거 크다.”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하긴. 여자친구 있는 남자의 주 머니 사정은 아저씨도 아실 테니 까.’

아저씨도 젊었을 때 여자친구가 있었을 테니, 그때 데이트 비용 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 것이 다. 그럴 때 아버지가 스윽 챙겨 주는 것만큼 단비도 없다는 것 또한 말이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그럼 데이 트하라고 용돈도 가끔 주실걸?”

“용돈요?”

“네 용돈이야 아저씨도 아시지 않겠어?”

“그야 아버지가 주시니까요.”

“그럼 그 용돈으로 여자친구하 고 데이트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도 잘 아시겠지. 설마하니 아 들이 여자친구하고 자판기 커피 먹는 거 좋아하시겠어. 그리고 남자는 주머니가 든든해야 자신 감이 있다는 걸 아버지도 잘 아 실 거야.”

강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용돈 급하지 않아?”

“급하죠. 그렇지 않아도 아르바 이트라도 해야 하나 생각 중이에 요.”

“아르바이트도 좋은데 아버지한 테 용돈 타. 아들이 여자친구하 고 놀게 용돈 달라고 하면 아버 지도 웃으면서 주실 거야.”

“맞아. 아버지 전에 나 여자친 구하고 놀러 간다고 하면 용돈 쥐여 주고는 했는데 아버지 그때

되게 뿌듯해하셨어.”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장대진을 툭 쳤다.

“아버지 오늘 기분 무척 좋아 보이시는데, 네가 더 기분 좋게 해 드려라. 정말 좋아하실 거야.”

강진의 말에 장대진이 아버지를 보다가 일어나서는 다가갔다. 그 리고 뭔가를 이야기하자, 아저씨 가 웃었다.

“하하하! 우리 아들 여자친구가 생겼어?”

“네.”

“그래, 예쁘냐?”

“예뻐요.”

“이거 우리 아들이 대학생이 되 어서 여자친구도 생기고! 역시 내 아들답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아주 많아!”

호탕하게 웃은 아저씨가 친구들 을 보았다.

“너희들 조카가 여자친구가 생 겼다는데 데이트 비용이라도 좀 안 내놓냐?”

“줘야지! 암, 줘야지!”

“그래. 남자가 데이트하는데 주 머니에 신사임당 몇 장 안 들고 다니면 안 되지.”

아저씨 친구들이 웃으며 지갑에 서 신사임당을 한 장씩 꺼내 주 었다.

“괜찮은데……

“삼촌들이 주는 거니까 잘 받 아. 그리고 여자친구 맛있는 거 사 줘.”

“감사합니다.”

장대진이 웃으며 돈을 받자 아 저씨도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돈을 꺼내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카드를 꺼내 내 밀었다.

“아들, 자.”

“어? 이거 카드잖아요.”

“쓰라고 주는 거 아니야.”

“네‘?”

“가지고만 있어.”

“가지고만요? 그럼 왜 줘요?”

“가지고 있다가 정말 써야 할 때가 있는데 돈이 없을 때, 그때 써.”

“하지만 아버지, 이건……

“막 쓰라고 주는 거 아니야. 아 버지는 아들 믿는다. 이 카드를 가지고 있어도 네가 친구들하고 술 마시러 가고, 애들 밥 사 주 려고 쓰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건......"

“그러니까 가지고 있다가 정말 이건 내야겠다, 할 때 꺼내서 긁

어. 그럼 아빠는 아무 소리 안 할 거야.”

아저씨가 웃으며 아들의 손에 카드를 쥐여 주었다.

“이건 네가 남자로서 여자친구 한테 부끄럽지 말라고 주는 비 상…… 사나이 카드다.”

아버지의 말에 장대진이 그를 볼 때, 장대방이 웃으며 말했다.

“받아. 나도 아빠한테 사나이 카드 받았헜어.”

장대진은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이걸 받아도 되나 고민하는 모양 이었다.

그에 장대방이 웃으며 다시 말 을 하려다가 문득 카드를 보았 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 카드는……

장대방이 아버지를 보았다.

“나한테 준 사나이 카드네.”

검은색에 은색으로 카드 번호가 적힌 심플한 디자인의 카드……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사나이 카

드였다.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으 셨어요? 못난 아들은 여자친구하 고 있으려고 집도 아닌 지방으로 일부러 발령을 갔는데……

장대방은 카드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가 자신이 죽을 때 가지 고 있던 카드를 본인의 지갑에 넣어 둔 채 이때까지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울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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