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화
아이가 왜 반찬을 안 먹나 싶어 서 볼 때, 배용수가 말했다.
“그런데 오 학년 과정을 지금 하고 있다고요?”
배용수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었 다.
“오 학년 책을 학교 언니들한테 받아서 그거 공부도 하고, 교회 오빠들한테 영어 책이나 그런 거 받아서 영어하고 수학은 중학교
거 가지고 혼자 하고 있어요.”
“혼자서요? 수학하고 영어는 누 가 안 가르쳐주면 어려울 텐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왜 없어. 책이 가르쳐 주잖아.”
“책하고 사람이 가르쳐 주는 게 같냐? 그럴 거면 왜 학교를 가 냐? 책 가지고 혼자 하지.”
“누가 가르쳐 주면 가장 좋기는 하지. 그런데 없으면 책 보고 해
야지. 괜히 수능 만점자들이 교 과서 위주로 공부했다고 하겠 냐?”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보며 이 혜미가 말했다.
“일단 아주머니 식사부터 좀 챙 겨 드리고 이야기하시죠.”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아차 하 고는 음식들을 차려서 놓았다.
“식사부터 좀 하세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홀을 보았다. 박혜원은 국에 만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있 었다.
그것을 잠시 보던 아주머니가 밥을 국에 말아서는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 의 눈이 반짝였다.
“어머…… 너무 맛있어요.”
“제 손이 맛의 비결이죠.”
강진이 웃으며 자신의 손을 들 어 보이자, 아주머니가 다시 밥 을 먹고는 제육볶음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손이 맛있으신가 봐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홀을 보았다.
‘서울 인근인 줄 알았더니 인천 이라……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직원들을 보았다.
“인천에 애 데려다주러 갈 때 같이 가시죠.”
“ 인천에요?”
“시간 부족해서 멀리는 못 가겠
지만, 소래포구 시장 가서 싱싱 한 해물이라도 좀 사서 해물탕이 라도 끓여 보게요.”
“소래포구 갔다 올 시간이 되려 나 모르겠다.”
“그런가?”
“아마…… 차 안 막히면 여기서 가는 데만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걸.”
“그래?”
“막히면 답 없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하다가 말했다.
“애 데려다주고 시간 봐서 세 시 전이면 가고 아니면 돌아오 자.”
“그렇게 하든가.”
이야기를 마친 강진은 홀을 보 다가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국에 만 밥 위에 고 등어를 올려 먹고 있었다. 그러 다 쳐다보는 걸 눈치챘는지 민망 한 듯 입을 닦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생선은 국이나 물에 만 밥에 올려 먹으면 더 맛이 좋죠.”
“맞아요. 물에 만 밥에 구운 생 선이나 조림을 올려서 먹으면 밥 두 그릇도 먹죠.”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홀을 보 다가 말했다.
“그런데 왜 혜원이 반찬을 안 먹죠?”
“네?”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의아한 듯 홀을 보았다. 그러다 반찬이 그대로인 것을 발견했다.
“어‘?”
아주머니도 이상한 듯 테이블 위를 보다가 수저를 내려놓고는 딸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에 강 진도 홀로 나가서는 박혜원에게 다가갔다.
“혜원이 왜 반찬을 안 먹어? 입 에 안 맞아?”
“아뇨. 아주 맛있어요.”
웃으며 강진을 보던 박혜원이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 요?”
“아……
강진은 얼굴에 드러난 당황을 빠르게 지우며 웃었다.
“아까 시험지에서 봤어.”
“아! 그렇구나.”
박혜원이 순순히 수긍을 하자, 강진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토
했다.
‘이거 조심해야지. 큰일 날 뻔했 네.’
아까 박혜원이 시험지를 꺼내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이상한 사람 이 될 뻔한 것이다.
“반찬을 하나도 안 먹었네? 고 등어도 손도 안 대고?”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웃으며 말했다.
“국이 너무 맛있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옆에 놓인 반찬통을 보았 다.
“혹시 음식 싸 가고 싶어서 반 찬 안 먹는 거야?”
“그러면 안 돼요?”
아까와 같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박혜원의 모습에 강 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 다.
“안 될 건 없지. 여기 있는 음 식은 다 네 거니까. 그런데……
혹시 집에 동생 있어?”
혹시 황태수처럼 집에 있는 동 생 가져다주려고 반찬을 안 먹나 싶어서 물은 것이다.
“아니요. 저 동생 없어요.”
“그럼 집에 가서 먹으려고?”
강진의 물음에 박혜원이 눈을 찡그렸다.
“저 그냥 먹으면 안 돼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선을 긋는 박혜원의 모습에 강진이 아
차 싶었다.
‘이런. 내가 너무 깊게 들어갔 나?’
오랜만에 심리학적인…… 것보 다는 눈치를 챈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 손님 식사하는데 내가 실수했네. 모자란 거 있으면 말 해. 아, 그리고 계란말이도 식기 전에 먹어 봐.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정말 맛이 좋아.”
웃으며 강진이 몸을 돌리자, 박
혜원이 그를 보다가 서둘러 국에 말아 놓은 밥을 먹었다. 빨리 먹 고 가려는 모습이었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주방에 들어가자, 배용수가 계란 말이 두 접시와 고등어구이를 내 밀었다.
“아까까지는 붙임성 있는 꼬마 아가씨더니 지금은 자존심 강한 아가씨가 되어 버렸네.”
“그러게 말이다.”
“이건 서비스라고 저기 테이블
하고 자존심 강한 아가씨 테이블 에 가져다줘.”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 어깨를 쳤다. 꼬마 아가씨가 반찬을 싸 가려고 안 먹으니 배 용수가 계란말이를 따로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조금 식은 고등어구이는 아주머 니가 먹던 거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계란말이만 새로 만든 것 같았다. 귀신이 손을 대기는 했지만 당장 먹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계란말이야 바로 만들 수 있지만, 고등어구이는 굽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강진은 접시를 쟁반에 담고는 홀로 나갔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강진이 계란말이와 고등어구이 반을 아가씨 테이블에 놓자, 아 가씨들이 쟁반에 있는 계란말이 와 고등어를 보고는 힐끗 박혜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강진에게 웃으며 작게
말했다.
“저희가 저 아이 때문에 서비스 를 받네요.”
“그럴 리가요. 반찬 떨어진 것 같아서 드리는 겁니다.”
“사장님 정말 착하세요.”
아가씨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걸음을 옮긴 강진은 쟁반에 담 긴 계란말이와 고등어구이를 박
혜원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서비스.”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앞에 놓 인 계란말이를 보았다. 고등어구 이는 살짝 식은 듯했지만, 계란 말이는 김이 나는 것이 방금 만 든 것 같았다.
“말 안 걸을 테니까 천천히 먹 어.”
반찬을 두고 뒤로 물러난 강진 은 다시 아가씨들에게 다가갔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주세
요.”
“네.”
아가씨들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아주머 니 가 안절부절못해 하다가 급히 주방으로 들어왔다.
“저기, 죄송해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말실수를 한 거예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잠시 있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가 저희 아버지하고 둘이 살 아요.”
“아버지요?”
“그게……
아주머니가 입맛을 다셨다.
“제가 이혼하고 혼자 애 키우다 가 죽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아 버지가 혜원이를 키웠어요.’’
아주머니의 말에 배용수가 입을
열었다.
“애 아……
그 순간 강진이 그를 툭 쳤다. 그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입 을 다물었다.
‘애 아빠가 왔었다면 외할아버 지가 안 키웠겠지.’
물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그 래서 물어보지 말라고 신호를 준 것이다. 그런 강진의 행동에 아 주머니가 쓰게 웃었다.
“그럼 할아버지 가져다드리려고
그러는 건가요?”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애가 할 아버지 식사 챙겨드리거든요.”
“어린애인데……
“어려도 속이 깊어요. 할아버지 가 일하고 오면 식사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먹고 설거 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런데도 시험은 백 점이네 요.”
배용수의 말에 아주머니가 고개 를 끄덕였다.
“혜원이 꿈이 성공하는 거예 요.”
“성공요?”
“돈 많이 벌어서 잘 살겠다고 요.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예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요즘 세상은 공부를 잘해도 성 공하기 쉽지 않은데……
성공의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 지만 돈 많이 벌고 싶다는 꿈은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론 이룰 수 가 없었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아주 머니가 작게 탄성을 토했다.
“아!”
뭔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친 아주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가 홀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 았다.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토 했다.
“애가 왜 이러는지 알았네요.”
“오늘 무슨 날인가요?”
강진이 묻자 아주머니가 쓰게 웃었다.
“오늘 아버지 생일이에요. 딸은 기억을 못 했는데…… 손녀가 기 억을 하고 있었네요. 너무 죄송 하네.”
아주머니가 작게 한숨을 토하는 것에 이혜미가 홀을 보았다.
“그럼 할아버지 생일상 차려 주 려고 이렇게 왔다는 거네요.”
“그런 모양이에요. 하아!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해도 할아버지는
좋아하시는데.”
“애나 어른이나 받는 것이 많으 면 자기도 뭐라도 하나 주고 싶 어 하는 법이죠. 받는 기쁨도 있 지만 주는 기쁨이라는 것도 있으 니까요.”
“맞아. 애가 할아버지 맛있는 저녁을 해 드리고 싶은 모양이 야.”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가 강진 을 보았다.
“애 밥 얼마나 먹었어?”
“조금 남았어.”
말을 하며 홀을 본 강진이 미소 를 지었다.
“서비스 반찬은 먹네.”
“먹어?”
배용수가 고개를 내밀어 박혜원 을 보고는 말했다.
“미역국 끓여 주게 시간 좀 끌 어라.”
“오케이.”
강진이 홀로 나가려 하자, 아주
머니가 그를 잡았다.
“미역국은 괜찮아요.”
“미안해하실 것 없어요. 생일이 면 미역국이 있어야죠.”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우리 혜원이 미역 국 잘 해요.”
“미역국을 할 줄 알아요?”
“미역국뿐인가요. 어지간한 음 식들은 다 해요. 재료만 있으면
김치도 하는걸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혜원이가 집에 갈 때 미 역을 사서 갔는데…… 할아버지 저녁에 이렇게 차려 주려고 했나 봐요.”
아주머니의 말에 이혜미가 의아 한 듯 말했다.
“그럼 왜 여기에 음식을 싸러 왔어요? 집에서 직접 해서 할아 버지 해 드리면 될 텐데?”
이혜미의 말에 아주머니가 계란
말이를 입에 넣고 있는 딸을 지 그시 보다가 피식 웃었다.
“우리 딸은 똑 소리 나는 똑순 이니까요.”
“네?”
의아해하는 이혜미와 강진을 보 며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둘만 먹는데 반찬을 저렇게 하 려고 하면 재료값이 더 들어요. 재료를 한 줌만 파는 것이 아니 니까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입을
벌렸다.
“아!”
“하긴, 저렇게 먹으려고 하면 재료값으로 이만 원은 들겠다. 여기서 먹으면 육천 원인데 말이 야.”
배용수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 혜원을 보았다.
“완전…… 애어른이네.”
“아니. 어른보다 낫다. 어른도 저렇게는 못 해.”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과 귀신들이 홀을 볼 때, 아이가 이쪽을 보았다. 그러다 자신을 보는 강진을 보고는 빙긋 웃으며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 더니 엄지를 척 세웠다.
그 해맑은 모습에 강진이 웃으 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