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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26화 (924/1,050)

926화

박혜원의 할아버지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 왔다.”

할아버지가 웃으며 들어오자 자 기 방에 있던 박혜원이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오셨어요?”

“그래. 오늘 잘 있었어?”

“네.”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할아 버지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박혜 원이 서둘러 가스레인지 불을 켰 다.

-먹기 전에 약한 불로 고등어 를 살짝 따뜻하게 해. 기름은 좀 두르고 해야 안 말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안돼 요?

-그래도 되는데 그럼 수분이 날아가서 좀 그래.

강진이 집 앞에 내려주면서 한 말을 떠올린 박혜원은 프라이팬 에 고등어를 올리고는 약한 불로 따뜻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강진이 준 반찬들을 접시에 덜어서 하나씩 놓은 박혜 원은 샤워하는 소리를 듣다가 나 올 때가 됐다 싶었는지 국과 밥 을 떠 놓았다.

덜컥!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온

할아버지는 고소한 고등어 냄새 에 웃으며 박혜원을 보았다.

“고등어를 구웠어?”

“할아버지 고등어 좋아하시잖아 요.”

“그건 맞지.”

머리의 물기를 털며 식탁에 다 가가던 할아버지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이게 다 뭐니?”

식탁에 여러 반찬들이 놓여 있

었다. 없이 살아도 손녀 잘 먹이 겠다고 반찬들은 좀 사서 놓기는 하지만 오늘은 반찬 가짓수가 더 많았다. 게다가…….

“소고기 미역국도 끓였네?”

“할아버지, 보지만 말고 어서 앉아요.”

박혜원이 웃으며 하는 말에 할 아버지가 자리에 앉았다. 그에 박혜원이 말했다.

“드셔 보세요.”

“그래. 우리 혜원이가 오늘 고

생했네.”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먹은 할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맛이 좋네. 우리 혜원이 다 컸네.”

“아니야. 나 더 커야 해.”

“더 커야 해?”

“그럼. 백육십오까지는 커야지.”

“그렇게 많이 크게?”

“아니야. 그 정도가 딱 좋아.”

박혜원은 자신이 앉는 의자 옆

에 놓인 선물 상자를 할아버지에 게 내밀었다.

“자, 이건 내 선물.”

“ 선물?”

할아버지가 의아한 듯 보자, 박 혜원이 웃었다.

“뭐야. 오늘 할아버지 생일인데 그것도 몰랐어?”

“오늘이?”

할아버지가 의아한 듯 핸드폰을 꺼내 오늘 날짜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나도 잊어 먹은 생일을 우리 손녀가 알고 있었어?”

“그럼. 오늘 우리 할아버지 70 살 생일인데 이건 놓칠 수가 없 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이는 손녀의 모습에 할아버지 가 웃으며 식탁을 보았다.

“그럼 이거 할아버지 생일이라 고 이렇게 차린 거야?’’

“당연하지.”

“근데 이거 돈 많이 든 거 아니 야?”

“칫! 할아버지가 그랬잖아. 먹는 거에 돈 아끼는 거 아니라고.”

“그건 그런데…… 우리 손녀 용 돈 많이 쓴 거 아니야?”

“많이 안 들었어. 자! 상자 열 어 봐.”

박혜원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 며 상자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마음이면 되는데.”

“그래서 마음을 가득 담았어.”

박혜원의 말에 할아버지는 천천 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사진 하나가 담겨 있었다. 박혜 원이 꽃밭 앞에서 활짝 웃고 있 는 사진이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해요.”

짝짝짝 J

박혜원이 손뼉을 치는 것에 할 아버지가 웃으며 사진을 집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 이구나.”

“지갑에 넣어두고 있어야 해.”

“그래. 알았다. 지갑에 넣어두고 다니마.”

할아버지는 사진을 보다가 옆에 놓았다.

“자, 일단 밥부터 먹자. 우리 손 녀가 해 준 미역국이 식으면 안 되니까.”

“네.”

박혜원이 웃으며 밥을 미역국에 말아서 먹자 할아버지가 그것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네 엄마도 미역국을 참 잘 끓 였는데.’

딸을 떠올리던 할아버지는 웃으 며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다.

“잘 먹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박혜원이 그릇 에 남은 반찬들을 다시 통에 담 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 사이 할 아버지가 빈 그릇들을 싱크대에 담그자, 박혜원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다 할게. 생일이

니까 내가 크게 봐 주는 거야.”

“하하하! 그래. 알았다. 오늘은 내가 호강하는구나.”

할아버지가 웃으며 의자에 앉자 박혜원이 냉장고에 넣은 반찬들 을 보았다.

‘이거면 삼 일은 먹겠다.’

반찬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생 각에 웃은 박혜원이 고무장갑을 끼고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런 손녀의 뒷모습을 보던 할아버지 가 웃으며 박혜원의 사진을 들어

보았다.

오늘 일흔 살 생일이라고 놓칠 수 없다는 말과 달리 박혜원은 3 년 전 아홉 살 때부터 자신의 생 일을 챙겨주었다.

그 생일상을 받을 때마다 할아 버지는 손녀가 기특하면서도 마 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한 살 더 먹었다는 생각 에 말이다. 그리고 오늘 70번째 생일을 맞으니…… 자신이 늙기 는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더 많 이 들었다.

‘혜원이 시집 갈 때까지는 내가 살아야 할 텐데.’

이렇게 어여쁘고 착한 손녀를 혼자 두고 어찌 가나 싶었다. 최 소한 결혼할 때까지, 아니면 대 학을 졸업할 때까지라도 건강하 게 살아서 뒷바라지를 해 줘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할아 버지가 입맛을 다셨다.

걱정이 점점 커지다 보니 소주 한 잔이 당겼다. 하지만 할아버 지는 입맛을 다시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오래 살려면 술은 안 되지.’

그는 딸 죽고 난 후 그 좋아하 던 반주도 끊었다. 하루라도 더 살아서 손녀 뒷바라지를 해 주려 고 말이다.

손녀가 커 가는 하루하루가 그 에겐 너무나 소중했기에 소주 한 잔에 남은 시간을 날릴 수는 없 었다.

사진을 가만히 보던 할아버지가 문득 그것을 뒤집었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냥 뒤도 한 번 넘겨 본 것이었다.

〈아빠,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 다. -사랑하는 딸이〉

사진 뒤에 적힌 글을 본 할아버 지가 작게 숨을 토했다.

“ 하아......"

“응? 왜?”

설거지를 하던 박혜원은 할아버 지의 한숨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 다. 그에 할아버지가 급히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할아버 지 방에 들어갈게.”

“드라마 안 보고?”

“좀 피곤하네.”

“알았어.”

할아버지가 웃으며 방에 들어가 자, 박혜원이 설거지를 하다가 팔로 눈가를 닦았다.

“오래오래 살아야 해. 내가 아 빠 꼭 행복하게 호강시켜 줄 거

야. 그러니까 아프면 안 돼.”

박혜원에게 할아버지가 곧 아빠 였다. 자신을 지켜주고, 키워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니 말이다.

방에 들어온 할아버지는 가만히 박혜원 사진을 보다가 뒤에 적힌 글을 읽었다.

“사랑하는 딸이라……

글을 읽으며 미소를 짓던 할아 버지는 작은 서랍장 위에 있는 가족사진을 보았다. 아직 아내가

살아 있고 딸이 있었을 때 어린 손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할아버지가 웃으며 사진에 다가갔다.

“여보, 당신한테 딸이 하나 더 생겼네.”

할아버지는 박혜원 사진을 가족 사진 옆에 놓았다. 그러고는 박 혜원의 옆에 서 있는, 사진 속 딸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우리 딸은 여동생이 생겼어.”

가족사진과 박혜원 사진을 번갈

아보는 할아버지를 보며 아주머 니 귀신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빠 늦둥이 생겨서 너무 좋겠네.”

가만히 할아버지를 보던 아주머 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혜원이가 성공해서 아빠 행복 하게 해 주겠다고 정말 벼르고 또 벼르고 있어. 그러니까 아빠 정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 그래야 혜원이가 우리 아빠 행복하게 효도하지.”

아주머니의 중얼거림을 못 들었 을 할아버지는 웃으며 사진을 보 았다.

“혜원이가 나 오래오래 살라네. 자기 돈 많이 벌어서 나 호강시 켜 준다고 말이야. 근데 우리 딸 도 어렸을 때 그런 말을 했었 지.”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딸…… 근데 나는 호강 같은 거 아무 필요 없어. 그냥 우리 혜원이 건강하게 잘 크는 것이 최고야. 그게 나는 가장 좋아.”

할아버지는 사진 속 딸의 얼굴 을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딸이 우리 혜원이 잘 지켜줘.”

딸의 얼굴을 반복해서 쓰다듬던 할아버지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 다.

“딸.. 아빠가 오랜만에 아

빠……라는 글을 봐서 그런지 우 리 딸이 너무 보고 싶네. 우리 딸…… 아빠만 두고 이렇게 엄마 하고 먼저 가고. 아빠…… 너무 딸이 보고 싶어. 흑흑흑!”

할아버지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 는 것에 아주머니가 뒤에서 살며 시 껴안았다.

“아빠…… 내가 정말 미안해. 내가 정말…… 너무 미안해.”

* * *

“해물탕 오늘 끝내주게 맛있네

요.”

“맛있게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손님들은 소래포구에서 사 온 해 물로 끓인 해물탕을 칭찬했다. 그에 웃으며 그들을 배웅한 강진 이 문을 닫고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정리하면 되겠다.”

7시 반이니 저녁 식사 손님들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그에 강진 이 가게 문을 잠그자 여직원들이 나와서는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 다.

그 사이 강진은 가볍게 스트레 칭을 했다.

우두둑! 우두둑!

손님들을 살피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다. 여기저기 사방을 봐야 했고, 계속 서 있어야 하니 말이 다.

스트레칭을 하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우우웅! 우우웅!

그에 핸드폰을 꺼낸 강진이 웃 으며 전화를 받았다.

“형.”

전화를 한 사람은 황민성이었 다.

[지금 손님들 있어?]

“아뇨. 없는데요?”

[오케이. 그럼 형 손님 한 분 모시고 간다.]

“손님요?”

[한 이십 분 후쯤 가니까 이 층 가서 샤워라도 하고 얼굴에 로션 이라도 바르고 내려와.]

“아니, 무슨 손님이 오기에 샤

워까지 해요?”

[나는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진이 잠시 있다 가 이혜미에게 말했다.

“저 올라가서 샤워 좀 하고 내 려올게요.”

“갑자기요?”

“민성 형이 샤워하고 기다리라

네요.”

“민성 씨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혜미를 뒤 로한 강진은 서둘러 2층으로 올 라갔다. 20분 안에 온다고 했으 니 샤워하고 내려오려면 서둘러 해야 했다.

강진이 올라가자, 이혜미가 웃 으며 배용수를 보았다.

“용수 씨.”

이혜미의 부름에 배용수가 고개 를 내밀었다.

“네?”

민성 씨 온대요.”

“들었어요.”

“그런데……

이혜미가 말꼬리를 흐리며 웃었 다.

“민성 씨가 강진 씨 씻고 기다 리라고 했다는데요?”

“네?”

“씻고 기다리래요. 이런 말은 아내나 여자친구한테 하는 말 아 닌가?”

이혜미가 웃으며 하는 말에 배

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 병이 전염이 되는 거였나 요?”

“병? 전염?”

배용수의 말에 이혜미가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재밌는 일은 전염이 되는 법이 죠.”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재차 한숨을 쉬었다.

“적당히만 해 주세요. 적당히

만.”

“알겠어요.”

장난스럽게 답하는 이혜미를 보 고 고개를 저은 배용수는 냄비 밥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밥 남은 것은 있지만, 그래도 황민성이 손님을 데리고 온다고 하니 새로 밥을 하려는 것이다.

‘손님이 뭘 좋아하려나?’

배용수는 냉장고를 열어서 잠시 보다가 오늘 소래포구에서 사 온 해물을 꺼냈다.

오늘 사 와서 싱싱한 녀석들이 라 이걸로 탕을 끓여도, 조림을 해도 다 맛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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