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화
강진은 행주로 냄비 손잡이를 잡아 안이 잘 보이게 기울였다.
“ 와.”
별것도 아닌데도 박신예가 감탄 을 하며 밥을 보았다.
“윤기가 정말…… 너무 좋네 요.”
꼬르륵!
말을 하던 박신예는 배에서 소
리가 나는 것에 살짝 얼굴을 붉 혔다.
“배가 고프신가 보네요.”
강진의 말에 박신예가 작게 웃 었다.
“배우 일을 하다 보면 늘 체중 관리를 해야 하거든요.”
“지금도 많이 마르셨는걸요.”
“화면에는 부어서 나오는 경우 가 많거든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박신예는
홀린 둣이 냄비를 보았다. 체중 관리를 하느라 탄수화물을 줄인 박신예에게 윤기가 흐르는 쌀밥 은 정말 큰 유혹이었다.
그런 박신예를 보던 강진은 주 걱으로 밥을 솔솔 뒤집어서는 그 릇에 떠서 앞에 놓았다.
꿀꺽!
밥을 덜어 놓으니 하얀 김이 솔 솔 오르고 윤기가 더 자르르 흐 르는 것에 박신예가 침을 삼켰 다.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박신예가 밥을 보 다가 말했다.
“윤기가…… 너무 좋아요.”
“쌀도 좋고 저희 주방장이 냄비 밥을 잘 해요.”
박신예는 멍하니 밥을 보며 수 저를 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 지 젓가락으로 바꿔들더니 밥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스윽!
그리고 천천히 씹은 박신예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밥이 너무 맛있어요.”
“그래요?”
“오랜만에 탄수화물
니……
박신예는 반찬으로 나온 보았다. 한참 쳐다보던 젓가락으로 김치를 조금 는 밥 위에 올렸다.
들어가
김치를
그녀는
찢어서
꿀꺽!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말려 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 던 매니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멍하니 밥과 김치를 보던 박신 예가 그것을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따뜻한 밥과 김치가 입 안 가득 씹히자, 박신예의 얼굴이 세상 누구보다 더 밝아졌다.
“이 맛이야.”
작게 신음을 토하는 박신예의
모습에 매니저가 입맛을 다셨다.
‘라면 광고를 이렇게 좀 찍지.’
속으로 중얼거린 매니저가 수저 로 밥을 떴다. 박신예가 많이 먹 을까 싶어 계속 쳐다보다가 자기 도 모르게 입맛이 돌았던 것이 다.
화아악!
“아! 뜨! 아뜨!”
입에서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밥을 씹던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 였다.
“밥에서 단맛이…… 아주 좋네 요.”
매니저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밥 드시는 것만 봐도 제가 여 러분을 여기로 모셔온 보람이 있 네요. 그럼 이야기는 일단 식사 하시고 난 후에 하시죠.”
황민성은 밥을 떠서 먹고는 해 물찜에 있는 알을 간장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살짝 퍽퍽하지만 알알이 깨지는
식감과 고소함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해물찜 소스를 떠서는 알에 부었다. 이렇게 먹으면 퍽 퍽함도 사라지고 알 속에 양념 맛이 배니 말이다.
그 모습에 박신예가 김치를 밥 위에 올려 입에 넣다가 침을 삼 켰다.
그녀는 서둘러 밥과 김치를 입 에 넣고는 두툼한 알을 집어 고 추냉이를 살짝 바르고는 바로 입 에 넣었다.
« "응."
M...
신음과 같은 감탄을 토하는 박 신예의 모습에 매니저가 걱정스 럽게 그녀를 보았다.
“신예야, 많이 먹으면……
매니저가 입을 다물자 박신예가 이번에는 살코기를 집어 입에 넣 었다.
“음…… 너무 맛있어.”
CF 광고처럼 음식을 맛있게 먹 는 박신예의 모습에 강진이 황민 성 옆에 앉아서는 알을 하나 집
어 먹었다.
‘좀 맵기는 한데 맛있네.’
박신예는 오징어를 집어먹고 꽃 게도 집어 속살을 쪼옥 먹었다.
그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봉인해 두고 있던 식욕이 따뜻한 밥이라 는 열쇠에 풀려 버린 모양이었 다.
해물찜이 담긴 냄비의 바닥이 드러날 때쯤 박신예는 순간 놀란 둣 자신의 앞을 보았다. 그녀의
앞에는 발라 먹은 꽃게 잔해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잠시 멍하니 그것을 보던 박신 예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맛있는 걸 봐서 정신 을 놔 버렸네요.”
“맛있게 먹으면 좋은 거죠.”
“맛있게 먹으면 좋은데…… 그 맛있는 것이 화면에 다 드러나서 요.”
고개를 저으며 말하던 박신예가 잠시 있다가 피식 웃었다.
“이거 먹었으니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고생 좀 해야겠네요.”
“고생요?”
“먹었으니 운동해야죠. 그래도 오늘 황 사장님 덕에 맛있는 음 식 먹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합니 다.”
“그리고 배역 주신 건 정말 감 사한데 제가 사극하고 어울리지 를 않아서요. 이번 배역은 아무 래도 다른 배우를 찾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이야기라도 좀 들어 보시 고 결정을 하시는 것이 어떠실까 요?”
황민성이 애써 웃으며 하는 말 에 박신예가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한테서 황 사장님이 여 러 번 연락을 했다는 이야기 들 었습니다. 그래서 매니저나 대표 님이 아니라 제가 직접 거절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해서 이렇게 나 온 겁니다.”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 라 거절을 하러 나왔다는 말에 황민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혹시 대본은 보셨는지요?”
“봤습니다. 김소희라는 캐릭터 정말 매력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 해요.”
“소희 아가씨는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정말 이 시대 사람들이 보고 배울 점이 많은 분입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여성 단독 주 역으로 가는 작품이라 박신예 씨 인생 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다 른 주역 배우들에 비해 제 위주 로 극이 홀러가더군요. 하지 만…… 제가 사극에 안 좋은 기 억이 있어서요.”
박신예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혹시 책은 보셨나요?”
강진의 말에 박신예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으로 고개를 돌렸 다.
대본은 읽었는데 아직 책은 보
지 못했습니다.”
박신예의 말에 매니저가 급히 말했다.
“신예가 바빠서요. 제가 대신 읽어 보고 줄거리 이야기해 줬습 니다.”
“그렇군요.”
매니저의 말에 강진이 잠시 박 신예를 보다가 책을 내밀었다.
“그럼 이 책을 한 번만 읽어 주 시겠어요? 읽고 나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제가 형을 설득해
서 다른 배우를 알아보게 하겠습 니다.”
강진의 말에 박신예가 그를 보 다가 황민성을 보았다.
“두 분이 무척 친하신 모양이네 요.”
“성은 다르지만 형제입니다. 그 리고 이 녀석을 통해 소희 아가 씨를 알게 됐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황 사장님 이 직접 이 책을 출간하시고 드 라마 화까지 추진하신다고요. ”
“맞습니다.”
“그리고 황 사장님이 어떤 분인 지 대표님에게 들었어요.”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 데……
황민성이 작게 웃으며 하는 말 에 박신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좋은 이야기도 있었는 데……
“신예야.”
매니저가 급히 막아서자, 박신
예가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 다.
“좋은 이야기도 있었어요. 이때 까지 투자를 해서 한 번도 실패 하신 적이 없다고요.”
“투자 사업하는 사람이 늘 성공 만 할 수 있나요. 저도 실패도 했고 손해도 봤습니다. 다만 그 규모가 작고, 그 횟수가 적을 뿐 이지요.”
“그래도 승률이 높다는 건 사실 이니까요. 그래서 저희 대표님도 이번 작품에 기대가 커요. 황 사
장님이 추진하는 사업이기도 하 고 전과 달리 주도적으로 하시는 것이라, 이번 작품도 성공을 할 거라 생각하시죠. 그래서 제가 사극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계속 하자고 말씀하더라고요.”
박신예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래서 대표가 아닌 저한테 직 접 거절을 하러 오신 거군요.”
“맞아요. 대표님은 계속 저를 설득하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 고 아까 말한 대로 그게 예의라
고도 생각을 했어요.”
박신예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소희 아가씨처럼 똑부러지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문득 박혜원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혜원이도 소 희 아가씨 아역으로 괜찮을 것 같은데?’
어차피 배우는 아역과 성인 둘 이 필요하니 말이다. 게다가 박 혜원은 똑부러지면서 애교 있는
성격이라 어린 시절의 소희 아가 씨와도 어울렸다.
소설 속 소희 아가씨도 어릴 때 는 활달하고 천방지축의 아가씨 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이 변한 것이니 말이다.
‘근데 혜원이가 연기가 되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박 신예가 입을 열었다.
“책은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어떠한 결정 을 하더라도 사장님께서는 받아 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 거절을 한다면 결국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했다.
김소희가 박신예를 원하기는 하 지만 사실 배우는 많았다. 그리 고 이 역할 맡고 싶다고 연락을 한 여배우들도 있었고 말이다.
박신예가 책을 내밀자 매니저가 받았다. 책을 받자마자 박신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매니저가 급 히 말했다.
“저희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이 만 일어나겠습니다.”
매니저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날 때 강진이 급히 말했다.
“아! 혹시 지혁 형 기억하세 요?”
강진의 말에 박신예가 그를 보 았다.
“지혁? 문지혁 오빠요?”
“네.”
“지혁 오빠를 아세요?”
박신예가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가게 단골이셨어요. 저하 고 민성 형 그리고 상식 형이라 고 있는데 같이 친하게 지냈어 요.”
“상식이면 혹시 오성화학 강상 식 대표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민성 이 의아한 듯 박신예를 보았다.
“상식이를 아십니까?”
황민성의 말에 박신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지혁 오빠 일 뉴스로 본 적 있어요. 그때 강상식 대표가 많이 도와줬잖아요.”
“아, 보셨군요.”
“기자 회견도 봤어요.”
말을 하던 박신예는 다시 자리
에 앉았다.
“그런데 지혁 오빠가 저에 대한 이야기를 했나요?”
“좋은 배우고 착한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지혁 오빠가요?”
“드라마 한 편 같이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작은 배역인 자신에게도 잘 해 주셨다고요.”
물론 생전에 한 말이 아니고 귀 신이 되고 난 후에 한 말이었지 만,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었다.
강진의 말에 박신예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배우였어요. 나중에 지혁 오빠 그렇게 되고 난 후에…… 지혁 오빠가 생전에 하던 일을 알았어요. 좋은 배우라는 건 알 았지만, 사적으로도 좋은 일을 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박신예는 강진과 황민성을 번갈 아보았다.
“혹시 지혁 오빠가 한 말 때문 에 저를 캐스팅하려고 하는 건가 요?”
박신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형이 신예 씨 좋은 배우고 좋 은 인성을 가진 분이라고 한 건 맞지만, 이 배역은 소희 아가씨 가 신예 씨한테 준 겁니다.”
이것 역시 맞는 말이다. 김소희 가 박신예를 꼭 집었으니 말이 다.
물론 박신예는 강진의 말을 ‘소 설 속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린 다.’라고 알아듣겠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대본에 검둥이 배 역 보셨습니까?”
황민성의 말에 박신예가 그를 보았다.
“김소희의 하인이자 호위무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대본을 보기는 했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황민 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둥이를 연기하시는 분이 문 지혁 씨입니다.”
황민성의 말에 박신예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