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31화 (929/1,050)

931 화

정자에 놓아둔 쇼핑백에서 물통 을 꺼낸 강진이 박혜원 앞에 앉 았다.

“사람 온 줄도 모르네.”

강진의 목소리에 책을 보던 박 혜원이 그를 보고는 웃으며 책을 놓았다.

“왔어요?”

“나 보러 온 것 같은데…… 나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오빠 가게 블로그 하는 분이 아침마다 여기에서 유기견들 밥 챙겨 준다고 사진 올린 거 봤어 요. 그래서 여기 계실 것 같아서 왔어요.”

“그런 사진이 올라가 있어?”

“우연히 아침 산책하다가 봤는 데…… 아침마다 보인다고 사진 찍어서 올려놨더라고요.”

“아하!”

강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

시 그 사람이 이 근처에 있나 해 서 말이다.

“아! 그래도 얼굴은 안 나오게 찍었으니 얼굴 팔릴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인생 나쁘게 살지는 않아서 얼 굴 팔려도 상관은 없어.”

물을 마신 강진은 숨을 길게 토 했다.

“후우! 그런데 너 우리 가게 정 말 팬이구나. 그런 블로그도 검 색해서 봐?”

“맛집 검색해서 보는 거 좋아해 요. 그리고 오빠 가게 꼬fl 유명해 요.”

“그래?”

“자기 가게인데 그런 것도 몰랐 어요?”

“그런 거 검색해서 보고 그러지 는 않거든.”

강진은 쇼핑백에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런데 이거 오빠가 놓은 거예 요?”

"응."

흐.

“이렇게 그냥 두고 운동하러 갔 다가 누가 가져가면 어떡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사람들 이런 거 안 가져가.”

“그래요?”

“나 여기에 이거 두고 몇 달 운 동을 했어도 한 번도 도둑 안 맞 았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몇 달은 무슨. 이제 한 달 되 어 가는구먼.”

‘그냥 그런가 보다 해.’

속으로 중얼거리는 강진을 보며 박혜원이 웃었다.

“땀나는 것 봐. 운동 열심히 하 시네요?”

“살이 좀 찐 것 같아서. 근데 책 주러 온 거야?”

“네.”

“가져도 되는데…… 책을 주러

인천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겸사겸사요.”

“겸사겸사?”

“책 주고 서신대 갈 거예요.”

“서신대? 거기를 왜 가?”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보자, 박 혜원이 자기 가방에서 ‘꽃 피어 나다’ 책을 꺼내 내밀었다.

“대학을 왜 가겠어요. 공부하러 가죠.”

“도서관은 서신대 학생증 없으

면 못 들어갈 텐데?”

“도서관에는 못 들어가도 학교 는 들어갈 수 있잖아요.”

박혜원은 아까까지 보고 있던 책을 들어 보였다.

“중학교 수학 책이네?”

“암기하는 건 외우면 되는데 영 어하고 수학은 혼자 하기 힘들어 요. 근데 초4가 중학교 수학 책 을 보는데 안 놀래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으며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사실 아주머니 귀신이 말을 안 해 줬으면 ‘네가 이걸 본다고?’ 하고 물었을 것이었다.

“너는 똑똑하니까.”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피식 웃 었다.

“치, 재미없어.”

“왜? 다른 사람들은 많이 놀 라?”

“그럼요. 네가 이걸 본다고? 하 면서 얼마나 놀라는데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젓고는 물었다.

“그럼 서신대에 아는 사람 있 어?”

“아는 사람 없죠.”

“그런데 왜 서신대를 가?”

“서신대 오빠나 언니들은 다 공 부 잘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 서 신대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아도 중, 고등학 교 시절 전교에서 놀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신대 언니, 오빠들한테 물어 보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한테?”

“네.”

“그럼 착하게 생긴 학생한테 공 부 물어보는 거야?”

“그럴 리가요. 저도 정해 놓은 타깃을 찾아서 물어봐요.”

“타깃?”

“혼자 다니는 사람한테는 물어 보면 안 돼요. 가끔 착한 오빠나 언니가 알려주는 경우가 있는 데…… 대부분 바쁘다고 갈 길 가거든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혼자 갈 길 가는 사람들 은 다 어디를 가는 도중일 테니 까.’

“그래서 저는 남자와 여자가 같

이 있는 그룹이나 커플 남자를 노려요.”

“호오!”

강진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말했다.

“남자들이 여자친구나 같이 있 는 여자들한테 좋게 보이려고 공 부를 알려주겠구나.”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 학 책을 들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오빠, 저 이걸 모르겠어요. 죄

송한데 이것 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이렇게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타깃 정말 잘 잡았네.”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들하고 같이 있는 오빠들 한테 하면 거의 백발백중이에요. 게다가 제가 모르는 것뿐만 아니 라 다른 모르는 거 있냐고 더 알 려주려고 해요. 그리고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알려 주는데 요.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알 려주면 애들 다 시험 잘 볼걸 요.”

“넌 정말…… 대단하다.”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고개를 저었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내 가 머리가 좋아서 늘 백 점 맞는 줄 알지만, 저에게도 이런 노력 이 있답니다.”

“그래. 머리 좋은 것도 노력을

해야 꽃이 피어나는 거지. 머리 좋다고 노력 안 하면 피기도 전 에 시들어 버리는 거야. 확실 히…… 넌 대단하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문득 박 혜원을 보았다.

“아침은 먹었어?”

“그럼요. 성장기 학생한테 아침 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저는 아 무리 늦게 일어나도 아침은 꼭 먹어요.”

“맞아. 성장기에는 아침밥이 보

약이지.”

박혜원의 말에 웃은 강진이 물 었다.

“책은 재밌었어?”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그의 손 에 들린 책을 보았다.

“재밌었어요. 근데……

잠시 말을 멈춘 박혜원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분 너무 안쓰러웠어요. 가족 도 잃고, 나라를 위해 싸우신 거

잖아요. 그리고 친언니 같은 복 실 언니도, 충실한 검둥이 오빠 도 죽고.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자신을 가장 아껴주던 오라버니 느.. ”

박혜원이 한숨을 쉬었다.

“소희 아가씨가 그때 어떤 마음 이었을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 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 다.

“안 바쁘면 나하고 식당 가자. 식당 가서 오빠가 도시락……

도시락이라는 말을 하며 박혜원 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을 바 꿨다.

“주먹밥 만들어 줄게.”

“주먹밥요?”

“도시락 들고 다니면 무겁잖아. 비닐에다가 잘 싸서 만들어 줄 테니 점심에 그거 먹어. 가자.”

“네.”

거절하지 않고 냉큼 일어나는 박혜원과 함께 강진은 공원을 나 섰다.

“아! 나도 서신대 출신인데.”

“오빠도 서신대예요?”

U 으 »

“이야…… 오빠 공부 잘했구 나.”

“공부를 해야 했거든.”

“왜요?”

“공부를 못하면 장학금을 못 받

으니까.”

“그렇구나.”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문득 그녀를 보았다.

“너 연기해 볼 생각 있어?”

“연기요?”

“꽃 피어나다 드라마 되거든. 내가 보기에는 네가 소설 속 소 희 아가씨 어린 시절 연기를 잘 할 것 같아서.”

“에이, 연기는 아무나 하나요.

그리고 제가 무슨 드라마예요.”

“연기가 별거인가?”

잠시 멈춰 선 강진은 박혜원을 보며 양손을 모았다. 그러고는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말 했다.

“혜원이 이런 거 잘하잖아요.”

강진이 자신의 말투까지 따라하 자 박혜원이 웃었다.

“그게 무슨 연기예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걸음을 다시 옮겼다.

“연기가 별거냐. 내가 아닌 다 른 것을 흉내 내면 그게 연기지. 그리고 소설 속 어린 소희 아가 씨는 당차고 남을 생각하는 사람 이잖아. 그건 너하고 어울리니 연기가 아닌 네 감정을 표현하면 될 거야.”

“제가요?”

“왜, 아닌 것 같아?”

“저는 딱히 남을 생각하지 않는 데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너 그날 가져간 음식 네가 먹 으려고 싸 간 거야?”

“그건…… 아니에요.”

“그럼 남을 생각하는 거지. 남 을 위해 음식을 가져온 거니까.”

“그런가?”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한 걸음 먼저 나서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귀신들이 홀에서 핸드 폰을 하고 있을까 싶어 배용수가 먼저 들어간 것이다.

배용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은 살짝 걸음을 늦췄다. 그 래야 직원들이 정리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느린 걸음으로 가게 앞에 도착 할 때쯤 배용수가 밖으로 나왔 다.

“정리됐어. 그리고 안에 상식 형 와 있어.”

‘상식 형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가게 문을 열었다.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 간 강진은 밥을 먹고 있는 강상 식을 볼 수 있었다.

“형 왜 여기서 아침을 먹어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입맛을 다셨다.

“네 형수하고 싸웠다.”

“형수님하고 싸워요?”

"응."

흐.

“왜요?”

강진이 보자, 강상식이 국에 만

밥을 후루룩 먹으며 말했다.

“형수하고 일본에 가자고 했거

든 ”

“ 일본요?”

“일본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초

밥집이 있거든.”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초밥 먹으러 일본 가자고 하신 거예요?”

«으 99

“역시 부자들은 생각이 다르기 는 하네요.”

“뭐가?”

“혁이 형은 형수님하고 우동 먹 으러 일본 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형은 초밥 먹으러 일본을 가잖아요.”

“우동 잘하는 집은 한국에도 많 은데 뭐하러 일본까지 가? 한국 에 정말 맛있는 우동 집 몇 곳 아는데 혁 형한테 알려 줘야겠 네.”

“매형이 잘하는 곳을 몰라서 일 본까지 가서 드시겠어요? 그냥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일본에 가서 우동 먹고 오는 그런 재 미……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식탁을 손으로 쳤다.

빙고! 정답!”

“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내가 초 밥이 정말 먹고 싶어서 일본을 가려고 했겠어? 같이 비행기도 타고 초밥도 먹고, 인근 좋은 온 천 있으니 거기서 피로도 풀자는 거였지. 그런데 그 사람은 돈이 썩어 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 본까지 가서 초밥을 먹느냐 고……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말이 야.”

툴툴거리는 강상식을 보고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침도 못 얻어먹고 나 온 거예요?”

“못 얻어먹기는. 너희 형수가 그럴 사람이냐? 아침 중요하다고 늘 차려 주는 여자야.”

“그런데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입맛을 다셨다.

“밥상 차려 주고 같이 먹었는데 분위기가……

그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 를 저었다.

“속이 안 좋아서 여기 온 거 야.”

“그래도 같이 있으셔야죠.”

“먹고 다시 들어가야지.”

이야기를 하던 강상식은 박혜원 을 보았다.

“안녕.”

강상식이 웃으며 손을 들자, 박 혜원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런 박혜원을 흐뭇한 얼굴로

보던 강상식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누구야?”

“손님이에요. 아! 아니지. 동생 이에요.”

돈을 내고 밥을 먹은 것이 아니 니 손님은 아니고 동생이었다.

“저 씻고 내려올게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용수한테 달라고 하세요. 혜원이도 저기 잠깐 앉 아 있어.”

“난 이거면 됐어.”

강상식이 국에 만 밥과 김치를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2층으로 올라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