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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42화 (940/1,050)

942화

씁쓸한 모습으로 흩어지는 귀신 들을 보던 강진이 서성식을 보았 다.

“그래서 경마는 좀 보셨어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그러시구나. 그럼 온 김에 저 희도 한 게임 해 보죠.”

“경마를요?”

“보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나

요.”

웃으며 강진이 돈을 꺼내 기계 로 다가가자 강상식이 다가왔다.

“너 어떻게 하는 줄 모르잖아.”

“그렇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한쪽에 있는 매 점에 가서는 경마 책자를 人} 가 지고 왔다.

“ 자.”

경마 책자를 이리저리 돌려 보

던 강진은 구석에 천 원이라 적 힌 것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싸네요?”

“이게 있어야 경마를 하니까. 서비스 차원으로 만드는데 또 공 짜라고 하면 한 사람이 여러 개 우르르 가져가니까 천 원이라도 받는 거야.”

그러고는 강상식이 책자를 펼쳤 다.

“오늘 경마에 나오는 말들 이……

시간을 힐끗 본 강상식이 책자 를 보자 임정숙이 옆에 다가와서 같이 보았다.

그 모습에 강진도 책자를 펼쳤 다. 하지만 본다고 해도 이게 무 슨 내용인지 강진이 알 길이 없 었다.

책자와 씨름하던 강진은 서성식 에게 책자를 보여 주었다.

“같이 보세요.”

“아, 아닙니다.”

“이왕 오셨으니 한 번 해 보세

요.”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안 왔으 면 가장 좋았겠지만, 결국엔 이 곳에 오고 말았다.

그럼 하고 싶은 대로 경마를 하 게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 다.

물론 중독자한테 다시 도박을 하게 하는 건 위험하지만…… 죽 어서도 못 끊는다면 어떻게 해도 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강제로

데려가면 더 생각이 날 수도 있 었다. 그래서 차라리 후련하게 한 판 하라고 판을 벌려 준 것이 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자 를 넘기자, 서성식이 멍하니 그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이충만 이 복장 터진다는 둣 보았다.

둘 다 김성수에게 죄를 지은 사 람들이고, 꽤 오랜 시간 같이 김 성수 옆에 있었기에 둘은 형제보 다 더 친하게 지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화를

할 상대가 단둘뿐이니 말이다. 그런 가족 같은 사람이 이렇게 도박장에 오니 속이 쓰리는 것이 다.

잠시 서성식을 보던 이충만이 혀를 찼다.

“에잉!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 봐라.”

이충만은 서성식의 옆에 와서는 경마 책자를 보았다.

“이거 좋네. 강진 씨 이걸로 하 세요.”

이충만이 말을 고르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충만 씨도 경마 하실 줄 아세 요?”

“경마가 뭐 어렵나요. 뭐가 들 어올지 고르기만 하면 되지.”

이충만의 말에 서성식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 경마가 얼마나 복잡……

“됐고. 그냥 고르기나 해. 이왕 왔으니 골라. 그리고 해. 그리

고…… 다시 오지 말자.”

이충만의 말에 서성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만......"

서성식이 슬며시 책자에 시선을 주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이게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 네.’

중독자는 다른 중독도 약하다. 그래서 중독자들은 중독이 될 만

한 모든 것에서 최대한 떨어뜨려 야 했다.

일례로 알코올 중독자는 도박에 도 빠지기 쉽고 담배에도 빠지기 쉽다. 그래서 중독이 되면 대부 분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 러 개를 같이 하는 것이다.

좋은 일은 천천히 오고 안 좋은 일은 같이 온다고…… 중독도 같 이 오는 것이다.

비록 죽어서 귀신이기는 하지 만, 도박 중독인 그에게 다시 경 마를 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싶었다.

강제로 데려가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결론은 서성식의 의지 였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서 성식이 결정을 했는지 자판기를 보며 말했다.

“결정했습니다.”

“잘 결정하신 거예요?”

“그럼요. 제 주 종목이 경마는 아니지만, 저도 할 줄은 압니다.’’

경마를 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 아진 서성식이 자판기를 보며 말 했다.

“돈 넣으세요.”

서성식의 말에 강진이 만 원을 넣었다.

“만 원만 하시게요?”

“네.”

“작은 금액으로 해도 괜찮죠. 제가 가리키는 것을 눌러 주세 요.”

서성식이 버튼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자 강진이 그것들을 눌 렀다. 그리고 금액에서는 서성식 이 가리킨 만 원이 아닌 천 원을 눌렀다.

“천 원요?”

“오늘 만 원으로만 할 거거든 요.”

“아! 한 게임 만 원이 아니구 나.”

서성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발권된 표를 손에 쥐고는 말했

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요?”

“다른 게임도 선택을 해야죠.”

“한 번에 표를 다 사는 거예 요?”

“그럼요. 하나만 하면 안에 들 어갔다가 한 게임 끝나자마자 다 시 배팅을 하러 나와야 하니까 요.”

웃으며 서성식이 화면을 가리키 자, 강진이 그가 하라는 대로 다 른 게임들도 배팅을 해서는 표를

꺼냈다.

“이제 경마장을 가야죠.”

서성식은 강상식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자칭 전문가인 임정숙 이 스크린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도 선택을 하고 배팅을 하는 모양이었다.

강상식이 표를 받자 서성식이 다가갔다.

“어디 보자.”

표를 확인한 서성식이 웃으며 말했다.

“잘 골랐네.”

“그래요?”

“나하고 같은 것을 골랐네. 그 런데 두 번째 게임은 이 녀석을 골라야지.”

“아니에요. 두 번째는 이게 느 낌이 좋아요.”

임정숙의 말에 서성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느낌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좋아, 그럼 가 보자고.”

서성식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 자, 이충만이 한숨을 쉬며 강진 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일단 좀 지켜보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생전에 다 못 해 본 도박을 이번에 해서 숭천을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경마 하고 승천할 수도 있고.’

물론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지 만 말이다.

강진은 서성식의 뒤를 따라 경 마장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 다. 그런 강진의 옆에 다가와 걸 으며 강상식이 작게 말했다.

“도박 중독이라는 것이 정말 무 섭기는 무섭다.”

방금 전까지는 축 처져 있던 서 성식이 도박을 한다고 하니 저렇 게 좋아하며 가는 것이다. 자신 이 도박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중독이라는 것이 무서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죽고 귀신이 되어서까지 좋아할 줄은 생각을 못 했네요.”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 었다. 중독이라는 것이 죽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죽어도 끝이 아니라니 씁쓸했다.

“그래도 서성식 저분에게는 감 사하네.”

“뭐가요?”

“저분 보니 절대로 도박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끔찍하지 않냐? 죽어서도 도박을 못 끊는다는 게 말이야.”

그러고는 강상식이 강진을 보았 다.

“다음부터는 경마 공원에 놀러 오자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공원이야 경마 공원 아니더라도 좋은 데 많은데…… 내가 너무 여기 좋은 면만 본 것 같다.”

강상식은 한쪽에 모여 있는 귀 신들을 보았다. 강진과 같이 온 귀신들이 아니라 여기에 사는 도

박 귀신들이었다.

귀신들은 경마권을 사는 사람이 나 책을 보는 사람들의 곁에서 훈수를 두고 있었다.

“이건 틀렸어.”

“이게 지금 컨디션이 좋아. 이 걸 사야 해.”

마치 동네 장기 두는 어른들 옆 에서 훈수 두는 사람들처럼 말이 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고개를 젓는 강상식을 보던 강진이 말했 다.

“그런데 형 사업상 만나는 분들 이 경마 좋아한다면서요?”

“중국하고 일본에서 오는 사람 들이 경마 좋아하는데…… 아무 래도 다음부터는 다른 장소에서 해야겠어.”

“그래도 되겠어요?”

“사업상 오는 거라 기분 좋게 해 주면 좋지만, 내가 완전 을인 것도 아니고 서로 좋은 사업 하 자고 그쪽에서도 한국까지 날아 오는 거잖아. 마음에 안 들면 한 국까지 오겠어?”

“그건 그렇죠.”

“그럼 지들 좋아해도 내가 싫으 면 자제해야지. 아니면 지들끼리 가든가. 아, 강진이 너 일식 중식 도 할 줄 알지?”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배용수 어깨를 두들겼다.

“이 녀석이 어지간한 음식은 다 하죠.”

“너는?”

“저도 좀 하기는 하는데…… 할 줄 아는 음식보다 못 하는 음식

이 더 많아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솜씨 많 이 늘었어. 이제는 책에 없는 음 식도 곧잘 하잖아.”

“나도 음식 장사가 몇 년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하긴, 너도 벌써 삼 년 차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3년이라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른한 살이네.”

“스물여덟 풋내기가 이제는 서 른한 살이 되어 버렸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정말 그 때는 풋내기였다. 저승식당 사장 으로서도,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꽤 성장했네.’

걸음을 옮기던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왜?”

“지난 삼 년을 생각해 보니 승 천하신 분들 생각이 나서요.”

“그동안 많은 분들이 승천을 했 지?”

“그렇죠.”

‘그리고 형 어머니도……

강진이 웃으며 강상식을 보자, 그도 자신의 어머니 생각이 나는 지 잠시 웃었다.

“그중에 누가 가장 많이 기억이

나?”

“다들 기억이 많이 나죠.”

강상식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장 기억이 나는 건 그의 어머니인 장은옥이 아니라 만복과 달래였 다. 어린 귀신이지만 의젓했던 만복과 다정한 달래가 말이다.

‘환생하셨으려나?’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은 저승 의 재판을 받지 않고 바로 환생 을 한다.

달래와 만복이 귀신으로 오랜

세월 이승에 있었다고 해도, 승 천을 했으니 벌써 환생을 해서 어느 집의 아이로 태어났을 것이 었다.

‘투희가 두 분의 환생일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강 진은 경마장 안에 들어가자마자 뭔가 후끈한 열기를 느꼈다.

“와! 와!”

사람들은 달리는 말들을 향해 함성을 지르거나 욕을 하고 있었

다.

“달려! 달려!”

“이런 제기랄!”

자신이 찍은 말이 잘 달리면 함 성을 지르고, 못 달리면 욕을 하 는 사람들을 보던 강진이 서성식 을 보았다.

서성식은 기분 좋은 얼굴로 주 위를 보다가 강진의 시선에 웃으 며 말했다.

“우리는 다음 경기입니다.”

서성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마장을 보았다. 경 마장 트랙을 말들이 질주하고 있 었다.

“빠르네.”

“말이라 빠르죠. 달려라 달려!”

소리를 지르는 서성식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경마장에 는 서성식처럼 도박에 빠져 이곳 을 떠나지 못하는 귀신들이 달리 는 말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 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 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고 있 었고 말이다.

물론 경마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경마 공원에 가볍게 나들이 삼아 온 가족이나 연인들 도 보였다.

그들은 말이 달리는 것을 보며 간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은 정말 건전하게 경마를 즐기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붉

게 달아오른 눈으로 경마를 보고 있었다.

극과 극의 상황을 지켜보던 강 진은 바닥에 떨어진 마권들을 보 았다. 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고 찢겨 있는 마권들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쓰레기를 버린 것에 기분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돈과 시간 을 마권마냥 땅바닥에 버리는 이 들이 안쓰러웠다.

‘이렇게 버려지는 건데……

바닥에 버려진 마권들이 도박 중독에 빠진 이들의 인생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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