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 화
버려져 있는 마권들을 보던 강 진이 고개를 젓고는 서성식을 보 았다. 옆에 있던 그는 어느새 귀 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 있었 다.
“이 자식 이번에도 안 되겠어.”
“그러게 말이야. 기수가 문제야, 기수가.”
“기수가 무슨 문제입니까?”
“말이 엄청 잘하는데 저 기수 놈은 달릴 줄을 몰라.”
경마를 좋아하는 도박 귀신들이 나누는 대화에 서성식도 끼어들 었다.
“말만 좋다고 되나. 기수도 좋 아야지.”
“그러게 말이야.”
그런 귀신들의 대화를 들으며 강진이 쓰게 웃었다.
‘생기가 넘치시네.’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서성 식은 정말 생기가 넘쳤다. 그 모 습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데리고 온 건가?’
서성식이 너무 좋아하니 괜히 데려왔나 싶은 것이다. 그에 강 진이 고개를 저을 때 말이 결승 선을 통과했다.
“우와!”
“나이스!”
“제기랄!”
욕을 하며 마권을 찢어 바닥에 던져 버린 남자가 담배를 꺼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던 귀신들이 혀를 찼다.
“쯔! 저 친구 또 오늘 죽 쑤는 구먼.”
“저 친구는 이제 그만 와야 할 텐데.”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처지인 가.”
“그나저나 저 녀석…… 눈에 핏 발 선 것을 보니 위험해.”
귀신들의 말에 서성식이 담배를 피우러 가는 남자를 보았다.
“자주 오나 봅니다?”
“경마 하는 날은 거의 오지.”
“한심해.”
한 귀신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 를 젓는 것에 서성식이 입맛을 다시며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다 른 귀신들도 한숨을 쉬며 그 귀 신을 보았다.
자신들도 저런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저 친구는
살아서 이러고 있지만, 자신들은 귀신이 되어서도 이러고 있으니 그 남자에게 뭐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하지만 말을 한 귀신은 그것을 모르는 듯 자신을 보는 귀신들을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그에 귀 신들이 한숨을 쉬고는 하나둘씩 흩어졌다.
“다 어디 가?”
뒤에서 들리는 귀신의 목소리에
서성식이 한숨을 쉬었다.
“눈치 더럽게 없네. 하긴, 그러 니 지금도 여기에……
말을 하던 서성식이 고개를 저 었다. 자신도 저 귀신과 다를 바 가 없으니 누워서 침 뱉는 격이 었다.
고개를 저으며 강진 쪽으로 가 던 서성식은 핸드폰을 보는 한 남자를 보았다.
“바쁜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작게 중얼
거린 남자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에 서성식이 발 걸음을 멈췄다. 어쩐지 시선이 갔다.
그리고…….
우우웅! 우웅!
다시 진동이 울리자 남자가 핸 드폰을 꺼내 보았다.
그에 슬며시 다가간 서성식이 남자의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그 순간, 서성식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집〉
전화가 오는 곳은 집이었다. 그 리고 남자는 집에서 오는 전화를 안 받고 있었다.
우웅! 우웅!
연신 진동을 하는 핸드폰을 주 머니에 다시 넣는 남자를 서성식 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남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보였
다. 카지노에서 게임을 할 때, 집 에서 전화가 오면 받지 않고 주 머니에 넣어버리던 자신이 말이 다.
경마장에는 흥겨운 음악 소리와 함께 나온 치어리더들이 춤을 추 며 짧게 공연을 벌였다. 그래서 지켜보는 맛도 있고 지루하지 않 았다.
“경마장이 꽤 재밌네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마만 주구장창 하면 연인들 이나 가족들이 보러 오겠어? 저 런 쇼를 하니 많이들 오는 거 지.”
강상식은 주위를 보며 말을 이 었다.
“그나저나 경마에 미친 사람 많 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보았다.
주위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혼자 왔든, 여럿 이 왔든 경마를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과 경마에 미쳐서 소리를 지르고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는 사람들....
강진이 그들을 볼 때, 임정숙이 말했다.
“어떻게 몇 개 따셨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마권을 꺼냈다.
“세 게임 꽝에 하나는 두 배 정 도 됐네요.”
두 배라고 해도 천 원 단위라 고작 몇 천 원이었다.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입맛을 다시며 강상식을 보았다.
“저희는……
임정숙이 민망한 듯 보자 강상 식이 웃었다.
“괜찮아요. 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해도 다 꽝일 수 는 없는데. 안 그래요, 전문가
님?”
강상식이 웃으며 하는 말에 임 정숙이 시무룩한 얼굴을 한 채 머리를 긁었다. 강진과는 달리 임정숙이 선택한 건 다 꽝이었던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상식이 웃으며 들고 있던 핫도그를 내밀 었다.
“한 입 하세요.”
강상식의 말에 임정숙이 입을
벌려서는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먹었다.
강진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매 점에서 산 핫도그라 특출나게 맛 있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장소가 장소인지라 맛이 있었다.
먹는 모습을 보던 강진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첫 번 째 게임을 할 때까지만 해도 옆 에 있던 서성식이 보이지 않았 다.
그에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던 강진의 눈에 한 남자의 옆에 물
끄러미 서 있는 서성식이 보였 다.
‘저기서 뭐하시는 거지?’
서성식은 한 남자를 보고 있었 다. 신경질적으로 경마 책자를 펼치고 컴퓨터 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며 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 는 남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우우웅! 우우웅!
그러다 핸드폰이 울리자, 남자 가 그것을 보았다. 한참을 쳐다
보던 그는 입맛을 다시고는 전화 를 받았다.
“어. 왜? 이따 갈 거야. 애? 애 가 아프면 병원을 데려가야지, 나한테 전화를 하면 어떻게 해. 알았어. 알았다니까. 좀 있다 갈 테니까 병원에 가.”
집에서 애가 아프다고 온 듯한 전화를 끊은 남자가 신경질적으 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마권과 경 매 책자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를 보는 서성식의 얼
굴은 슬픔이 어려 있었다.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자기 자 식이 아픈데 이러고 있어?”
작게 중얼거린 서성식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그 가 보는 사람들은 모두 경마에 중독이 된 사람들이었다.
나이대도 다양했다. 이십 대 청 년부터 백발의 노인들까지 있었 고 남녀 불문이었다. 정말 다양 한 사람들이 경마에 빠져 경마 책자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성식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자신이 이들처럼 한심하게 살았을까 하 고 말이다.
도박을 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하는 전화를 받고 웃으며 집에 들어가고, 자식들과 지금도 행복 하게 살고 있었을 터였다.
“뭐하세요?”
멍하니 사람들을 보던 서성식은 자신의 옆에 다가와서 묻는 강진 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기 오니 살 것 같더군요. 아 니, 살아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쓰게 웃은 서성식이 한숨을 쉬 며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이 보 이더군요.”
서성식은 방금 통화를 한 남자 를 보았다.
“집에서 전화가 오는데 안 받아 요. 나도 카지노에 있을 때 아내 나 자식한테 전화가 오면 안 받
았거든요.”
입맛을 다신 서성식이 한숨을 쉬었다.
“저 친구는 뭘 위해서 경마를 하는 걸까요? 집에 애가 아프다 고 전화가 왔는데도…… 여기에 죽치고 있는 저 친구는요.”
“글쎄요.”
“도박을 해서 돈을 따도 딱히 뭐 없는데. 도박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서성식은 고개를 돌려 강진을
보았다.
“우리 한 게임 맞았죠?”
“네.”
“마권 좀 꺼내 보실래요?”
강진이 마권을 꺼내자, 서성식 이 마권과 남자를 번갈아보다가 말했다.
“찢어 주세요.”
“찢어요? 아직 경기 남아 있는 데요?”
서성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를 보니…… 제가 얼마 나 못났고 바보 같은 놈인지 다 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찢어 주세요.”
서성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권 가운데 부분을 양손으로 잡았다.
“제 손에 손 올리세요. 같이 찢 으시죠.”
“제가 찢지도 못하는 걸요.”
“그래도 저를 만지실 수는 있 죠. 제 손을 잡고 직접 하세요.”
강진의 말에 서성식이 그를 보 다가 손을 내밀었다.
스윽!
강진의 양손에 자신의 손을 올 린 서성식이 그의 손에 쥐어진 마권을 보았다. 잠시간 마권을 보던 그는 강진의 양손을 자신의 손으로 잡은 뒤 힘을 주었다.
치이 익!
작은 소리와 함께 마권이 천천 히 좌우로 찢겨 나갔다.
치이익!
이윽고 완전히 두 갈래로 찢어 진 마권의 모습에 서성식이 씁쓸 하게 웃었다.
“이렇게…… 진작 찢어 버렸어 야 했는데. 이게 뭐라고 그리 붙 잡고 있었는지.”
고개를 저으며 찢어진 마권을 보던 서성식이 피식 웃었다.
“그냥 중간에 똥 밟았다 생각하 고 털고 일어났으면 이러지도 않 았을 텐데. 그게 뭐라고 그리 미 련을 못 버리고.”
“지금이라도 아셨으니 대단하신 겁니다.”
강진은 반 토막 난 마권을 보며 말했다.
“이게 얼마 안 되지만, 당첨 발 표도 안 한 복권 찢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로또를 사서 토요일 6시에 찢어 버리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서성식의 행동은 큰 의미를 가졌다. 특히 도박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더더욱 의미
가 컸다.
강진의 말에 서성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도…… 마권 찢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네 요.”
마권을 보던 서성식은 이충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충만아!”
서성식의 부름에 이충만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서성 식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르신 잘 모시게.”
그리고....
화아악!
서성식이 빛과 함께 사라지자 이충만이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 었다.
“그래. 잘 가시게나. 그리고…… 고생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드는 이충만의 모습이 조금은 쓸쓸하 다 생각을 하던 강진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그의 눈에 쪽지가 떨어 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붙잡 은 강진이 내용을 보았다.
〈저는 제가 제 인생을 잘못 살 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잘못 살았고, 사람처럼 살지 못했다고 요. 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머릿 속으로만 알고 있었던 거였습니 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나는 잘못 살았어, 나는 죽일 놈이야.’ 그렇 게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강진 씨가 오늘 경마장에 저를 데리고 7} 주셔서 제가 잘못 살 았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 었습니다. 바보같이 살았고 가족 들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다는 걸요.
어르신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남았다 생각을 했는데…… 지금 여기에 와서 생각을 해 보니 저 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살아 서 지은 죄 저승에서 받아야 하 니까요.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
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인과응보지요.
충만이한테 전해 주세요. 너도 은혜 갚을 생각하지 말고 죄를 받을 용기를 가지라고요. 어르신 이 우리 사정을 안다면 은혜 갚 는 것보다 그것을 더 원하실 겁 니다.〉
쪽지 내용을 본 강진이 이충만 을 보았다.
‘두 분 다 죄인이구나.’
서성식은 도박을 했다. 직접적 으로는 도박으로 자기를 망가뜨 리고 가족을 힘들게 했다.
게다가 도박을 하기 위해 회사 돈을 가져다 쓰면서 회사 직원들 의 생계까지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죄가 엮이고 엮인 것이 다.
그리고 이충만은 자신을 믿고 있던 김성수를 배신하고 돈을 빼 돌렸다. 그러니 김성수도 죄인이 다.
두 사람 다 저승에 가면 그 죗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현대 이 승을 많이 따라가는 저승이지만, 형벌만은 고전을 지향하는 저승 의 법도에 따라 말이다.
강진은 고개를 젓고는 이충만에 게 쪽지를 주었다. 그것을 받아 들고는 내용을 읽는 것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서성식이 보던 남자를 잠시 보 던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애 아프다는데 집에 들어가시죠. 도박 많이 하 면 안 좋아요.’라는 말이라도 하
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한다고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담배가 몸에 안 좋은 것을 몰라서 피우 겠는가? 백해무익한 것을 알면서 도 피우는 것이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 간섭을 하다니, 싸대가 안 날아오면 다 행일 것이다.
강진이 자신을 보는 걸 느꼈는 지 남자 또한 강진을 보았다. 뭐
냐는 듯 보는 것에 강진이 입을 열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 아요.”
그러고는 강진이 몸을 돌리자, 남자가 미친 사람 보듯이 그의 등을 보았다.
“뭐래는 거야?”
강진을 잠시 보던 남자는 고개 를 젓고는 다시 경마 책자를 보 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를 본 강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는 일행들이 있 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 이제 그만 가죠.”
“왜? 아직 게임 남았는데?”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찢어진 마권을 보여 주었다.
“찢었어요.”
“왜‘?”
“재미가 있어서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그를 보
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이게 또 너무 재밌으면 안 되지.”
너무 재밌으면 중독이 되니 말 이다. 그에 강상식이 임정숙을 보았다.
“아쉽지만 저희도 여기까지 보 고 갈까요?”
강상식이 말에 임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결과는 이따가 알려 주세 요.”
자신이 고른 말들이 이겼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래요. 자, 그럼 갑시다.”
강상식이 들고 있던 마권을 주 머니에 넣고는 걸음을 옮기자 강 진과 귀신들이 그 뒤를 따라 걸 음을 옮겼다.
적당히 즐겼으니 이제 가족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적당히 즐기고 일어나 면 가장 좋은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몸을
살짝 돌려 경마에 빠진 사람들과 귀신들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 었다.
‘도박은 할 것이 못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