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1 화
마치 아이들의 첫사랑 같은 청 순한 매력을 뿜어내는 박혜원을 보던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저기에 한복 입고 나무 밑에 있으면 소희 아가씨 느낌 나겠는 데.”
“이야기해 보면 소설 속 소희 아가씨와 느낌이 더 비슷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박혜원에 게 다가갔다.
연필로 책에 뭔가를 쓰다가 지 우개로 지우며 생각을 하고 있는 박혜원은 이전처럼 자신들이 다 가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반응이 없는 박혜원 대신 아주머니 귀신이 급 히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아주머니 귀신이 서둘러 고개를 숙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쪽은 오늘 혜원
이하고 일 이야기하실 황민성 형 님이세요.”
강진의 소개에 황민성이 웃으며 아주머니 귀신에게 고개를 숙였 다.
“황민성입니다.”
작게 속삭이듯 말을 한 황민성 이 슬쩍 박혜원을 보았다.
정자 한쪽에 있어서 조금 거리 가 있기는 하지만, 주위가 조용 해서 작게 이야기를 해도 못 들 을 거리는 아니었다.
‘여기서 귀신하고 이야기해도 되나?’
황민성이 그런 우려를 할 때, 아주머니 귀신이 놀란 듯 그를 보다가 강진을 보았다.
“이분도 귀신을 보세요?”
“원래는 못 보시는데 오늘은 보 실 수 있어요.”
아주머니 귀신이 황민성을 신기 한 둣 보다가 다시 강진을 보았 다.
“저기 그러면 혹시 저도……
아주머니 귀신이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 작이 간 것이다.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모습 보 이고 만나고 싶겠지만…… 아버 지와 혜원이가 딸과 어머니가 귀 신이 된 것을 보면 마음이 무척 아프실 거예요.’’
“아……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었다. 만날 수 있다면 딸과 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특히 아빠에게는 미안하다고 사 랑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진의 말을 들으니…… 하늘나라에서 잘 있을 거라 생각 한 딸이 귀신이 돼서 구천을 떠 돈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가 슬퍼 할 것이다.
“사장님 말이 맞네요.”
아주머니 귀신이 수긍을 하는 것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사장님 말이 맞아요. 우리 아버지…… 제가 이렇게 귀 신인 거 알면 정말 마음 아파하 실 거예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해도 돼? 혜원이 들으면 어떻게 해?”
분위기를 바꾸려는 것도 있고, 정말 우려가 되는 것도 있었다. 거리가 멀지 않아서 이 정도 대 화 소리 들릴 것 같았다.
황민성이 박혜원의 눈치를 보는 것에 아주머니 귀신이 웃으며 말 했다.
“저렇게 한 번 책 보기 시작하 면 주위 소리에 둔감해요. 큰 소 리가 나기 전에는 고개 안 드니 걱정하지 마세요.”
“애가 집중력이 아주 좋네요.”
“그런 편이에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황민성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래도 모르니까 네가 애 좀
보고 있어. 고개 들면 말하고.”
“네.”
배용수가 박혜원을 주시하자, 황민성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아주머니 귀신이 잘 볼 수 있게 들어 보였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MS 투자 대표 황민성.”
아주머니 귀신이 명함을 보는 것에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강진이한테 들으셨는지 모르겠
지만 이번에 ‘꽃 피어나다’라는 드라마 주인공 아역으로 혜원 양 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강진 씨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요?”
“ 진짜죠.”
“그런데 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그야 혜원 양 어머님이시고 보 호자이 시니까요.”
“하지만 저는 귀신이라 아무것 도 못 하는데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 렇게 죽어서도 딸이 걱정돼 옆에 계신데 아무것도 못 하시다니요. 어머니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혜 원 양 보호자입니다.”
황민성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가 어머니께 이야기 를 드려야죠. 보호자 허락 없이
아이한테 이런 제안하면 저 잡혀 가요.”
황민성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귀신인 자신이 여전히 박혜원의 보호자 라고 말을 해 주는 황민성이 고 가웠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 는 혜원이 들을 때 같이 들으시 고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 있으 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뭐 아나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과 함께 정자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박혜원은 책을 보고 있었 다.
그런 박혜원에게 다가간 강진이 그 앞에 앉으며 바닥을 가볍게 두들겼다.
툭툭툭!
“혜원아.”
강진의 부름에 박혜원이 그를 올려다보고는 웃으며 책을 덮었 다.
“오셨어요?”
그와 동시에 박혜원은 이어폰을 귀에서 뽑았다. 그 모습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스타 일이야?”
“아니요.”
박혜원이 웃으며 이어폰 줄을 당기자, 이어폰 끝이 나왔다.
그녀는 아무것도 연결이 안 되 어 있던 이어폰을 흔들었다.
“그냥 귀에 꽂고만 있어요.”
“왜? 아, 소리 안 들으려고?”
강진의 물음에 박혜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학교가 이 근처에 있어서 저 아는 애들이 가끔 말을 걸거 든요. 그럼 대꾸 안 하려고 꽂아 놓은 거예요.”
“왜?”
“공부하는데 말 걸면 귀찮고 방 해되잖아요. 그래서……
박혜원은 다시 이어폰을 꽂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싸가지가 없어서 네 말에 반응을 안 한 것이 아니야. 음악 을 듣고 있어서 네가 하는 말을 못 들어서 그래. 뭐, 대충 이런 컨셉이 에요.”
박혜원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피식 웃었다.
“왜 애들이 말을 많이 걸어?”
“그냥 남자애들이 저를 못살게 구네요. 후! 이쁜 건 알아가지 고.”
박혜원은 머리카락을 살며시 귓 가로 쓸어 넘기고는 황민성을 향 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박혜원입니다.”
박혜원이 먼저 인사를 하자,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 내가 이야기한 황민성 형 이야.”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박혜원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황민성입니 다.”
황민성이 명함을 꺼내 내밀자, 박혜원이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았 다.
“투자 회사 대표시네요?”
명함을 본 박혜원이 눈을 반짝 이며 황민성을 보았다. 그 시선 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작지만 꽤 큰 회사입니다.”
“작지만 커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묻는 박 혜원을 보던 황민성은 人} 가지고 온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꺼냈 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음료는 적당한 걸로, 조각 케이크는 종 류대로 사 왔습니다.”
“와……
예쁘장한 조각 케이크들을 보며 박혜원이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강진이한테 이야기 들었다고 하는데, 제가 왜 온 줄은 알죠?”
“네.”
박혜원의 말에 황민성이 주스를 가리켰다.
“일단 음료 드시면서 이야기 나 눌까요?”
황민성은 주스를 박혜원 앞에 놓고, 강진에게도 커피를 내밀었 다.
커피를 받아 든 강진이 앞에 놓 인 조각 케이크들을 보며 말했
다.
“혜원이는 조각 케이크 뭐 먹을 래?”
“저는…… 이거요.”
빨간 벨벳 조각 케이크를 고르 는 박혜원을 보며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나는 바나나 케이크.”
강진은 배용수의 앞 쪽으로 바 나나 케이크를 슬쩍 밀어 주고는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왕 가져온 거니 어머니도 드 세요. 어머니가 드시고 그거 민 성 형이 먹으면 되니 음식 버리 는 것도 아니에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아주머 니 귀신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게 하자는 의미였다.
“그럼…… 딸기 케이크로.”
딸기 케이크를 슬쩍 황민성 옆 에 놓자 아주머니 귀신이 슬며시 그 앞에 자리를 했다.
그에 황민성이 조각 케이크를 감싼 케이스를 열고는 포크를 아 주머니 귀신 쪽에 놓았다.
그 사이, 벨벳 케이크를 한 입 맛보고 미소를 지은 박혜원이 입 을 열었다.
“오빠 이야기 듣고 생각을 해 봤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생각을 해 봤어?”
“그럼요. 드라마 아역으로 출연
하라는 건데 제가 생각을 안 했 겠어요? 제 일이잖아요.”
당당한 박혜원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당당한 것이 아가씨와 정말 비 슷하네.’
황민성이 웃는 것을 보며 박혜 원이 말했다.
“연기 트레이닝은 받게 해 주실 거죠?”
“물론이지.”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노트를 집어서는 넘겼다.
강진이 슬쩍 보니, 자신이 물어 보고 확인해야 할 내용들을 미리 적어 온 모양이었다.
그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그 시선에 황민성도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 저 월급 받는 건가요?”
월급이라는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왜 웃으세요?”
황민성이 웃자 박혜원이 눈을 찡그렸다.
사실 돈 문제를 말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물은 건데 황민성 이 웃으니 속이 상한 것이다.
그에 황민성이 급히 고개를 저 었다.
“아닙니다. 강진이가 혜원 양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나서 웃은 겁니다.”
황민성은 노트를 보며 말했다.
“말로 하기 민망한 질문들이 있 는 것 같으니 줘 보시겠어요? 제 가 보고 답을 해 드리는 것이 편 할 것 같은데요.”
황민성의 말에 잠시 주저하던 박혜원이 노트를 내밀었다. 그에 황민성이 노트에 적힌 내용들을 읽어 내려갔다.
<1. 월급, 출연료는 어떻게 되
는지.
2. 연기 처음인데 트레이닝 해
주는지.
3. 드라마 촬영 장소가 멀면 어 떻게 가야 하는지.
…….>
열 개 정도 적혀 있는 것을 보 며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출연료는 물론 지급이 됩니 다.”
“ 얼마나요?”
“그건......"
황민성은 바닥에 놓인 연필을 집어 노트 한쪽에 숫자를 써서는 그녀에게 보였다.
“이렇게 많이요?”
“아역 배우들이 받는 출연료에 서 조금 더한 금액입니다. 하지 만 이건 오디션에 정식으로 통과 하고 계약서를 쓴 후에 지급이 됩니다.”
“오디션요?”
“강진이와 제가 혜원 양이 마음 에 든다고 해도, 혜원 양은 아직
연기 초보니까요. 감독님에게 오 디션을 봐야 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잠시 노트에 적힌 숫자를 보다가 물었 다.
“저하고 비슷한 나이 대 애들이 오디션 보러 오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럼 할게요.”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그에 대 한 걱정은 없나요?”
황민성의 물음에 박혜원이 웃었 다.
“일일이 걱정하는 스타일은 아 니에요.”
“그래요?”
“저는 준비를 할 뿐이에요. 아 침을 잘 챙겨 먹으면서 키가 클 준비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내 일을 준비하죠.”
박혜원의 말에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준비를 하고 결과는 하늘
에 맡긴다는 건가?”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의아하 다는 듯 그를 보았다.
“왜 하늘에 맡겨요?”
“응?”
“준비를 했으니 당연히 결과를 봐야죠. 준비된 자는 기회를 놓 치지 않는 거예요.”
박혜원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준비 안 된 자에게 온 기회는 ‘아…… 까비.’로 끝이 나 고 말이다.
물론, 준비를 해도 안 되는 것 이 어른들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건 아직 알 필요가 없겠지.’
다만…….
“너 말고도 소희 아가씨 아역 준비하는 배우들 많아. 준비 열
심히 해야 할 거야.”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그 애들도 물론 열심히 하겠 죠. 하지만…… 저보다 간절하지 는 않을 거예요.”
“왜, 돈 때문에?”
강진의 물음에 박혜원이 잠시 있다가 웃으며 조각 케이크를 입 에 넣었다.
“그럼 다음 사항들 이야기해요. 3번 조항. 드라마 찍게 되면 저
혼자 촬영지 가는 거예요?”
자신이 생각한 것들에 대해 질 문을 하는 박혜원을 보며 황민성 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설 명을 들으며 박혜원은 궁금한 것 을 더 말했다.
“기획사에 들어가면 저 출연료 분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현실적인 질문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