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3화
상자 속에서 책을 꺼낸 강진이 그것을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이 책 여주인공 아역이 이번에 혜원이가 볼 오디션 배역입니 다.”
“오디션요?”
오디션을 봐야 한다는 말은 못 들었는지 할아버지가 박혜원을 보았다.
“두 분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 시지만 나 연기는 처음이라 감독 님 앞에서 오디션을 봐야 해.”
별거 아니라는 둣 말하는 박혜 원의 모습에 할아버지가 걱정스 러운 얼굴로 말했다.
“통과 못 하면?”
“통과를 왜 못 해. 할아버지 나 못 믿어?”
박혜원의 말에 할아버지가 입맛 을 다셨다. 당연히 자신의 손녀 를 믿는다.
다만…… 지금 이게 좋은 일인 지 아닌지 감이 오지 않을 뿐이 었다.
‘드라마라니…… 배우라니?’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한숨을 쉰 할아버지는 강진이 들고 있는 책을 보았다.
“꽃 피어나다.”
할아버지가 제목을 읽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그것을 다시 내밀 었다.
“가지고 계시다가 한 번 읽어보
세요. 손녀가 무슨 캐릭터를 연 기하는지 보시면 좋을 거예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책 저희 많이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책을 받아 펼쳐 보았다.
그러고는 책장을 대충 넘기며 안을 보았다. 물론 그 내용이 눈 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저 책 을 받았으니 펼쳐 봤을 뿐이었 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아주머니
귀신이 말했다.
“아빠, 이 두 분 정말 믿어도 좋은 분이야.”
아주머니 귀신의 말을 듣지 못 하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책을 볼 뿐이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있을 때, 한쪽에서 전화를 하던 황민성이 다가왔다.
“다행히 제가 아는 분 중에 일 성금속 사장님을 아시는 분이 계 시더군요.”
네?”
할아버지가 책에서 눈을 떼는 순간, 그의 주머니에서 벨이 울 렸다.
살짝 시끄러운 경음악 벨 소리 에 할아버지가 핸드폰을 꺼내 보 았다.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는 것에 할아버지가 의아해할 때, 황민성이 말했다.
“받아 보시겠어요?”
황민성의 말에 할아버지가 전화 를 받았다.
“여보세요.”
[박다성 씨, 나 사장입니다.]
“아.. 사장님. 저한테 어쩐
일로.”
[제가 방금 누구한테 전화를 받 았는데…… 황민성 씨가 박다성 씨하고 같이 있다고 하던데, 맞 아요?]
사장의 말에 할아버지가 황민성 을 보았다.
“네.”
[황민성 씨를 어떻게 알아요? 아…… 아니, 모르겠구나. 일단
저한테 전화를 해 주신 분이 황 민성 씨가 서울에서 엄청 큰 투 자 회사를 운영하신대요. 그러니 까 무슨 일인지 몰라도 무례하게 하면 안 돼요. 잘못하면 우리 회 사 공중분해된대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로 그런 거 물을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친하게 있으세요. 그리 고 다음에 저도 한 번 같이해서 식사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무례하게 하면 안 됩니 다.]
“네. 네.”
그걸로 통화를 끝낸 할아버지가 황민성을 보았다. 그런 할아버지 를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사장님 전화번호가 입력 안 되 어 있으신가 보네요.”
“사장님하고 통화할 일이 없으 니까요.”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도 예전에 주유소에서 아르 바이트할 때 사장님 전화번호를 몰랐다.
같이 일하는 형들과 소장님 번 호나 가지고 있지, 사장하고 이 야기를 나눌 일은 없으니 말이 다.
“그럼 이제 저 이상한 사람 아 니라는 거 믿으시겠죠?”
“아......" 네.”
할아버지는 말투가 전과 달리 조심스러웠다.
자신에겐 사장도 대단한 사람인 데, 그 사장이 신신당부한 사람 이니 말이다.
황민성은 최대한 편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럼 일단 저희 식사라도 하면 서 이야기를 하실까요?”
황민성이 뒷좌석 문을 열자, 박 혜원이 웃으며 할아버지 손을 잡 았다.
“그래요. 우리 먹으면서 이야기 해요.”
할아버지는 잠시 주저하다가 고 개를 끄덕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박혜원과 할아버지가 차에 타자 황민성도 차에 타고는 강진을 보 았다.
“우리 먼저 갈게.”
“그러세요.”
차에 타지 않는 강진의 모습에 박혜원이 의아한 듯 창문을 열었 다.
“오빠는 안 가요?”
“나는 다른 볼 일이 있어. 먼저 가.”
“나 오빠 가게에서 먹는 줄 알 았는데?”
“우리 가게에서 먹을 거야. 먼 저 가 있어. 아니면 내가 먼저 도착할 수도 있고.”
“음…… 알았어요. 빨리 와요.”
박혜원이 창문을 닫자, 차가 천 천히 주차장을 벗어났다. 그것을 보던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어서 가자. 음식 준비하고 하
려면 빠듯하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끄덕이고는 빌라 안으로 다. 고개를 들어왔
그러고는 계단을 통해 내려온 강진이 창고처럼 지하로 보이는
문에 JS 명함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문을 열자…….
화아악!
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에 강진 이 안으로 들어갔다.
* * *
“어서 오세요.”
강진이 웃으며 자신들을 반기는 것에 박혜원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어떻게 저희보다 빨리 오셨어 요?”
“친구 놈이 좀 빨리 밟더라고.”
“우리 차도 되게 빨리 왔는데?”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한쪽 빈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앉아.”
박혜원은 어떻게 빨리 온 건지 알려달라는 듯 계속 쳐다보았으 나 강진은 그저 미소 지을 뿐이 었다. 그 일에 대해 설명을 해 줄 수 없으니 말이다.
강진은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여기가 제 식당입니다.”
“그렇군요.”
할아버지가 가게를 두리번거리 는 것을 보며 박혜원이 말했다.
“여기 음식 되게 맛있어요.”
“그근] 니?”
“전에 할아버지 생일에 먹은 음 식들도 여기 오빠가 해 준 거예 요.”
“그래? 나는 혜원이 네가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구 나.”
“아차!”
박혜원이 머쓱한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헤! 제가 하는 것도 좋지 만 맛있는 것 차려 드리고 싶었 어요.”
“나는 혜원이가 해 준 게 가장 맛있어.”
“그래도요.”
박혜원이 웃으며 손을 잡자 할 아버지가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 듬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날 음식이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세요. 음식 준비해 드릴게요.”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는 대부분의 음식을
잘 하지만 손님이 좋아하는 음식 을 특히 잘 합니다. 혹시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말했다.
“돼지고기 들어간 김치찌개 해 주세요.”
“김치찌개?”
“할아버지 그거 좋아하세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할아버지 를 보았다. 그 시선에 할아버지 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에 들 어가며 이혜미를 보자, 그녀가 밖으로 서둘러 나왔다.
밖으로 나간 이혜미가 아주머니 귀신을 데리고 다시 주방으로 들 어왔다.
아주머니 귀신이 들어오자 배용 수가 빠르게 말했다.
“강진이가 할 말이 많을 것 같
으니 그건 음식 하면서 하고요. 일단 저부터. 할아버지 음식 뭐 좋아하세요? 특히 김치찌개 좋아 하는 스타일 있으세요?”
빠르게 말하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과 아주머니 귀신이 그를 보 았다.
“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말했다.
“분명 너는 차에서 무슨 이야기 나눴느냐? 일 어떻게 되는 것 같 냐? 그런 이야기 물을 것 아니
야?”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음식부터 하자고.”
그러고는 배용수가 아주머니 귀 신을 보았다. 그 시선에 아주머 니 귀신이 당황스러워하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용수가 음식에는 무척 진 지한 스타일이거든요. 그럼 음식 스타일부터 말씀해 주세요. 아! 김치찌개 말고도 할아버님…… 아니, 아버님이 좋아하는 음식도
몇 개 이야기해 주세요.”
배용수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빠는 김치찌개 비계 많이 들 어간 건 안 좋아하세요.”
“그래요? 비계하고 고기가 적당 히 있어야 맛이 좋은데?”
배용수가 의아한 듯 말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음식이야 개인 취향이니까요. 그럼 비계를 빼고 담백하게
배용수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또 아니에요.”
“네?”
“아버지는 비계가 물렁하다고 싫어하는데, 대신 김치찌개가 기 름진 건 좋아하세요.”
“기름진 건 좋아하는데 비계 든 건 싫다……. 그럼 비계만 따로 넣고 끓이다가 고기 넣어서 하나 요? 비계는 빼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주머니 귀신이 놀란 듯 보자, 배용수가 웃었다.
“제가 요리사 아니겠어요.”
그는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를 꺼 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기름진 김치찌개를 좋 아하신다고 하니 비계를 넣었다 가 빼면 되잖아요.”
배용수는 냄비에 돼지비계만 잘 라 넣고는 볶기 시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비계가 냄비에 들러붙어 찢기는 것을 보며 이리저리 국자를 움직 이며 기름을 뽑아낸 배용수가 아 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아버님 고추기름 좋아하세요? 육개장 국물 느낌?”
“좋아하세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고춧가루를 기름에 툭툭 넣었다.
그렇게 고춧기름을 만들어낸 배 용수가 지방을 꺼내 버리고는 김
치와 육수를 넣었다.
“다른 좋아하는 음식은 있나 요?”
“아버지 분홍 소시지 계란 입힌 거 좋아하세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 소시지 싫어하는 사람 드 물죠. 그리고 다른 건요?”
“줄줄이 비엔나도 좋아하세요.”
“식성이…… 젊으시네요.”
배용수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좀 애 같죠.”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사실 다 어린 시절이 있고, 어 린 식성이 있잖아요. 어른이라고 해도 어릴 때 입맛이 더 맞을 수 도 있죠.”
“맞아요. 저도 사탕이 좋더라고 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재료들을 꺼내다가 냉장고에서 알사탕을 꺼내 봉지를 뜯어 내밀 었다.
“그럼 이거 하나 드시고 있으세 요.”
배용수가 건네주는 사탕을 받은 아주머니 귀신이 물었다.
“이것도 저승 음식이에요?”
“귀신의 손에 잡히는 건 저승 음식이죠.”
배용수가 재료를 꺼내 준비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아주머니 귀신
을 보았다. 아주머니 귀신은 사 탕을 입에 넣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맛있으세요?”
“정말 복숭아로 만든 것 같아 요.”
달달한 복숭아 맛에 미소를 짓 는 아주머니 귀신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 음식들이 정말 맛이 좋아 요.”
“그런 것 같아요.”
사탕을 먹는 아주머니 귀신에게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차 타고 오면서 이야기는 좀 하셨어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궁금한 것이 많아서 이 것저것 많이 물으셨고, 사장님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어요.”
“그럼 할아버지 마음은 어떠신 것 같아요?”
“혜원이가 드라마 배우가 된다
는 것에 기특해하고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다만…… 오디션에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아주머니 귀신이 입맛을 다시며 홀을 보았다.
“혹시라도 떨어져서 마음에 상 처가 될까 봐서요.”
그러고는 아주머니가 강진을 슬 며시 보았다.
“오디션에…… 떨어질 수도 있 는 거죠?”
걱정스러워하는 아주머니 귀신 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제가 혜원이 몇 번 보지 못했 지만, 혜원이처럼 어린 나이에 주관이 뚜렷하고 똑똑한 아이를 본 적이 없어요. 혜원이 정말 잘 할 겁니다.”
“그럴까요?”
아주머니 귀신을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혜원이를 믿어 보세요. 어머니 가 믿어 주셔야죠.”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 다.
“제 딸 믿죠. 하지만…… 믿는 것과 걱정은 다른 것 같아요.”
아주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며 홀을 보았다.
“물가에서 놀면 물이 걱정, 놀 이터에서 놀면 넘어질까 걱 정…… 그리고 지금은 드라마 오
디션 걱정……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게 어머니죠. 자식이 늦게 들 어오면 늦게 들어와서 걱정이고, 술을 마시면 또 걱정이고. 늘 자 식 일에 대해 걱정하는……
그리고 그건 죽은 아주머니 귀 신도 마찬가지였다. 죽으나 사나 자식 걱정은 놓을 수 없는 것이 어머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