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54화 (952/1,050)

954화

홀에서는 황민성이 웃으며 이야 기를 하고 있었다.

“기획사에서 혜원이를 케어하면 서 촬영지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다 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민성의 말에 할아버지가 박혜 원을 한 번 보고는 물었다.

“그럼 매니저라는 사람은 남자 입니까, 여자입니까?”

“아무래도 여자 매니저가 편하 시겠죠?”

“아무래도 여자아이니…… 여자 매니저가 담당해 주시는 것이 마 음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럼 여자 매니저가 하는 걸로 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민성이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 주는 것에 안도가 되는지 할 아버지의 얼굴은 처음보다 많이 편해져 있었다.

“그럼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십 니까?”

“그 기획사 사람도 만나보고 싶 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였다.

“당연히 만나셔야죠. 드라마라 고 해도 분명 노동인데 미성년자 일하려면 보호자의 허락이 있어 야 하니까요.”

황민성은 할아버지와 박혜원을 보았다.

“그럼 아예 오늘 만나보시겠습 니까?”

“오늘요?”

“내일 시간 내기도 불편하실 테 니 지금 그쪽 관계자 오라고 해 서 이야기 좀 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갑자기 연락해도 될지?”

“일단 물어보는 거지요. 된다고 하면 시간 아낄 수 있으니 좋지 요. 그리고 기획사도 강남에 위 치해 있어서 오는 데 오래 걸리

지 않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민성은 홀 한쪽에 가서 기획사 대표에게 전 화를 걸었다. 황민성이 전화를 하러 간 사이, 강진이 음식을 쟁 반에 담아 홀로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이 웃으며 음식을 놓자, 박 혜원이 접시들을 탁자로 옮겼다.

“고마워.”

“아니에요.”

박혜원과 함께 음식들을 식탁에 세팅한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기획사 관계자분 모셔서 오늘 이야기 다 끝낸다고 통화 중이세 요.”

“지금?”

“기획사가 강남이라 가깝대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쟁반을 다른 테이블에 올려두고는 자리 에 앉았다. 다행히 박혜원과 할 아버지가 오기 전에 마지막 손님 이 가서 지금 가게 안에는 그들

만 있었다.

강진이 자리에 앉자 황민성도 통화를 마치고 앉았다.

“뭐래요?”

“이십 분 안으로 온대.”

그러고는 황민성이 박혜원을 보 았다.

“계약서도 가지고 오기로 했 어.”

물을 한 모금 마신 황민성이 말 을 이었다.

“계약 기간은 꽃 피어나다 촬영 부터 방영이 끝나는 기간 동안이 고, 그 기간 동안 방송 출연에 관한 모든 것을 그쪽에서 케어를 해 줄 거야.”

“배분 문제는요?”

배분 문제를 다시 집는 박혜원 을 보고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 다.

“그것도 말해 놨어. 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꽃 피어나다 작 품에 한해서야. 이 작품 후에 걸 리는 활동에는 배분 관련 계약이

다시 될 거야. 물론 네가 배우를 계속 하겠다고 하면 말이야.”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그를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혹시 저 때문에 사장님 이 손해 보시는 거 아니에요?”

“ 나?”

“기획사도 돈 벌어야 하는 회사 인데…… 저한테 매니저 붙여 주 고 케어하는 거 다 돈 들어가잖 아요. 그게 다 무료 봉사면 사장 님이 뭔가 줘야 하지 않아요?”

박혜원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똑똑하다 고 생각은 했지만…… 세상일을 너무 잘 아는 게 꼭 어른 같았 다.

‘어린 나이에 이런 것까지 생각 하다니……

어린애는 어린애처럼 순수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좋은데, 박혜 원은 어린 나이에 벌써 어른처럼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이 너를 너무 일찍 어른으 로 만들었구나.’

조금 짠한 눈으로 박혜원을 보 던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를 받으면 한 가지를 주는 것이 세상일이기는 한데, 우리 같은 사업가들은 투자라는 것을 하지.”

“투자요?”

“일단 혜원이는 좋은 투자 대상 이야.”

“제 가요?”

“기획사 쪽에서는 이미 네가 ‘꽃 피어나다’에 캐스팅됐다고 생

각하거든.”

“오디션 봐야 하는데요?”

박혜원이 의아한 듯 보자, 황민 성이 고개를 저었다.

“드라마 제작하는 내가 너를 직 접 기획사에 밀었으니 네가 내정 이 됐고 오디션은 그냥 보는 거 라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렇게 말을 하셨어요?”

“전혀. 나는 네가 꽃 피어나다 아역에 어울리는 학생이라고만 했어. 그러니 오디션을 보게 트

레이닝을 시켜 주라고 했고. 그 런데 그쪽에서 멋대로 네가 내정 이 됐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웃었 다.

“그야 드라마 제작하는 사장님 이 저를 가르치라고 하니 그쪽에 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건 그쪽 생각인 거고 나한테는 안 물어봤잖아. 물어봤으면 오디션에서 결정이 날 거라고 내가 말을 했겠지, 말 을 안 했겠어?”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황민성의 행동에 이익을 보는 건 자신이니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기획사에서 배우 하나 키울 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돈이 들어가거든. 너는 한 달 투자하 고 바로 드라마 들어가는 거니 그쪽에서는 투자를 안 할 이유가 없지.”

“물론 제가 오디션을 통과해야 되지만요.”

“그러니 너를 더 열심히 가르치

고 케어하겠지.”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사기꾼 안 만들려면 제 가 더 열심히 해서 꼭 오디션 통 과해야겠네요.”

“그래. 열심히 해서 꼭 오디션 통과해야 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식 사부터 하시죠. 가장 맛있는 음

식은 갓 만든 음식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분홍 소 시지와 줄줄이 소시지를 보고는 웃었다.

“분홍 소시지 오랜만이네.”

“가끔 밑반찬으로 내면 이게 리 필 일 순위예요.”

“분홍 소시지가 맛있지.”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 락을 들려다가 할아버지를 보았 다.

“수저 드시죠.”

“아, 네.”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자 황민성 과 사람들이 젓가락을 들고는 분 홍 소시지를 집었다.

“요즘 햄 잘 나와서 이것보다 맛있는 햄들 많은데…… 이걸 보 면 손이 안 갈 수가 없어.”

“분홍 소시지는 추억이죠.”

강진도 분홍 소시지를 집으며 말했다.

“어릴 때 이거 도시락에 안 싼 대한민국 사람은 없을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의 말대로 어릴 때 도시락 반찬으로 분홍 소시지 를 안 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제 학교를 다니는 세대 는 이런것을 잘 모를 테지 만..e

황민성은 분홍 소시지를 먹다가 박혜원을 보았다.

“혜원이가 햄을 좋아하나 보

네.”

“네? 저요?”

“혜원이가 좋아하니 강진이가 줄줄이 소시지 한 거 아니야?”

황민성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강진이네 가게에서는 이런 줄 줄이 소시지로 반찬을 안 하거 드 ”

“제가요?”

“몰랐어?”

황민성이 보자, 강진이 줄줄이

소시지를 보다가 “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 소시지는 손님들이 좋아해 서 자주 밑반찬으로 냈지만, 줄 줄이 소시지로 반찬을 해서 낸 적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배용수가 햄 반찬보다는 나물이나 고기반찬을 해서 내는 걸 더 선호하는 것이 다.

“줄줄이 소시지는 할아버지가 좋아하세요.”

“할아버님이?”

황민성이 보자, 할아버지가 웃 으며 말했다.

“제가 이런 반찬을 좋아합니 다.”

“아…… 그러시군요.”

“죽은 집사람이 애 입맛이라고 자주 뭐라고 했는데…… 그래도 맛있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할아버지가 웃으며 분홍 소시지 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맛있다는 듯 웃는 것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어른 입이나 아이 입 이나 내 입에 맞는 게 가장 맛있 는 거죠.”

황민성이 웃으며 줄줄이 소시지 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 를 끄덕였다.

“탱글탱글하네. 어디 햄이야?”

“목촌요.”

“그래? 맛있네.”

황민성의 말에 할아버지도 소시

지를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네요. 그리고 많이 안 짜고 좋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말했 다.

“줄줄이 소시지 드시기 전에 살 짝 칼집을 내고 뜨거운 물에 담 갔다가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 세요.”

“전자레인지에요?”

“그렇게 하면 햄 기름기하고 짠

성분들이 빠지거든요. 그러면 그 냥 먹어도 좋고 프라이팬에 구워 도 맛있어요. 아! 물에 그렇게 하면 겉이 더 뽀듯뽀듯한 식감이 살아납니다.”

“그렇군요.”

할아버지가 몰랐다는 듯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짠맛이 좋으시면 그냥 드셔도 되고요.”

강진이 햄을 하나 집어 입에 넣 고는 말을 이었다.

“가끔 짠 햄 하나하고 따뜻한 밥만 해서 먹어도 맛이 좋더라고 요. 단짠 단짠이라고 할까요?”

밥을 천천히 잘 씹으면 단맛이 나고 거기에 햄을 먹으면 짠맛이 돌면서 맛이 더 좋았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고 식사 편하게 하세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소주도 한 병 가져와라. 이런

안주에 소주가 빠질 수는 없지.”

황민성은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 를 보았다.

“소주 괜찮으시죠?”

“아! 저는 술 안 먹습니다.”

“술 안 드세요?”

황민성이 의아한 듯 하는 말에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며 음식 들을 보았다. 음식들은 모두 자 신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술을 끊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황민성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사장님 말씀대로 이런 안주를 두고 소주 한 잔 안 하는 것도 이상하죠. 저는 괜찮으니 드십시 오.”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건강 생 각해서 술을 끓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소시지를 먹고 있는 박혜원을 보며 말했다.

“이 녀석 시집갈 때까지는 제가 건강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할아버지의 말에 박혜원이 고개 를 끄덕였다.

“맞아.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야 해.”

“그래. 알았다.”

할아버지가 웃으며 하는 말에 박혜원이 입맛을 다시며 밥을 먹 었다.

‘할아버지 없으면…… 나 너무 외로울 거야. 그러니까 꼭 오래

오래 살아야 해. 그래야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할아버지 호강시켜 주지.’

속으로 중얼거린 박혜원이 김치 찌개를 떠서 먹어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 할아버지 드셔 보세 요.”

박혜원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 를 끄덕이고는 김치찌개 국물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뒤이어 할 아버지의 입에 감탄성이 흘러나 왔다.

크으으 I”

정말 맛있을 때 나오는 감탄성 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입에 맞으세요?”

“정말 좋네요.”

작게 기침을 한 할아버지는 다 시 국물을 떠먹고는 김치와 고기 를 집어 밥 위에 올린 뒤 크게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주르륵!

입가에 살짝 국물을 흘리며 먹

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박혜원이 티슈를 뽑아 입가를 닦아 주었 다.

그에 할아버지가 티슈를 받아 자신이 직접 닦으며 미소를 지었 다.

“정말 맛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박혜원이 웃으 며 말했다.

“여기 음식 정말 맛있지?”

박혜원의 말에 황민성이 두 사 람을 보다가 말했다.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가 부녀 지간처럼 친밀해 보이네요.”

“하! 그렇습니까?”

“네. 정말 사이가 좋아 보입니 다.”

황민성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딸이 있습니다.”

“그러세요?”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 난아이인데, 두 사람을 보고 있 으니……

황민성이 티슈 통을 보며 웃었 다.

“제 딸 크면 입가에 뭐 좀 묻히 고 있어야겠습니다.”

박혜원이 입가에 묻은 국물을 닦아 주는 것을 보며 부러운 것 과 동시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황소희가 커서 자신의 입가를 닦아줄 날이 말이다.

‘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딸 을 낳기를 잘 했어.’

물론 자신이 잘 했다기보다는 황소희가 그와 김이슬에게 찾아 온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 작은 소희 어서 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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