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 화
박혜원은 할아버지에게 이것저 것 먹어 보라면서 밥 위에 반찬 을 올려주었다. 그런 박혜원을 보던 황민성은 슬쩍 두 사람 뒤 에 서 있는 아주머니 귀신을 보 았다.
아주머니 귀신은 아버지와 딸을 흐뭇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아주머니 귀신을 보던 황 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
방에서 밥과 국을 한 그릇 더 가 지고 나왔다.
그러고는 통로 쪽 자리에 밥과 그릇을 두고 의자를 가져다 놓았 다.
“그건 왜요?”
박혜원이 의아한 듯 보자, 황민 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따가 기획사 관계자 오면 먹 으라고.”
“그걸 벌써 놔요?”
“아…… 그것도 그러네.”
황민성이 미처 생각 못 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먹겠다고 하면 새로 가져다 두 고, 우리 모자라면 우리가 먹자.”
황민성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아주머니 귀신에게 슬쩍 눈짓을 주었다. 그에 아주머니 귀신이 황민성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귀신이 자리에 앉는 걸 보던 강진은 식탁 밑으로 손
을 뻗어 황민성의 무릎에 올렸 다.
꾸욱!
그리고 살짝 쥐자, 황민성이 웃 으며 그 손을 툭 쳤다.
“간지러워.”
황민성의 말에 강진 또한 웃었 다.
주방에서 이것저것 챙겨 드렸던 터라 홀에서까지 챙길 생각을 못 했는데, 황민성이 놓치지 않고 챙겨 주니 고마웠다.
주방에서 아무리 맛있는 걸 많 이 먹었다 해도, 가족끼리 한 식 탁에서 같이 먹는 것이 가장 맛 있을 것이었다.
강진은 슬며시 일어나며 말했 다.
“이렇게 좋은 안주를 두고 약주 한 잔 안 하시는 것도 문제인 것 같네요. 어떻게, 약주 한 잔 드릴 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손을 저으며 거절을
하는 것에 강진이 말했다.
“그냥 술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약주예요. 무려 산삼주거든요.”
“산삼주?”
할아버지가 보자 강진이 일어나 서는 주방에서 담금주 통을 들고 왔다.
“작년에 담그고 아직 개봉 안 한 산삼주입니다.”
“이게 산삼?”
할아버지가 신기한 듯 산삼주
통을 보는 사이, 황민성도 산삼 주를 보았다.
“색 곱네.”
“색이 진한 만큼 산삼의 약효도 잘 녹아들었습니다.”
강진은 뚜껑을 열어서는 국자로 소주잔에 한 잔씩 따라 놓았다.
“산삼주가 술이기는 해도 정력 을 보하는 효과가 있어서 몸에 좋습니다. 한두 잔만 하세요.”
할아버지는 정력이라는 말에 침 을 삼키고는 슬며시 잔을 들어
향을 맡았다.
“향이 아주 좋습니다.”
“술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지 만 한두 잔 정도로 자제해서 마 시면 몸에 좋습니다. 그리고 이 건…… 무려 산삼이 들어갔으니 보약 중에 보약이죠.”
강진은 말을 하며 박혜원에게 눈짓을 했다. 그 시선에 박혜원 이 산삼주를 보다가 뭔가를 생각 하더니 웃으며 할아버지를 보았 다.
“할아버지, 마시자. 산삼주면 보 약이라고 생각하고 마시면 되 지.”
‘산삼이 엄청 비싼데 이걸 안 마시면 안 되지.’
할아버지가 술을 안 마시는 건 알지만, 강진의 말대로 무려 산 삼이 들어간 술이었다. 그래서 마시라는 것이다. 몸에 좋은 건 할아버지가 먹어야 하니 말이다.
박혜원은 소시지를 하나 집어 들고는 한 손으로 밑을 바치며 말했다.
“한 잔 쭈욱 드시고 이거 드세 요.”
박혜원이 웃으며 안주를 들어 보이는 것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산삼주를 보았다.
“예쁜 손녀가 안주까지 챙겨 주 는데…… 그래. 약이라 생각하고 한잔하자꾸나.”
그러고는 단숨에 산삼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윽! 좋다!”
박혜원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탄성을 토하는 할아버지의 입가 에 소시지를 가져다 댔다. 그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입을 벌려서 는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산삼 주를 조금 더 떠서 잔에 따라 주 고는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아주머니 귀신 앞에도 한 잔 따 라 놓았으니 마시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아주머니 귀신은 딸과 아버지를 보며 미소를 지을 뿐이 었다.
그리고 그건 황민성도 마찬가지
였다. 황민성도 할아버지 입에 안주를 넣어 주는 박혜원을 흐뭇 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박혜원을 보고 있으니 나중에 작은 소희가 커서 자신한테 저렇 게 해 주는 것이 상상이 되는 것 이다.
‘술자리에 작은 소희 언제부터 앉힐 수 있을까? 한 아홉 살 되 면…… 옆에 앉혀도 되나?’
작은 소희가 초등학생쯤 되면, 집에서 반주할 때 안주 하나씩 입에 넣어 줄 수는 있을 것 같았
다.
소주를 한 잔 마실 때마다 작은 소희가 안주를 입에 넣어주는 것 을 생각하던 황민성이 웃었다.
‘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역 시 딸이 최고야.’
빨리 작은 소희가 컸으면 좋겠 다는 생각을 하며 황민성이 산삼 주를 입에 넣었다.
꿀꺽!
약초 향…… 인삼 향과 비슷한 향이 깊게 나는 산삼주를 마신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구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가끔 힘 빠진다 싶을 때 한 모금 하고 자는데, 이거 먹고 자고 일어나면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그를 보 았다.
“이거 작년에 담그고 개봉 안 하셨다면서요?”
“우리 집에 산삼주가 좀 있거 드 ”
“산삼주를 몇 개씩이나 만드세 요?”
“강원도에 나와 친한 산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나 가면 산삼하 고 도라지, 더덕 같은 것을 캐서 챙겨 주지.”
“와…… 정말 좋은 친구네요. 그런데 정말 이거 먹고 자면 다 음 날 기운이 나요?”
“진짜로 그래. 안 먹은 날과 먹
은 날의 차이가 확실하다고 할 까?”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산삼주를 보았다.
“할아버지 한 잔 더 하세요. 먹 으면 몸에 좋대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한 잔 더 드시죠.”
강진이 잔을 들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들었다. 그에 강진과 황민성이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그 시선에 아주머니 귀신이 웃 으며 잔을 들었다.
“한 말씀 하시죠.”
황민성의 말에 할아버지가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혜원이 예쁘게 봐 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조금 민망한 듯 웃 으며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그 에 박혜원이 웃으며 말했다.
“내 오디션을 기원하며! 이런 걸 해야지. 그게 지금 가장 큰 일인데.”
박혜원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 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이야 잘 되면 가장 좋지 만…… 나는 너를 생각해 주고 도와주는 이 두 분을 만난 것이 더 기분이 좋구나.”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 했다.
“붙으면 가장 좋지만, 떨어지더
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그 저 좋은 경험했다 생각을 하면 돼.”
“무슨 떨어지는 것이 좋은 경험 이야. 붙는 것이 좋은 경험이지.”
“세상에 안 좋은 경험은 없어.”
박혜원이 보자 강진이 말을 이 었다.
“넘어지기도 해야 일어서는 방 법을 배우는 거야.”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실패를 통해 경험을 하라는 거죠?”
“맞아. 역시 혜원이는 똑똑하구 나.”
“그래도 넘어지는 건 다음에 넘 어질래요. 지금은…… 합격!”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국자로 산삼주를 떠서는 할아버 지를 보았다.
“혜원이가 이번에는 어떻게든 합격을 하고 싶은가 보네요. 합 격 기원 한 잔 더 하시죠.”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다가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오늘 같은 날 먹는 건 약이겠 죠?”
“그럼요.”
강진은 할아버지 잔을 채워 주 고는 황민성에게도 따라 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잔에도 산삼주 를 따르고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에 아주머니가 손을 내밀어 잔을 들어 올렸다.
화아악!
그녀의 손에 들린 잔과 술을 보 며 웃은 강진이 잔을 들었다.
“형이 한마디 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잔을 들 고는 말했다.
“혜원이 말대로 넘어지고 일어 나는 방법은 다음에 배우기로 하 고, 이번에는 꼭 오디션에 합격 하기를 바란다.”
황민성의 말에 할아버지와 강 진, 그리고 아주머니 귀신이 잔 을 부딪쳤다.
강진은 아주머니 귀신과 한쪽에 서 이야기를 하며 홀을 보고 있 었다.
홀에서는 황민성과 박혜원, 그 리고 할아버지가 기획사에서 온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한 채 홀을 보고 있 는 아주머니 귀신의 모습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시면 보고 오시죠?”
“아니에요.”
“어차피 어머니 가셔도 저 사람 들 못 보니 괜찮아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이 보시잖아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형은 어머니 오셔도 신경 안 쓰실 텐데요?”
“그래도…… 신경을 쓰실 거예 요. 지금은 저 보지 말고 혜원이 일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어
요.”
아주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홀을 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기획사 사장이 서류를 꺼내 놓자, 황민성이 그 것을 유심히 보고는 할아버지에 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할아버지가 서류를 잠시 보다가 사인을 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기획사 사장 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는 서류를 챙겨 일어났다. 그는 황
민성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같이 온 여자와 밖으로 나갔다.
그에 황민성이 웃으며 주방을 보았다.
“다 됐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홀로 나 왔다. 강진이 나오자 할아버지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분의 도움으로 잘 됐습니 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인사에 황민성이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러지 마세요. 그리고 저희도 드라마가 잘 되기를 바라서 혜원 이를 캐스팅한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러고는 황민성이 박혜원을 보 았다.
“혜원이 열심히 해서 꼭 캐스팅 되자.”
“네.”
“그리고 캐스팅되면 정말 잘 해 야 해. 이 드라마에 사람 목숨 여럿 달려 있어.”
“사람 목숨요? 이거 잘못되면 사장님 망해요?”
박혜원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망하지는 않고…… 드라마 잘 못 나오면 실망하실 분이 있거 드 w
“실망하실 분요?”
“아주 참하고 멋지고 대단하신 분인데, 그분이 실망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 정말 파이팅 해야 해.”
황민성의 말에 박혜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 열심히 해서 꼭 오디 션 합격하고 연기도 정말 멋지게 잘 할게요.”
“그래. 알았어.”
“그럼 저희 갈게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간다고? 지금?”
“매니저 언니가 데려다주겠다고
해서요. 그 차 타고 집에 가기로 했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남은 음 식을 보다가 말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강진이 그릇들을 가져오며 말했 다.
“음식 남은 거 싸서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야 고맙지요.”
할아버지의 말에 박혜원이 슬며 시 다가와 말했다.
“음식 싸는 김에…… 산삼주도 좀 싸 주면 안 돼요?”
특유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또 보내는 박혜원의 모습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 좀 안 하면 안 돼요?”
말투를 흉내 내며 말한 강진이 박혜원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정말 잘 살겠다.”
“그게 제 꿈이에요. 할아버지하 고 잘 사는 거.”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 들을 그릇에 담자, 박혜원도 젓 가락으로 음식들을 담았다.
식당 밖에서 박혜원과 할아버 지, 그리고 아주머니 귀신을 태 운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던 황 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승천하실 수 있을
것 같아?”
“아주머니 승천이 신경 쓰이세 요?”
“그럼. 신경 쓰이지.”
황민성은 차가 간 곳을 보며 말 을 이었다.
“나도 엄마가 있잖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강진이나 황민성이나 모두 엄마
의 자식들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자식의 마음이었다.
그것이 비록 남의 엄마라고 해 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