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화
“그리고 일 욕심이 많은 사람 은…… 가족에게 신경을 못 쓰는 편이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물었다.
“가족 불화가 있으셨어요?”
“갔다 오셨어.”
“이혼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가 드라마 만든다고 했지만, 사실 내가 드라마 제작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그렇죠.”
“책도 일 잘하는 출판사 찾아서 돈 주고 거기서 작가 섭외해서 만든 거니…… 드라마도 일 잘하 는 제작사를 찾아야 했어. 그래 서 조사를 했고 그렇게 찾은 곳 이 뿌리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보았다. 그런 강 진을 보며 황민성이 말을 이었 다.
“그렇게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건데…… 김인아 씨가 일 욕심이 많아서 가정에 시간을 많이 못 쓴 모양이야. 게다가 드라마 기 획사를 차리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결혼을 해서 더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때가 많았고.”
업계에 자리 잡기 위해 김인아 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야근 은 기본이고 12시 넘어서 집에
가거나 회사에서 잠을 자는 경우 도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아침에 갈아입을 옷 가져다주고 저녁에 도시락 싸 가지고 와서 회사에서 밥을 같이 먹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 게라도 아내와 있다가 집에 갔던 것이다.
“그래도 남편하고는 사이가 좋 았던 모양이야.”
“그래요? 일을 너무 많이 하면 부부 사이 안 좋았을 것 같은 데?”
“그럴 것 같지만 남편이 김 사 장을 무척 사랑했나 봐. 그래서 외조를 그렇게 했대.”
“그럼 이혼은 왜?”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가 입을 열었다.
“유산을 두 번 했다고 하더라.”
“아……
“처음에는 그래도 젊어서 유산 을 해도 다시 가질 수 있다고 생 각을 한 모양이야. 그런데 두 주 먹하고 열정 하나로 시작한 일인
데…… 쉬지를 못하는 거지. 그 렇게 두 번째 아이도 떠나보낸 김 사장이 먼저 이혼하자고 해서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
황민성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 었다.
“김 사장이라고 뱃속의 아기가 안 사랑스럽고 소중하지 않았겠 어? 그런데 일 욕심 있는 사람들 이 그런 것처럼 자신이 직접 일 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황민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 다.
“그런 일을 두 번이나 겪으니 김 사장도 버티기 힘들었을 거 야. 그리고 남편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아내 를 보는 남편의 마음도……. 그 상처가 두 사람에게 너무 컸던 거지.”
아기를 오래 가지지 못했던 황 민성은 두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 남편분은 무슨 일을 하세
요?”
“방송국 피디래. 방송국에서 만 나서 연애하고 결혼했다고 하더 라.”
말을 하던 황민성이 고개를 저 었다.
“생각을 해 보면…… 난 참 잔 인한 놈인 것 같다.”
“네?”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리로 가 나 싶어 강진이 보자, 황민성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
다.
“드라마 기획사 찾을 때 뿌리 말고도 여러 곳을 조사했어.”
“그야 일을 맡겨야 하니 조사를 하는 건 당연하죠.”
게다가 황민성처럼 철두철미한 사람이면 당연히 잘 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김 사장 사연도 알았을 테고 말이다.
“사실 뿌리가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야. 직원도 열 명 정도밖에 안 되고 말이야.”
“직원이 그것밖에 안 돼요?”
“일할 때는 필요한 인력을 구해 서 일을 맡기기는 하는데 실제 소속된 인원은 그 정도야.”
“회사가 작기는 하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작은 기획사인 뿌리를 고른 이 유는 김 사장 일 욕심이 마음에 들어서야. 이렇게까지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일을 맡겨도 괜 찮겠다 싶었거든.”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잔인하지 않냐. 남의 아픔을 오히려 장점으로 봤으니 말이 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은 일로 봐야죠. 그 사람 가 족사까지 신경을 쓰면서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일할 때는 일 잘 하는 사람을 써야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 이었다.
일은 일로 봐야 하지만…… 사 실 죄책감을 느낀 건 저승 음식 을 먹고 김인아의 옆에 어머니 귀신이 있는 것을 보고 나서였 다.
김인아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 귀신을 보니 자신의 어머 니가 생각이 난 것이다.
김인아가 유산을 했을 때 어머 니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 리고 이혼하는 딸을 보았을 때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런 것을 자신은 ‘일 잘하겠 네.’로 평가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희 가게에 모시고 온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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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승천시켜 드렸으면 좋겠어.”
“저도 저희 가게에 오는 귀신분 들 모두 승천을 했으면 좋겠지 만…… 쉽지는 않더라고요.”
강진이 가게를 둘러보며 하는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마다 열리는 저승식당엔 여전 히 많은 귀신들이 찾아와 음식을 먹었다. 그중에는 황민성이 처음 여기 왔던 날 본 귀신도 있었다.
저승식당에 그렇게 자주 오는 귀신들도 승천을 못 하고 있으 니…… 승천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가 김 사장님하고 친해져서 저희 가게 자주 오게 할게요. 그 럼 할머님도 오게 되니 음식이라
도 좀 챙겨 드릴 수 있잖아요.”
“그래. 그거라도 부탁하자.”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은 직원들 이 정리를 하고 TV를 켜는 것을 보고는 시간을 보았다.
“이야기하는 사이 십 분이 넘었 네요. 용수한테 혼나겠어요.”
“그래. 어서 불러라.”
강진은 배용수를 불렀다.
화아악!
배용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황민
성이 웃으며 말했다.
“레시피는 잘 배워 왔어?”
“딱히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었 어요.”
“그래?”
황민성이 의아하게 보자 배용수 가 웃으며 말했다.
“소갈비 기름기 깨끗하게 정리 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인 데.. 그냥 정성이더라고요.”
“정성이라.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음식 비결일 수도 있겠네.”
“그건 그렇죠.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만드는 음식의 정성은 저희 숙수님도 못 따라 할 테니까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 다.
“소갈비 사야 하는데 지금 갔다 오자.”
“너 드라마 안 보고?”
“손님이 드시고 싶다는 음식인 데 미리 준비해야지. 그리고 어 머님이 한대로 하려면 손질할 것
이 많아서 오래 걸려.”
말을 하던 배용수가 TV를 힐끗 보았다.
“손질하면서 드라마 보면 되기 도 하고. 지금 가서 사 오는 게 낫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마트부터 갔다가 아버님 댁에 가야 할 것 같네요.”
“그렇게 하자. 가자.”
황민성이 일어나자, 강진과 배 용수도 그 뒤를 따라 일어났다.
* * *
마트에서 소갈비찜에 필요한 재 료를 사서 가게에 두고 온 강진 은 황민성과 함께 김성수의 집에 도착했다.
배용수가 소갈비찜 준비를 하는 사이, 공원 애들이 어떻게 사나 보러 온 것이다.
김성수의 집은 황민성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래서 그런지 집에는 이미 황민성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마당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있는 조순례는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 는 개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 다.
“어머니.”
황민성이 웃으며 다가가자 조순 례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아들 왔어?”
“강진이도 왔어요.”
“그래. 강진이도 왔구나. 이리 와 앉아.”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옆에 가 서 앉으며 그녀를 보았다.
“어머니 몸은 요즘 어떠세요?”
“좋지.”
조순례는 강진의 손을 잡아 쓰 다듬으며 말했다.
“강진이를 만나고 좋은 일이 늘 생겨.”
“그러시다니 다행이네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그래.”
조순례는 예쁘다는 듯 강진을 보다가 마당을 보았다. 마당에서 는 개 세 마리가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김소희가 카 스의 배를…… 빨래하고 있었다.
북북! 북! 북!
김소희는 카스의 배를 빨래하는 것처럼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황소희를 안 고 있던 김이슬이 웃으며 카스를 보았다.
“카스가 기분이 좋은가 봐요. 우리 작은 소희가 옆에서 보고 있어서 그런가? 이렇게 배를 드 러내고 웃고 있네.”
김이슬의 말에 김소희가 더 열 심히 카스의 배를 문질렀다. 아 마도 황소희가 카스가 이러고 있 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김소희가 카스를 뒤집어 놓고 배를 쓰다듬고 있었던 것이
었다.
그 덕에 카스만 귀찮게 되었다. 김소희가 있어서 싫은 티를 내지 도 못하고 웃고만 있어야 하고, 도망도 못 치는 카스는 강진을 향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강진 삼촌 왔네. 우리 삼촌한 테 갈까요?”
김이슬이 황소희를 안고 강진에 게 걸어가자, 김소희가 아쉬운 듯 그쪽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 다.
황소희가 좋아하는 듯해 계속 카스 배를 긁었는데, 황소희가 가니 더 배를 긁을 필요가 없었 다.
벌떡!
김소희가 손을 떼자, 카스가 바 로 벌떡 일어나서는 몸을 털었 다.
푸드드득! 푸드득!
몸에 묻은 잔디들을 털어낸 카 스가 서둘러 한쪽으로 몸을 피했 다.
또 황소희 재밌게 해 주겠다고 자신의 배를 빨래할까 싶어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배를 쓰다듬어 주는 건 좋아하 지만, 이렇게 오래 쓰다듬어주는 건 아무래도 힘드니 말이다.
후다닥 자리를 뜨는 카스를 보 던 강진은 다가오는 황소희에게 인사를 건넸다.
“작은 소희야, 삼촌 왔어.”
“꺄앙!”
강진의 말에 황소희가 좋다는
듯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 모습 에 강진이 웃으며 주위를 보았 다. 강진의 시선에 집 입구 앞마 당에 놓인 개집이 보였다.
나무로 만들어 놓은 집은 상당 히 큰 사이즈였다.
“집이 크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도 의아한 듯 개집을 보았다.
“그러게? 저 정도 사이즈면 사 람이 들어가서 자도 되겠는데?”
두 사람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
며 말했다.
“직접 가서 봐 보세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과 황민성이 집으로 다가갔다. 꽤 큰 사이즈 의 개집은 사람의 가슴 정도 높 이였다.
“진짜 크게 지었네요.”
“안을 봐야죠.”
황민성이 몸을 숙여서는 입구를 들여다보자, 김이슬이 말했다.
“안에 깨끗하니 들어가 보세
요.”
“개집에 들어가라고요?”
의아한 얼굴로 황민성이 돌아보 자, 김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보세요. 깨끗해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애들도 사는 집인데 저라고 못 들어가라는 법은 없죠.”
강진은 몸을 숙여서는 개집 안 으로 들어갔다.
“와…… 이게 다 뭐야?”
강진의 목소리에 황민성이 물었 다.
“왜?’’
“여기 되게 좋아요. 아늑한데 요.”
“아늑? 개집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개집을 둘러보았다.
개집 내부에는 애들 자라고 놓 아둔 두툼한 쿠션들이 놓여 있었
다. 그리고 바닥에도 푹신푹신한 천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천장에는 작은 선풍기 몇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 고 가운데에는 붉은 등이 달려 있는데, 아마도 추운 겨울에 보 온을 위해 설치한 모양이었다.
안을 보던 강진이 밖으로 나왔 다.
“집 정말 좋네요.”
“집안에도 애들 방 만들었어 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와 있는 개들을 보 았다.
강진과 황민성이 자기들 집으로 다가가니 온 모양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머리를 강진이 쓰다듬 었다.
“너희는 집이 두 개네. 나보다 낫다.”
멍!
강진의 말에 대장인 녀석이 크 게 짖었다. 마치 자기 집 좋지
않으냐는 듯 말이다. 그런 녀석 을 보던 강진이 김이슬을 보았 다.
“이름은 지었어요?”
공원에 살 때는 어떻게 될지 몰 라 이름을 짓지 않았지만, 이제 김성수의 가족이 됐으니 이름이 있어도 될 것이었다.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며 애들을 보다가 말했다.
“ 카스야.”
김이슬의 부름에 카스가 빠르게
뛰어왔다.
멍!
자기 왔다고 작게 짖는 카스를 보고 김이슬이 웃으며 말했다.
“첫째가 카스, 둘째가 하이트, 셋째가 오비, 넷째는 카프리예 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애들 이름을 다 맥주 이름으로 지으신 거예요?”
“첫째가 카스니 애들도 그쪽으 로 맞춘 거죠.”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애들 머리를 쓰다듬었다.
“맥주 사형제네.”
멍!
강진의 말에 카스가 크게 짖었 다. 아마도 카스는 애들 이름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물론 하이트, 오비, 카프리는 자 기들 이름이 별로 마음에 안 드 는 듯 꼬리가 축 처졌지만 말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