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정우성 씨도 할머니가 보고 싶 어서 가시는 것이니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걱정해서 뭐하 겠어요. 최대한 편하게 계시다가 승천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 죠.”
“그럼…… 너무 내 욕심만 챙기
는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아니, 어쩌면 우 성 씨가 자기 욕심을 챙기는 것 일 수도 있죠.”
“우성이 가요?”
“우성 씨는 오고 싶어서 오는 거잖아요. 김 사장님은 괜찮다고 오지 말라고 해도요.”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성 씨도 좋은 여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 오시는 걸 거예요. 좋은 분 만나시면 그때
는 어떻게 될지 모르죠.”
강진의 말에 할머니의 얼굴에 쓴 미소가 어렸다.
“그래요. 우리 우성이도 좋은 사람 만나서…… 애도 낳고 좋은 가정 이뤄야죠. 그리고 방송국에 서 가끔 보기도 하니까 굳이 내 기일에 안 봐도 괜찮아요.”
기일에 추모원이 아니더라도 김 인아 곁에 있으면 방송국에서 가 끔 정우성을 만나는 것이다.
“혹시 우성 씨가 가정 이루는
거 싫으세요?”
“싫기는요. 좋죠. 우성이도 나이 이제 많으니 지금이라도 좋은 여 자 만나서 애도 낳고 가정 이뤄 야죠.”
할머니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 다.
“아무리 세대가 바뀌었다 해도 남자는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 에 와서 애들 재롱 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거든요.”
“그건 그렇죠.”
황민성만 해도 늦은 나이에 낳 은 투희를 보며 너무 행복해하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저녁에 미팅을 하지 않고 낮에 미팅을 주로 하 고 있었다. 늦게 들어가면 투희 자는 것을 보지 못하니 말이다.
“ 그냥......"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홀을 보 았다. 홀에서는 여전히 기분 좋 은 회식 자리가 이어지고 있었 다.
“그냥 우리 딸 안쓰러워서 그렇 지. 일을 좀 줄이면 좋을 텐데.”
“요즘 집안일보다 바깥일을 더 잘하시는 여성분들 많으세요. 그 런 생각 하지 마세요.”
“ 하아.”
할머니가 한숨을 쉬는 것을 보 던 강진이 홀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고기 다 떨어진 것 같네요.”
강진은 소갈비찜을 그릇에 담아 서는 홀로 가지고 나갔다.
“정말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김인아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웃으며 카드를 그녀에게 내 밀었다.
“재료가 비싼 거라 가격이 좀 나갔습니다.”
“아니에요. 소갈비찜을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이 금액이면 적게 나온 거죠. 혹시 할인해서 주신 거 아니죠?”
“저도 장사하는 사람인데 손해
보고 팔겠어요? 적당히 조금 남 겼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식탁을 보았 다.
“그리고 술로 수익도 올렸고 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직원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나오자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동안 수고들 했어요.
그리고 내일은 또 열심히 일해 봐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의 답에 김인아가 웃으며 말했다.
“회식은 여기까지예요. 아쉽다 고 이 차 하러 가지 말아요.”
“알겠습니다.”
“자, 그럼 가세요.”
김인아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고는 지하철과 주차장이 있
는 곳으로 각자 흩어졌다.
그것을 보던 김인아가 숨을 고 르고는 갈 길을 가려 하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시원한 매실차 한 잔 드시고 가시죠.”
“매실차요?”
“기름진 음식 드셨으니 속 좀 편하라고요. 매실차가 소화에 좋 은 건 아시죠?”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한의사 나오는 드라마에 서 그런 대사 본 것 같네요. 열 을 낮춰주고 소화를 도와주며 소 독을 해 준다고 했던가요?”
“그런 효과까지는 모르겠지만 마시면 맛있는 건 알죠.”
웃으며 강진이 가게 안을 가리 키자, 김인아가 가게 안으로 따 라 들어왔다.
회식 자리로 난잡한 탁자 말고 깨끗한 곳에 자리를 하자 강진이 매실을 시원하게 타서 가지고 나 왔다.
“시원하게 한 잔 드세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매실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아주 맛이 좋네요.”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매실차를요?”
“만드는 데 그리 어렵지 않거든 요. 그리고 음식에도 넣어서 먹 을 수도 있어서 자주 담급니다.”
“그래요?”
“물에 타면 매실차, 음식에 넣 으면 매실청…… 이런 것들이 대 부분 활용도가 높거든요
“음식을 정말 잘하시네요.”
“음식 장사 하니까요.”
웃으며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왜 이 차 하지 말라고 하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인아가 웃으며 말했다.
“회식 문화가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일 차는 기분 좋지만 이 차는 힘든 분들 이 있어요. 술 안 좋아하고 집에 가고 싶은 분들은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저희 회사는 회식은 해 도 일 차만 해요.”
“따로 가서 노시고 싶은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건 말 그대로 다른 날 따로 해야죠.”
그러고는 김인아가 웃으며 말했
다.
“상사들이 후임들에게 한잔하자 고 하면 보통 상사가 술을 사 죠?”
“그렇죠.”
“자기 돈 들여서 술을 먹이는 만큼 싫어서 먹자고 하는 건 아 니에요. 당연히 좋아서 권하죠. 후임은 그 마음을 아니 피곤해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거고요.”
김인아의 말에 강진이 무슨 말 인지 알겠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
다.
“그래서 회식을 하면 그날은 끝 을 내요. 물론 아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술 많이 먹어서 좋 을 것 있나요. 내일 일도 지장이 있고.”
김인아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꽤 됐지만 무역 회사 인턴을 할 때 거기도 회식은 일 차로 끝냈 었다.
강진은 잠시 옛날 생각을 하다 가 슬며시 김인아를 보았다.
“저희 드라마 잘 되겠죠?”
“잘 되어야죠. 잘 되라고 저희 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 으니까요. 다만 드라마나 음식이 나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모 르는 법이에요.”
“제가 괜한 것을 물어본 것 같 습니다.”
“아니에요. 황 사장님한테 이 사장님도 이 드라마에 관심이 많 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김인아가 매실차를 시원하게 마
시고는 말했다.
“오늘 정말 잘 먹었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오늘 해 주신 소갈 비찜 레시피 좀 알 수 있을까 요?”
“집에서 해 드시게요?”
“오늘…… 정말 어머니가 해 주 신 것처럼 맛이 좋았어요.”
김인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일만 하느라 엄마한테 음 식을 못 배웠어요.”
“바쁘시니까요. 잠시만요.”
강진이 종이에다 소갈비찜 레시 피를 적어서 주었다.
“중요한 건 갈비에 붙은 지방을 아주 깔끔하게 떼어내는 거예 요.”
“깔끔하게요?”
“일단 집에서 해 보세요. 요즘 유트브에 이런 음식 영상 많으니 보시면서 해 보고 실패하면 다음 에 물어보세요. 뭐든 해 봐야 아 는 거죠.”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쥔 종이를 보았 다.
“하긴, 이런 레시피를 몰라서 음식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요.”
맛집 레시피라고 해도 인터넷 뒤지면 별의별 요리 방법이 다 나오는 세상이니 말이다.
김인아는 가게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 가게가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아
요.”
“자주 오세요. 제가 사장이지만 저희 가게 참 좋은 가게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싸고 맛있고 사장님 친절하니 정말 좋은 가게네.’
외관이 번드르르하고 인테리어 에 공을 들인 가게보다 한끼식당 이 더 좋은 가게였다.
몸을 돌려 가게를 나가던 김인 아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그를 보았다.
“소갈비찜 예약 한 번 더 해도 될까요?”
“회식을 또 하시게요?”
강진의 물음에 김인아가 고개를 저었다.
“소갈비찜 귀신 붙은 친구가 한 명 있어서요. 맛있게 먹으니 그 친구 생각이 나네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대신 날 짜만 확실하게 해 주세요.”
“재료가 비싸서요?”
“좋은 재료는 신선한 재료니까 요.”
“그럼 삼 일 후 한 시쯤 올게 요.”
김인아의 말에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날 제 기일이에요. 우성이를 데리고 올 건가 봐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고는 웃다가 김인아에게 고개 를 돌렸다.
“정말 맛있는 한상 차리겠습니 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볼게요.”
김인아가 가게를 나서자 강진은 고개를 돌려 주방 쪽을 보았다. 하지만 강진이 부를 필요도 없이 배용수가 이미 홀로 나오고 있었 다.
“갔다 온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 고 김인아의 뒤를 따라가는 배용 수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김인아가 기일에 오리고깃집이 아닌 이곳으로 정우성을 데려올 것 같아서 강진은 배용수에게 할 머니가 정우성에게 해 주던 음식 을 알아오라고 시키려 했었다.
정우성과 김인아에게 정말 맛있 는 음식은 어머니, 그리고 장모 님이 해 주던 음식일 테니 말이 다.
그런데 이미 배용수가 그걸 알 고 나서는 것이다.
‘역시 내 마누라라니까.’
가게를 나가는 배용수를 보며 웃은 강진이 회식 자리를 정리하 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방에 있 던 이혜미와 여직원들도 나와서 는 같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북적거리는 점심 장사가 거의 끝나갈 때, 가게 문이 열리며 김 인아가 나이 좀 있어 보이는 아 저씨와 함께 들어왔다.
인상 좋아 보이는 데다 조금 배 가 나온 아저씨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정우성이라……
그냥 보통 아저씨처럼 보이지 만, 이름이 정우성이라고 하니 뭔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작게 웃으며 김인 아에게 다가갔다.
“오셨어요?”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자신의 뒤를 따라 들어온 정우성을 가리
켰다.
“여기는 제 친구예요.”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정우성이 손을 내밀었다.
“인아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젊은 분이 성공하셨네요.”
“성공요?”
“강남 논현에서 음식 장사를 하
면 성공한 거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
니다. 이강진입니다.”
“정우성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한 정우성이 강진의 얼굴을 보았다. 그에 강 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놀란 표정을 지어 줘야 좋아해 요.”
할머니 귀신이 뒤에서 슬며시 말을 하자, 강진이 속으로 웃으 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우성요?”
“하하하! 이름은 같지만 다르게 생긴 정우성입니다. 아! 그리고 제가 배우 정우성보다 두 살 동 생입니다.”
정우성이 웃으며 자신의 이름으 로 농담을 하는 것에 강진이 작 게 웃었다.
“유명한 사람하고 이름이 같아 서 스트레스 받을 법도 한데 유 쾌하시네요.”
“옛날에는 좀 스트레스가 있었 는데…… 정우성 씨가 유명해지 면 유명해질수록 제 이름을 사람
들이 안 잊어 먹고 기억하더군 요.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명 함 같은 거죠.”
싱긋 웃는 정우성의 모습에 강 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정말 사위 분이 유쾌하시네요.’
강진이 눈빛으로 말을 하자 할 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뚝뚝한 딸보다 사위가 더 딸 같았어요. 우리 둘이 장도 같이 보러 다니고 드라마도 같이 보고
했답니다.”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다시 정 우성을 보았다.
‘딸 같은 사위셨구나.’
그러고는 강진이 자리를 가리켰 다.
“일단 앉으시죠. 날씨 더우니 시원한 음료부터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정우성과 김인아가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