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화
“너하고 같이 가서 장모님 보고 싶어. 그러면…… 사진 속 장모 님이 웃으면서 정 서방 왔……냐 고 나를 불러 주시는 것 같으니 까.”
정우성의 떨리는 목소리에 할머 니 귀신이 안쓰럽고 슬픈 얼굴로 그를 보았다.
“우성아…… 무슨 소리야. 나는 네가 혼자 와도 늘 웃으면서 너
를 반겨 줄 거야. 그런 생각 하 지 마. 인아하고 같이 안 와도 너는 내 사위고……
할머니는 정우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 아들이야. 아들이 오는데 혼자 온다고 인상 찡그리는 엄마 가 어딨어.”
할머니의 목소리에 정우성이 자 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분 명 들리지 않을 장모님의 목소리 가 들린 것 같았다.
자신을 아들이라고 부르며 웃는 목소리가 말이다.
잠시 허공을 보던 정우성이 남 은 한 수저의 밥을 보며 말했다.
“정말…… 장모님이 너무 보고 싶다.”
그는 그 한 수저를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씹는 정우성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 니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김인아가 한숨을 쉬 었다.
“엄마가 당신을 참 좋아하셨 지.”
“아들이니까. 내 아들이니까.”
할머니가 웃으며 정우성의 머리 를 쓰다듬었다.
뭔가 기분 좋은 느낌이 들기라 도 하는 듯, 정우성이 밥을 씹으 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정 우성이 눈을 뜨고는 숭늉을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김인아를 보았다.
“일은 좀 어때?”
화제를 돌리려나 싶어 김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잘 돼.”
“잘 됐네. 그럼 이제 돈도 좀 벌었겠어.”
“돈? 뭐 그렇지. 이래 보여도 사장님이야.”
김인아가 애써 밝게 말하자 정 우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방송국 나가.”
뜻밖의 말에 김인아가 정우성을 보았다.
“방송국을 왜 나가?”
“케이블에서 오라네.”
“케이블에서? 스타 피디도 아닌 데 당신을 왜 데려가려고 하는 데‘?”
살짝 농을 섞어 말하는 김인아 를 보고 정우성이 웃으며 눈가를 닦았다. 촉촉한 눈가에 살짝 창 피해진 정우성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가 스타 드라마 작가는 아니 어도 다큐 쪽으로는 꽤 하잖아. 다큐 프로그램을 만들려나 봐.”
그러고는 정우성이 김인아를 보 았다.
“연봉도 꽤 올라.”
“좋겠네.”
정우성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놓았다.
“이번에 아파트 하나 샀어.”
“ 아파트?”
“24평인데 당신 회사 근처야.”
정우성의 말에 그를 보던 김인 아가 종이를 집어 보았다.
“여기 비싼데?”
“비싸더라고. 전에 살던 아파트 가 더 큰데도 여기가 더 비싸더 라.”
고개를 작게 저은 정우성이 김 인아를 지그시 보았다.
“비밀번호는 당신 생일이야. 일 하다가 피곤하면 와. 재워 줄 테 니까.”
“됐어. 내가 잘 곳이 없을까.”
말을 하며 김인아가 종이를 건 네주려 하자, 정우성이 그 손을 밀었다.
“다른 곳에서 자지 말고…… 여 기 와서 자라는 거야.”
말을 하던 정우성이 머리를 긁 고는 김인아를 보았다.
“우리 같이 살자.”
김인아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를 보았다. 그렇게 잠시간 그를 빤히 보던 김인아가 말했다.
“다시 말해 줘.”
“다시 같이 살자.”
“진심이야?”
“나는 너한테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어. 너한테는 늘 진심이었고, 늘 사랑했고, 늘 고 가웠어.”
“고마워? 내가?”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음식도 못 하면서 다른 아내들처 럼 아침 밥 하려고 했던 것도 알 고, 나 퇴근하기 전에 먼저 집에
오려고 했던 것도 일'아. 그래서 늘 고마웠어.”
“난…… 당신한테 늘 미안했어. 내가 당신보다 늘 늦게 퇴근했 고, 당신이 아침에 나를 깨웠고, 아침을 차려줬어. 내 옷도 당신 이 다려줬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힘든 사람이 할 이유는 없잖아. 내가 할 수 있으니 한 거야.”
그러고는 정우성이 웃으며 말했 다.
“그리고 이제 당신도 돈 잘 벌 고, 나도 연봉 올랐으니 일하시 는 분 오시라고 하자.
“일하시는 분?”
“우리 둘 다 일하고 돈 잘 버는 데 굳이 집에 와서 청소하고 밥 까지 할 필요 있겠어? 우리는 잘 하는 거 하고, 대신 집안일 해 주실 분 구하면 되지. 밖에서 일 하고 집에서도 일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 같 이 살자.”
정우성은 손을 내밀어 김인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게 자신의 손을 감싸는 온기에 김인아가 손을 빼려 하 자, 정우성이 그 손을 강하게 쥐 었다.
“더는 우리 서로 미안해하지 말 고 서로 행복하길 빌지 말자. 그 냥 서로에게 나쁜 사람이 되자. 다른 부부처럼 같이 살면서 싸우 고 웃자. 그렇게 살자, 우리.”
“그……
김인아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
을 열었다.
“나 나이도 있고, 애 못 가질 수 있어.”
“나는 당신만 있으면 돼.”
“그…… 그래도 괜찮겠어? 당신 애 좋아하잖아.”
“당신만 있으면 돼.”
정우성의 말에 김인아가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가구는 들였어?”
김인아의 말에 정우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 혼자 사는데 가구가 뭐 필요한가? 냉장고만 있어.”
“그게 뭐야.”
“잠만 자고 밥은 회사에서 먹는 데 그거면 됐지.”
정우성의 말에 김인아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네.”
“그래?”
“당신 센스가 영 꽝이잖아. 있
던 가구 안 버리고 새로 사서 들 이면 되는 거잖아. 일 편해서 좋 네.”
김인아의 말에 정우성이 그녀를 보았다.
“그럼?”
“그럼은 무슨 그럼이야. 살림 합치자는 거지.”
김인아의 말에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래! 잘 생각했어. 잘 생각했 어!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같이 살아야지. 그래. 그래. 정말 잘 했어.”
할머니가 웃으며 외치는 걸 들 은 강진이 주방에서 머리를 내밀 어 홀을 보았다.
할머니는 정말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웃고 있었고, 김인아와 정 우성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 다.
‘잘 됐다.’
이별을 하려고 왔던 김인아는 결국 정우성의 마음을 다시 받아
준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면 같이 살아야지.’
딸과 사위가 재결합한다는 것에 손뼉까지 치며 좋아하는 할머니 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 다. 하지만 그 미소는 약간의 씁 쓸함을 담고 있었다.
‘승천을 안 하시네요. 두 분 앞 으로 잘 사실 텐데...... 훌훌 털 어버리고 올라가시지.’
이혼을 한 딸과 사위가 다시 마
음을 확인하고 같이 하기로 했으 니 승천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데…… 아직도 있으니 말이다.
강진이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 과 할머니 귀신을 볼 때, 정우성 이 몸을 일으켰다.
“사장님.”
정우성의 부름에 강진이 홀로 나왔다.
“더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정우성이 고개를 젓고는 반찬들을 보았다.
“혹시 이 반찬들 더 있습니까?”
“음식 가게에 음식이 없겠어 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정우 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사고 싶습니다. 특 히 생채요.”
“사신다고요?”
“음식 맛이…… 돌아가신 장모 님의 맛과 정말 비슷해서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또 먹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정우성이 고개를 숙였 다.
“무례한 부탁이 아니라면 제가 사고 싶습니다.”
정우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반찬을 팔지는 않습니 다.”
“아…… 그렇습니까?”
“하지만 단골들에게는 반찬을 좀 싸 드리고는 합니다.”
“ 단골?”
“앞으로 자주 오실 거라 생각하 고 미래의 단골에게 반찬 좀 드 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 리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 자, 할머니 귀신이 급히 따라 들 어왔다.
“아까 냉장고를 보니까 깻잎조 림이 있던데…… 우리 사위가 그 것도 좋아해요.”
“그래요? 그럼 말씀을 하시지.”
방금 상에는 깻잎 반찬이 나가 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른 반찬도 많아서 말을 안 했는데, 이왕이면 좋아하는 반찬 더 싸 주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강진은 반찬 통들을 꺼내 깻잎 조림과 다른 반찬들도 이것저것 담았다.
사고 싶다고 한 건 무생채뿐이 었지만, 그것만 주기에는 할머니 의 시선이 신경 쓰이니 말이다.
반찬을 담는 강진을 보던 할머 니가 냉장고를 힐끗거리며 말했 다.
“물 만 밥에 깻잎조림 올려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게 먹었어 요.”
“그렇게 먹으면 맛있죠. 깻잎조 림의 짠맛이 물 만 밥과 잘 어울 리잖아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말했다.
“짠 반찬들이 물 만 밥하고 잘 어울리지. 간고등어나 갈치구이
도 물 만 밥에 먹으면 꿀이잖 아.”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 셨다. 말을 하다 보니 그 맛이 생각이 난 것이다. 역시 세상에 서 무서운 것이 아는 맛이라는 말이 맞았다.
“저승식당 시간에 생선구이 하 자.”
“네가 먹고 싶다면 당연히 해야 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혹시 사위분께서 좋아하는 반 찬들이 더 보이세요?”
“그게…… 네.”
해맑게 웃는 할머니를 보며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라 보세요.”
“그래도 될까요?”
“제 사위는 아니지만, 할머니 사위이니 처가에서 반찬 챙겨 가 는 것처럼 챙겨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며 반찬을 몇 개 더 골랐다.
“멸치볶음하고 조미채요.”
“저희 가게 조미채가 아주 맛이 좋아요. 마요네즈를 넣어서 부드 럽고 고소하거든요. 잘 고르셨네 요.”
강진은 할머니가 고른 반찬들을 더 담아서는 홀로 나왔다.
“여기요.”
“뭘 이렇게 많이 주셨어요?”
쇼핑백에 담긴 여러 반찬통을 본 정우성이 부담스러워하는 기 색을 보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무생채 달라고 그것만 주기에 는 제 마음이 너무 넉넉해서요. 반찬 조금씩 담았으니 맛있게 드 세요.”
“감사한데 이거 미안해서……
“괜찮습니다. 다음에 사람들 많 이 데리고 오세요. 그리고 술 좀
많이 드셔 주시고요. 술이 매상 이 좋거든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 아도 제가 곧 이직을 하게 되는 데, 이직하면 거기 직원들하고 회식하러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정우성이 카드를 꺼냈 다.
“식사 계산하겠습니다.”
정우성의 말에 강진이 카드를 받았다.
“사만 원입니다.”
“사만 원요?”
너무 조금 받는 것이 아닌가 싶 어 되묻는 정우성에게 강진이 말 했다.
“적당히, 제대로 받은 가격입니 다.”
강진의 말에 정우성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꼭 단골이 되어야겠네 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계산을 한 강진이 카드와 영수 증을 내밀자, 정우성이 그것을 받고는 김인아에게 손을 내밀었 다.
“ 가자.”
정우성이 손을 내미는 것에 김 인아가 웃으며 그 손을 잡고는 가게를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가는 人}이, 할머니 귀신이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그
녀를 보다가 문을 보았다.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할머니의 손 을 잡았다.
“정말 잘 됐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그의 손 을 쓰다듬었다.
“이게 다 사장님 덕이에요.”
“제 덕이라니요. 오늘 보니 사 위분께서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오
셨던데요.”
“그래요?”
“그러니 종이에 주소 적어서 오 신 것 아니겠어요. 오늘 김 사장 님이 할 말을 알고 오늘 결판을 내려고 종이에 적어 오신 것 같 아요.”
“아……
할머니가 그런가 하며 문을 보 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김 사장님 곁에서 멀어질 수 없으니 두 분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어서 따라가 세요. 보고 싶었던 모습이잖아요. 두 분 같이 있는 거.”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의 말대로 정말 보고 싶었 던 모습이었다. 딸과 사위가 손 을 잡고 나란히 같은 곳을 걷는 것 말이다.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 할머니가 가게를 나가자, 강진이 그 뒷모
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두 분 행복한 모습 오래 보고 싶고, 옆에 계속 있고 싶으시겠 지만…… 그래도 가셔야 해요. 너무 오래 있지 마시고 좋은 날, 좋은 곳에 두 분 갔을 때 좋은 모습 보시고 올라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