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73화 (971/1,050)

973화

박혜원의 머리를 쓰다듬은 박신 예가 웃으며 말했다.

“잠시 있어.”

그러고는 박신예가 감독에게 걸 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박혜원 이 다시 자세를 잡고는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움에서 기쁨으로. 즐거움으 로……

처음 박신예 연기의 감정선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는 것이 중 요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자신 의 감정선으로 바꿔야 했다.

이게 어려웠다. 그리움에서 기 쁨으로, 그리고 즐거움으로 표정 을 바꿔야 하니 말이다.

자신이 해석한 대본의 느낌을 떠올리며 연습을 하는 박혜원에 게 박신예와 감독이 다가와 이야 기를 나눴다.

그러더니 감독이 웃으며 박혜원 머리를 쓰다듬고는 촬영을 시작

했다.

“컷! 오케이!”

감독의 외침에 강진이 의아한 듯 황민성을 보았다.

“한 번에 오케이가 떨어진 것 같은데요?”

“그러게? 잘한 건가?”

거리가 멀어서 박혜원이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는 황민성 이 촬영장을 볼 때,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아주 잘했나 보네요.”

“응?”

황민성이 보자, 강진이 박혜원 을 가리켰다. 아니, 정확히는 박 혜원 옆에 있는 김소희를 가리켰 다.

“소희 아가씨가 웃잖아요.”

“웃으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김소희를 보았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박혜원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 었다.

물론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뭐라 고 하고 싶은 듯했다. 그리고 그 말은 아마도 칭찬일 것이다.

“그러네. 웃으시네.”

“못했으면 아가씨가 웃지 않으 셨겠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가씨 웃으시니 저리 고

우시네.”

“잘 봐 두세요. 아가씨 웃는 모 습은 정말 보기 어려운 거니까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웃 었다.

나는 그래도 자주 본다.’

황민성은 속으로 뿌듯해하며 김 소희를 보았다. 평소 표정 변화 가 거의 없는 김소희지만…… 무 장 해제가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투희와 놀아 줄 때였다.

투희와 놀 때는 김소희의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활짝 피어났다.

그래서 황민성은 웃는 김소희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 만…… 그렇다고 그 미소를 보기 싫은 건 아니었다.

“사진에 담을 수 있다면 찍어 두고 싶은 미소네. 참…… 미소 가 고우시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희 아가씨가 첫 촬영에 저렇

게 만족스러워하시는 것을 : 드라마 대박이 날 것 같네요.

말을 하던 강진이 한쪽을 보았 다. 드라마 촬영장 한쪽에는 박 혜원의 어머니인 아주머니 귀신 이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딸 잘했어. 파이팅! 우리 딸 너무 예쁘다!”

정말 좋아하는 아주머니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웃을 때, 그녀가 시선을 느꼈는지 급히 자세를 가 다듬더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강진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이 드라마가 잘 되면…… 아주 머니도 승천하시려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아주머니 귀신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딸이 혼자서 잘 해 나가는 것을 보는 거니까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 가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가장 좋죠.”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촬영 장을 보았다. 박혜원의 촬영은 끝이 났지만, 다른 촬영들이 여 전히 남아 있었다.

강진은 황민성을 태우고 강원도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덜컥! 덜컥!

흔들리는 산길을 가던 황민성이 힐끗 창밖을 보았다.

“정말 심산유곡이라는 말이 딱 이렇겠다.”

“산이 워낙 깊어서 전쟁 났을 때, 여기 분들은 전쟁이 벌어진 줄도 몰랐대요.”

“그래?”

“그런데…… 역시 전쟁의 포화 는 산속도 피할 수 없었나 봐 요.”

황민성이 보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때 마을에 숨어 들어온 군인 들 치료해 줬다고 적군들한테 마 을이 공격당했대요.”

“아……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때 다 돌아가신 모양이구 나.”

“정말 고통스러우셨을 거예요. 마을 사람들…… 이웃, 가족, 부 모 자식들이 눈앞에서 살해되는

것을 봤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전쟁이란 참 무섭고 슬픈 거 네. 내 가족들이 죽는 걸 직접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잖아. 마음이 정말……

말을 하던 황민성이 고개를 저 었다. 차마 말을 더 할 수가 없 었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죽어도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시겠죠.”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달릴 때, 이혜미가 조수석 문을 통해 머리 를 들이밀었다.

“아! 깜짝아!”

자주 보던 이혜미지만, 갑자기 옆에서 불쑥 나오는 것에 황민성 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방금은 정말 놀랐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이혜미가 미안한 듯 그를 보았다. 그 모습에 황민 성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놀란 것이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들어오신 거예 요?”

푸드 트럭 지붕에 타고 있던 이 혜미가 갑자기 머리를 들이민 것 이다.

황민성의 물음에 이혜미가 웃으 며 숲 쪽을 가리켰다.

“저기 돼랑이 가족들 와 있어

요.”

이혜미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러자 나무들 사이로 멧돼지들이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저 녀석들이구나.”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밖을 힐 끔 보고는 창문을 내렸다. 창문 을 열자 진한 숲 냄새가 차 안으 로 들어왔다.

벌레 들어올까 봐 창문을 닫아 놓고 있었던 터라 숲 냄새도 이

제야 맡는 것이다. 강진은 창밖 으로 손을 내밀며 고함을 질렀 다.

“돼랑아!”

강진의 외침에 돼랑이가 크게 외쳤다.

꾸이 잇!

반갑다는 듯 크게 울음을 토하 는 돼랑이의 모습에 강진이 웃을 때, 황민성이 창밖을 보다가 말 했다.

“와, 진짜 크다.”

“진짜 크죠?”

“저건 거의 송아지만 한데.”

말을 하던 강진이 천천히 차를 세웠다.

덜컥!

차가 작게 흔들리며 멈추자, 강 진이 차에서 내렸다.

“돼랑아!”

강진의 외침에 돼랑이 가족들이 뛰어왔다.

두두둣! 두두!

우렁찬 발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돼랑이 가족 모습에 황민성이 움 찔해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 다.

강진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애들 이 영특한 줄은 알지만…… 이렇 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위압감 이 장난이 아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황소만 한 멧돼지들이니 말이다. 물론 실제 는 송아지보다 조금 더 큰 것 같 지만…….

꾸이 익!

커다란 울음과 함께 앞에 멈춰 서는 돼랑이 가족들의 모습에 강 진이 웃으며 애들 머리를 쓰다듬 었다.

“잘들 지냈어?”

꾸이 익!

강진의 손길에 애들이 웃으며 머리를 비볐다.

들썩! 들썩!

반갑다고 비비는 행동에 강진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에 강진 이 웃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애들 좀 만져 보세요.”

“그래도 되는 거지?”

“그럼요. 저승 음식 오래 먹어 서 말만 못 하지, 사람하고 거의 비슷하게 생각을 해요. 잘 해 주 면 얘들도 저희한테 잘 해 줘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멧돼지들 을 보다가 슬며시 다가갔다.

“이쪽은 나와 친한 형이야. 너 희들 보고 싶다고 같이 왔어. 앞 으로 친하게 지내.”

친하게 지내라는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돼랑이 가족들을 보았다.

돼랑이 가족들을 보던 황민성의 몸이 살짝 굳어졌다. 세상 무서 울 것 없는 상남자지만, 돼랑이 가족들은 조선 시대 그림에서나 나올 듯한 그런 멧돼지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본능적으로 두려움 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황민성의 모습에 돼랑이가 그를 보다가 다가와서는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마치 자신은 무서운 돼지가 아 니라는 듯 말이다. 그 모습에 황 민성이 돼랑이를 보다가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만나서 반갑다.”

꾸잇……!

자기가 놀랄까 봐 작게 울음을 토하는 돼랑이를 보고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 주려고 맛있는 것 들 많이 가져왔어.”

꾸잇? 꾸잇

맛있는 거라는 말에 돼랑이가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하자 황민성 이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 다.

“형 애들 타 보실래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았다.

“ 얘를?”

“저는 여기 오면 애들 타고 다 니거든요. 처음에는 좀 무서운데 타 보면 재밌어요.”

강진은 돼랑이의 자식 중 가장

큰 애의 등에 올라탔다. 예전에 는 돼순이 등에도 탔지만, 그래 도 암컷인데 타기 좀 그러니 말 이다.

강진이 멧돼지 등에 올라타자, 황민성이 그 모습을 보다가 돼랑 이를 보았다.

그 시선에 돼랑이가 무릎을 구 부려 몸을 숙였다. 그 모습에 황 민성이 잠시 망설이다가 그 등에 살짝 올라탔다.

황민성이 등에 타자, 돼랑이가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황민성이

처음 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최 대한 조심히 배려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귀를 잡든가 목털을 잡으세 요.”

“귀? 목털?”

“단단히 잡아도 괜찮아요. 안 아파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며시 귀를 잡으려 다가 멈췄다. 앞뒤로 움직이는 귀를 보고 있자니 만지기가 좀

뭐한 것이다.

그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목을 잡았다.

“잡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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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강진이 돼랑이를 보았다.

“천천히 근처 한 바퀴만 돌고 오자.”

근처라는 말에 돼랑이가 그를 보고는 한쪽을 보았다. 마치 마 을로 안 가냐는 듯 말이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마을에는 차 타고 가야 해. 지 금은 민성 형 너 한 번 태워 주 려고 그래.”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앞으로 움직 였다. 그에 황민성이 흠칫해서는 털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꽤 편안한 등에 황민성이 강진을 보 았다.

“꽤 편하네?”

“천천히 움직여서 그래요. 달리 면 꽤 무서울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돼랑이를 보다가 말했다.

“너는 털 강하게 움켜쥐어도 괜 찮아?”

꾸이잇

괜찮다는 듯 우는 돼랑이를 보 며 황민성이 털을 강하게 쥐었 다. 사람이라면 머리카락이 뽑힐 정도였지만, 돼랑이는 전혀 반응 이 없었다.

나무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머리 와 몸을 비비는 멧돼지에게 이 정도 자극은 간지러울 뿐이었다.

돼랑이가 아무렇지도 않아 하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려도 될 것 같은데.”

“말은 좀 타기 힘들어하시던데 얘들은 괜찮아요?”

“말은 고삐를 쥐고 있어도 너무 강하게 당기거나 하면 말이 놀라 서 넘어질 수 있는데, 이 녀석은 내가 힘으로 잡고 버티면 되잖

아.”

황민성이 돼랑이 목을 툭 치며 말했다.

“우리 집에도 너처럼 영물 같은 개가 한 마리 있거든? 그 애는 내가 하는 말 잘 알아듣던데, 너 도 알아듣지?”

꾸잇

작게 답을 하는 돼랑이를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그럼 천천히 속도 올리면서 달 려 보자. 가자!”

황민성의 말에 돼랑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러다가 다 시 앞을 보더니 그대로 튀어나갔 다.

“으윽!”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던 황민 성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동생 들한테 멋지게 말을 했는데 비명 을 지를 수는 없었다.

그런 황민성의 모습에 배용수가 피식 웃고는 돼랑이 새끼의 등에 올라탔다.

“아빠 따라가자!”

배용수의 외침에 새끼가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돼랑이는 황 민성을 배려해 적당히 속도를 내 고 있지만 새끼는 그렇지 않았 다.

배용수를 몇 번이나 자신의 등 에 태운 경험이 있는 것이다.

파앗!

그 모습을 보던 강진도 자신이 탄 새끼를 두들겼다. 그에 새끼 가 신호를 알아듣고는 튀어나가

는 아빠와 형제를 쫓아 내달렸 다.

두다다다!

질풍처럼 내달리는 돼랑이 새끼 를 탄 강진이 황민성의 옆으로 바짝 붙으며 그를 보았다. 황민 성은 긴장감이 많이 사라진 듯 웃고 있었다.

“타실 만해요?”

“재밌다!”

“그래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소리쳤다.

“더 빨리 달리자!”

황민성의 외침에 돼랑이가 본격 적으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야호!”

꾸이잇!

황민성의 외침에 돼랑이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더 속도를 높였 다.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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