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화
“기분 좋다!”
황민성이 돼랑이를 탄 채 달려 나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자신의 옆으로 따라오는 배용수 를 보았다.
“네가 형하고 같이 가.”
“너는?”
“나는 차 끌고 가야지. 네가 형 하고 같이 마을에 가 있어.”
“알았어.”
배용수의 답에 강진이 자신이 탄 돼랑이 새끼에게 말했다.
“아까 차 있는 곳으로 가자.”
꾸잇?
달린 지 얼마나 됐다고 돌아가 느냐는 듯 멈춰 서서 고개를 돌 리는 돼랑이 새끼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오늘 너희 주려고 맛있는 거 가져왔어. 그러니……
꾸잇!
강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돼 랑이 새끼가 푸드 트럭이 있는 곳으로 질풍처럼 뛰어가기 시작 했다.
부릉!
할머니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 강진은 차를 주차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도착 안 했나?”
차가 동물보다 빠른 건 당연하 지만, 산길에서는 아니었다. 산속 에서는 돼랑이가 자동차보다 더 빨랐다.
차에서 내린 강진은 할머니들이 있는 집을 보았다. 소리는 들리 지 않지만 집에서 할머니들은 드 라마를 보고 있을 것이다.
만복과 달래가 승천한 이후 할 머니들의 유일한 낙은 TV 보는 것뿐이니 말이다.
집을 보던 강진은 몸을 돌려 만 복의 집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실내에 먼지가 좀 있기는 했지만 만복의 집은 깔끔했다.
강진은 만복이 주고 간 이 집을 통해 으를 오고 갔다.
그래서 올 때마다 정성껏 청소 를 했다. 물론 청소를 한다고 해 도 시간이 지나 쌓이는 먼지는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만복의 집을 둘러보던 강진이 문을 활짝 열고는 먼지털이개로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형이 주고 간 집인데 깨끗하게
해야지.’
만복이 아끼던 장난감들이 부서 지지 않게 먼지를 털고 한쪽에 진열이 되어 있는 달래의 인형들 은 들고 나와서 가볍게 두드리며 먼지를 털었다.
그렇게 장난감과 인형들 먼지를 털은 강진이 차에서 분무기를 들 고 와서는 방 허공에 살짝 뿌렸 다.
화아악! 화아악!
허공에서 안개처럼 뿜어진 물방
울들이 먼지와 붙어서 떨어질 것 이다. 그리고 바닥을 닦으면 청 소 끝이었다.
강진이 청소를 할 때, 밖에서 황민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야호!”
황민성의 기분 좋은 외침에 강 진이 웃으며 집을 나왔다.
두두두! 두두!
황민성은 마치 로데오 타는 카 우보이처럼 손을 흔들었다.
“강진아!”
황민성이 기분 좋게 외치자 돼 랑이가 집 앞에서 멈췄다.
“으샤!”
황민성은 웃으며 돼랑이 몸에서 뛰어내렸다. 날렵하게 뛰어내리 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 다.
“잘 타시네요.”
“녀석이 알아서 움직여 줘서 편 하더라.”
“재밌었나 봐요?”
“어. 아주 재밌더라. 스트레스가 다 풀려. 승마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웃으며 황민성이 돼랑이 목을 두들기다가 급히 말했다.
“푸드 트럭 뒷문 그냥 열면 돼?”
“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돼랑이를 보았다.
“형이 맛있는 거 가져왔다. 그 거 먹으러 가자.”
꾸잇
돼랑이가 황민성의 옆에 바짝 붙었다.
휙휙휙!
기분 좋은 듯 꼬리를 좌우로 연 신 흔들어대는 돼랑이의 모습에 황민성이 웃으며 그 목을 더 두 들기고는 푸드 트럭 뒷문을 열었 다.
그에 배용수가 옆에 있다가 위
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장갑을 끼고는 말했다.
“제가 내려 드릴게요.”
“일단 물부터 좀 줘라. 애들 목 마르겠다.”
“물은 저기에 있어요.”
배용수가 푸드 트럭 내부를 뚫 어지게 보고 있는 돼랑이 가족들 을 보았다.
“너희 가서 물 좀 마시고 와라. 그럼 먹을 것 꺼내 줄게.”
꾸잇
배용수의 말에 돼랑이가 가족들 을 데리고는 개울가로 달려갔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는 돼랑이 가족들을 보던 배용수가 트럭에서 음식이 담긴 봉지들을 꺼내 내밀었다.
한 귀신과 한 사람이 물건들을 내리자 강진도 다가가서는 같이 물건들을 내렸다.
“강진이 왔어?”
음식들을 내리던 중, 할머니들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에서 사람 목소리와 멧돼지 울음소리 가 들리니 나와 본 것이다.
할머니의 목소리에 강진이 물건 들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였다.
“잘 지내셨죠?”
“우리야 늘 잘 지내지. 그런데 누구와 같이 왔어?”
할머니의 물음에 강진이 황민성 을 보았다.
“형.”
강진의 부름에 그렇지 않아도 인사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황민성이 트럭 뒤에서 나왔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황민성이 인사를 하는 것에 할 머니가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말했다.
“저승식당 사람은 아닌 것 같은 데, 우리를 보나?”
“네.”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안쓰러운 듯 황민성을 보았다.
“귀신 봐서 좋을 것이 없는 데……
“저는 보고 싶은 귀신들이 많아 서 괜찮습니다.”
“그래요?”
뭔가 묘한 말에 할머니가 황민 성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보고 싶으면 봐야죠. 어쨌든 잘 왔어요.”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살았을 때면 감자라도 좀
삶아 줄 텐테……
말을 하던 할머니가 돼랑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돼랑아.”
꾸잇
돼랑이가 뛰어오자, 할머니가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 했다.
“감자 밭에 가서 감자 좀 캐 오 렴.”
할머니의 말에 돼랑이가 황민성
을 보았다. ‘이 사람이 맛있는 거 준다고 했는데…….’라는 표정으 로 말이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 했다.
“다녀오면 맛있는 거 줄게. 봐, 이거 다 너희 거야.”
황민성이 한쪽에 놓여 있는 음 식 봉투를 들어 보였다. 그 모습 에 돼랑이가 급히 몸을 돌려서는 산으로 뛰어갔다.
그에 새끼들과 돼순이도 그 뒤
를 쫓아 달려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두두둣! 두두!
그 모습을 보던 황민성이 웃으 며 할머니 귀신에게 말했다.
“그런데 감자 밭이 있어요?”
“옛날에 우리가 농사짓던 곳인 데, 손질을 안 해도 알아서 자라 더라고.”
할머니가 웃으며 산을 오르는 돼랑이 가족들을 보았다.
“가끔 만복이가 돼랑이 타고 가 서 가져오면 먹고는 했지.”
“그러셨군요.”
“만복이가 하던 것이 있어서인 지 지금도 가끔 돼랑이가 감자를 캐다가 집에다 두고 가고는 해.”
“그래요?”
“겨울에는 자기들도 배고플 텐 데…… 기특해.”
“정말 기특하네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할머니를 보다가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감자 수확 시기인가 요?”
“그런 거 따질 것이 있나. 그냥 땅속에 있으니 파서 먹는 거지. 다 파먹었나 싶어도 해가 지나 땅을 파 보면 또 나오고 해.”
할머니 귀신이 웃으며 말을 이 었다.
“사람 손을 안 타도 잘 자라더 라고.”
“하긴, 자연이 키우는 것이니 사람 손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 네요.”
“자연이 키운다. 그 말이 맞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강진은 푸드 트럭에서 음식들을 하나둘 씩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어르신들 맛있는 거 해 드리려고 이것저것 많이 챙겨 왔 습니다.”
“그래요?”
일단 일 차로는 가볍게 국수로
시작을 하고요. 그다음에는 고기 하고 육개장으로 맛있게 소주 한 잔씩 하시게요.”
“말만 들어도 맛있겠네.”
집에서 드라마를 보던 할머니들 이 웃으며 나와서는 말을 건넸 다.
“동생이 왜 안 들어오나 했더니 강진이가 왔구나.”
“안녕하세요.”
“그래. 잘 왔어.”
할머니들의 인사를 받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경자 할머니하고 옥분 할머니가 안 보이시네요?”
“승천했어.”
“아…… 승천하셨군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사는 이들을 보았 다.
“만복이하고 달래가 가니 하나 둘씩 가네.”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끄덕이며 할머니들을 보았 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곳에는 산 사람은 없이 할머니들과 만 복, 달래만이 있었다. 그래서 김 장을 할 때 북적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네 분의 할 머니만이 남아 있었다. 만복과 달래가 승천을 한 후 마음이 가 벼워진 것처럼 한 명씩, 한 명씩 그렇게 승천들을 한 것이다.
강진이 자신들을 보자 할머니들
이 웃으며 말했다.
“승천을 하면 좋은 거니 괜찮 아.”
“그렇겠죠.”
수긍하면서도 강진의 얼굴은 살 짝 어두웠다. 할머니들이 말한 대로 승천을 하는 건 좋은 일이 다.
다만 사람이고 귀신이고 남은 이들이 문제였다. 특히 여기 할 머니들은 평생을 같이 했고, 죽 어서도 이렇게 같은 마을에서 귀
신으로서 살아왔다.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백 년을 같이 알고 지낸 사이들이었다. 살아서 오십, 죽어서 오십으로 말이다.
그러니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귀신이라고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말 이다.
그리고 강진의 얼굴이 어두운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러다가 한 분만 남게 되면
어쩌지?’
하나둘씩 떠나다가 한 명만 남 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는 것이다.
지금이야 드라마 이야기라도 할 친구들이 있으니 덜 외롭겠지만, 나중에 혼자 남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프네.’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마을을 보았다. 이곳에 혼자 남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가장 좋은 건 남은 귀신들이 같
은 날 같이 승천을 하는 거지만, 강진의 경험상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강진의 얼굴색이 안 좋아지자 할머니 한 명이 슬며시 그 손을 잡았다.
“좋은 일인데 표정이 왜 그래.”
“아닙니다.”
“우리 외로울까 싶어서 그래?”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할머니들도 아시는구나.’
할머니들도 강진이 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외롭게 혼자 남 겨질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에 강진이 할머니의 손을 마 주 잡았다.
“외롭기 전에 승천들 하실 거잖 아요.”
“그러면…… 정말 좋지.”
할머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 했다.
“저 위에 우리 마을 사람들, 그 리고 내 새끼들이 모여서 같이 살고 있을 거야. 만복이하고 먼 저 간 성님들이 우리 이야기 전 해 줬을 테니……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애들이 나를 많이 기다릴 테니 나도, 그리고 우리 성님들 도 어서 가야지.”
“가족들 생각 많이 나시죠?”
“안 나는 날이 없지. 그래도 승 천하면 다 볼 수 있으니까.”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면 보고 싶은 분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강진의 손을 쥐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올해 김장은 시간이 오래 걸리겠어.”
전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많아서 한끼식당 식구들과 신수 형제들 만으로도 충분히 김장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직원들도 있으니 너무 걱 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른 귀 신 분들도 있으니 여기 데려올 수 있는 분들은 데려와서 같이 김장하면 되죠.”
“그런가?”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라도 승천하려고 하는데 저희 김 장 걱정하느라 못 올라가고 그러 시면 안 돼요. 승천하실 때는 아 무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휙, 하
고 올라가셔야 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었다.
“알고 있어. 우리도 승천할 것 같으면 남은 이들 생각하지 말고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말을 하던 할머니가 조금은 씁 쓸한 얼굴로 마을을 보았다.
“다만…… 다 같이 승천을 했으 면 하지. 누구든 혼자 남으면 너 무 외로울 테니까.”
강진이 한숨을 쉬며 할머니들을 보았다. 그녀들도 두려운 것이다.
자기 혹은 다른 이가 혼자 남는 상황이 오는 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