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5 화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강 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어느새 주위에서 잔가지를 모아 다가 간이 아궁이에 넣고는 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거운 이야기에서 화제를 돌리 려고 강진이 배용수에게 말을 걸 었다.
“불 피우게?”
“돼랑이가 감자 가져오면 그거
나 좀 삶아 먹게.”
“감자라…… 소금 살짝 쳐서 먹 으며 맛있겠다.”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다가와 말했다.
“저는 소금보다 설탕이 좋던 데.”
“설탕도 좋죠. 아니면 감자 으 깨서 설탕 넣어 먹을까요?”
“으깨지 않아도 괜찮아요. 껍질 까서 먹는 재미가 있으니까.”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부드럽게 감자 으깨서 먹어도 좋은데, 뜨거운 감자 호 호 불면서 까먹는 것도 좋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아궁이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일단 솥부터 좀 씻어야겠 다.”
“같이 하자.”
“아니야. 너는 나무 모아.”
그러고는 강진이 할머니들을 보 았다.
“제가 감자 삶아 드릴게요.”
“아주 맛있겠네.”
“우리 산에서 나는 감자가 맛이 좋아.”
할머니들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궁 이에 있던 가마솥을 들었다.
“끄응!”
무쇠 가마솥인 만큼 상당히 무
거워 절로 신음이 나왔다. 그 모 습에 할머니들하고 있던 황민성 이 다가왔다.
“강진이 힘 세네.”
“‘이 정도쯤이야!’라고 하고 싶 지만…… 좀 들어 주시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가마솥 한쪽을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가마솥을 한쪽씩 잡고 물가로 걸어갔다.
“이거 무겁네.”
“무쇠니까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 있어? 푸드 트럭에 다 있잖아.”
가마솥 말고 푸드 트럭 냄비와 가스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황민 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이런 도시 사람 같으니.”
“옹?”
“이런 곳에 왔으면 장작으로 불 도 때우고 가마솥에 음식도 해야 재미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해 먹으면 더 맛도 있어 요.”
“그래‘?”
“그럼요.”
강진은 바가지로 물을 떠서 가 마솥에 부었다.
촤아악! 촤아악!
그러고는 주위에 있는 지푸라기 와 흙을 쥐어서는 가마솥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걸로 씻어?”
“원래 이렇게 하는 거예요.”
지푸라기와 흙으로 가마솥을 박
박 문지른 강진이 마지막으로 물 을 부었다. 그렇게 하자 가마솥 이 깨끗해졌다.
가마솥을 닦는 강진을 보던 황 민성이 마을을 둘러보았다.
“정말 인적도 없고…… 귀신들 만 사는 마을이구나.”
“그러니 전쟁이 났을 때도 몰랐 던 거죠.”
“전쟁의 아픔이구나.”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마을을 보았다. 마을의 집들은 거의 다
허물어진 낡은 폐가들이었다.
할머니들이 지내는 집과 만복의 장난감들이 있던 집만 그나마 형 태가 유지된 상태였다.
신수 형제들과 강진이 꾸준히 와서 보수를 하고 낡은 것을 치 웠으니 말이다. 그래도 버려진 마을이라는 건 확실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마 을을 볼 때, 돼랑이가 식구들과 함께 달려왔다. 그들은 주위를 보다가 강진을 발견하더니 이쪽 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서는 감자들 을 뱉어냈다.
후두둑! 후두둑!
돼랑이가 감자를 뱉어내자, 다 른 새끼들도 감자를 뱉어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황민성을 보 았다.
“애들 먹을 것 좀 주세요.”
꾸잇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황민성에 게 가서는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웃으며 그 머리
를 쓰다듬었다.
“누가 보면 덩치 큰 개인 줄 알 겠다.”
꼬리를 흔드는 것에 웃은 황민 성이 강진을 보았다. 강진은 돼 랑이 식구들이 물고 온 감자들을 물에 넣고는 씻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황민성이 작게 입맛 을 다셨다. 돼지 입속에 있다가 나온 것이라 조금 꺼림칙했다. 그런데 강진이 태연히 씻는 것을 보니…….
‘하긴. 산삼도 애들이 캐서 온다 는데 어차피 그것도 애들 입속에 서 나온 거겠지.’
황민성이 고개를 젓고는 돼랑이 등에 올라탔다.
“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꾸잇
돼랑이가 서둘러 뛰어가자, 새 끼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금세 음식 봉투 앞에 도착한 황 민성이 이걸 어디에 둬야 하나 생각을 할 때, 돼랑이가 어디선
가 솥을 하나 물고 왔다.
척 봐도 엄청 무거울 듯한 솥을 물고 온 돼랑이가 그것을 바닥에 툭 던졌다.
쿵!
생긴 것만큼 묵직한 소리를 내 며 떨어진 솥을 보던 황민성이 돼랑이를 향해 말했다.
“근데 이거 더러운데 씻어야 하 지 않아?”
꾸잇! 꾸잇!
황민성의 말에 돼랑이가 고개를 저으며 발로 솥을 쳤다. 마치 어 서 음식이나 담으라는 듯 말이 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피식 웃으 며 가지고 온 봉투들을 열어 음 식들을 부었다.
‘하긴, 흙 속에 있는 것도 파먹 는 애들인데……
황민성이 붓는 것은 과일도 있 고 닭고기도 있었다. 거기에 사 료도 있었고 말이다.
비닐들을 뜯어 식재들을 붓자, 돼랑이와 돼순이가 솥에 머리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황민성은 조금 떨어져 있는 새끼들을 보았다.
주르륵! 주르륵!
새끼들은 입에서 침을 질질 홀 리며 돼랑이와 돼순이가 먹는 것 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같이 안 먹어?”
황민성의 말에도 새끼들은 멍하 니 부부를 볼 뿐이었다. 그에 황
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나 뭇가지를 주워 온 배용수가 말했 다.
“애들 어릴 때는 돼랑이하고 돼 순이가 밥을 나중에 먹었어요.”
황민성이 보자, 배용수가 웃으 며 말을 이었다.
“딱 저런 자세로 애들 밥 먹는 거 보다가 애들이 밥을 다 먹으 면 그제야 밥을 먹었어요.”
배용수가 애들을 가리키자, 황 민성도 애들을 잠시 보다가 돼랑
이를 보았다.
“이제는 애들이 커서 어른부터 먹는 거구나.”
“그런 셈이죠.”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신기한 듯 돼랑이 가족들을 보다가 봉투 에서 사과를 몇 개 꺼내서 새끼 들에게 보여 주었다.
“받아먹을 수 있지?”
꾸잇!
던지기만 하라는 듯 우는 새끼
들의 모습에 황민성이 사과를 하 나씩 던져 주었다.
덥석! 아그작! 덥석! 아그작!
새끼들은 사과를 받자마자 단숨 에 통째로 씹어 먹었다. 황민성 이 그것을 보며 웃자, 배용수가 말했다.
“형, 불 피워 본 적 있으세요?”
“불‘?”
“아궁이 불요.”
“ 없는데?”
“한 번 해 보실래요?”
“그러지 뭐.”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푸드 트럭에서 가스 점화기와 신문지 를 가지고 왔다.
“얇은 것들부터 불을 붙이고 좀 큰 것들 올리면 불 잘 붙어요.”
“ 알았다.”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 화기와 신문지를 보다가 아궁이 를 보았다. 아궁이에 불을 붙여 보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도시에서만 살았다 보니 이런 걸 해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딱히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 정도야.’
신문지를 둘둘 말은 황민성이 잔가지들을 아궁이 안에 집어넣 었다.
툭! 툭!
조금 두껍거나 긴 잔가지들을 부러뜨려서 넣은 황민성이 조금 두꺼운 나무들을 그 위에 올렸 다.
‘이제 불 좀 붙으면 더 넣든가 하면 되겠지.’
황민성은 신문지에 불을 붙여서 는 잔가지 밑으로 조심히 넣었 다.
잔가지 밑에서 신문지가 화르르 타오르자, 황민성이 주위를 보다 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른 풀 과 아주 작은 나뭇조각들을 모아 서는 휙휙 하고 다 던져 넣었다.
“형 불 잘 붙이셨네요.”
강진이 솥을 들고 오는 것에 황
민성이 웃었다.
“불붙이는 것이 뭐 어렵나.”
“어렵죠.”
“그래?”
“전 처음 불붙일 때 잘 안 붙더 라고요.”
“그래? 나는 용수가 가져다준 것들로 하니 금방 되던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아궁이 안을 한 번 보고는 웃으며 말했 다.
“용수가 형 처음이라고 잔가지 들을 많이 가져왔나 보네요.”
강진이 아궁이에 솥을 올리려 하자, 황민성이 그것을 도왔다.
간이 아궁이에 솥을 올린 황민 성이 솥 안을 보았다. 안에는 감 자들이 있었다.
“ 믈 0 ?”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형 이것만 해도 엄청 낑낑대고 들고 왔는데 물까지 담으면 저 못 들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하긴, 빈 솥도 무거운데 거기에 물까지 들어가면 못 들겠네.’
“그럼 물은 담아야겠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푸드 트럭에서 물통 을 들고 나왔다.
“물도 저기서 뜨는 거야?”
“네.”
“근데 저 물 먹어도 되는 거 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깨끗 해요.”
강진은 시냇물을 손으로 떠서는 마셨다.
“뭐 떠다니던데?”
“정수기 물 같을 수는 없죠. 나 뭇잎도 떠 있고 먼지도 있고 그 런 거죠.”
그러고는 강진이 바가지로 물을 떠서 내밀었다. 그에 황민성이
바가지를 받아서는 잠시 머뭇거 리다가 입을 가져다 대고는 마셨 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형이 은근히 귀하게 자라셨나 봐요.”
“응?”
“보기에는 흙탕물도 벌컥벌컥 마실 것 같은데 말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바가지에 남은 물을 버렸다.
촤아악
시냇물 위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정말 마셔야 하면 흙탕물 아니 라 더한 것도 마시겠지만 그럴 일이 있나. 그리고 형이 은근 도 시 체질이거든. 도시 외에는 살 아 본 적이 거의 없어.”
“그랬군요.”
말을 하던 황민성이 문득 강진 을 보았다.
“두식이 옆에 귀신 붙은 거 알
지.”
“ 알죠.”
“그 애 승천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승천요?”
“얼마 전에 나한테 고맙다고, 우리 형님 바르게 잘 사시는 거 보니 너무 기쁘다고 하더니 가더 라.”
“ 가셨구나.”
“나중에 두식이 데리고 그 수현 이 집에 한 번 가려고 했었는 데…… 그전에 갔네. 집에 인사 나 하고 가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 수 있을 때 가는 것이 가장 좋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도 두식이가 인복이 있어. 죽어서도 형님으로 모시는 동생
도 있고 말이야.”
“부러우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나무를 주워 오는 배용수를 보았 다.
“부럽기는. 나도 동생들이 이렇 게 있는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에 산 동생들도 둘이나 더 있잖아요.”
“맞지.”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 잔가지를 놓던 배용수가 강 진에게 소리를 질렀다.
“불 켜 놓고 거기서 뭐해! 감자 타! 빨리 물 받아 와!”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이 크!” 하고는 급히 바가지로 물을 떠서 통에 담기 시작했다. 가마 솥에 넣어 둔 감자가 타기 전에 서둘러 물을 담아 가야 했다.
뜨거운 감자를 양손으로 쪼개자 하얀 속살이 드러나며 뜨거운 김 이 올라왔다.
화아악!
“으 뜨거!”
양쪽으로 쪼개진 감자를 후후 부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말했 다.
“형 소금 넣어 드세요.”
강진이 굵은소금을 감자에 톡톡 올리자, 황민성이 감자를 입에 넣었다.
“하아!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입안의 열 기를 뺀 황민성이 웃었다.
“맛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감자를 쪼개 소금을 올리고는 입에 넣었 다.
감자의 고소한 맛과 굵은소금의 짠맛이 같이 느껴지는 것이 묘하 게 맛이 좋았다.
‘맛있네.’
강진은 주위에서 같이 감자를 먹고 있는 할머니 귀신과 한끼식 당 식구들을 보았다. 별거 아닌 찐 감자지만, 이렇게 모여서 먹 으니 맛이 더 좋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