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화
아침 일찍 강진은 누룽지를 끓 이고 있었다.
부글부글!
누룽지가 끓는 것을 보던 강진 이 배용수를 보았다.
“형 깨워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만복의 집에 들어가 황민성을 데리고 나 왔다.
“끄응!”
황민성이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어제 술 많이 드셨는데 어때 요?”
“막걸리를 마셔서 그런지 속이 좀 그렇기는 한데…… 이 정도는 괜찮아.”
웃으며 황민성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몸 이곳저곳에서 뼈마디 부딪히 는 소리가 나자, 황민성이 웃으 며 말했다.
“내가 은근히 도시 체질이라 바 닥에서 자서 몸이 뻐근하다.”
“그래도 공기 상쾌하고 좋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스트레칭 을 하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 다.
“확실히 공기가 좋네.”
산속 깊은 곳이라 그런지 공기 가 무척 좋았다. 은은하게 나무
향과 숲 향이 맡아지는 것이 여 기에서 숨만 쉬며 살아도 수명이 몇 년은 늘어날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며 좋은 공기를 깊 이 들이마신 황민성이 입에 손을 모으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야호!”
크게 고함을 지른 황민성이 숨 을 다시 크게 들이마시고는 말했 다.
“좋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누룽지 끓였어요.”
“맛있겠다. 아, 깻잎조림은?”
“있어요.”
“잘 했어. 누룽지에 깻잎조림 올려서 먹으면 맛있지.”
황민성이 웃으며 솥이 있는 곳 으로 다가가다가 할머니들이 살 던 집을 보았다.
말없이 집을 보는 황민성을 보
며 강진이 말했다.
“좋은 곳에 가셨을 거예요.”
“여기는 어떻게 할 거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마을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산에 있으니…… 산이 되겠 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뭔가 의미가 있네.”
“그런가요?”
“산에 있으니 산이 된다, 라…… 멋지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저었다.
“그리고 제가 여기 주인도 아닌 데 그냥 둬야죠.”
강진이 마을을 보았다. 사람도 없고 귀신도 없으니...... 가끔 돼 랑이가 와서 풀이나 뽑을 것이 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 손 이 계속 닿지 않으면 이끼가 자
라 벽을 덮을 것이고 풀이 자라 돌을 뚫고 나올 것이다.
그렇게 숲이 되고 산이 될 것이 다.
강진이 집들을 볼 때, 황민성이 어제 돼랑이가 가져온 나무에 앉 았다. 그런 황민성에게 강진이 누룽지를 담은 그릇을 내밀었다.
“고마워.”
“뭘요.”
누룽지를 받아 든 황민성이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고는 입에
가져갔다.
“후우! 좋다.”
술로 딱딱해진 속이 따스하고 구수한 누룽지에 녹아내리는 것 을 느끼며 황민성이 말했다.
“언제 갈 거야?”
“밥 먹고 여기 정리 좀 하고 가 려고요. 근데 형 어제 술 많이 먹었는데 운전 괜찮으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형이 술 먹고 한숨 잤으니 괜 찮다고 운전대 잡을 사람으로 보 이냐?”
“그건 아니죠.”
산길이라 차를 빠르게 몰 수가 없어 강진은 오를 통해서 서울로 먼저 갈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 으면 점심 장사 시간을 맞출 수 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푸드 트럭은 황민성이 타고 서울로 오는 게 원래 계획 이었는데, 어제 황민성이 술을 좀 많이 마신 듯해서 운전이 걱
정되었다.
“밥 먹고 돼랑이 불러서 산이나 한 바퀴 돌려고.”
“산요?”
“산 타면서 땀 좀 쫘악 빼고, 냉수로 씻으면 술독 쫘악 빠지지 않겠냐.”
“그건 그렇겠네요.”
그 정도로 땀을 빼면 술기운이 빠질 것이다. 황민성의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배용수 가 말했다.
“일일 보험 가입하는 거 잊으시 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마라. 이따가 보험 회사에 전화해서 일일 보험 가입 할 테니까.”
그러고는 황민성이 누룽지를 입 에 넣으며 말했다.
“형 불법적인 일 좋아하는 사람 아니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급히 말했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알아.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 거.”
웃으며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점심 음식 준비는 너 혼자 해 도 되지?”
“왜요?”
“돼랑이하고 산 오르는 것도 재 미는 있을 것 같은데 대화를 할 상대가 없잖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웃
으며 말했다.
“그래. 가끔은 너 혼자도 해 봐 야지.”
“나 혼자?”
“그럼 언제까지 내가 네 뒷바라 지하냐.”
“나 죽을 때까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고 개를 젓고는 말했다.
“점심 메뉴는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뭘 하지?”
“오늘 점심은 네가 생각을 해 봐. A부터 Z까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말했다.
“날씨 덥더라. 오이 냉채하고 밑반찬, 거기에 칼칼하게 갈치조 림 하고…… 다른 메뉴로는 불고 기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국은?”
“배추 된장국 괜찮을 것 같은 데? 갈치조림하고 불고기가 좀 매콤하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왜? 마음에 들어?”
“메뉴 잘 결정했어. 반찬이 좀 맵거나 짜거나 하면 그걸 보완해 줄 다른 음식을 같이 준비해야 해. 우리 강진이 많이 컸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으며 말했다.
“그래도 안 보내 준다. 나하고 같이 가는 거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작게 젓고는 말했다.
“밥이나 먹어라.”
“ 알았다.”
강진이 웃으며 누룽지에 김치를 올려서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돼랑이 외롭겠네.’
할머니들이 있어서 가끔씩 올 곳도 있고 사람 말도 들었을 텐 데…… 이제 자신과 놀아주던 만 복과 달래도 없고 할머니들도 없 으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돼
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꾸잇
커다랗게 울며 달려오는 돼랑이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못 보고 가나 했는데 오네.”
강진이 돼랑이를 보며 웃을 때, 그 식구들이 강진 일행에게 와서 는 코를 벌렁거리며 누룽지를 보 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 남은 음식들 너희가 다 먹어 놓고 지금도 배가 고파?”
꾸잇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크게 울 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누룽지 를 보고는 말했다.
“지금은 뜨거워서 너희 먹기 힘 들어.”
그러고는 강진이 일어나려 하 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밥 먹어라. 내가 애들 밥 줄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돼랑이가 새끼들을
보았다.
그에 돼랑이 새끼 세 마리가 와 서는 강진의 앞에서 입을 벌렸 다.
주르륵!
진득한 침과 함께 바닥에 무언 가가 떨어졌다.
“도라지네.”
돼랑이 새끼들이 뱉은 건 도라 지였다. 강진이 웃으며 도라지를 보다가 돼랑이를 보았다.
“고맙네.”
꾸잇
작게 우는 돼랑이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마치 웃는 것처 럼 말이다. 그런 돼랑이를 보던 강진이 도라지를 보다가 말했다.
“점심에 도라지무침도 해야겠 다.”
“이걸로 무침 하면 우리 손님들 기력도 생기고 더운 여름 잘 지 내시겠다.”
도라지무침에 쓰기에는 너무 비
싼 식재기는 하지만…… 비싸도 어차피 먹는 거다.
물론 강진이 자기 돈으로 샀다 면 아까워서 먹을 생각을 못 하 겠지만 말이다.
강진이 다시 누룽지를 먹는 사 이, 배용수가 어제 쓰고 남은 식 재들을 모두 들고 와서는 커다란 통에 담아 놓았다.
“먹어라.”
배용수의 말에 돼랑이와 돼순이 가 와서는 먹기 시작했다. 새끼
들은 부모가 먹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할머니들이 살던 집을 보 고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꾸잇! 꾸잇!
집을 향해 작게 우는 것이 아마 도 ‘할머니들 나와 보세요.’ 하는 것 같았다.
‘저 녀석들도 할머니들 승천한 것 알 텐데……
그런 돼랑이 새끼들을 볼 때, 배용수가 말했다.
“우리라도 자주 와서 애들 살펴
봐야겠다.”
“그래야겠다.”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슬며시 말했다.
“지금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런 거 알지만…… 우리 올해 김장은 어떻게 해요? 여기서 하실 거예 요?”
이혜미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들은 없지만, 김장은 여 기에서 해야죠.”
강진이 길 쪽을 보았다.
“저희 김치 숙성실이 여기에 있 는데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나 요.”
“그건 그러네요.”
“대신 할머니들 안 계시니 올해 부터는 요리 좀 할 줄 아는 아주 머니 귀신분들 좀 모셔서 손 좀 빌려야겠네요. 아니면 처녀귀신 들을 좀 모시든지 하려고요.”
“처녀귀신들인데 김장할 줄 알 까요?”
이혜미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요즘 이야기고, 옛날 분들은 집에서 김장할 때 거들고 는 했잖아요. 하실 줄 아실 거예 요. 아마 이지선 씨는 어지간한 요리사보다 잘할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그래도 소희 아가씨는 못 하실 것 같은데?”
“소희 아가씨라면 그럴 수도 있 겠네요.”
김소희가 음식을 만드는 건 상 상이 안 되니 말이다.
두 사람이 웃는 것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소희 아가씨도 요리 잘 하실걸?”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말했다.
“양반가 규수라고 시서화만 하 고 하인들이 주는 밥만 먹는 건 아니야.”
배용수가 강진을 보며 말을 이 었다.
“종갓집 며느리라는 말이 왜 있 겠어.”
“종갓집 며느리?”
“전통 있는 양반가 종갓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 비방이 있 어. 그리고 그걸 큰며느리가 물 려받아. 그 말은 양반가 여식이 라도 집에서 음식을 좀 배우고 시집을 간다는 말이야. 그리고 전주가 맛의 고장 아니냐. 먹을 것이 얼마나 많고 식재가 얼마나 풍부해. 모르기는 몰라도 아가씨 도 음식 잘하실 거야.”
말을 하며 배용수가 슬며시 주 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너 이 자식.”
“응? 왜?”
배용수가 왜 그러냐는 듯 보자, 강진이 웃었다.
“너 일부러 아가씨 칭찬한 거 지.”
“내가?”
“전에 아가씨가 자기 이야기를
하니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셨잖 아. 그래서 일부러 한 거지. 예쁨 받을라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놀란 듯 배용수를 보았다.
“용수 너 그런 아이였어? 칭찬 을 받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 며 말했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게다가 소희 아가씨 칭찬이 면……
조금 민망한지 머리를 긁은 배 용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음식 하실 줄 안다는 건 맞을 거예요. 조선시대에는 음식 잘하는 것도 미덕이었으니 까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피식 웃었다.
“김장할 때 아가씨께서 손을 보 태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모 시기는 해야겠다. 김장할 때 김 치에 수육 먹는 것도 재밌으니 까.”
이야기를 나눈 강진이 누룽지 그릇을 내려놓고는 핸드폰을 꺼 냈다. 그러고는 도라지를 들어서 는 흙을 툭툭 털었다.
대충 흙을 털어낸 강진이 핸드 폰으로 도라지를 찍었다.
“뭐하게?”
“점심 메뉴 공지해야지.”
웃으며 강진이 도라지 사진을 찍고 주위 산세를 찍어서는 단톡 방에 올렸다.
〈지금 저는 강원도 산에 있습니 다. 제 오랜 친구가 좋은 산도라 지를 캐 줘서 오늘 점심은 이걸 로 도라지무침을 할 생각입니다.
메인도 아니고 무슨 도라지를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올리나 싶 을 텐데요.
아마 도라지에 대해서 좀 아시 는 분이라면 이게 어떤 도라지인 지 아실 것 같습니다.
제가 적으면 자화자찬인 것 같 으니 설명은 아시는 분이 댓글 달아 주시기를 바라며…… 도라
지가 정해진 분량이 있어서 소량 제공되며 리필은 어려울 것 같습 니다.
추신: 요즘 기력이 딸리고 몸보 신이 필요하신 분들은 오셔서 도 라지무침 꼭꼭 씹어서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