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80화 (978/1,050)

980화

“사장님 잘 먹고 갑니다.”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난 손 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맛있게 드셨어요?”

“늘 맛있게 먹죠. 그리고 오늘 은 보약을 먹은 기분입니다.”

손님이 종지에 묻은 양념을 보 며 입맛을 다시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더 드리고 싶어도 양이 얼마 안 돼서요.”

“귀한 음식 서비스로 받는데 많 이 달라고 하면 그게 염치가 없 는 거죠.”

웃으며 답한 손님이 슬며시 물 었다.

“그래서 도라지는 좀 남았습니 까?”

손님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저녁 손님들도 맛은 보셔야 죠.”

강진의 말에 손님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말했다.

“잘 먹고 갑니다.”

“또 오세요.”

“그럼요. 내일도 올 겁니다.”

손님이 가게를 나가자, 강진이 문 밖을 한 번 보고는 가게 문을 잠갔다.

“자! 정리들 하시죠.”

강진의 말에 주방에서 귀신들이 우르르 나와서는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신수호 번호를 찾은 강진이 전화를 걸었다.

신수 형제에게도 강원도 할머니 들이 승천한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놀라시려나? 아니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신수호야 저승에서도 변호사 일

을 하는 사람이니, 어쩌면 승천 을 한 할머니들을 이미 만났을 수도 있었다.

할머니들을 변호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신수 호가 전화를 받았다.

[신수호입니다.]

“저 이강진입니다.”

[말씀하세요.]

신수호의 고저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입을 열었다.

“만복 형 마을 할머니들 승천하 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역시 알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말했 다.

“혹시 할머니들 만나셨나요?”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분들 담당 변호사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저승식당에서 일하는 귀신들도

신수호가 변호를 해 준다고 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보아 온 할머 니들 변호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 지 않았을 것이다.

신수호가 담당 변호사라는 말에 안심이 된 강진이 물었다.

“그럼 그분들은?”

[저승에 잘 도착하셨습니다.]

“지옥은 안 걸리나요?”

할머니들은 누가 봐도 순박하고 남을 해치기보다는 자기가 해를 당할 분들이었다.

하지만 저승의 법은 아주 자세 히 들여다본다. 죽은 것도 서러 운데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고 죄 를 묻는 곳이니 말이다.

물론 그 죽음이 자신의 과실인 지, 다른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 는 하지만…… 여러모로 엄격한 저승이다 보니 강진은 할머니들 이 걱정되었다.

[제가 변호를 맡았습니다.]

그것으로 답을 대신하는 신수호 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믿음직스러운 답이시네 요.”

[고맙습니다.]

강진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 수화기 너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마을은 어릴 적 저희 형제 들에게는 시골집 같은 곳이었습 니다.]

‘시골이기는 하지.’

말 그대로 완전히 시골 마을이 었다.

[저희도 방학 때면 그곳에서 할 머니들과 지내고 만복 형과 달래 누나와 놀았습니다. 할머니들이 산에서 나는 것들로 음식을 해 주기도 하셨고, 샘에서 물놀이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저 희에게는 친할머니와 같은 분들 을 승천시켜 주셔서요.

신수호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 키던 강진이 조용히 물었다.

“그분들은 마을 가족들을…… 친구를 만나셨나요?”

[만나셨습니다.]

신수호의 목소리에는 살짝 웃음 기가 어려 있었다.

‘직접 만나게 해 주셨나 보구 나.’

할머니들이 서로를 만나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그 러니 그것을 떠올리고 흐뭇해하 는 것일 터이다.

‘그래. 다들 위에서 기다리고 계 셨구나.’

“그럼 만복 형하고 달래 누나도 요?”

잠시 답이 없던 신수호가 뒤늦 게 말했다.

[두 분은 환생을 하셨습니다.]

“아…… 환생을 하셨군요.”

[그래도 할머니들 뵙고 환생을 하셨습니다.]

“그래요?”

[만복 형과 달래 누나가 이승에 남은 분들을 기다리고 싶어 했습 니다. 아빠, 엄마와 만난 자신들

의 모습을 할머니들에게 보여 주 고 싶어 하셨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두 분도 그곳에서 아빠 엄마를 만나셨군요.”

[네.]

“그럼 일찍 이야기를 해 주시 지.”

[저승식당 사장님이라고 해도 저승에 대해 많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그저 승천을 하

신 분들은 승천을 하셨다 생각하 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 면…… 보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아지십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지금도 승천한 귀신 중 보고 싶 은 이들의 얼굴이 가끔 눈앞에 아른거리니 말이다.

‘그래도 잊고 싶지 않네요. 저한 테 소중하신 분들이니까요.’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두 분 환생하기 싫어하 셨을 것 같은데요?”

귀신으로 반세기를 지내며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던 만복과 달래 다. 그러니 겨우 만나게 된 아 빠, 엄마와 헤어지기 싫었을 것 이었다.

강진이 그런 의문을 가질 때, 신수호가 말했다.

[저승은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오! 두 분이 돈이 좀 많으셨나

보네요?”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두 분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 까?]

“그럼?”

[마을 분들이 돈을 모아서 두 분의 환생을 좀 미뤘습니다. 이 승에 있는 분들이 승천을 해서 만날 때까지만요.]

“그렇군요.

했는지는…•

그럼

어디에 환생을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다 해도 알려 드릴 수는 없습 니다.]

강진은 조금 아쉬웠다. 만복과 달래가 어디에 태어났는지 알면, 이유식이라도 만들어서 보내 주 고 싶었던 것이다.

[만복 형과 달래 누님은 친한 친구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말은?”

[부모끼리 친한 사이고 같은 해 에 태어났으니 친구로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입니다.]

“다행이 네요.”

[만복 형과 달래 누나가 강진 씨에게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하 셨습니다. 그리고 돼랑이 겨울에 배 많이 고파 하니 자주 가서 사 료 좀 챙겨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겨울뿐 만 아니라 봄, 여름, 가을에도 제 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서 사 료 채우고 있습니다.”

[만복 형도 그렇게 이야기하더 군요. 돼랑이를 잘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문득 물 었다.

“마을에 이제 할머니들 없으신 데 어떻게, 올해 김장에 오실 건 가요?”

[어르신들이 없다고 저희가 김 치를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저희 에게 김장은 어르신들과 어머니 를 기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알겠습니다.”

긍정으로 받아들인 강진이 전화 를 끊으려 할 때, 신수호가 말했 다.

[어르신들은 환생을 하지 않고 다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어려서 죽은 분들은 환생을 했 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마을에서처럼 같이 모여 살고 계 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신수호가 전화

를 끊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같이 살고 계시군요. 다행이네 요. 저승이 이승하고 비슷하 니…… 이승처럼 가을에는 김장 도 하시고, 봄에는 나물도 캐시 고, 여름에는 물놀이도 하고 겨 울에는 따뜻한 방에서 감자도 쪄 드세요.”

천장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홀 을 정리하는 직원들을 보다가 말 했다.

“감자 삶아서 먹을까요?”

“감자요?”

“어제 감자 삶아 먹으니 맛있더 라고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말했다.

“옥수수도 쪄 먹자.”

“그것도 좋지.”

“그럼 여기 정리할 테니까 가서 옥수수 사 와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들을 보았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 없어요.”

고개를 젓는 직원들을 보던 강 진이 몸을 돌리려 할 때, 임정숙 이 슬며시 말했다.

“저 피자 먹고 싶어요.”

“피자요?”

“갑자기 먹고 싶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피자를 주문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말 했다.

“그럼 저희가 해서 먹을까요?”

그러고는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피자 할 줄 알아?”

“피자가 뭐 어렵나. 밀가루로 도우 만들고 그거 잘 펴서 토마 토소스 올리고 햄 올리고 오 브.. ”

조리법을 막힘없이 읊던 배용수 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한끼식 당에는 오븐이 없었다.

“오븐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 니 프라이팬에 뚜껑 덮고 구우면

끝이지.”

“그럼 위가 익을까?”

“불 조절하면서 열 가게 하면 돼. 그리고 마지막에 토치로 위 한 번 지져 주면 안 익으려고 해 도 다 익겠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임정숙을 보 았다.

“좋아하는 피자 스타일 있으세 요?”

“저 치즈 피자 좋아해요.”

“치즈 피자라……

임정숙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메모지에 재료를 적어서는 강진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사다 줘.”

배용수가 적어 준 메모를 본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 올게.”

강진이 가게를 나가자, 배용수 가 말했다.

“자! 정리들 하시죠.”

그에 직원들이 서둘러 홀을 정 리하기 시작했다.

*  *  *

점심 장사 끝나고 홀과 주방까 지 정리를 마친 한끼식당 식구들 은 모여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 었다.

간식으로 먹는 건 찐 감자, 찐 옥수수, 그리고 임정숙이 먹고 싶다고 한 치즈 피자였다.

찐 감자와 찐 옥수수는 가끔 먹 던 것이라 별다를 바가 없었지 만, 치즈 피자는 조금 색달랐다.

배용수가 직접 만든 밀가루 반 죽을 얇게 펴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를 올린 뒤 양파와 버섯, 그 리고 옥수수 알갱이를 토핑으로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 를 정말 한가득 올렸다.

“맛있겠다.”

이혜미가 피자를 보며 중얼거리

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드셔 보세요.”

말을 하며 배용수가 식칼로 피 자를 조각냈다. 피자 가게에서 쓰는 동그란 커터는 없었지만, 검수림 식칼은 커터 못지않게 피 자를 잘 조각냈다.

임정숙이 입맛을 다시며 한 조 각을 들어 올렸다.

화아악!

주우욱!

피자가 불투명한 모습으로 변함 과 동시에 치즈를 길게 늘어뜨리 며 들어 올려졌다.

‘치즈도 저렇게 되네.’

귀신이 먹는 피자도 저런 모양 으로 치즈가 늘어날 줄 몰랐던 강진이 신기한 듯 그것을 보다가 피자를 집었다.

주우욱!

임정숙이 들었던 것처럼 치즈가 길게 늘어나자 강진이 웃었다.

치즈 장난 아니다.”

“괜히 치즈 피자겠어?”

배용수가 웃으며 피자를 한 조 각 들었다.

주우욱!

배용수의 피자에서도 치즈가 길 게 늘어나자, 그걸 구경하던 강 진이 이혜미와 강선영을 보았다.

“두 분도 한 조각씩 해 보세 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와 강선영도 피자를 들어 올렸다.

주우욱!

길게 늘어나는 치즈를 보며 이 혜미가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이렇게 되고 나서 피자는 한 번도 못 먹어 본 것 같아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피자…… 여기 와서 처음인 것 같네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았다.

“너도‘?”

“여기서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리고 새벽에는 저 승식당에서 또 먹는데 피자를 시 켜 먹을 일이 어디 있나. 게다가 배고프다고 간식 달라고 하면 네 가 뚝딱 맛있는 거 만들어 주는 데 말이야.”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용수 씨가 음식을 워 낙 잘 만들어 주니 우리가 이런 배달 음식을 거의 먹어 본 적이

없네요. 아! 물론 이건 용수 씨 가 직접 만들어 준 거지만요.”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는 드시고 싶은 거 있으 면 바로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한식이 전문이기는 하지만 피자 나 수제 버거 같은 것도 다 만들 줄 알아요.”

“그래야겠어요.”

웃으며 이혜미가 피자를 한 입 물고는 그대로 당겼다.

주우욱!

피자 치즈가 입에서 길게 늘어 지는 것에 이혜미가 웃으며 손가 락으로 치즈를 빙빙 돌려 입에 마저 넣고는 말했다.

“역시 피자는 이 치즈 늘어나는 맛이죠.”

이혜미의 말에 강진과 직원들이 서로를 보고는 피자를 입에 집어 넣었다. 그러고는 그들도 피자 치즈를 길게 늘어뜨리며 먹기 시 작했다.

“아! 피자 먹는데 콜라가 빠질 수 없죠.”

“맞죠! 피자에는 콜라죠.”

강진은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와서는 잔에 따랐다.

콜라 특유의 하얀 거품이 올라 오는 소리, 그리고 탄산이 터지 는 소리를 들으며 웃은 강진은 콜라를 시원하게 마시고는 피자 를 입에 넣었다.

‘가끔 피자도 좋구나.’

몇 년 만에 먹어 보는 피자라

맛이 좋은지, 아니면 좋은 소식 을 들어서 맛이 좋은지, 그도 아 니면 가족들과 같이 모여서 먹어 서 맛이 좋은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참 맛있는 피자였고 콜 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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