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81화 (979/1,050)

981 화

피자를 맛있게 먹던 배용수가 아차 싶었는지 급히 자리에서 일 어났다.

“피클 만들었는데.”

배용수는 서둘러 주방에 가서는 유리병을 들고 나왔다.

“피클을 만들었어?”

“피자는 또 피클하고 먹어야

지.”

“근데 그거 숙성해서 먹어야 하 는 거 아니야?”

“숙성해서 먹으면 가장 좋기는 하지. 피클도 장아찌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잖아. 이건 간 단하게 바로 먹어도 되는 거야.”

배용수가 유리병 뚜껑을 열자 시큼한 피클 냄새가 났다.

“냄새가 제대로네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용수가 또 음식에는 무척

진지한 편이잖아요. 간단하게 만 든다고 해도 그 맛까지 간단할 수는 없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으며 접시를 가지고 나와서는 피 클을 덜었다.

“냄새만 맡아도 어금니 쪽이 시 큰거리는 것 같아요.”

이혜미가 어금니 쪽을 손으로 문지르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도 식초 냄새를 맡았 을 때처럼 어금니 밑이 시큰거렸 다.

이혜미가 오이 피클을 집어 입 에 넣었다. 그러고는 살짝 미간 을 모았다가 말했다.

“으! 새콤해.”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느끼한 피자하고 먹을 때는 좀 새콤한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배용수는 피자를 한 입 먹고는 우물거리다가 피클을 하나 집어 먹었다.

아스H 아삭!

아삭한 오이가 씹히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피자는 피클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도 피클을 피자에 올려서는 같이 입에 넣었 다.

아삭! 아삭!

기름진 치즈의 느끼함이 아삭아 삭한 오이 피클 덕분에 누그러들 었다. 피클의 조금 과한 새콤함 이 고소하면서도 느끼한 치즈와 잘 어울렸다.

“이래서 서양 애들이 고기하고 피클을 같이 먹나 보다.”

강진이 웃으며 배용수를 보았 다.

“그런데 용수 너는 한식 말고 다른 것도 정말 잘하는구나.”

“피클 만드는 거 어렵지 않아. 그리고 한식 요리사도 가끔은 외 국 음식 먹고 싶을 때도 있고.”

웃으며 피클을 집어 입에 넣은 배용수가 그릇에 담긴 피클을 보 았다.

“지금이야 바로 먹으려고 평범 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피 클 좀 만들까?”

“피클?”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간단하게 만들어서 색 감이 별로인데 이게 또 색감을 여럿 낼 수 있거든. 노란색, 보라 색, 빨간색까지 말이야. 그걸 이 것보다 조금 작은……

배용수가 맥주잔을 들고 왔다.

“이 정도 사이즈로 해서 피클 만들면 보기도 좋아.”

“보기는 좋은데 그 정도 사이즈 는 양이 너무 적은데? 어디 선물 이라도 하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으로 해 서 선물 상자에 담아 단골들 선 물로 드리면 좋지 않겠어? 운암 정에서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단골들한테 작지만 이런 선물들 해 드리는데 좋아들 하시더라

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동안 가게를 많이 찾아 주신 고마우신 단골들에게 마음을 표 현하기 좋아 보였다. 그리고 만 드는 데에 재료비도 얼마 안 들 것 같고 말이다.

“오케이! 그럼 일단 먹자.”

배용수가 피자를 먹고는 옥수수 를 입에 넣었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강진도 피자를 입에 마저 넣고는 옥수수를 들었다.

“저기……

임정숙이 보는 것에 강진이 그 녀를 보았다.

“왜 그러세요?”

“저…… 저희 집에 좀 갈 수 있 을까요?”

강진은 임정숙을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임정숙과 직원들은 매주 일요일

에는 쉰다. 그래서 집에 가고 싶 으면 가고, 가게에서 쉬고 싶으 면 쉰다.

때때론 강진과 함께 보육원이나 여기저기 같이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 가고 싶으면 토요 일에 말하고 가거나 일요일에 가 거나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 니 굳이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제가 집에 가기를 원하세요?”

네.”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임정숙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집에 일은 없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는 부산 을 가죠.”

“그래 주실 거예요?”

“그럼요. 우리 정숙 씨가 제가 집에 가기를 바란다는데 당연히

가야죠. 그리고 안 간 지 좀 됐 으니 음식도 좀 해서 인사도 드 리고요.”

“저……

“정숙 씨.”

임정숙의 이름을 부른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저희 알고 지낸 지 오래됐 고…… 저는 정숙 씨를 친동생처 럼 생각해요.”

“친동생요?”

“전에 이야기했듯이 혜미 씨는 똑똑한 여사친 같고, 선영 씨는 조금 무서운 누나……

말을 하던 강진이 강선영을 보 았다.

“선영 씨가 싫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아시죠?”

“알아요. 그냥 사납다는 거잖아 요.”

“그런 의미 아닌 거 아시면서.”

“ 알아요.’’

강선영이 웃으며 답하자 강진이 다시 임정숙을 보았다.

“정숙 씨는 제가 보호해 주고 싶은 동생 같아요. 그러니 저에 게 부탁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 으면 편하게 하세요. 저희 그 정 도 사이는 되잖아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부모님 여기에 한 번 모 시고 싶어요.”

“저희 식당에요?”

“부모님은 모르시겠지만……

임정숙이 가게를 스윽 한 번 보 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일하는 곳을 보여 주고 싶어요.”

“일하는 곳을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일하는 모 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건 안 되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하는 곳이라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부모님에 게 보여 드리고 싶으세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바보 같은 거 알아요. 부모님 이 여기 와서 여기를 본다고 해 도…… 제가 일을 하는 곳인지,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제가

잠시 말을 멈춘 임정숙이 한끼 식당 식구들을 보았다.

“얼마나 좋은 오빠, 언니들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걸요. 그런 데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또 잘하는 것이 선의의 거짓말하는 거 아니겠어요. 걱정 하지 마세요. 제가 두 분 꼭 저 희 가게에 오시게 해서 정숙 씨 옆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있는 지 알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임정숙 부모님과는 전에 한 번 인사를 했었다. 임정숙과 친하게 지내던 오빠인데 부산에 올 일이 있어서 왔다가 들른 것으로 해서 말이다.

안면이 있으니, 이번에도 찾아 가서 인사드리고 가게로 한 번 초대하면 될 것이었다.

물론 부산에 계신 분들을 서울 까지 초대하려면 꽤 많은 거짓말 을 섞어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너 입 불편하냐?”

배용수가 묻는 것에 강진이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데 왜 입을 우물거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방금 전 하던 대로 자신의 혀를 이빨로 살짝살짝 물었다.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혀에 펼쳐지는 풍요로운 황금 논 이 떠오르는 것이다.

‘내 혀는 정말 농사가 잘 될 거 야.’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옥수수 를 베어 물었다.

*  * *

일요일 아침 강진은 식당 바닥 에 간이 이동문을 설치하고 있었 다.

덜컥! 덜컥!

능숙하게 조립식 문을 바닥에 설치한 강진이 옆에 서 있는 식 구들을 보았다.

“이동해서 부를게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미안한 듯 말했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 요.”

“번거롭기는요. 그저 문 몇 개 지나가면 되는 걸요.”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부산에도 갔으니 정숙 씨 집에 갔다가 바 다 가서 회나 먹고 오자고요.”

“여름은 부산, 부산하면 회죠.”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바다라 회가 좋기는 해도, 회 는 서울에도 좋은 거 많아요. 부 산에 가면 다른 걸 먹어야죠.”

“뭐요?”

“일단 유명한 돼지국밥은 필수 로 먹고, 그다음에는 부산 어묵

을 먹고, 그다음에는 씨앗 호떡 을 먹고……

배용수 입에서 부산의 유명한 음식들이 줄줄이 나오자 강진이 웃었다.

“그거 다 먹으려면 일찍 가야겠 다.”

강진이 간이 문을 열었다.

화아악!

간이 문을 열자 으가 보였다. 그에 강진이 조심히 몸을 밀어 넣었다.

스르륵!

늘 그렇듯이 중력이 묘하게 변 하는 과정을 거치며 조로 넘어온 강진이 자신이 넘어온 문을 보았 다.

“ 받아.”

배용수가 작은 아이스박스를 넣 어주었다. 그에 강진이 아이스박 스를 받았다.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사 이즈에 끈이 달린 아이스박스 안 에는 임정숙이 정성껏 만든 음식

들이 있었다.

음식 하는 게 익숙지 않은 임정 숙이었지만, 그녀는 그동안 한끼 식당에서 일하면서 곁눈질로 배 운 요리들이 있었다.

그걸 이번에 부모님에게 해 드 리고자 직접 요리한 것이었다. 물론 음식을 할 때 배용수와 강 진이 많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말 이다.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멘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강진에 게 할아버지 한 분이 웃으며 다

가왔다.

“이 사장.”

반갑게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 며 고개를 숙였다.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웃으며 손을 내미는 할아버지는 부산 바다식당, 즉 부산의 저승 식당 주인인 윤복환이었다.

“그나저나 똑똑해.”

“네?”

“나를 부를 생각을 다 하고 말 이야.”

“죄송합니다.”

“귀찮게 불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해 서 그래. 나는 한 번도 이런 생 각을 해 본 적이 없어.”

윤복환이 웃으며 닫혀 있는 문 에 다가가서는 문을 열었다.

화아악!

그러자 문 너머로 식당이 보였 다.

“일단 들어오지.”

윤복환이 문 너머로 들어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 어갔다.

탓!

강진이 들어온 가게는 윤복환의 가게, 부산에 있는 바다식당이었 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세 시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오를 통해서 이동하면 문 두 개만 지나가면 끝이었다.

물론 강진에게 부산은 연고지가 없고 그의 이름으로 된 집도, 건 물도 없으니 그가 직접 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윤복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아침에 우에서 자기 좀 데리고 부산으로 가 달라고 말이 다. 때문에 윤복환이 으에서 그 를 기다렸던 것이다.

한편, 윤복환은 강진을 자신의 가게로 데려오는 동안 묘한 감정

을 느꼈다.

평생 저승식당을 운영했고 으를 여러 차례 오고 갔지만 다른 지 역 저승식당을 통해 그쪽을 갈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저승식당 사장들이 1년에 한 번 모여서 하는 모임도 각자의 식당 이 아닌 JS 음식점에서 했었던 것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윤복환이 강진을 보았다.

‘다른 지역으로 출장 저승식당

을 한다고 하던데…… 발상이 우 리와는 다른 건가?’

저승식당은 한 곳에서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자신과는 달 리, 강진은 지역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저승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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