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3 화
식사를 마친 강진은 윤복환과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이야 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숙 양 집에는 오늘 간다고 이야기했나?”
“미리 연락드려서 오늘 약속 잡 았습니다.”
강진의 말에 윤복환이 고개를 끄덕일 때, 이혜미가 커피를 들 고 왔다.
“커피 드세요.”
“고맙네.”
“사장님 가게 커피인 걸요.”
웃으며 말을 한 이혜미가 몸을 돌려 한쪽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식구들에게 다가갔다.
한끼식당 식구들은 바다가 보이 는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야 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을 보던 윤복환이 강진을 보았다.
“좋은 친구들과 같이 있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진의 말에 윤복환이 배용수, 이혜미, 강선영, 임정숙을 물끄러 미 보다가 말했다.
“잘 해 주게. 승천을 하면 못 해 준 것만 생각이 나니 말이 네.”
“어르신도 직원들이 있으셨어 요?”
“직원이라기보다는 가끔 일을 도와주던 친구들이 몇 있었지.
그 친구들도 지금쯤 환생해서 어 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게야.”
웃으며 하늘을 보던 윤복환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바다를 보았다.
“여기가 경치가 참 좋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원래는 부산 시장에 자리를 하 고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곳 에서 하기가 힘들더라고. 그래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지.”
“이전을 하셨군요.”
“시장에서 장사를 하려면 손님 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힘들어 서 말이야.”
윤복환이 웃으며 자신의 가게를 보았다.
“잘 옮긴 것 같아. 바다가 보이 는 경치 좋은 곳이라 귀신 손님 들도 여기 마음에 들어 하고.”
자신의 가게를 보던 윤복환이 강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녁에 다시 이리로 올 거지?”
“여기에 지하실이 있습니까?”
“있지. 나도 JS 갈 때는 땅과 접해 있는 문을 이용해야 하니 그것부터 만들었지.”
“그럼 저녁에 여기 와서 집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직원들 오늘은 사장님 손맛 좀 보게 해 주고 싶은데요.”
“나이 먹은 나를 부려먹으려는 건가?”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제 친구들이 제
음식만 먹었다면 여기 오시는 손 님들도 사장님 손맛만 봤을 테니 저도 음식 몇 가지 해야죠.”
“후! 오늘 우리 손님들 서울 음 식 맛 좀 보겠구먼.”
“아주 맛있게 해 드리겠습니 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윤복환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네. 정숙 양이 몸이 달은 모양이야.”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임정숙을
보았다. 그러다 이쪽을 힐끗거리 고 있는 임정숙과 눈이 마주쳤 다.
아마도 어서 집에 가고 싶은 모 양이었다. 그런 임정숙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제가 정숙 씨 생각을 못 했네요.”
“과부 팔자는 과부가 안다고, 자네나 나나 저승식당을 하고 있 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지. 나는 아직도 우리 쪽 사 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가 가
장 즐거워. 속도 시원하고 말이 야.”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황민성과 강 상식이 자신의 일에 대해 알고 있어 그들과 이야기를 하지만, 깊은 이야기까진 할 수 없었다.
저승 일을 많이 알아서 좋을 것 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윤복 환과 같은 저승식당 사장들과 이 야기를 하면 마음이 편하고 좋았 다.
서로 사정을 알고, 서로 힘든
것을 아니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이 직원들 에게 말했다.
“이제 일어들 나시죠.”
“네!”
임정숙이 벌떡 일어나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출발하면 점심시간 전에 도착하겠어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임정숙을 보던 윤복환이 말했다.
“내가 태워다 줄까?”
“아닙니다. 이 앞에서 택시 타 면 됩니다.”
“택시 타게?”
“대중교통 타기에는 저희 직원 들이 불편할 것 같아서요.”
향수를 뿌리지 않은 상태라면 사람들이 비켜 지나가겠지만, 직 원들은 다 향수를 뿌려서 사람들 과 부딪힐 수 있었다.
사람이 자신을 뚫고 지나가는 건 귀신들도 그리 좋아하지 않으 니 택시를 타고 이동하려는 것이 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윤복환이 택시 타는 곳까지 안내 해 주겠다며 가게를 나섰다.
“아! 전에 자네 소개로 왔다고 한 가족이 있었네.”
“제 소개요?”
“아저씨 한 명에 초등학생 둘, 그리고 수호령 아주머니 이렇게
왔더군.”
윤복환의 말에 강진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일전에 임정숙 집에 인사를 하 러 왔을 때, 길가에서 음식을 했 었다. 그때 아들 둘을 데리고 차 를 고치러 왔던 아저씨 가족이었 다.
“맞아요. 제가 소개를 해 주었 어요.”
“그렇다고 하더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가게 예약제인 데 어떻게 하셨어요?”
“사람 손님이면 예약 안 됐으니 미안하다고 돌려보내겠지만…… 귀신하고 같이 왔으니 어쩌겠나. 음식을 더 하는 거지.”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일반 가게인 줄 알고 소 개해 줬는데 죄송합니다.”
강진의 사과에 윤복환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 상대하는 가게는 많아. 대신 귀신을 위한 가게는 적지. 그러니 귀신 손님이 오면 돌려보 낼 수 없다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우리 하는 일이 그 런 건데.”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웃다가 택시가 다가오는 것에 손을 들고 는 말했다.
“그럼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 다.”
“저녁 사람 장사 할 때 와.”
“사람 장사 할 때요?”
“사람 장사라 하니 말이 좀 그 렇지만, 어쨌든 우리가 저승식당 요리사기는 해도 기본은 요리사 인 만큼 여러 음식 먹어 보는 것 이 좋으니까. 시간 날 때는 여러 맛집 다니는 것도 좋아.”
윤복환은 택시를 향해 손을 흔 들고는 다시 강진을 보았다.
“그럼 다녀와.”
윤복환이 임정숙을 보았다.
“집에서 좋은 시간 보내요.”
“감사합니다.”
강진이 먼저 택시에 타자 귀신 들도 서둘러 택시 위로 올라갔 다. 그 모습을 보던 윤복환이 입 맛을 다셨다.
‘그냥 내가 태워 줄 것을 그랬 나.’
택시 지붕 위로 올라가는 귀신 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볼 때, 택 시가 출발을 했다. 그에 윤복환 이 손을 흔들었다.
“잘 놀다가 와요.”
윤복환의 말에 지붕에 앉은 한 끼식당 직원들이 웃으며 손을 흔 들었다.
“이따가 뵐게요.”
멀어져 가는 한끼식당 식구들을 보던 윤복환은 시야에서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몸을 돌렸다.
* * *
임정숙의 집이 있는 아파트 단 지에 도착한 강진은 엘리베이터 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정숙 씨가 먼저 들어가서 상황 좀 보실래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이 들어가요. 아빠하고 엄마 모두 사장님 좋아해요.”
“그래요?”
“그럼요. 저 집에 오면 가끔씩 두 분이 사장님 이야기해요.”
말을 하던 임정숙이 살짝 미소 를 지었다. 뭔가 말이 떠오른 모 양이었다.
“왜?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표 정이 그래?”
“네? 아니에요.”
강선영의 말에 임정숙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이혜미가 웃 으며 말했다.
“혹시 강진 씨 사위 삼고 싶다 고 그러셨어요?”
“그, 그게 아니라요!
“농담이야, 농담.”
임정숙이 너무 당황해하는 것에 이혜미가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런 농담 하지 마세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저 차인 건가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우물쭈물하는 임정숙을 보고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눈을 찡 그렸다.
“저 놀리지 말아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강진이 사과를 하자, 임정숙이 웃으며 엘리베이터 층을 알리는 숫자를 보았다.
자신의 집이 있는 11층에 도착 해 문이 열리자, 임정숙이 환하 게 웃으며 내렸다. 뒤이어 내린 강진이 자신을 옷을 살폈다.
“나 옷 괜찮지?”
“깔끔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옷을 한 번 더 정리하고는 임정숙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임정숙의 아버지 임형근은 창가 에 서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 다.
“뭐하고 있어요?”
“뭐하기는, 애들한테 물 주고
있지.”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웃으며 걸레와 통을 들고 왔다.
“물 두 번 줬다가는 아랫집에서 물 떨어진다고 쫓아오겠어.”
“응?”
임형근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 다가 바닥에 고인 물을 보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걸레를 대신 받 아 바닥을 닦았다. 물을 줘도 너 무 많이 준 것이다.
바닥을 닦는 임형근을 보며 진 세영이 말했다.
“강진 씨 오는 게 그리 좋아?”
임형근은 물기를 닦은 걸레를 통에 대고 쥐어짰다.
쫘아악!
물이 통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임형근이 말했다.
“우리 정숙이를 기억하는 사람 이잖아.”
“그게 그리 좋아?”
“그럼. 좋지.”
임형근은 TV 옆 작은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만화책을 보았다.
보통 가정집 책장에 인문학 책 이나 자기 계발서가 놓여 있는 것과 달리, 임형근의 집 책장에 는 딱 한 시리즈의 만화책만 있 었다.
“사람이 죽는 건 기억에서 잊힐 때라잖아.”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피식 웃으며 만화책을 보았다.
임형근은 만화책을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아예 안 본 것
은 아니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만화책을 전혀 보지 않았다.
만화책을 볼 시간에 잠을 한숨 더 자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임형근은 이 만 화책과 진열장을 사 가지고 집에 왔다.
만화책을 안 보던 사람이 갑자 기 이런 것을 사' 오는 것에 진세 영은 당황도 되고 걱정도 되었 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딸이 죽고 난 후 멍하니 있던 임형근이 뭐라도 즐 길 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말이 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세영은 특이 한 것을 하나 알아냈다.
임형근이 구십 권이 넘는 만화 책 중 유독 한 권만을 계속 꺼내 본다는 것이었다.
진세영은 유독 한 권, 손때가 묻어 있는 만화책을 집어서는 펼 쳐 보았다. 그렇게 만화를 보게
된 그녀는 왜 임형근이 이 만화 책, 그리고 이 권만 보는지 알았 다.
〈사람이 죽는 건 기억에서 잊힐 때야.〉
만화책 속 캐릭터의 대사...
그리고 그 대사가 쓰인 페이지는 물먹은 종이가 마르면 변형이 되 는 것처럼 훼손이 되어 있었다.
저 대사를 볼 때마다 죽은 딸을
떠올리며 한 방울 한 방울 책장 을 적신 것이다.
자신의 기억하고 있으니 딸이 살아 있고, 지금은 조금 먼 곳에 여행을 갔다 생각을 하고 말이 다.
그래서 강진이 온다고 하니 좋 은 것이다. 자신의 안쓰러운 딸 을 기억해 주고 찾아오는 이가 있으니 말이다.
걸레를 통에 대고 짜던 임형근 이 문득 진세영을 보았다.
“우리 집에 술 있나?”
“술은 왜?”
“전에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술 한 잔 못 권했는데 오늘은 한잔 해야지. 그 친구가 전처럼 맛있 는 음식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그거에 반주 안 할 수 있나.”
임형근의 말에 진세영이 웃었 다.
“누가 보면 사위 오는 줄 알겠 어요.”
“사위?”
사위라는 말에 임형근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을 찡그렸다.
“강진이가 우리 정숙이 기억해 주고 이렇게 찾아와 주는 건 고 맙지만…… 사윗감으로는 내 눈 에 안 차. 그리고 식당 하는 것 도 마음에 안 들어.”
“왜요? 혼자서 식당 한다고 대 견하다고 했잖아요.”
“혼자 식당을 하니 안 되는 거 야. 거기에 시집을 가 봐. 우리 정숙이 평생 주방에서 일을 해야 할 것……
말을 하던 임형근이 작게 한숨 을 쉬었다. 말을 하다 보니 마치 자기 딸이 정말 살아 있는 것처 럼 느껴진 것이다.
그런 임형근의 모습에 진세영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 또한 그랬다.
특히 저녁에 밥할 때 뭐가 필요 하면 자기도 모르게…….
-정숙아, 이것 좀
이제는 곁에 없는 딸을 불렀다 가 잠시 멍하니 서 있곤 하는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