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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86화 (984/1,050)

986화

울고 있는 임형근의 모습에 진 세영이 소리 죽여 한숨을 토하고 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니 주방으 로 걸음을 옮겼다.

“여보, 괜찮아?”

대답을 않는 임형근을 보던 진 세영이 그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참 바보 같은 질문을 했

네. 안 괜찮은 게 당연한데 그리고 나도 안 괜찮은데••…

임형근은 자신의 어깨에 놓인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쥐고는 말 했다.

“아니야. 괜찮아.”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훔친 그 는 웃으며 말했다.

“회 썰다가 뭐하는 짓인지

임형근은 물을 틀어 손을 씻다 가 말했다.

“된장찌개 좀 봐 줘.”

“알았어.”

임형근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내고는 다시 회를 썰기 시작했 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아무래도 두 분 오시면 상식 형하고 민성 형도 가게로 오라고 해야겠어.’

부모님은 임정숙을 아는 사람들 과 이야기하며 그녀를 추억하고 싶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웃으며 올 것 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임정 숙의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면 말 이다.

강진은 두 사람에게 문자를 보 냈다.

〈혹시 나중에 정숙 씨 부모님 저희 가게에 오시면 와 주실 수 있으세요? 다른 건 아니고 정숙 씨가 자기 일하는 곳 부모님에게 보여 주고 싶다고 하셔서요.〉

문자를 보내고 얼마 안 되어서 답이 왔다.

〈날짜만 말해.〉

〈나야 옆집에 사는데 언제든 가 능하지. 그런데 정숙 씨면 지나 씨는 두고 나 혼자 가야겠네.〉

두 사람이 바로 보낸 오케이 답 장에 강진이 웃으며 문자를 보냈

다.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도로 넣은 강진은 만화책을 슬쩍 펼쳤다. 유난히 물에 많이 훼손이 된 페 이지를 펼친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기억에서 잊히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건가?’

강진은 그 대사가 마음에 닿았 지만…… 기억에서 잊고 싶은 사 람들도 분명 있었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임형근이 상을 들고 나왔다.

“아버님, 제가……

“괜찮아. 괜찮아. 앉아 있어.”

임형근이 상을 소파 앞에 놓고 는 강진을 보았다.

“회가 아주 좋던데.”

“알아보시네요.”

“내가 바다낚시를 좋아해서 잡 으면 내가 직접 회를 쳐서 먹거 든.”

임형근이 접시에 담긴 회를 보 며 말을 이었다.

“숙성 회지?”

“네.”

“요즘은 활어보다는 숙성회로 많이들 하더라고.”

“활어로 하면 수조도 있어야 하 고 관리비도 들어가니 그런 모양 이에요.”

“그런 것도 있고, 옛날에야 회 는 바로 먹어야 좋다는 인식이었 는데 지금은 숙성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게 더 고급스럽게 인식이 되어서 그렇기도 하지.”

두 사람이 말을 할 때, 진세영 이 웃으며 다가왔다.

“숙성이든, 활어든 맛만 있으면 좋은 거죠.”

그러고는 진세영이 소주를 내려 놓았다.

“소주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가끔은 낮술도 괜찮은 법이 야.”

웃으며 소주 뚜껑을 딴 임형근 이 소주병을 내밀었다.

“제가 먼저……

“아니야. 받아.”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잔을 들 었다.

쪼르륵!

잔을 채워준 임형근이 병을 내

밀자 강진이 그것을 받아 그에게 도 따라 주었다.

“당신도 한잔하지그래?”

“무슨. 나는 괜찮아.”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도 한잔하시죠.”

“아니에요.”

“말 편히 하기로 하셨잖아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정말 괜찮아. 둘이 기분 좋게 한 잔씩들 해요.”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에게 잔을 들었 다.

“한 잔 마시자.”

“네.”

강진이 가볍게 잔을 부딪치자, 임형근이 소주를 마시고는 강진 을 보았다.

“우리 정숙이가…… 일하던 곳 을 한 번 보여 주고 싶었다고.”

“네.”

요으... ”

"6“ .

강진의 말에 작게 침음을 토한 임형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숙이가 살아 있을 때 그런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가 엄마 데리고 일하는 곳도 가고, 자취방에서 하루 잠도 자 고 했을 텐데.”

“그러게. 우리도 정숙이 일하는 곳 가서 밥도 먹고 어떻게 일하 는지 봤으면 좋았을 텐데.”

부모님의 말에 임정숙이 한숨을 쉬었다.

“엄마 미안해……. 두 분 한 번 오고 싶다고 해도 내가 신경 쓰 여서 오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 말대로 나 살아 있을 때 서울 구 경도 시켜 드리고 할걸……. 엄 마 미안해.”

임정숙이 서울에 있을 때 진세 영과 임형근이 서울에 한 번 가 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휴가에 맞춰서 딸이 어떻게 지 내는지도 보고, 딸하고 하루 정

도 서울 구경도 하고 싶어서 말 이다.

그런데 임정숙이 오지 말라고 했었다. 바쁘기도 했고 부모님이 오면 신경을 써야 할 것이 있으 니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임정숙이 살아 있을 때,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임정숙은 미안했다.

“그럼 우리 서울 언제 가요?”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이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 주 금요일에 하루 쉬는 걸로 해서, 금요일에 가서 한 이 틀 자고 일요일에 내려오자고.”

“서울에서 이 박 삼 일?”

“우리도 서울 가서 좋은 호텔에 서 잠도 자고 맛있는 음식들도 먹어 보고 남산도 가고 하자고.”

“그것도 좋겠다.”

진세영이 웃는 것에 임형근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전에는 안 좋은 일로 갔지 만…… 이번에는 좋은 일로 가세 나.”

안 좋은 일이라는 말에 진세영 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서울은 두 사람에게 다 안 좋은 장소였 다.

딸이 실종이 됐고, 딸이 죽었 고…… 범인이 잡혀서 간 곳이 서울이니 말이다.

강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나쁜 놈이 잡혀서 경찰서에 있을 때 울고 소리 지르던 피해자 유

가족 사이에 두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서울은 두 사람에게 좋 은 기억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딸이 사라진 곳이니 말이다.

임형근을 보던 강진이 조용히 소주병을 들었다. 그에 임형근이 웃으며 잔을 들어 술을 받고는 말했다.

“금요일 저녁에 갈게.”

“숙소 제가 잡아 드릴까요?”

“아니야. 아니야. 숙소 정도야 우리가 잘 잡을 수 있어. 자, 마

시자고.”

임형근이 잔을 내밀자 강진이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얼큰하게 취한 임형근이 웃으며 말했다.

“한숨 자고 가지 그래?”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가 봐야죠. 편히 쉬 세요.”

“그래. 그럼 잘 가고 금요일 가 게에서 보자고.”

임정숙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강진은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오려는 두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 강진 이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하 자 강진이 같이 탄 임정숙을 보 며 말했다.

“집에서 쉬세요. 내일 아침에 부를게요.”

“아니에요. 이따가 바다 식당에 서 저승식당 오픈하면 그때 불러 주세요.”

“집에서 쉬시는 것이 좋지 않겠 어요?”

“그때까지는 쉬니까요.”

싱긋 웃는 임정숙을 보며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따가 부르기는 할게요. 혹시 집에 더 있고 싶으시면 안 오셔도 됩니다.”

“네.”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 다.

“내리지 말고 그대로 올라가세 요.”

“택시 타시는 것까지……

“저 어린애 아니에요. 올라가세 요.”

강진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반쯤 들어가서는 층수를 눌러 주었다.

스르륵!

문이 닫히기 전에 재빨리 나온 강진이 손을 흔들었다. 그에 임 정숙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문이 닫히고 임정숙이 탄 엘리 베이터가 올라가자 강진이 이혜 미와 강선영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두 분도 집이 아 파트죠?”

“네.”

“그럼 집에 어떻게 올라가세 요?”

가게에서야 저승 장갑이 있어서 물건을 누를 수 있지만, 집에 갈 때는 당연히 그걸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럼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 것이다. 누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두 여자가 서로를 보고는 웃었다.

“당연히 걸어서 올라가죠.”

“힘들지 않으세요?”

“귀신이 힘들 것이 있나요. 걷 는다고 다리 아픈 것도 아니고

멀쩡히 잘 올라가요.”

강선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저는 현장에서 아 르바이트할 때 계단 오르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계단 오르는 것이 뭐가 그리 힘들다고.”

“등에 시멘트나 모래 짊어지고 올라 봐라. 한 걸음 한 걸음이 태산을 오르는 것 같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나도 쌀 포대 짊어지고 계단 그렇게 올랐다.”

“한두 번은 하지. 근데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퇴근할 때까지 한 다 생각하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는 못 하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이야기를 나누며 아파트를 나서 던 배용수가 문득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소윤 그분은 승천하셨 나? 그분 집이 부산이라고 하지 않았어?”

부산에 오니 소윤이 떠오른 듯 배용수가 말을 하자 강진이 하늘 을 보았다.

소윤은 피서를 갔을 때 만났던 북한군 귀신이었다. 독립운동가 로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가 북한군이 돼 남한에서 죽은

귀신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때 부산에 있는 가족들을 찾 아 유품을 돌려 주겠다는 정복립 을 따라가고 난 후 연락이 없었 다.

“모르겠네.”

“편지 안 왔지?”

"응."

“소윤 그분 성격이면 잘 도착했 다고 편지도 보내고 돈도 보내셨 을 것 같은데.”

“돈은 필요 없어. 그냥 잘 도착 했다고 소식이나 보내 주면 고맙 지.”

그러고는 강진이 핸드폰을 꺼냈 다.

“어르신에게 여쭤봐야겠다.”

“누구? 정복립 어르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부 인사도 드리고 유가족 만 났는지도 물어보게. 그날 이후로 뵙지를 못 했네.”

“만나셨으면 좋겠다.”

“만나셨으면…… 승천하셨을 거 야.”

강진은 정복립에게 전화를 걸었 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반갑게 전화를 받는 정복립의 목소리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연락이 뜸했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

하하! 제가 일이 좀 바쁘다 보니 그동안 식당을 한 번 못 찾아갔 습니다.

“바쁘게 사는 것이 좋은 거죠.”

[이 나이 먹고 바쁘게 살 수 있 다는 건 좋은 일이죠.]

돈보다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이 좋은 일이었다.

“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산에 서 찾은 유품들 어떻게 됐나 싶 어서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상황

을 전달 안 해 드렸군요.]

“제가 지금 부산에 왔거든요. 부산에 오니 그때 소윤이라는 분 유가족이 부산에 있다는 것이 생 각이 나서요.”

강진의 말에 잠시 있던 정복립 이 말했다.

[일단 다른 군인들은 모두 유가 족들에게 유품을 전달했습니다.]

“북한 군인들 유품도 전달이 됐 나요?”

그때 소윤과 함께 있던 이들 중

엔 북한 군인들도 있었으니 말이 다.

[북한 유족에게 전달했습니다.]

“잘 됐네요. 그런데 북한에는 어떻게 보내신 거예요?”

[군에 맡겨서 보낼까 했는데 생 각을 해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더군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베트남에 있는 북한 관 계자를 통해 보냈습니다. 돈이 좀 들기는 했지만 그쪽이 의외로

돈을 받으면 받은 만큼 일을 한 다고 하더군요.]

“그럼…… 확실하게 보내진 것 이 맞나요?”

[그쪽에서 유골 보내고, 동네 사진하고 유족 측 사진과 편지를 다시 저에게 보내 줬습니다. 조 작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는 북한에 확인을 할 수 없으니 맞기를 바라야죠.]

“그게 진짜기를 바라야겠네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

다.]

잠시 말이 없던 정복립이 한숨 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정작 대장님의 유 품은 아직 전달을 못 했습니다.]

“전달 못 하셨어요?”

뜻밖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 아함이 어렸다. 북한 유족을 찾 아서 유품을 보내는 것도 했는 데, 한국 부산에 사는 유족에게 는 전하지 못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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