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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87화 (985/1,050)

987화

정복립은 소윤 대장의 유품을 전달할 수 있다고 확신을 했었 다.

그에게 부산이란 피난 생활을 했던 곳이자 젊은 시절 기반을 다진 제2의 고향이었으니 말이 다.

게다가 그때 같이 거지 생활을 했다가 나중에는 같이 일했던 친 구들과 부하들도 살고 있었다.

그러니 부산에서 사람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었 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는 했지만, 옛날 지명과 주소도 있었으니 말 이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었다.

[신분을 바꾸고 마을을 떠났습 니다.]

“신분을 바꾸고 마을을 떠나 요?”

[그때 남한에서 월북을 한 사람

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형과 저 처럼요.]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복립의 형도 남한에 서 사고를 치고 월북을 했으니 말이다.

[전쟁이라도 안 났으면 그런대 로 살았겠지만, 전쟁이 터졌으니 월북 가정들은 마을에서 살기 힘 들었을 겁니다.]

“그건…… 그렇겠네요.”

옛날에는 남북 갈등이 심했던

데다 전쟁까지 났으니 월북을 한 가정을 사람들이 안 좋게 보았을 것이다. 북한에 의해 가족, 친구, 지인이 죽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때 그 가족을 기억하 는 분을 한 명 찾을 수 있었습니 다.]

“그래요?”

[대장의 아들인 소대현과 같은 나이의 친구였는데 그 가족을 기 억하고 있더군요. 나하고 나이가 비슷해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이 야기를 했는데…… 대장님이 월

북했을 때는 딱히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대장님이 독 립운동을 하던 거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었고, 나름 지역 유지 집 안이라 베풀고 살아서 인심도 좋 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결 국 사람들 등쌀에 못 이겨 야밤 에 마을을 떠났다고 하는군요.]

이야기를 듣던 강진이 문득 물 었다.

“그런데 소윤 대장님은 월북을 한 것이 아니라,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하시다가 북한으로 내려 오신 것 아닌가요? 그럼 마을 분 들이 모르실 텐데?”

남한에 있다가 월북을 한 것이 아니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 다가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내려 온 것이니 말이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물었습니 다. 그런데 북에 있던 소윤 대장 이 남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 을 했던 모양입니다.]

“남한에요?”

[그 당시 어렸던 형하고 저도 월북을 할 정도로 국경이 허술했 습니다. 그래서 북에서도 남에서 도 몰래몰래 오고 갔습니다. 그 런 사람들을 통해 서신을 보내고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알게 된 겁니다.]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직 못 찾으신 거군요.”

[지금도 부산에서 찾고는 있습 니다.]

“부산에서 요?”

[부산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곳 으로 이동을 했다면 뭐라도 준비 를 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유 지 집안이니 땅이나 재산을 처분 했을 테고요. 대놓고 처분을 한 것이 아니라서 찾기 힘들지 만…… 일단 그거라도 찾아야 단 서를 얻을 것 같습니다.]

작게 한숨을 쉬는 정복립의 목 소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 정복립 입장에서는 다른 군인들의 유품을 가족에게 전달

하는 것보다, 소윤의 유품을 유 족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소윤은…… 그의 형이 목숨을 걸고 따랐던 대장이자 자신을 부 대에서 살게 해 준 고마운 분이 니 말이다.

그래서 소윤의 유족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의 아내야 나이가 있 으니 돌아가셨을 수 있지만, 아 들과 그 후손들은 있을 수 있으 니 말이다.

유족을 찾으면 보답을 하고 싶 었다. 자신을 형과 함께 부대에

서 살게 해 준 데다 자신을 예뻐 해 줬던 사람의 가족들에게 말이 다.

그런데…… 찾지를 못했다. 그 래서 부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 다.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복립이 말했다.

[그럼 지금 부산이십니까?]

“네.”

[그럼 시간 되시면 저녁이라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저녁요?”

[어쩐지 사장님을 만나면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유품을 찾은 것도 사장님이시니 까요.]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음…… 그럼 제가 한 오 분 있 다가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혹시 약속이 있으시면 다음에 다시 뵈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가고

싶은 가게가 있는데 거기가 예약 제라서요. 혹시 한 자리 더 될지 전화 좀 해 보려고요.”

[가게가 어디인지 알려 주시면 제가 따로 예약을 하겠습니다.]

“아는 지인분 가게라서요.”

[그런 거라면 알겠습니다.]

정복립과의 전화를 마친 강진이 이번엔 윤복환에게 전화를 걸었 다.

[인사 잘 했나?]

반갑게 전화를 받는 윤복환에게 강진이 말했다.

“저 죄송한데 저녁에 손님 한 분 더 저하고 같이 있어도 될까 요?”

[손님?]

“귀신 손님하고 같이 오실 것 같은데……

강진이 사정을 이야기하자, 윤 복환이 웃으며 말했다.

[귀신 손님이야 언제나 환영하 지. 게다가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었다면 더 환영이고.]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시고 저녁에 가겠습니 다.”

[대신…… 배 많이 안 고프시면 일곱 시 반 이후로 오시게 해 주 겠나?]

“일곱 시 반요?”

[자네야 편하게 같이 일하면서 가족처럼 대접하면 되지만, 그분 은 손님으로서 오는 것이니 정식

으로 대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 니 예약 손님들 가시고 난 후에 새로 대접을 하는 것이 맞을 듯 해. 조금 늦기는 하겠지만 말이 야.]

저승식당 사장이라고 해도 음식 점 사장이기에 윤복환은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강진은 정복립에게 식당 위치와 약속 시간을 말해 주고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바 다 식당으로 향했다.

본의 아니게 식당에 예약 손님 이 아닌 분을 모시게 됐으니 가 서 거들려고 말이다.

바다식당 안, 바다가 보이는 자 리의 테이블 위에는 아침에는 보 이지 않던 큰 나무 도마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손님들이 앉 아 있었다.

“오늘 음식 어떠세요?”

윤복환이 웃으며 식사를 하는 손님에게 말을 걸자, 손님이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맛이 좋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요즘도 예약 많이 밀리 죠?”

“여러 손님 받고 싶은데 제가 혼자라 그렇게 됐습니다. 제 몸 이 두 개라 더 많은 손님을 받으 면 돈도 많이 벌고 좋을 텐데

요.”

“그러게요. 그럼 저희도 이 맛 있는 음식 자주 먹을 텐데요.”

손님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손 님이 웃었다.

“무슨. 그럼 지금보다 사람이 더 많아져서 예약이 더 힘들 수 도 있지.”

“그런가?”

손님들이 웃으며 말을 하다가 윤복환 옆에 있는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이분은?”

“서울에서 유명한 식당을 하는 친구입니다.”

“식당? 그런데 왜 여기서?”

왜 여기서 음식을 만들고 있냐 는 손님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한테 회 뜨는 것 좀 배 우려고 잠시 왔습니다.”

“유학 오신 거네요.”

“그런 셈이죠.”

강진이 웃는 것을 보며 윤복환 이 말했다.

“서울에서 한끼식당이라고 강남 논현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 다.”

“강남 논현요?”

손님이 놀란 눈으로 보자, 강진 이 말했다.

“논현에서 한다고 하면 다들 놀 란 눈을 하시는데…… 주변 회사 직장인들 상대로 작은 백반 집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야, 그래도 논현에서 식당을 하실 정도라니 대단하시네요.”

“그러게요. 거기 월세도 장난이 아닐 텐데.”

손님들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음식을 놓았다.

“이건 제가 만든 계란말이입니 다. 맛이 있으시면 서울에 오실 때 들러 주십시오.”

강진이 놓은 계란말이를 본 손 님들이 웃으며 말했다.

“색감이 정말 예쁘네요

“맛있게 드세요.”

손님들이 계란말이를 먹고는 고 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손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도 마를 보았다. 윤복환의 바다식당 의 메인 메뉴는 ‘주인 정식’으로, 음식을 조금씩 도마 위에 올리면 서 시작이 되었다.

그럼 손님들이 도마 위 음식을 덜은 뒤 자신의 자리로 가져와서 먹는 것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음 식을 가져갈 때마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바다를 보고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었 다.

‘경치 가격이 포함된다는 말이 이런 의미구나.’

강진이 바다를 볼 때, 손님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경치가 참 좋죠?”

“네.”

겨울 바다도 좋아요. 특히 눈

오는 날 여기 앉아서 밖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그림이에요.”

손님의 말에 옆에 다른 일행 손 님이 웃으며 말했다.

“부산은 눈 오는 날이 드무 니…… 눈이 오면 보기 좋죠.”

“근데 보는 건 좋은데 출근할 때나 밖에 다닐 때는 안 좋지.”

“우리 삶 같지. 멀리서 보면 멋 지고 유쾌한데, 가까이 가서 보 면 웃긴 삶이 비극일 수도 있으 니까.”

“하! 이 자식이 취했나. 느낌 있는 소리를 다 하네.”

“나도 어디서 들었어.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 극이라고.”

손님들의 말에 윤복환이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따라 보이는 것이 변하 는 법이죠.”

“마음에 따라서요?”

윤복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이 흥겹고 기분이 좋으 면 비 오는 날이든 눈이 오는 날 이든 다 영화의 한 장면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반대로 내 기분이 우울하면 벚꽃이 휘날 리는 날도 우중충해 보일 뿐이지 요.”

“하! 사장님 말씀이 맞네요.”

“오늘 좋은 이야기 듣고 가네 요.”

사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 는 것을 보던 강진이 윤복환을 보았다.

윤복환의 식당은 손님에게 맛있 는 음식을 주면서 그들의 이야기 를 들어 주었다.

가벼운 대화도 좋고, 진중한 대 화도 좋았다. 손님이 이야기를 하면 들어 주고, 그들이 재밌어 하고 듣고 싶을 만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마도 이 식당엔…….

‘손님들은 맛있는 식사도 하면 서 가벼운 이야기를 하러 오는구 나.’

마음 편한 대화를 원하는 이들 이 오는 것이다. 비록 조금 가격 대가 나가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격대가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었다. 강진의 가게에 비하면 많이 비싼 편이지만 나오 는 코스 음식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이 비싼 수준도 아닌 것이다.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누며 음 식을 먹는 손님들을 보던 강진은 윤복환과 함께 음식을 손질해서 내놓았다.

“음식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늘 마음에 들죠. 오늘도 잘 먹 고 갑니다.”

한끼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 들과 같은 이야기를 한 손님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게를 나섰 다.

“그럼 다음에 또 와 주십시오.”

가게 밖까지 손님 배웅을 나갔 던 윤복환이 안으로 들어오자 강 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장사를 일찍 마무리하

시네요?”

“밥 먹는 데 한 시간 이십 분이 면 충분하지.”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타임을 6시에 시 작해서 7시 20분에 장사를 마무 리했다.

식사만 하기에는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술 한 잔 들어가면 좀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손님들이 여기 룰에 익숙한 듯, 시간이 되니 알

아서 일어나서 계산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릇을 정리하는 강진에게 온 윤복환이 정리를 도우려 하자, 여자 귀신들이 주방에서 서둘러 나왔다.

“사장님, 저희가 치울게요.”

“자네들이?”

“오늘 맛있는 거 주셨는데 저희 가 할게요.”

여자 귀신들이 장갑을 끼고 주 방으로 그릇들을 옮기는 걸 보던

윤복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렇게 도와주는 친구들을 보 니 나도 직원들을 다시 뽑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직원들을요?”

“전에는…… 친한 이들이 승천 하는 것이 외롭고 보고 싶어서 마음을 많이 안 주려 했는데…… 나도 나이가 있으니 직원들이 먼 저 승천을 해도 곧 다시 만나지 않겠나. 아니면 내가 먼저 가서 그들을 기다릴 수도 있고 말이 야.”

윤복환은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보았다.

“혼자 하기에는 조금 버겁기도 하고.”

그런 윤복환을 보던 강진은 그 를 따라 가게를 둘러보았다.

아마도…… 지금 윤복환의 모습 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일 것이 다. 그러다 보니 윤복환의 말에 위로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언제가 저승식당에서 혼 자 손님을 맞이할 수 있으니

‘저승식당 사장이라는 건 조 금…… 아니, 많이 외로운 직업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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