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화
소윤이 아내를 떠올리는 것을 보던 강진이 지퍼백을 보았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나 보네요.’
저퍼백 안에 있는 봉투들은 수 도 많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두 툼했다. 종이 한두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 들어 있는 듯했다.
“ 이게……
정복립이 지퍼백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자, 강진이 그 것을 내밀었다. 그에 정복립이 저퍼백을 받자, 강진이 말했다.
“안에 더 있는 것 같아요.”
강진은 구멍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그러자 다른 지퍼백이 잡혔다.
그것을 잡아 꺼낸 강진은 조금 색이 바랜 낡은 봉투와 돈들을 볼 수 있었다.
봉투만 현대 지퍼백이고 안에
든 편지들은 무척 오래된 것들이 었는데, 처음 꺼낸 것보다 뒤에 꺼낸 것들이 더 오래된 것인 모 양이었다.
‘그런데 돈이? 옛날 돈인가?’
봉투 안에 담긴 돈들은 지금 사 용하는 것이 아니라 TV나 드라 마에서 보던 옛날 돈이었다.
봉투에 있는 돈을 강진이 볼 때, 정복남이 슬며시 말했다.
“저희 때 쓰던 돈입니다.”
“옛날 돈이군요.”
강진은 정복남에게 답한 거였지 만, 자신에게 말한 것이라 생각 한 정복립이 고개를 돌려 그가 꺼낸 봉투를 보았다.
“그렇군요.”
말을 하며 정복립이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돈을 보다가 작게 한 숨을 쉬었다.
“대장님이 혹시 여기에 왔을 때…… 돈이 없을까 싶어 넣어 두신 모양입니다.”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멍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구멍 안에서는 지퍼백이 몇 개 더 나왔다. 지퍼백 안에는 사진 도 있었고 핸드폰도 있었다.
“핸드폰이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핸드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모님께서 준비를 철저하게 해 두셨네요. 돈에 핸드폰에
정복립은 지퍼백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모델 보니 아주 옛날 거네요. 이거 켜지기나 할지.”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배터리는 방전됐을 수 있지만, 충전하면 켜질 것 같은데요?”
핸드폰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강 진이 말했다.
“그리고 아마 이 안에 집과 가 족들 번호가 있을 것 같네요.”
“사모님께서 준비를 정말 잘 해 두셨네요.”
정복립이 미소를 지으며 봉투에 있는 돈을 보았다.
“남편 돈 없을까 이렇게 돈도 넣어 두시고.”
“근데 옛날 돈이라 그건 못 쓸 것 같은데요.”
“옛날 돈도 있지만 지금 돈도 있습니다.”
정복립은 봉투를 열어 그 안에 있는 돈들 중 신권을 꺼냈다.
오만 원짜리 10장과 만 원짜리 10장이었다.
“다행히 사모님께서 여유롭게 사셨나 보네요.”
강진이 보자, 정복립이 웃으며 지퍼백 안에 있는 옛날 돈을 가 리켰다.
“사는 것이 힘드셨으면 옛날 돈 을 꺼내서 쓰셨겠죠. 어차피 옛 날 돈은 시간 지나면 쓰지도 못 하니까요.”
“그건 그러네요.”
여유롭지 못했다면 새 돈만 넣 어두고 구권은 꺼내서 환전해서 썼을 테니 말이다.
“응?”
정복립은 봉투 안에서 뭔가를 더 꺼내 들어 보이더니 웃었다.
“하! 신용카드도 있습니다. 소대 현…… 대장님의 아드님이군요. 이거면 됐습니다.”
강진이 보자, 정복립이 웃으며 카드와 핸드폰을 보았다.
“카드와 핸드폰이 있으니 명의
자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단 이거 충전부터 해야겠네 요. 충전이 되면 번호를 바로 알 아볼 수 있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 는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그가 들 고 있는 봉투를 보다가 말했다.
“저……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 니까?”
“부탁요?”
“그 봉투와 소윤 대장님께서 남 기신 상자, 저에게 잠시 맡겨 주 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맡겨 달라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일 하나 도 빠짐없이 제대로 돌려 드리겠 습니다.”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중요한 편지이고 유족에게 꼭 전해 줘야 할 것이지만, 강진 덕 에 찾은 유품이었다.
그리고 강진 덕분에 사모님이 남긴 편지도 찾을 수 있었다. 그 러니…… 강진이 부탁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쩐지 그의 부탁을 들 어줘야 할 것 같았다. 소윤의 유 품과 아내의 편지가 강진의 손에 있기를 스스로 바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복립이 자신의 손에 들린 편
지가 담긴 봉지들을 보다가 말했 다.
“일단 차로 가시죠.”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그와 함 께 차로 걸음을 옮겼다. 차에 도 착한 정복립이 물 티슈를 꺼내 강진에게 내밀었다.
강진이 물티슈를 받아 손을 닦 을 때, 정복립은 어딘가에 전화 를 하고 있었다.
“난데 혹시 옛날 핸드폰 충전기 있어? 응. 옛날에 쓰던 거 말이
야. 요즘 나온 충전기 말고. 그 래. 찾아보고 연락 줘.”
강진이 보자, 정복립이 웃으며 말했다.
“부산에 사는 친구입니다.”
“충전기가 있을까요? 워낙 옛날 건데.”
“옛날 거기는 해도 보통 집에 두세 개씩 있던 물건들 아니겠습 니까.”
“그건 그렇죠.”
“집 서랍 어딘가에 하나씩은 굴 러다닐 겁니다. 충전기라는 게 있으면 언젠가는 쓸 것 같고 버 리기에는 아까운 물건이니까요.”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핸드폰을 사면 공짜로 끼 워 주기는 하지만…… 버리기에 는 아깝기는 하지.’
옷이나 그런 건 낡고 안 입으면 버리기도 하지만, 전자기기들은 고장이 나지 않으면 어지간해서 는 버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없으면 내일 날 밝으면 근처 핸드폰 가게라도 가 봐야 죠.”
이야기를 나누던 정복립이 강진 을 보았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바다식당요.”
“타십시오.”
“저는 여기서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고생하셨는데 그런
수고까지 하게 해 드릴 수는 없 죠.”
정복립이 차에 타자, 강진도 차 에 올라탔다.
바다식당에서 내리며 강진이 정 복립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식사하러 오세 요.”
“알겠습니다.”
정복립이 고개를 숙이고는 차를
출발시키려 하자, 정복남이 급히 내리며 소윤에게 고개를 숙였다.
“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오늘 복립이가 수고 많 이 했다.
“아닙……
화아악!
말을 하던 정복남의 몸이 빠르 게 차를 향해 끌려갔다. 정복립 이 차를 타고 가니 그쪽으로 끌 려가는 것이다.
“형수님, 편지 받아서 다행입니 다!”
정복립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에 소윤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소윤은 멀어져 가는 정복립의 모습을 보다가 강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진이 자신의 유품과 아내가 남긴 편지들을 받아 왔기에 소윤
은 편하게 저승식당에서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윤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괜찮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강진이 바다식당으로 향하자, 소윤이 웃으며 그 뒤를 따라 들 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강진은 깨 끗하게 치워진 홀과 TV를 보고 있는 윤복환을 볼 수 있었다.
“잘 찾았나?”
윤복환의 물음에 강진이 봉투를 들어 보였다.
“찾았습니다.”
“다행이군.”
그러고는 윤복환이 소윤을 보았 다.
“다행입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윤의 말에 윤복환이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소윤 씨도 제가 말을 지어냈다
고 생각을 하십니까?”
“네?”
“사모님께서 저희 식당 손님이 라는 것 말입니다.”
“그야…… 설마?”
소윤이 놀란 듯 보자, 윤복환이 미소를 지었다.
“정은자…… 아내분 이름이 맞 으십니까?”
윤복환의 입에서 정은자라는 이 름이 나오자 소윤이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렇게 윤복환을 보던 소윤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정말…… 제 아내가?”
“여기 이 가게는 아니었지만, 말했던 대로 자주 오셨습니다.”
“정말……입니까?”
윤복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 를 가리켰다.
“이야기가 길 듯하니 앉으시 죠.”
소윤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 자리로 갈 생각이 없어 보였 다.
한편, 강진도 놀라기는 마찬가 지였다. 자신처럼 소윤을 돕기 위해 말을 꾸민 줄 알았는데, 정 말로 소윤의 아내와 인연이 있었 으니 말이다.
잠시 윤복환을 보던 강진이 소 윤을 살짝 부축하며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제가 마실 것 좀 가져오겠습니다.”
충격을 받은 소윤을 자리에 앉
힌 강진은 뭐 먹을 거라도 가지 러 주방에 가다가 슬며시 윤복환 에게 속삭였다.
“내일 아침에 정복립 씨 아침 먹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말씀도 드리지 않고 먼저 이렇게 약속을 해서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윤복환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밥상에 수저만 하나 더 놓으면 되니 괜찮네.”
“말씀을 드리고 먼저 허락을 받
았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 니다.”
“괜찮네. 정 사장님은 나한테도 반가운 분이니까.”
정말 괜찮다는 듯 웃는 윤복환 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아침은 제가 차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윤 복환이 그를 보았다.
“그럼 오늘 자고 가야겠군.”
“재워 주시겠습니까?”
“자네가 불편하지 않으면 자고 가게나.”
“감사합니다.”
오를 통해 집에서 자고 아침 일 찍 다시 와도 되지만, 강진은 거 절하지 않았다. 예의상 말하는 것과 정말 자고 가라는 것 정도 는 구분할 눈치는 있으니 말이 다.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슬며시 주방에 들어가자, 윤복환이 그를 보다가 소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 다.
“처음 제가 정은자 여사님을 만 난 건……
윤복환의 입에서 자신의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소윤이 그의 말 에 집중했다.
* * *
윤복환이 정은자를 처음 본 것 은 통행금지가 있던 시기의 늦은 밤이었다.
그때는 저녁엔 사람들이 오고 가지를 못했다. 가게들도 그 시 간 전에는 모두 영업을 끝내야 했고 말이다.
하지만 통행금지 시간이라고 해 도 저승식당은 영업을 했다. 귀 신이 통행금지에 걸려 잡혀갈 일 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불을 환하게 켜 놓았다 고 해도 가게에 귀신들이 바글거 리니 경찰이나 사람들의 눈에 보 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 영업을 한다고 해
도 경찰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 다.
저승식당 영업이 끝나면 귀신들 은 윤복환이 청소를 하고 가게를 정리할 때까지 안에서 기다렸다.
정리할 때 불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경찰들이 들이닥치면 안 되 니 말이다.
“그렇게 정리를 할 때…… 정은 자 여사를 처음 봤습니다.”
“아내가 찾아온 겁니까?”
“아닙니다. 그때 동네 귀신이 여자 한 명이 골목에 숨어 있다 고 했습니다.”
“숨어요?”
“그때는 통금 시간을 어기면 경 찰들이 경찰서로 잡아가던 시기 였습니다. 그러니 경찰들을 피해 서 숨어 있다가 통행금지 시간 끝나면 가곤 했습니다. 남자 혼 자 있는 가게라 안 오시려고 했 는데 잘 설득해서 일단 가게 안 으로 모셨습니다.”
“다행입니다. 사장님이 도와주
셔서.”
소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윤 복환이 말을 이었다.
“그게 인연이 돼서 찾아오시게 되었습니다.”
“자주 왔습니까?”
“자주는 아닙니다.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에 저희 가게에 오시고는 했습니다.”
“매해 말입니까?”
“남편이 언제 올지 모른다면서
해마다 오셔서 편지를 두고 가셨 습니다.”
윤복환의 말에 소윤이 눈을 지 그시 감았다.
“당신은 매년 나를 기다렸는 데…… 내가…… 정말 너무 늦게 왔구려. 너무…… 늦게 왔어. 정 말…… 미안하오.”
혹시라도 자신이 올까 싶어 늦 게까지 기다리다 통행금지 시간 에 걸려 경찰들의 눈을 피해 숨 어 있었던 그 여자를 생각하 니…… 소윤은 정말 가슴이 아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