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93화 (991/1,050)

993 화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소 윤을 보며 신수호가 부드럽게 미 소 지었다.

평소의 그를 아는 강진이 본다 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 나.’ 하겠지만…… 고객에게는 최 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신수호였다.

즉, 고객이 아닌 강진은 이런 미소를 볼 이유가 없었다.

“재판은 각 해당 지옥에서 이뤄 지기에 이동하실 때 패키지를 이 용하시는 것이 편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지옥에서 숙소를 따 로 구해야 하고 지옥 경로 이동 편도 구해야 해서요.”

“여행 패키지라……

“예전에는 저희가 따로 방탄 트 럭이나 배를 구해서 이동했는데, 지금은 그걸 전문으로 해 주는 업체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옥 간 이동이 좀 편해졌습니다.”

“지옥 간 이동을 여행이라 표현

할 줄은 몰랐습니다.”

“돈 없는 망자들은 지옥 여행이 아니라 지옥 체류를 하게 되겠지 만, 고객님 같은 분들은 잠시 들 러서 구경하고 이동하시면 되니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하던 신수호가 펜을 내밀 었다. 그에 소윤이 서류에 이름 을 적고는 신수호를 보았다.

“저…… 제가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소윤의 말에 신수호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동차 뒷문을 열었다.

“내리시지요.”

신수호의 말에 소윤이 자동차 뒷문을 보았다. 그 문에서 할머 니 한 분이 천천히 내렸다.

할머니의 얼굴을 본 소윤의 얼 굴에 미소가 어렸다.

“은……자야.”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윤의 모습에 할머니가 수줍게 자신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나는 머리에 백발이 내렸는 데…… 당신은 혼인날 모습 그대 로시네요.”

지금 소윤은 승천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이 든 자신의 모 습을 부끄러워하는 정은자의 모 습에 소윤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 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말없이 그녀를 안았 다. 가만히 품에 안겨오는 정은 자의 등을 소윤이 손으로 쓰다듬 었다.

‘따뜻해.’

이승에 있을 때는 느껴 보지 못 한 따스함이었다. 정은자의 몸에 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미소를 지 으며 소윤이 그녀의 귀에 속삭였 다.

“오래 기다리게 했소. 미안하오. 그리고…… 여전히 새색시 같 소.”

소윤의 말에 그의 품에 안겨 있 던 정은자가 미소를 지었다.

화아악!

그 순간, 정은자의 하얀 머리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주름졌던 피부들도 곱게 펴지고, 피부도 하얗게 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윤보다 조금 더 어린 열다섯, 열여섯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된 정은자가 손을 내밀어 그의 등을 가만히 감쌌다.

“잘 돌아오셨어요.”

“기다려 주어 고맙소.”

소윤의 말에 정은자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살며시

소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서로 고마워하는 두 사람을 보 며 신수호가 잠시 미소를 짓다가 살며시 차 뒤로 몸을 숨겼다.

두 사람에게는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니, 잠시 시간을 줄 생각 이었다.

*  *  *

〈강진 씨에게…….

저 아내를 만났습니다.

저희 아내가 잘 돌아왔다고 하 더군요.

너무…… 마음이 좋습니다. 너 무 감사합니다.

훗날 이 은혜는 강진 씨가 이승 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人}시다 오시면 꼭 갚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복립이에게도 정말 고맙

습니다. 혹시 제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꼭 전해 주시기 바랍니 다.〉

소윤이 보낸 편지를 읽던 강진 이 미소를 지으며 밤하늘을 보았 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요.”

목숨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우 신 분이다. 누군가는 독립운동가

들의 희생보다 미국의 원자폭탄 한 발이 독립에 더 도움이 되었 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 병들의 희생이 1초가 되고 1분이 되어 독립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뤄진 것이었다.

살도 한 톨, 한 톨이 모여서 한 숟가락이 되고 한 그릇이 되고 한 가마니가 되는 것처럼, 그들 이 겪은 고통과 희생이 모여서 한국의 독립이 조금이라도 더 빨 리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강진은 소윤에게 감사했 다.

아침 일찍 가게로 온 정복립과 강진은 식사를 하고는 바다식당 밖에 있는 의자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보기만 해도 시 원한 바다를 보던 정복립이 말했 다.

“서울은 언제 올라가십니까?”

“이제 가야죠.”

“차 따로 안 가져오셨으면 제 차 타고 가시겠습니까?”

“괜찮아요. 아는 분하고 같이 가기로 했거든요.”

“그렇군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어제 핸드폰 충전해서 번호 찾 았습니다.”

“그래요?”

“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 자로 인사만 전했습니다.”

“그럼 그쪽에서 연락은 왔나 요?”

“아까 문자가 왔습니다. 그쪽도 일어나서 핸드폰 보고 바로 답을 한 것 같더군요.”

“그럴 테죠.”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 지의 유품 소식에 놀라서 바로 연락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연 락드리기는 그렇고, 점심시간 후 에 연락한다는군요.”

“그렇군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복립 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웃 으며 그를 보았다.

“강진 씨를 만나면 늘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정복립이 웃으며 커피를 마시 자, 강진이 입을 열었다.

“혹시 소윤 대장님이 초콜릿을 좋아하셨습니까?”

“저희 대장님이요?”

“그때 어르신이 대장님 사무실 에서 초콜릿을 훔쳤다고 하셨잖 아요. 그럼 대장님이 초콜릿을 구비해 두셨다는 건데…… 평소 에 초콜릿을 좋아하셨나 해서 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대장님이 초 콜릿을 드시는 걸 본 적이 없습 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확실히 대장님은 단 걸 안 좋아하셨습니다. 아니, 안 드셨습니다. 단 음식은 몸을 게으르게 한다 생각을 하셨거든 요.”

“자기 절제가 대단하신 분이시 네요. 게을러질까 봐 단 음식을

안 드셨다니.”

“대단하신 분입니다.”

정복립은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단 음식은 안 드시는 분인 데…… 대장님 사무실에는 초콜 릿이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단 것을 좋 아하지 않고 초콜릿도 안 먹는 소윤의 사무실에 왜 초콜릿이 있 었나 싶었다.

생각에 잠긴 정복립을 보며 강

진이 물었다.

“그 당시에는 초콜릿을 구하기 가 쉽지 않았겠네요.”

“물론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다 구하기 어려웠지만, 초콜릿 같은 건 조선에서 만들지 않았으 니…… 저도 대장님이 예전에 하 나 준 걸 먹고서야 그게 초콜릿 인 걸 알았으니까요.”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럼…… 대장님께서 어르신

주려고 초콜릿을 구하셨나 보네 요.”

“저를 주려고? 하지만 저는 대 장님 사무실에서 몰래 가져왔습 니다.”

“몰래 가져가게 두신 거겠죠.”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잠시 있 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 습니다. 서랍을 열어 보면 늘 하 나씩 있었거든요.”

“하나씩요?”

“두 개도 아니고 세 개도 아니 고 늘 하나씩이었습니다. 대장님 께서 제가 가져갈 것을 알고 하 나씩만 두신 모양입니다.”

정복립이 고개를 저으며 옆에 놓인 가방을 보았다. 가방 속에 있을 소윤의 담배 케이스를 떠올 리며 정복립이 웃었다.

“주실 거면 그냥 주시지. 형한 테 초콜릿 훔쳐 왔다고 많이 혼 났는데..

정복립의 말에 하늘을 보고 있 던 정복남이 그를 보았다.

“도둑질은 나쁜 거니까.”

정복남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에 정복남이 다시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웃으면서 가셨다니 다행입니 다.”

정복남은 아침에 배용수와 이혜 미에게 어제 소윤이 승천을 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물끄러미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다.

살아 있을 때 존경하고 의지를

하던 분이었다. 그리고 귀신이 되어서는 대화를 하며 말 상대가 되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 승천을 해서 기쁘지 만…… 그래도 외롭다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얼굴에 진한 외로움을 드리우고 있는 정복남의 모습에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정복남의 모습은 분명 슬프고 외로워 보였지만 강 진이 드는 생각은…….

‘화보가 따로 없네. 따로 없어.’

외로움을 진하게 뿜어내며 눈에 우수가 가득한 정복남은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 잘생기고 멋 져 보였다.

정복남을 보던 강진이 슬쩍 고 개를 돌렸다. 한쪽에서 이혜미와 여자 직원들이 멍하니 정복남을 보고 있었다.

“어쩜…… 진짜 잘생겼다.”

강선영의 탄성에 이혜미와 임정 숙은 말도 없이 그저 정복남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말 그대로 넋을 잃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 을 다시며 정복남을 보았다.

확실히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고 감탄할 정도의 외모였다.

‘저 얼굴로 살아 보면 어떤 기 분일까?’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하며 정복 남을 볼 때, 정복립이 커피를 다 마시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식사 잘 하고 갑니다.”

“가시게요?”

“서울 가기 전에 대장님 유족 찾는 일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맙 다는 인사라도 직접 하려고 합니 다. 그래서 여기저기 좀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담배 케이스와 편지들이 있는 가방을 툭툭 치는 정복립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대장님이 무척 고맙고 감사해 할 겁니다.”

정복립이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로 만나지 못했던 두 분의 유품이 지금은 이렇게 한곳에 있 잖아요. 대장님이 무척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가방을 쓰다듬었다.

“대장님…… 저 초콜릿 값 충분 히 한 겁니다.”

웃으며 가방을 쓰다듬은 정복립 이 강진을 보았다.

“그럼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언제든지 찾아와 주세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자신의 차 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정복립 을 보던 강진이 정복남을 보았 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두 분이 만나서 다행입니다.”

정복남의 말에 강진이 주머니에 서 소윤이 보낸 쪽지를 내밀었

다.

“대장님 생각나실 때 보세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쪽지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내용을 보다가 작게 웃었다.

“복립이 이야기는 있는데…… 제 이야기는 없군요.”

정복남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그 말대로 쪽지에는 정복립에 대 한 이야기는 있지만, 정복남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나중에 우에서 만나실 테니까

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사이에 쪽지를 끼 우고는 살짝 들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정말 잘생기셨네요.”

갑작스러운 말에 정복남이 의아 한 듯 보자, 강진이 방금 그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세우고는 웃어 보였다.

“방금 이거……정말 멋졌어요.”

“네?”

“완전 쿨하다고 해야 하나? 드 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딱 이 모습일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무슨 말 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 해할 때, 그의 몸이 뒤로 끌려갔 다. 어느새 차에 탄 정복립이 출 발을 한 것이다.

정복남은 뒤로 끌려가는 와중에 강진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그에 강진이 마주 손을 흔들었 다.

강진이 손을 흔드는 것을 백미 러로 봤는지, 운전석 창문이 열 리더니 정복립이 손을 내밀어 흔 들었다.

형제 둘이 손을 흔드는 것에 강 진이 웃었다.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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