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994화 (992/1,050)

994화

차를 향해 강진이 손을 흔드는 사이, 여자 직원들이 다가왔다.

“복남 씨는 정말 지금 살아 있 으면 아이돌을 하든 배우를 하든 뭘 해도 됐을 텐데.”

“그러게요. 저 피 묻은 군복을 입고 상처도 있는데…… 그게 또 야성적이지 않아요?”

임정숙의 말에 강선영이 입맛을 다셨다.

“야성적이기도 하고 보호해 주 고 싶어. 저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고…… 너무 멋져.”

직원들의 눈에서 하트가 뚝뚝 떨어지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 시며 슬쩍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입을 삐죽거렸 다.

“너도 마찬가지다.”

“도? 도라는 건 너는……

강진이 손바닥을 얼굴 앞에서 위아래로 흔들어 보이는 시늉을

하고는 말했다.

“인정하는 거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고 개를 젓고는 말했다.

“‘너도’라는 말에서 너는 안 들 리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잘 들렸다. 그래서 가슴이 아 프다. 반박을 못 해서.”

강진이 이미 저 멀리 가는 차를

보았다. 여전히 차에 끌려가고 있는 정복남을 보던 강진이 말했 다.

“부럽다.”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으며 말했다.

“부럽기는요. 복남 씨는 강진 씨가 더 부러울걸요.”

“그런가요?”

“그럼요. 복남 씨는......" 힘들게 살았잖아요.”

이혜미의 말에 임정숙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요. 정말 힘들게 살았죠. 어려서 동생 키우고 독립운동을 하고…… 그리고 독립된 나라에 서는 친일파 싫어서 북한으로 가 고. 참 파란만장한 삶이네요.”

“그러게. 내가 살았으면…… 참 따뜻하게 안아 줄 텐데.”

여자 귀신들의 대화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처음에는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결론은 잘생 기고 안쓰러운 정복남으로 끝이 나니 말이다.

그에 고개를 저은 강진이 바다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죠.”

강진이 바다식당으로 향하자 배 용수가 서둘러 그 뒤를 따랐고, 여자 귀신들은 저 멀리 가서 이 제 보이지도 않는 정복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강진은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촤아악! 촤아악!

배용수가 옆에서 분홍색 소시지 를 굽는 것을 보던 강진이 젓가 락으로 구워진 소시지 하나를 집 어 입에 넣었다.

“맛있네.”

“어떤 음식이든 하고 바로 먹으

면 맛있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밑반찬을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손님들에게 갓 만든 계란 입힌 소시지나 계란말 이, 그리고 어묵볶음을 내놓고 싶었다. 이런 음식들은 만들어서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정집이면 모를까, 일 일이 손님 올 때마다 할 수는 없 었다. 만드는 데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손이 가니 말이다.

그래서 밑반찬으로 만들어 놓고 손님들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그래도 음식 하는 사람이다 보 니, 가장 맛있는 상태의 음식을 손님에게 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강진이 분홍색 소시지를 먹을 때, 이혜미가 주방에 들어왔다.

“맛있겠다.”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소시지를 젓가락으로 집어 내밀 자, 이혜미가 손으로 받아서는 입에 넣었다. 그런 이혜미를 보

며 강진이 젓가락에 남아 있는 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귀신이 집어 간다고 소시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둘이 소시지를 먹는 것 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정숙 씨 밖에 있어요?”

“밖에서 부모님 기다리고 있어 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여섯 시 좀 넘어서 오신다고

했는데 안에서 기다리시지.”

“말을 했는데 밖에서 기다리겠 대요.”

강진은 손을 씻고는 주방을 나 왔다. 그러고는 홀에서 의자 두 개를 챙긴 뒤 가게 문을 열었다.

띠링!

이제는 참 익숙한 소리를 들으 며 강진이 문에 달린 풍경을 보 았다.

‘너도 참 오래됐네.’

옛날 물건들을 파는 시장에서 사 왔던 풍경을 보던 강진은 슬 쩍 손으로 그것을 더듬고는 입맛 을 다셨다.

풍경 위에는 먼지가 하얗게 덮 여 있었다.

‘하긴. 풍경은 따로 닦은 적이 없네.’

식탁이나 바닥은 청소를 깨끗하 게 해도, 풍경은 그동안 한 번도 닦은 적이 없었다.

이따가 풍경을 떼서 닦아야겠다

는 생각을 하며 강진이 의자를 들고는 가게를 나왔다.

가게 벽에 등을 댄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임정숙의 모 습에 강진이 웃으며 그 옆에 의 자를 놓았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감사합니다.”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자신의 의자도 옆에 놓고는 앉았다.

“부모님 오시는 거 기대되세 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일하는 곳을 부모님이 보 신 적이 없으니까요.”

“두 분이 저희 가게 마음에 들 어 했으면 좋겠네요.”

“마음에 드실 거예요.”

임정숙이 웃으며 고개를 돌려 가게를 보았다.

“우리 가게는 소박하지만 따뜻 하니까요. 저희 부모님 이런 가 게 좋아해요.”

“음…… 소박이라. 부모님이 허 름한 가게를 좋아하는군요.”

“네?”

임정숙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강진이 웃었다.

“농담이에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작게 웃 으며 말했다.

“강진 씨가 가끔 농을 썰렁하게 해요.”

“그러게요. 좀 고쳐야 할 텐데

말이에요.”

강진은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을 보다가 말했다.

“부모님 오시면 오늘은 저희 집 에서 주무시고 가라고 말해 볼게 요.”

“집에서요?”

“열한 시 되기 전에 부모님 이 층에서 쉬시게 하면 되지 않겠어 요? 그리고 저승식당 영업하면 귀신들 많아서 부모님들은 밑으 로 내려오지 않을 테고요.”

강진이 임정숙을 보았다.

“여기가 정숙 씨 자취방은 아니 지만, 그래도 정숙 씨가 사는 곳 이니 같이 하루 주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아침 에 식사도 차려 드리고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잠시 그 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부모님께서 남의 집이라 불편해서 거절을 하실 수도 있어 요.”

남의 집에서 자는 것보다는 돈 이 들더라도 호텔이 마음 편할 수도 있었다.

“아니요. 거절 안 하실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웃었다.

“사장님은 하얀 거짓말을 잘하 시잖아요.”

“하얀 거짓말요?”

“아빠 엄마가 가게에서 주무시 면 제가 좋아할 것을 아니……

사장님은 분명 선의의 거짓말로 두 분을 여기에 주무시게 하실 거예요. 그게 하얀 거짓말이죠.”

“선의의 거짓말, 하얀 거짓말이 라……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정숙 씨하고 어울리는 거짓말 이네요.”

“네?”

“정숙 씨는 하얀색이 어울리니 까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작게 웃 었다.

“강진 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정숙 씨도 좋은 사람이고, 좋 은 여자입니다.”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끔 여기 손님들이나 용수 씨 가 강진 씨에게 하는 말이 있어 요.”

“잘생겼다고요?”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 데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임정 숙이 웃고는 강진을 보았다.

“저희 귀신들이 강진 씨에게 가 장 많이 하는 말은…… ‘살았을 때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예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건 좀 틀린 말이네요.”

“네?”

“용수나 귀신분들이 살아서 저 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제가 더 그래요.”

“아……

임정숙이 미소를 짓자 강진도 웃으며 말했다.

“저야말로 여러분들이 살아 있 을 때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강진은 고개를 돌려 한끼식당을 지그시 보다가 말했다.

“진심으로요.”

“저희도 진심이에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 보았다.

“사장님.”

지나가던 사람 중 한 명이 인사 를 하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친한 사람은 아니 고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 중 한 명이었다.

지나가다가 강진이 앉아 있으니 인사를 한 것이다. 얼굴을 아는

데 그냥 지나치는 건 한국인 정 서에 맞지 않으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더운데 왜 나와 계세요?”

“음식 냄새를 많이 맡아서 잠시 바람 쐬러 왔습니다.”

“바람이라……

손님이 웃으며 길을 보다가 말 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손님이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그 뒷모습을 보다가 말없이 거리 를 보았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임정숙이 슬며시 그의 옆에 붙었 다.

그에 강진이 보자, 임정숙이 웃 으며 말했다.

“더우실 것 같아서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좀 진득한 더위 라고 생각했는데…… 좋네요.”

임정숙이 옆에 바짝 다가온 덕

분에 더운 것이 조금 사라졌다. 확실히 여름에는 귀신 한 명 옆 에 두는 것이 최고였다.

강진은 귀신 특유의 한기를 느 끼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 았다. 그리고 그런 강진의 옆에 서 거리를 보던 임정숙이 입을 열었다.

“다들 갈 곳이 있나 봐요.”

“그러게요. 누군가는 약속이 있 어서 가고, 누군가는 아직 못 한 일을 하러 가고…… 그러고는 누 군가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가고 있겠죠.”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갈 곳이 있네요.”

“왜요? 부러우세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제가 왜 부러워요? 저도 갈 곳 이 있는 걸요.”

말을 하며 임정숙이 한끼식당을 보았다.

“사장님하고 보육원도 가고, 강 원도도 가고, 부산도 가고 여기 저기 다 돌아다녀도…… 집에 오 잖아요.”

“집이라…… 그렇죠. 저나 정숙 씨, 혜미 씨, 선영 씨…… 그리고 용수. 우리에게는 여기가 집이 죠.”

둘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들이 다가왔다.

“지금 영업 안 하세요?”

식사하러 온 손님의 말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안 하기는요. 손님이 오시면 해야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이 말을 이었다.

“일 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안에 잠시 치우고 문 열어 드리 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손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임정숙도 서둘러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강진이 TV 를 보고 있는 강선영에게 말했 다.

“손님들 오셨네요. 영업 시작하 죠.”

“네.”

강진의 말에 강선영이 TV를 끄 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에 강진이 가게 안을 한 번 흩어 보 고는 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손님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자, 강진이 주문을 받고는 주방에 들 어갔다.

“영업 시작하자.”

강진의 말에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배용수가 메뉴에 맞춰 요리 를 시작했다.

많지는 않지만 몇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것을 강진이 살피고 있 었다. 늘 그렇듯 점심은 정신없 이 바쁘고, 저녁에는 좀 한가했

다.

띠링!

풍경 소리가 들리는 것에 강진 이 문을 보았다가 웃으며 그쪽으 로 다가갔다.

“오셨어요?”

가게 안으로 들어온 손님은 임 정숙의 부모님, 임형근과 진세영 이었다. 강진의 인사에 임형근이 가게를 둘러보고는 웃으며 말했 다.

“가게가 깔끔하고 좋네.”

“작아서 청소하기가 좋아서 그 렇습니다.”

“무슨…… 이 정도면 훌륭하 지.”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진세영의 손을 잡고는 자리에 가서 앉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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