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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995화 (993/1,050)

995 화

임정숙 부모님이 자리에 앉자, 강진이 시원한 매실차를 가지고 나왔다.

“날씨가 무척 덥죠?”

강진이 매실차를 따르자, 임형 근이 웃으며 매실차를 단숨에 마 셨다.

“그러게. 날씨가 많이 더워. 그 래도 가게 안에 들어오니 시원하 고 좋네.”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진세영을 보았다.

“서울 구경은 좀 하셨어요?”

“남산 구경하고 왔어.”

“남산은 저녁에 가야 좋다던 데.”

“그래?”

“야경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말하는 거 들으니 안 가 본 것 같네?”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서울 살면서 남산은 한 번도 못 가 봤네요.”

“왜, 서울 사는데 한 번 가 보 지. 가니 볼 만하던데.”

“다음에 같이 갈 사람 생기면 가야죠, 뭐. 배고프실 텐데 식사 부터 하시죠.”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가게 내 부를 슬쩍 보다가 말했다.

“음식 나오기 전에 가게를 좀 둘러봐도 되나?”

“지금은 이렇게 눈으로 보시고, 손님들 가고 난 후에 보시는 것 이 어떠세요?”

“왜?”

“손님들 있는데 구경한다고 가 게 돌아다니면 방해되잖아.”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말씀대로예요. 다른 손 님들이 편하게 식사하셔야 하니 까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며시 말했다.

“우리 정숙이가 여기서는 뭘 했 어?”

“평소에는 서빙을 하고, 주방 바쁠 때는 설거지도 하고 그랬습 니다.”

임형근이 가게를 둘러보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식사 어떻게 챙겨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말했다.

“전에 점심은 바쁜데 저녁은 안

바쁘다고 한 것 같은데?”

“직장인 손님들 위주라서요. 점 심에는 정말 바쁘고, 저녁에는 비교적 한산해요. 한 여섯 시 반 쯤 되면 그날 저녁 장사는 끝이 라고 보시면 돼요.”

“밥집이면 그 시간이 한창 바쁠 시간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사람들이 논현에 밥 먹으러 오는 것이 아 니라서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우리 나중에 손님들 빠지 면 그때 먹을게.”

“배 안 고프세요?”

“남산에서 이것저것 먹어서 괜 찮아. 좀 있어도 괜찮지?”

“그럼요. 편하게 계세요.”

강진은 식탁에 놓인 꽃 피어나 다 책을 들어 내밀었다.

“심심하시면 이거라도 좀 보고 계세요.”

“이건 뭔데?”

“제가 아는 형이 출판한 책이에 요. 아! 그리고 이걸로 드라마도 제작 중이에요.”

“그래?”

진세영이 책을 받아 펼치는 것 을 보던 강진이 책 한 권을 더 가져와서는 임형근에게 내밀었 다.

“재밌으니 한 번 봐 보세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책을 받 으며 물었다.

“꽃 피어나다. 제목이 감성적이 네.”

“제목은 감성적인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하셨던 양반가 김소희 아가씨의 일대기예요.”

“양반가 아가씨? 아가씨가 의병 이야?”

“실존 인물이신 분이니 한 번 봐 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강진은 몸을 돌 려 평소에 서 있던 곳에 가서 섰 다. 그 모습에 임형근이 책을 보

다가 책장을 펼쳤다.

가게 구경도, 식사도 잠시 미뤄 둔 터라 지금은 할 것 없으니 책 을 보려는 것이다.

임정숙 부모님은 앞에 다과를 놓고 매실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 었지만, 할 일도 없고 강진이 추 천해 주는 책이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이 조용히 책을 읽는 것 을 보던 강진이 홀을 정리하고는 시계를 보았다.

7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저녁 손님들이 조금 더 와서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

‘배고프시 겠네.’

간단한 다과를 내오기는 했지 만, 다과는 다과고 밥은 밥이니 말이다.

강진은 서둘러 그릇들을 주방으 로 옮기고는 다시 홀로 나와 임

형근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리셨죠.”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보던 책 에서 눈을 떼고는 말했다.

“책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그러고는 임형근이 진세영을 보 았다.

“당신은 어땠어?”

“재밌네요. 그리고…… 실존 인 물이라고?”

“네.”

“그렇구나.”

잠시 책을 보던 그녀는 책장 한 쪽에 있는 꽃 그림을 보았다.

“꽃이 피면 아름답지만 곧 시들 어야 할 때가 오는데..... 그걸

표현한 것 같네.”

그림을 보며 진세영이 한숨을 쉬었다.

“꽃이 많이 피었어. 그래서 아

쉽고 슬프네.”

“저도 그 책을 보면서 꽃이 피 는 것이 참 슬프다는 생각을 했 어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작게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선시대 의병 중에 이런 분이 있을 줄은 생각을 못 했어. 이런 분이 이렇게 무명이라니……

진세영의 말에 임형근이 말했 다.

“조선시대는 남자의 시대니까. 여자가 앞에 나서서 싸웠다는 것

이 알려지면 창피하고 부끄러웠 겠지.”

두 사람의 대화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결론은 책이 마음에 드셨다는 거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말을 이었다.

“책은 제가 두 분에게 선물로 드릴게요.”

“그래도 돼?”

“보시는 대로 저희 가게에 책이 많아요.”

식탁마다 놓여 있는 책을 가리 킨 강진이 말했다.

“어떻게,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아니면 가게 구경부터 하시겠어 요?”

“가게 구경부터 좀 하고 싶어. 우리 딸이 여기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고 싶어.”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정숙이는 손님이 없으면 늘 이 자리에 앉아서 쉬고는 했어요.”

강진이 한쪽에 있는 자리를 가 리켰다. 살짝 구석진 곳의 벽 옆 자리였다.

“정숙이는 여기에 이렇게 앉아 서 TV를 봤어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딸이 좋 아했다던 자리를 보며 말했다.

“정숙이가 성격이 좀 내성적이 라 구석진 자리를 좋아했어. 사

람들 시선 덜 받는 곳으로.”

임형근의 말에 임정숙이 아빠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저 자리가 좋아. 등을 기댈 수도 있고…… 얼마나 좋은 데.”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의자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댔다.

“이렇게 등을 기대고 TV를 보 고, 간식을 먹으면서 다른 직원 들하고 드라마 이야기를 했어 요.”

“드라마?”

“전에 이야기를 했었죠. 혜미 씨, 선영 씨하고 친하게 지냈다 고요.”

a "응."

흐.

“그분들도 드라마를 좋아해서 같이 보고 그랬어요. 아! 주방장 하던 용수라는 친구도 같이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슬며시 주방을 보았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왜 안 나오셔? 주방에 일이 많나?”

진세영이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 에 강진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분들은 이제 다른 일 하고 계세요.”

“다른 일?”

“그분들도 각자 자기 일들이 있 어서 정숙이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셨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안 계세요.”

“아……

진세영이 아쉽다는 듯 주방을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주방에 한 분은 있는 것 같은데?”

강진이 홀에서 서빙을 하는 동 안 주방에서는 음식을 하는 소리 가 간간이 들렸으니 말이다.

“그게......"

강진이 주방을 한 번 보고는 말 했다.

“용수는 아직도 가게에서 일하 고 있어요. 저희 가게 주방장이 에요.”

“그래? 그럼 인사라도……

진세영이 일어나려 하자, 강진 이 고개를 저었다.

“용수는 사람을 잘 안 만납니 다.”

임형근이 의아한 듯 보았다.

“사람을 안 만나?”

“그게 좀 사정이 있습니다.”

전에는 농담조로 숫기가 없어서 라고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렇게 말을 할 수 없기에 강진은 그저 사정이라고만 말을 했다.

실제로 귀신이라는 사정이 있는 것도 맞고 말이다.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뭔가 말 을 할 듯 입을 열자, 진세영이 살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

“응?”

임형근이 보자, 진세영이 강진 을 보았다.

“사정이 많이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뿐입

니다.”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것이 뭔지 알 나이는 됐으니 말 이다.

말 못 할 사정이라는데 그걸 계 속 물어보는 게 실례라는 것 또 한 말이다.

진세영은 주방 쪽을 보았다.

“용수 씨, 저 정숙이 엄마예요.”

답이 없는 주방을 보던 진세영 이 의아한 듯 자신을 보자, 강진 이 말했다.

“듣고는 있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주방을 보았다.

‘몸이 불편하신가 보구나.’

사람이 말을 하면 답을 하는 것 이 맞다. 하지만…… 답을 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정숙이하고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좀 괜찮아지면

우리 얼굴 한 번 봐요. 정숙이하 고 친하게 지낸 분하고 인사는 하고 싶네요.”

진세영의 말에 순간 주방에서 작은 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 다.

깡! 깡!

그 소리에 진세영의 얼굴에 안 쓰러움이 떠올랐다.

‘몸이 불편하신가 보구나.’

옆에 있던 임형근도 비슷한 것 을 느꼈는지 주방을 보다가 말했

다.

“다음에 같이 한잔합시다.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깡!

다시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임형근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임형근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음식 정말 잘하고 열심히 사는 친구예요.”

“그런 것 같아. 전에 해 온 음 식도 저 친구가 한 건가?”

“저하고 같이 한 거죠.”

웃으며 강진이 의자에서 일어났 다.

“그리고 이 층 보여 드릴게요.”

“이 층?”

“주방은 이따가 용수 가면 보여 드리고요. 일단 이 층부터 보여 드릴게요.”

강진이 2층으로 가는 계단을 가 리키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에 강진은 그 둘을 데리 고 2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이 층은 제가 살고 있습니다.”

“자네가?”

“일 층은 식당이고 이 층은 가 정집이거든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눈을 찡 그렸다.

“설마 우리 딸을 자네 사는 곳 에?”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가끔은 눕거나 편하게 있고 싶

을 때가 있잖아요.”

“설마 우리 정숙이를?”

딸을 위에 눕혔냐고 묻는 임형 근을 보며 강진이 급히 손을 저 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거 전혀 아닙 니다.”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눈을 찡 그리며 임형근을 툭 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정

숙이가 왜 올라가느냐는 거지.”

의심스럽다는 듯 보는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설명했다.

“식당에서는 앉아서밖에 못 쉬 니 편하게 쉬고 싶을 때는 여자 직원들끼리 이 층에 올라가서 쉬 고 내려왔어요.”

“여자 직원들끼리? 확실한 건 가?”

“그럼요. 정숙이하고 단둘이 이 층에 있었던 적 없어요.”

강진이 웃으며 2층으로 두 사람

을 데리고 올라왔다. 계단을 다 올라가자 거실이 보였다.

“가구들이 좀 낡았습니다.”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거실을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 층은 시골 분위기가 나네.”

“원래 이 가게를 운영하시던 할 머니가 사시던 곳이에요. 저는 그거 물려받아서 살고 있는 거구 요.”

“그래?”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이라 버리기는 뭐 해서 그냥 쓰고 있 습니다. 낡기는 했지만 아직도 멀쩡해요.”

웃으며 강진이 소파를 가리켰 다.

“정숙이는 여기서 쉬었어요.”

식당에서 TV를 보는 경우가 많 았지만 가끔 눕고 싶거나 할 때 는 2층 소파에 눕거나 바닥에 누 워서 TV를 보았다.

귀신이라 앉거나 누워도 딱히

몸이 편하다는 감각은 없지만, 살아있을 때의 버릇 때문에 가끔 은 눕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소파를

보다가 슬며시 거기에 앉았다.

그는 가만히 소파의 안락함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내 딸이 여기에서 쉬었구나.’

딸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쉬는 것을 떠올려 본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그래도 이렇게 편하

게 쉴 공간이 있어서.’

임정숙이 일하다가 이 소파에서 잠시 지친 몸을 뒤었을 것을 생 각하니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들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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