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화
“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잖아. 난 너처럼 그렇게 열 심히는 못 살았을 거야.”
배용수가 강진을 보며 말을 이 었다.
“보육원에는 갔지만, 정말 열심 히 공부해서 한국 최고의 대학에 합격을 했어. 그리고 학교 다니 는 동안 사는 건 힘들었지만 정 말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면서 학
비 벌었잖아. 너 열심히 안 했 어?”
“그건…… 아니지.”
학교 다닐 때 강진은 정말 열심 히 살았다. 장학금 받으려고 열 심히 공부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강진이 대학 시절을 떠올리는 것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그리고 너는 좋은 사람들을 많 이 만났잖아.”
“좋은 사람?”
“광현 형, 전에 너 일 필요하다 고 하니 바로 편의점에 일자리 마련해 준 사장님…… 그리고 전 에 일했던 칼국수 집 할머니들.”
배용수가 웃으며 강진을 보았 다.
“아르바이트생 먹으라고 반찬 챙겨주는 사장님이 그리 흔한 줄 알아?”
말을 하던 배용수가 하늘을 보 았다.
“네가 열심히 살고, 주위에 너
를 돕는 분들이 있는 거 봤으니 웃으며 승천할 수 있지 않았을 까? ‘우리 아들 정말 열심히 사 는구나. 엄마 아빠는 네가 자랑 스럽다.’ 하면서 말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아마 너를 믿고 네가 어른이 된 걸 알고는 승천을 하셨을 거 야.”
“그런가?”
“그러셨을 거야. 너 두고 가는 데 발이 쉽게 떨어졌겠어? 발이 안 떨어졌을 거야.”
배용수는 다시 강진을 보았다.
“그분들은 네가 열심히 사는 것 을 보고 가셨을 거야. 너를 믿으 니까.”
“그런가?”
“그래. 그런 거야. 그리고 부모 님 가신 것이 좋은 거지.”
“부모님 못 봐서 아쉽기는 하지 만 잘 가신 거지. 그건 나도 잘
알아.”
강진은 귀신을 보게 된 후 여러 귀신들을 만났다. 그중에 가장 만나고 싶은 건 역시 부모님이었 지만 안 계셨다.
그래서 조금은 서운했다. 아들 혼자 두고 가시면서 벌써 승천을 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승천을 하셔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식이 힘들게 사는 것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면 그래도 마음은
편하게 가셨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 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임 정숙 부모님을 보니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든 것이다.
‘나도 엄마도 아빠도 있었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배용 수의 어깨를 두들겼다.
“넌 정말……
“내가 뭐? 또 이상한 소리 하려 고 그러지.”
배용수가 질색을 하며 보자 강 진이 웃었다.
“내가 가진 최고의 친구다.”
“네가 가진? 내가 물건이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웃으며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내가 너한테도 좋은 친구가 되 도록 노력할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으며 말했다.
“너도 이미 나한테 좋은 친구 야.”
“그럼 다행이고.”
“근데......"
“근데 뭐?”
“그 마누라라고 하는 거 안 하 면……
“안 돼. 미안. 그건 포기 못 해. 그거 안 하면 나 죽어.”
단호한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너 지금 표정하고 하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진심이라 그래. 포기 못 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고 개를 저었다.
“너 아프다. 병원 좀 가라.”
“그러게……
강진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배용 수를 보았다.
“너 때문에 내가 아프다.”
“하아!”
배용수가 다시 질색하는 것을 보며 강진이 웃고는 그를 툭 쳤 다.
“올라가야겠다.”
“그래. 쉬어라.”
강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다가 멈춰 서더니 배용수를 보았다.
“넌 안 들어오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손에 들 린 커피를 들었다.
“이거 마저 마시고/’
“그래라.”
강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배용수 가 그 모습을 보다가 입맛을 다 셨다.
‘안쓰러운 놈.’
강진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달 라붙는지 배용수는 알고 있었다. 그건…… 외로워서였다.
마치 개들이 자기 봐 달라고 와 서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강진 은 자신을 마누라라고 부르며 치 근덕거리는 것이다.
강진이 주위에 사람은 많다. 황 민성도 있고, 이강혜와 오혁도 있고, 첫 만남은 유쾌하지 않았 지만 지금은 형제처럼 지내는 강 상식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처럼’일 뿐, 진짜 가족은 없었다.
그래서 강진은 정을 고파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를 봐 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배용수는 강진의 치근덕거림을 받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강진의 행동이 정말 싫지
도 않고 말이다.
닫힌 가게 문을 보던 배용수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가게 안으 로 들어갔다.
강진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2층에 올라왔다.
불을 꺼서 어둡기는 했지만 대 략적인 구별은 가능했다. 창문으 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있으 니 말이다.
강진은 거실에 있는 임형근과
진세영을 보았다.
두 사람은 소파 양쪽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발을 겹쳐 놓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딱 봐도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 지만 두 사람은 참 잘 자고 있었 다.
아마도 딸이 쉬던 소파라 하니 두 사람 모두 거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임정숙은 두 사람을 보며 손으 로 부채질을 해 주고 있었다. 더
운 여름에 손부채질을 해 봤자 얼마나 시원하겠냐마는…… 그것 이 귀신이라면 말이 달랐다.
귀신이 해 주는 손부채질은 확 실히 시원했다.
강진의 시선에 임정숙이 그를 보며 말했다.
“일 바쁘셨죠?”
강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평소하고 같았어요.”
강진이 작게 속삭이자, 임정숙
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부모님 잠귀 어두우셔서 그렇게 조심 안 하셔도 돼요.”
“그래도요.”
“죄송해요. 저도 가서 도왔어야 했는데……
“여기 계시는 것이 저희를 돕는 거예요. 참, 내일 두 분은 어떻게 하신대요?”
“딱히 그런 이야기는 없으셨어 요. 그냥 여기 앉아서 TV 보고 이야기하셨어요.”
임정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내일 정숙 씨 부모님하고 같이 있으세요.”
“저 일해야 하는데.”
“월차 쓰세요. 그동안 월차 한 번도 안 쓰셨잖아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내일 부모님하고 같이 서울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드세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웃었다.
“부모님이 드시는 걸 제가 어떻 게 먹어요.”
귀신은 사람이 주는 것만을 먹 을 수 있었다. 그러니 부모님이 그녀에게 주지 않는 한 임정숙은 먹지 못했다.
강진은 웃으며 말했다.
“프로 거짓말쟁이가 앞에 있잖 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제 가 정숙 씨 배 터지게 먹게 해 드릴게요. 오늘은 이만 쉬세요.”
강진의 말에 임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어요.”
강진도 그녀에게 수고했다 말을 하고는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는 화장실에 들어갔 다.
내일 씻을까 했지만, 음식 냄새 에 절은 상태라 씻기는 해야 했 다.
강진이 씻으러 들어가는 것을 보던 임정숙이 작게 고개를 숙였
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강진은 시원 한 콩나물국과 간단한 아침상을 차렸다.
상차림이 다 되어갈 즈음, 2층 에서 진세영과 임형근이 내려왔 다.
“잘 주무셨어요?”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웃으며 말했다.
“아주 잘 잤어.”
“소파에서 주무시던데요.”
잘 잤다는 말에 강진의 웃으며 말을 하자, 임형근이 웃었다.
“그래서 더 잘 잔 것 같아.”
“어디든 내가 편히 잘 수 있으 면 그게 최고죠.”
강진의 말에 임형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맛있겠네.”
식탁에 놓인 음식을 보며 임형 근이 말하자 강진이 밥을 놓으며 말했다.
“오늘 어떻게 하기로 하셨어 요?”
“딱히 정해 놓은 것 없어.”
“ 없으세요?”
“그래도 유명한 곳들 있잖아.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 있는
곳도 있고, 홍대도 있고, 경복궁 도 있고. 밥 먹고 생각나는 곳으 로 한 번 가 보려고.”
임형근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며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저기 이거.”
“응? 뭐야? 이거.”
임형근이 의아함과 어색함이 담 긴 얼굴로 강진을 보았다. 봉투 를 보니 뭔지는 알겠는데 왜 이 걸 주나 하는 것이다.
“맛있는 거 드시라고요.”
“아니. 우리도 돈 있어.”
임형근이 급히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있는 거 당연히 알죠. 많이 안 넣었으니 점심하고 간식들 사 드 세요. 제 마음입니다.”
임형근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 를 끄덕였다.
“마음이라고 하니 거절하기가 그렇군. 그럼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겠네.”
“그리고……
강진이 뭔가 더 말하려는 듯하 자 임형근이 그를 보았다.
“전에 정숙이가 부모님 모시고 서울 구경하면 길거리 음식 같이 먹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길거리 음식?”
“거리 음식 드시면서 옆에 정숙 이 먹을 음식도 하나 더 주문해 주세요. 제사 음식처럼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는 정숙이하고 같이 음식을 먹는 거네.”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죠?”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인데 당연히 우리가 해 야지. 걱정하지 마.”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슬쩍 그녀의 뒤에 있는 임정숙을 보았다. 그 시선에 임정숙이 고
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임정숙의 인사에 미소로 답한 강진이 임형근과 진세영을 보았 다.
“식사하세요.”
“그래. 어서 먹자고.”
임형근이 웃으며 콩나물국을 떠 서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 시원하다!”
입에 맞으세요?”
“아주 좋아. 칼칼한 것이 속을 확 풀어주는구먼.”
진세영도 수저를 들고 밥을 먹 기 시작하자 강진도 식사를 시작 했다.
“그럼 갔다 오겠네.”
임형근과 진세영이 손을 잡고 가게를 나가는 것에 강진이 말했 다.
“서울타워 꼭대기가 볼 만하다 고 하더라고요. 거기 가 보세요.”
“그래. 알았어.”
웃으며 답한 임형근이 진세영과 가게를 나서자, 임정숙이 가게에 있는 귀신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 다.
“저 갔다 올게요.”
“그래. 잘 놀고 와.”
귀신들이 손을 흔들자 임정숙이 웃으며 가게를 서둘러 나섰다.
“정숙이는 좋겠다. 부모님하고 서울 구경도 하고.”
이혜미의 말에 강선영이 입맛을 다셨다.
“살아서 했으면 더 좋았을 텐 데.”
“그건......"
이혜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살아서 했 으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서울 구경도 시켜 드리고, 자기 사는 곳에서 잠도 재워 드리고, 자기 일하는 곳이 나 다니던 학교도 구경시켜 드리
고 말이다.
다음에 할 수 있을 거라며 미뤄 뒀던 일들이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임정숙은 이런 식으로나마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되었지만…….
침울해하는 귀신들의 모습에 강 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살아서 부모님과 하고 싶은 것 들이 많은 건 그녀들도 마찬가지 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강진도 마찬가
지였다. 그녀들은 자신이 죽어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자신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하 지 못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다리라도 한 번 더 주물러 드릴걸.’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