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화
〈사장님께.
저 승천을 했어요.
음…… 승천이라는 게 갑자기 이렇게 하는 건 줄 몰랐는데. 이 렇게 갑자기 가게 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혜미 언니, 선영 언니, 사장님, 그리고 용수 오빠한테 인사라도 제대로 할 것 을 그랬어요.
언니 오빠도 이 글을 보시겠죠?
음…… 혜미 언니, 선영 언니. 저 동생처럼 잘 챙겨 주시고 잘 해 주시고…… 마음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언니들하고 같이 승천을 하고 싶었는데, 저만 혼자 이렇게 가 버려서 죄……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요. 언니들은 분명 제가 승천한 걸 축하해 주고 기뻐해 줄 것을 아니까요.
제가 먼저 갔지만 언니들이 오 실 길 막내가 먼저 가서 길을 닦 아 놓는다고 생각할게요. 귀찮은 일은 막내가 하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언니들도 마음 편히 승 천을 해서 오세요. 막내가 잘 차 려 놓고 언니들 오기만을 기다리 고 있을게요.
그리고 용수 오빠…… 음…… 저 사실…… 오빠 조금 좋아했어 요.
저승 오면 저 맛있는 거 해 주 세요.
마지막으로 사장님.
한끼식당에서 지낸 시간들 저에 게는 너무나 행복하고 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한끼식당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임정숙이 쓴 편지를 보던 강진 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정숙 씨와 일한 삼 년이
라는 시간…… 정말 행복하고 또 행복했습니다. 조금 오래 기다려 주세요. 제가 너무 일찍 가면 정 숙 씨 화를 낼 것 같으니 오래오 래 잘 살다가 만나러 가겠습니 다. 가면 제가 여기서 겪은 재밌 는 일들 다 이야기해 줄게요.’
웃으며 임정숙이 쓴 편지를 읽 는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우리도 좀 보자.”
배용수가 손을 뻗자 강진이 급 히 편지를 뒤로 빼서 이혜미에게 넘겼다.
“넌…… 마지막이야.’’
“응? 왜?”
“그런 이유가 있다.”
그러고는 강진이 이혜미를 보 자, 그녀가 웃으며 편지를 받아 강선영과 같이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배용수가 급히 말했 다.
“나도 같이 보면 되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혼자 봐.”
“혼자?”
의아해하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편지를 본 이혜미가 눈가를 손으로 눌렀다.
“정숙이가 이렇게 착해.”
“우리 저승에 든든한 백이 생긴 거네.”
강선영의 말에 이혜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나중에 저승 가서 집 구할 걱정은 없겠네요.”
“좋은 동생 둬서 좋네.”
임정숙이 간 아쉬움을 농담으로 달래던 이혜미가 문득 배용수를 보았다. 그러다가 강선영에게 작 게 뭔가를 속삭이자, 그녀도 배 용수를 보았다.
자신을 보던 두 귀신이 작게 고 개를 젓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 다.
“왜요? 저에 대해 뭐라고 쓰여
있어요?”
“아니에요. 그냥……
이혜미가 배용수를 보며 웃었 다.
“좋으시겠어요.”
“네?”
의아해하는 배용수에게 이혜미 가 쪽지를 내밀었다. 그에 배용 수가 쪽지를 받아 펼치자 강진이 그가 내용을 다 읽기를 기다렸다 가 말했다.
“고백받았네. 좋겠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편지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정숙 씨가 나를 좋아했구나.”
“그러게요. 아무런 티도 안 내 서 그런지 전혀 몰랐네.”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편지를 보다가 그것을 손으로 쓸 어 보고는 강진을 보았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래.”
“왜? 생전…… 아니지, 생전과
사후를 통틀어서 처음 받아 보는 고백에 감동이라도 한 거야?”
“일단 살았을 때 고백받은 적 있다. 물론 죽어서는 처음인 데…… 기분이 좋네. 그 순수한 정숙 씨가 나를 좋다고 해 주다 니 내가 좀 멋진 사람 같아.”
배용수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 습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너는 멋진 놈이니까.”
“갑자기?”
“나 다음으로.”
농담 섞인 말을 던진 강진이 웃 으며 식당에 있는 귀신들을 보았 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 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의 자 위에 올라갔다.
“잠시 주목 좀 해 주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그를 보 았다.
“이 사장 의자에 올라갔네?”
“할 말이라도 있나 본데?”
식당 내 모든 귀신들이 자신을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여러분 들도 아시겠지만 저희 가게 아름 다운 여직원 중 한 분인 임정숙 씨가 방금 승천을 했습니다.”
“정숙 씨가?”
“아…… 가셨구나.”
“말 참 예쁘게 하고 좋은 분인 데, 잘 됐네.”
귀신들이 임정숙을 떠올리며 웃 는 것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말 없이 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 내 밀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 을 알아주는 배용수를 보며 웃은 강진이 잔을 들었다.
“만남은 길고, 이별은 짧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정숙 씨 를 기분 좋게 술 한 잔 마시며 보내 주려고 합니다. 다들 잔 따 라 주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모두 잔 에 술을 채웠다. 배용수와 이혜
미, 강선영도 술이 든 잔을 들었 다.
“다른 말은 안 하겠습니다. 자, 정숙 씨를 위하여!”
강진이 잔을 들어 올리며 외치 자, 귀신들도 웃으며 잔을 높이 들었다.
“정숙 씨를 위하여!”
“정숙 씨를 위하여!”
아내의 발바닥을 주물러 주다가
살짝 잠이 들었던 임형근이 문득 눈을 떴다.
“응? 방금 내 딸 이름을 들은 것 같은데?”
임정숙의 이름을 들은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 던 임형근이 입맛을 다셨다.
“서울이 시끄럽기는 하네.”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소음에 고개를 저은 임형근이 고 개를 숙여 자신의 맞은편에서 자 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오늘 여러 곳을 돌아다녀서 피 곤했는지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 내를 보던 임형근이 슬며시 그녀 의 배 위에 올렸던 다리를 들어 소파 등받이에 올렸다.
아내를 위한 배려기도 했고 이 게 편하기도 했다.
자세를 다시 잡은 임형근이 눈 을 감으려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 렸다. 잠시간 텅 빈 거실을 가만 히 보던 임형근이 입을 열었다.
“아빠도 딸 많이 사랑한다.”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임형 근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어쩐지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임형근은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쿨! 쿨!
무슨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임형근의 얼굴은 무척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 * *
아침을 먹은 강진은 임형근 부 부를 기차역 앞에서 배웅해 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안 와도 되는데.”
미안해하는 진세영을 보며 강진 이 고개를 저었다.
“부산까지 모셔다드려도 시원치 않은데 역까지만 모셔서 제가 더 죄송하죠.”
“무슨 그런 말을 해.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도 고마운데.”
진세영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건 도시락이에요.”
“도시락?”
“부산 도착하시면 점심때잖아 요. 바로 집에 들어가지 마시고 근처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도시 락 드시고 들어가세요.”
강진의 말에 진세영이 웃으며 쇼핑백을 받았다.
“너무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점심에 어디 밥이라도 먹고 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해운대 가서 바다 보면서 먹으 면 되겠어.”
“그거 좋네. 사람 구경도 하고 바다도 보고.”
이야기를 나눈 진세영이 강진을 보았다.
“부산 또 놀러 와.”
“알겠습니다. 두 분도 서울 오 시면 잊지 마시고 꼭 찾아 주세 요.”
“그래.”
웃으며 두 사람이 걸음을 옮기 자 강진이 손을 흔들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그래. 잘 가!”
진세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자, 임형근이 그녀의 손에 들린 쇼핑 백을 받아 들었다.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이 손을 잡 고 기차역 안으로 들어가자, 강 진이 그 모습을 보다가 웃었다.
“저렇게 다정하시니 정숙 씨도 마음 편하게 가셨겠지.”
부부의 뒷모습을 보던 강진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강진과 같 이 온 귀신들도 같이 몸을 돌렸 다.
임정숙 부모님이 가는 길이라 한끼식당 식구들이 모두 배웅을 나온 것이다.
이혜미는 문득 자신의 옆을 보 았다.
“집에 가면 정숙이가 없다는 것
이 실감 나겠네요.”
이혜미의 말에 식구들이 그녀가 보는 곳을 보았다. 텅 비어 있는 임정숙의 빈자리를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완전한 이별은 아니잖 아요. 우리가 저승 가면 만나게 될 테니까요.”
“하긴, 끝이 아니죠.”
나중에 이혜미와 강선영, 그리 고 다른 한끼식당 식구들도 저승 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자! 집에 가시죠.”
강진이 걸음을 옮기자 귀신들이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강진은 신림에 있는 최광현 집 에서 음식을 하고 있었다. 그리 고 그런 강진을 채송화가 투덜거 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냉면 한 그릇 해 주러 오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미안해. 미안해. 요즘 바빠서 올 시간이 없었어.”
“여름 다 가고 무슨 냉면이야.”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여름 다 가기는. 아직도 나가 면 엄청 더워.”
“지금도 더워?”
“구월이라고 시원해지는 건 옛 날이고, 지금도 더워.”
웃으며 강진이 삶아진 면발을 얼음물에 담가 씻어냈다.
“으! 맛있겠다.”
얼음물에서 탱글탱글하게 씻겨 나오는 면발을 보며 채송화가 침 을 삼켰다.
“저승식당에 올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못 가니까.”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광현 형 한테 이야기해. 면처럼 바로 먹 어야 맛있는 건 못 보내도 반찬 이나 튀김 같은 건 만들어서 보 내 줄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네가 해서 보내 주는 음식들 맛있게 먹고 있어.”
그러고는 채송화가 머뭇거리다 가 말했다.
“고맙게 생각해.”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고는 웃으며 냉면을 사발에 담
았다.
“비빔, 물 둘 다 먹을 거지?”
“응!”
채송화의 답에 강진이 한 그릇 에는 냉면 육수, 한 그릇에는 비 빔 양념을 담았다.
그러고는 강진이 입을 열었다.
“장대방, 장대방, 장대방.”
화아악!
강진의 부름에 장대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그는 강진에게 인사를 하고는 채송화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안녕.”
장대방이 편하게 말을 거는 것 에 채송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냉면 먹자.”
“냉면?”
장대방은 의아한 듯 강진을 보 다가 그가 냉면을 놓는 것을 보 고는 웃었다.
“맛있겠네요.”
“비빔? 물?”
“비빔으로 먹다가 나중에 육수 넣어서 물냉으로 먹을게요.”
“냉면 먹을 줄 아네요.”
“냉면 집 가면 비냉에도 육수 주잖아요.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 먹어요.”
웃으며 장대방이 자리에 앉다가 주위를 보았다.
“광현 형이 안 보이네요?”
“광현 형은 강원도 갔어요.”
“강원도요?”
장대방의 말에 채송화가 말했 다.
“사건 하나 터졌다고 거기 갔 어.”
“바쁘시네.”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광현 형이 바쁘면 좋을 것이 없는데 말이에요.”
최광현이 바쁘다는 건 그만큼 범죄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야기 그만하고 어서 먹자.”
자리에 앉은 채송화가 냉면 그 릇을 들고는 후루룩 먹더니 미소 를 지었다.
“너무 맛있다.”
해맑게 웃는 채송화의 모습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장대방을 보 았다. 강진의 시선에 장대방이 웃으며 냉면을 스슥! 비볐다.
붉은 양념에 버무려지고 오이와 무채가 섞이자 무척 맛깔스러워 보였다.
꿀꺽!
침을 삼킨 장대방이 냉면을 크 게 떠서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단숨에 냉면을 흡입한 장대방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맛있다.’
장대방이 웃으며 강진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냉면을 입에 넣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