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화
오태산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보 며 강진은 일전에 채송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 남자친구는 잘생긴 얼굴은 아니야. 그냥 눈썹이 좀 진하고 남자처럼 생겼어. 그리고…… 웃 음이 참 착해.
-웃음이 착해요?
-웃는 거 보면 ‘아, 이런 사람 은 정말 법 없어도 살겠다.’ 싶거
그때는 ‘착한 웃음’이 뭔가 싶었 는데 직접 보게 되니 무슨 의미 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강진은 오태산의 얼굴에 대해서는 몰랐다.
원래는 채송화가 특징을 살려서 그려 주면 대충 그 윤곽이라도 알 생각이었다.
그런데…… 채송화가 그림을 너 무 못 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림은 포기하고 설명으로 만 들었다.
예전 일을 떠올리던 강진이 눈 을 찡그렸다.
‘아…… 차라리 송화 씨가 한 설명으로 몽타주를 만들걸.’
자신은 못 하지만, 최광현이 아 는 경찰 인맥을 통해 몽타주를 만들면 될 일이었다. 전에 만복 과 달래 부모님 몽타주를 만들었 던 것처럼 말이다.
‘이걸 생각을 못 했네.’
쉬운 길을 돌아갔다는 생각에 작게 고개를 저은 강진이 청년을 보았다.
조금은 평범한 외모를 가진 청 년은 한 스물여섯에서 일곱 정도 로 보였다. 그리고 참 눈이 깨끗 해 보였다.
‘미소만큼 심성이 참 좋아 보이 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슬며 시 물었다.
“혹시 채송화 씨 남자친구분이 세요?”
강진이 바로 채송화 이름을 꺼 낼 줄 몰랐는지 놀란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이렇게 바로 들어가?”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년을 보았 다.
청년은 수박을 먹다가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송화를 아세요?”
청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 를 보았다.
“맞으시군요.”
“저희 송화를 어떻게 아세요?”
“저하고 친한 형님이 지금 송화 씨 집에서 자취하시거든요.”
“아……
강진의 말에 청년은 조금은 실 망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채송화를 아는 지인인가 싶었는 데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시군요.”
청년이 다시 수박을 먹는 것을 보며 강진이 수박 한 조각을 더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하나 더 드세요.”
냉면을 먹던 아버지가 청년을 한 번 보고는 강진을 보았다.
“광현이가 살던 집 말하는 거 야?”
“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 지가 의아한 듯 말했다.
“귀신 들린 집이라고 사람들 얼 마 안 살고 나가는데 전 주인을 광현이가 어떻게 알……
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툭 쳤다. 그에 아버지가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응? 왜 그래?”
아버지의 물음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슬며시 오태산을 보았 다.
오태산은 수박을 먹다 말고 의 아한 눈으로 아버님과 강진을 보 고 있었다.
“귀신 들린 집요?”
오태산의 말에 그나마 눈치가 있는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소문이지.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어.”
“무슨 소문인데요?”
“그게......"
할머니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자네하고 같이 다니던 여자친구 가 귀신이 돼서 그 집에 산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대로 나가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최광현 집으로 데려가려 했는 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손발이 맞지 않았다.
‘이래서 거짓말도 손발이 맞아 야 한다고 하는 건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이야기 를 살짝 각색하기로 하고는 오태 산에게 말했다.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 버님이 말했다.
“이야기 여기서 하지그래?”
“식사들 하시잖아요. 식사 맛있 게 하세요.”
손발이 안 맞으면 안 되니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프로 거짓말쟁이는 장소를 가 리는 법이지.”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피 식 웃었다. 저승식당을 하고 난 이후로 정말 프로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강진은 오태산을 데리고 푸드 트럭 뒤로 갔다. 트럭 뒤에 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나마 그늘이 있었다.
오태산을 데리고 그늘 밑에 선 강진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채송화 씨가 살았던 집에 지금 저하고 친한 형이 사세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귀신 이야기는 뭔가 요?”
“그게......"
강진은 그 집에 들어온 세입자 들이 몇 달 살지 않고 이사를 갔 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휴우! 그게 우리 송화 다음부 터라 귀신 소문이 돈 모양이군
요.”
“그게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최광현 빌라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 다.
“우리 송화, 귀신이 돼서 사람 을 괴롭힐 애가 아닌데……
작게 고개를 저은 오태산이 강 진을 보았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시]요?”
“사실 저나 형은 그런 귀신 이
야기를 안 믿습니다.”
“그러실 테죠.”
“근데 사람들 이야기도 있고 해 서 마을 분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전에 살 던 분께서 사고로......" 안 좋게 되셨다고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작게 한 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군대에 있어서 장례식에 도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셨어요?”
“가고는 싶었지만 군대에서 갑 자기 휴가를 가는 게 되지 않으 니까요.”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인척도 아니고 여자 친구 장례식에 가겠다고 바로 휴 가를 내어주는 군대는 없었다.
여자친구와는 법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 말이다.
“마을분 중에 송화 씨와 태산 씨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더 군요. 그래서 송화 씨와 태산 씨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아……
거짓말이었지만, 오태산은 순순 히 수긍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 다.
채송화가 여기에 사는 동안 자 주 오고 갔으니 정육점이나 슈퍼 주인들은 자신을 알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정육점과 슈퍼는 자주 가던 곳 이니 말이다.
다만 몇 년이나 지났는데 자신 을 기억을 한다는 것이 조금 이
상하기는 했지만…… 지금 중요 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혹시 송화를 보신 것은?”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송화 씨를 봤으면 저희 형 그 집에서 못 살죠.”
“그건 그러네요.”
죽은 송화를 봤다는 건 귀신을 봤다는 것이니 말이다.
“한 번 가 보시겠어요?”
“그 집에요?”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일 년에 한두 번씩 오셔서 빌라 있 는 곳 보고 가신다면서요.”
“저도 일이 있어서 자주는 못 오지만…… 송화가 보고 싶을 때 는 오고 있습니다.”
채송화를 떠올린 오태산이 미소 를 지었다.
“너무 예뻤는데……
“그동안 집에 들어가지는 못하 셨죠?”
“지금은 남의 집이니까요. 그 냥.. 송화 살던 동네 와서 집
한 번 보고, 송화와 걷던 길 한 번 돌아보고 돌아가는 겁니다.”
“그럼 같이 가서 집 한 번 보세 요.”
“그 집을요?”
“집 안 가구들이야 전에 송화 씨 살던 것과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집은 그대로잖아요.”
“왜…… 저에게 이렇게 해 주시 는지?”
오태산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일 년에 한두 번 오신다면서 요.”
“그게 왜요?”
“말이 일 년에 한두 번이지, 여 기 오는 거 쉬운 일은 아니잖아 요.”
살아 있는 여자친구라면 모를까 죽은 여자친구, 그것도 몇 년 전
에 죽은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서 연고 없는 동네에 찾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한 번 들어가서 보세 요. 그동안 집에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보셨을 테니까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오태산 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태산의 감사 인사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점심은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냉면 한 그릇 드실래 요?”
“아닙니다. 저 오는 길에 점심 먹었습니다.”
오태산의 말에 강진은 더 권하 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 게 호의를 너무 많이 받으면 당 사자가 불편해할 수 있으니 말이 다.
강진은 오태산을 데리고 푸드 트럭 앞쪽 그늘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늘 아래에서는 장대방의 부모 님과 할머니가 냉면을 먹고 있었 다.
아버님은 어느새 비빔냉면에 육 수를 부어서 물냉면으로 만들어 먹고 있었다.
물냉면을 후루룩 먹던 그가 오 태산에게 살며시 물었다.
“그럼…… 그 아가씨 남자친구 입니까?”
아버님의 물음에 오태산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네.”
오태산의 말에 아버님이 미안한 듯 머리를 긁었다.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보 네요. 정말 미안해요.”
“아닙니다.”
오태산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덧붙였다.
“동네에 그런 소문이 났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소문이지요.”
여자친구가 귀신이 됐다는 소문 은 더 들어서 좋을 것이 없어 말 끝을 흐리는 아버님이었다.
“광현 형 집 구경시켜 드리려고 요.”
“광현이 집을?”
“여자친구 생각나서 일 년에 몇 번 오신대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총각 을 봐서 기억을 하는 거야. 오면
여기 평상에 앉아서 빌라 쪽을 보다가 가고는 했지.”
“어쩜……. 이것 좀 먹어요.”
어머니가 수박을 밀어 주자, 오 태산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성의라 생각을 했는지 거절하지 않고 수박을 받은 오태산이 그것 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오태산을 보며 아버님이 말했다.
“그…… 아까 소문 이야기는 다 시 한 번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냥 젊은 아가씨가 안 좋은 일 당해서 그런 소문이 났나 봐 요. 마음 안 썼으면 좋겠어요.”
미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말을 하는 아버님에게 어머님이 눈짓 을 주었다.
그 눈짓에 아버님이 입맛을 다 시고는 남은 면을 건져 먹은 뒤 육수를 그릇째 마셨다.
양념과 섞여서 붉게 변한 육수 를 단번에 들이켠 그에게 강진이 말했다.
“맛있게 드셨어요?”
“아주 맛이 좋았어.”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 그릇들을 챙겨 푸드 트럭으로 가 져가려 하자 할머니가 말했다.
“설거지 여기서 하고 가지 그래 요?”
“아닙니다. 집에 가서 하면 됩 니다.”
웃으며 그릇들을 차에 실은 강 진이 장대방 부모님에게 다가갔 다.
“다음에 또 올게요.”
“다음에는 음식 가져오지 말고 그냥 와.”
“그럴게요.”
“전에도 그러겠다고 했으면서 오늘 냉면 가져왔잖아.”
“음식 하다 보면 두 분 생각이 나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 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요. 오늘 냉면 잘 먹었어 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어 주 고는 푸드 트럭으로 걸음을 옮기 다가 하늘을 보았다.
‘어르신 말씀대로 할머니에게 맛있는 음식 해 드렸어요. 앞으 로도 종종 해 드릴게요.’
강진은 승천을 하면서 혼자 남
은 아내가 좋아하는 자장면도 못 먹을까 걱정을 하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마저 걸음을 옮긴 강진은 트럭 캡을 닫고는 오태산을 보았다.
“멀지 않으니 걸어가시죠.”
“네.”
강진은 오태산을 데리고 걸음을 옮기며 배용수를 보았다.
그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는 서둘러 최광현 빌라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먼저 가서 채송화에게 오태산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