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화
빌라 앞에 도착한 오태산이 건 물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앞까지 오는 건 정말 오 랜만이네요.”
“빌라 앞까지는 안 오셨어요?”
“여기까지 오면 송화가 없는 것 이 실감이 나서요. 저 슈퍼에서 만 봤습니다.”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오태 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전화하면 송화가 웃으 며 창문을 열 것 같아서요.”
말을 하며 오태산이 빌라의 한 창문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강 진이 빌라 창문을 보았다.
그가 가리킨 빌라 창문에서 채 송화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 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좋으시 겠네.’
오태산을 보고 좋아하는 채송화 를 보며 강진이 걸음을 옮겼다.
“들어오시죠.”
오태산은 강진의 뒤를 따라 빌 라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은 최광현의 집 앞에 도착 해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삐 삑!
비밀번호를 누른 강진이 오태산 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없는 남의 집에 오태산을 데리고 들어온 거지만 최광현은
웃으며 이해해 줄 것이다.
데리고 온 사람이 채송화 남자 친구이니 말이다.
안으로 들어온 강진은 웃으며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채송화 를 볼 수 있었다.
“ 태산아.”
정말 반갑고 기분 좋은 목소리 로 오태산을 부르며 채송화가 그 에게 다가가려 하자, 배용수가 급히 다가와 몸으로 가로막았다.
귀신이 반갑다고 안기라도 하면
기가 약한 사람은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강진은 채송화를 막아선 배용수 를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 에 의아한 듯 강진을 보던 배용 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향수를 뿌렸지.”
최광현과 같이 살아야 하기에 강진은 이 집에 향수를 한 병 가 져다두었다. 그래서 채송화는 아 침마다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에게 다가가도 치명
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물론 살짝 서늘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배용수가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 다.
“귀신이 사람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거라. 미안해.”
“괜찮아. 우리 태산이 생각해서 막은 거잖아.”
평소라면 길을 왜 막느냐며 날 을 세웠을 터였다. 그러나 채송 화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젓고는
오태산을 보았다.
오태산은 집안을 보고 있었다. 집엔 작은 거실과 방, 그리고 화 장실이 있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여기 집 주인은 안 계세요?”
“지금 출장 갔습니다.”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니 죄 송하네요.”
“태산 씨가 온 거 알면 형이 좋 아할 거예요.”
“그 형도 저를 아세요?”
“집 소문이 그렇게 나서 형하고 제가 같이 마을 분들한테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다녔거든요. 그 래서 태산 씨에 대해 알아요.”
“아……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거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그……
오태산이 자신을 보며 머뭇거리 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이름도 말을 안 했네요. 저는 이강진입 니다. 작은 식당을 하고 있어요.”
“저는 오태산입니다. 아시겠지 만요.”
웃으며 말을 한 오태산이 집을 보다가 말했다.
“남자 혼자 사시는 것 같은데 집이 깔끔하네요. 좋은 향도 나 고.”
향이라는 말에 채송화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잔소리를 해서 그래. 전 에는 집에서 냄새가 얼마나 많이 났는데.”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 으며 말했다.
“어쨌든 형하고 이 집 전 주인 채송화 씨에 대해 알아보다가 태 산 씨 이야기를 들었어요. 해마 다 한두 번씩은 슈퍼에서 여기 빌라 보다 가신다고요. 그래서 한 번 뵙고 싶었어요.”
“저를요?”
“어떻게 보면 이 집과 엮인 인 연이잖아요.”
“그건…… 그러네요.”
오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소파를 가리켰다.
“일단 좀 앉으세요. 제가 시원 한 것 좀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슬며시 소파에 앉으려다가 문득 화장실 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그러세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슬며시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좁 은 화장실 안에는 변기와 세면 대, 그리고 한쪽에 작은 샤워 부 스가 있었다.
화장실을 보던 오태산이 미소를 지었다. 채송화가 살았을 때와 전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돌연 변기 뒤에 있는 수조 뚜껑을 들어서 올렸다.
드륵!
수조 뚜껑을 열자 그 안이 보였 다.
“후!”
수조 내부를 보던 오태산이 웃 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다가 와 변기 물이 담기는 수조 안을 보았다.
“아……
수조 안에는 붉은 벽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거 모르셨죠?”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몰랐네요.”
변기 수조를 열어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변기 세척액이나 세 척제를 쓰는 사람들이나 가끔 열 어서 안에 파란색 고체약이나 액 체를 넣기 위해 열 뿐이다.
그리고 최광현은 변기 세척제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갔다 넣은 거야. 이렇게
벽돌 하나를 넣으면 그만큼 물이 절약이 되지.”
채송화가 자신은 이렇게 절약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듯 어깨를 으 쓱하며 말했다.
“한두 번은 별거 아니지만 하루 에 변기 쓰는 횟수하고 일 년을 생각하면 이 벽돌 하나의 물이 엄청난 거지.”
채송화의 말에 배용수가 “오!”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하루에 사람이 화장실을
열 번만 사용해도 최소한 저 벽 돌로 십 리터는 아끼겠네. 그게 일 년이면…… 와, 거의 사 톤 가까이 아끼는 거네.”
‘일 년에 人} 톤이라. 우리 가게 는 손님들도 사용을 하니 저런 벽돌 하나 넣어 두면 훨씬 물을 많이 아끼겠네.’
일반 가정집에서 4톤이면 영업 을 하는 식당은 더 많은 물을 아 낄 수 있을 것이었다.
물 몇 톤이라고 해 봐야 얼마 안 하겠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
끼는 것이 좋다. 그게 환경에도 좋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오태산이 웃으며 변기 수조를 보다가 말했 다.
“송화가 이런 작은 것을 아끼는 걸 좋아했어요. 이런 벽돌 하나 넣으면 일 년에 몇 톤의 물을 아 낄 수 있다고……
오태산은 수조 뚜껑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다 환경을 위한 거라고
말을 하는데, 그 모습이 무척 귀 여웠어요.”
“좋은 분이셨네요.”
“좋은 사람이었어요.”
미소를 지으며 오태산이 세면대 에 달려 있는 거울을 보았다.
“이거 열어 봐도 될까요?”
“그럼요. 마음껏 보시라고 모신 건데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하 시려고 이렇게 하세요.”
“왜요, 도둑질하시게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세상 험 하잖아요.”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집 에 데려오고, 집을 구경시켜 주 고, 마음껏 보게 해 주니 말이 다. 지금 시대에서는 참으로 도 둑맞기에 딱 좋았다.
오태산의 말에 채송화가 단호하 게 말했다.
“우리 태산이는 그런 사람이 아 니니까.”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모르는 분이고 오늘 처음 본 분이라면 당연히 제 집…… 아, 물론 여기는 친한 형 집이지 만요. 어쨌든 함부로 집안에 들 이지 않아요.”
“그럼 왜 저를?”
오태산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죽은 여자친구 생각나서 일 년 에 한두 번씩 그녀가 살던 동네 에 오는 정 많은 분이 강도나 도 둑으로 변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 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사기당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 시네요.”
“제가요?”
“사람을 너무 잘 믿으시잖아 요.”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쓰게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 잘 안 믿어요.”
“잘 믿으시는 것 같은데요?”
오태산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강진은 사람을 잘 안 믿었다. 친척의 손에 떠밀려 보육원으로 보내지면서 세상 믿을 사람이 적 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이후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선 하게 웃으면서 월급 떼어먹는 사
장들도 몇 번 겪었고 말이다. 그 래서 사람은 믿지 않았다.
대신…… 귀신은 믿었다. 그래 서 오태산을 집으로 들인 것이 다.
죽어서도 남자친구를 기억하는 채송화와 죽은 여자친구를 기억 하는 오태산. 두 사람의 사연을 믿고 오태산을 집에 들인 것이다
강진이 싱긋 웃자 오태산이 피 식 웃었다.
생각을 해 보면 실수는 강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따라 들어왔으 니 말이다.
이것도 참 범죄 당하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물론 그 집이 자신 이 잘 알던 집이라고 해도 말이 다.
작게 웃은 오태산이 세면대의 거울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 수납장이 보였다.
거울 뒤에 있는 수납장에 수건 들과 새 면도기와 치약과 같은
물품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보던 오태산이 물품들 을 슬며시 하나씩 꺼냈다. 그에 강진이 물품들을 대신 받아 내려 놓자 오태산이 수납장을 보다가 손을 내밀어 그 바닥을 만졌다.
바닥엔 스티커를 붙였다가 떼어 낸 흔적이 있었다. 스티커를 잘 못 떼어내면 흔적이 더럽게 남는 것처럼 수납장 바닥도 무척 지저 분해 보였다.
“그건 뭐예요?”
“우리 송화가 제일 싫어하던 거 예요.”
“송화 씨가요?”
“이사 오고 여기에 물건 넣는데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 있더라고 요. 아마 전에 살던 아이 키우던 집에서 붙인 것 같은데 송화가 이런 거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이걸 바로 떼어내는데 얼마나 진 득하게 붙어 있던지. 후! 송화가 이거 떼어내느라 땀을 뻘뻘 흘렸 어요. 저도 옆에서 떼는 거 거들 고……. 그런데 결국은 깨끗하게
떼어내지를 못하고 이렇게 남아 버렸네요.”
오태산이 쓰게 웃으며 그 흔적 을 보다가 손톱으로 긁어냈다. 말라붙은 본드가 조금씩 긁혔지 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잔재가 벗겨질 것 같진 않았다.
손톱으로 몇 번 더 긁어내던 오 태산이 씁쓸하게 말했다.
“붙였다가 떼면 흔적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네요.”
마치 자기가 채송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더럽게 들러붙 은 흔적 같은 건 전혀 아니지 만…….
웃으며 자국을 보던 오태산이 강진을 보았다.
“지금 여기 사는 형님은 이 흔 적 아시나 모르겠네요.”
“알아도 딱히 신경 쓸 스타일은 아니에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꺼낸 물건들을 다시
잘 정리해서 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오태산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강 진이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를 건 넸다.
“고맙습니다.”
오태산이 음료를 받아들자 강진 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전에 송화 씨 살던 때와 비교 하면 많이 변했죠?”
“그렇죠. 남자 사는 집과 여자
사는 집은 다르니까요.”
거실을 보며 웃던 오태산이 문 득 소파 옆에 있는 작은 서랍장 을 보았다.
그 서랍장은 잡다한 물건을 넣 어 두는 용도기도 했지만, 자주 쓰는 물건들을 올려놓는 용도로 더 쓰는 서랍장이었다.
이를테면 자동차 키나 지갑, 리 모컨, 그리고 메모지 같은 것 말 이다.
서랍장 위에는 메모지로 쓰는
노트가 하나 펼쳐져 있었다.
채송화가 최광현에게 할 말이 있을 때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글을 적는 노트였다.
노트를 본 오태산은 자기도 모 르게 내용을 읽었다. 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눈이 가서 글을 읽게 된 것이다.
〈강진이가 오늘 냉면 해 주러 온다고 했다고?
며칠 전부터 냉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왜 이제야 오는 거야?
나도 바빠.
그래서 너 언제 오는데? 늦게 오네. 알았어. 올 때 거기 맛있는 거 있으면 좀 사 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