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010화 (1,008/1,050)

1010화

가만히 글을 보던 오태산이 입 을 열었다.

“나 많이 보고 싶었어?”

작게 중얼거리는 오태산을 보 며, 채송화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말 보고 싶었단 말이야.”

〈정말 보고 싶었단 말이야.〉

채송화가 미소를 지으며 오태산 을 보는 사이, 그가 글을 보며

말했다.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그동 안 뭐하고 있었어?”

“뭐하기는. 그냥 있었지.”

채송화는 노트에 적힌 글과 같 은 말을 했다.

“우리 송화 많이 심심했겠다.”

“그러니까 일찍 오지. 나 너 많 이 보고 싶었어.”

글에 적힌 내용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채송화를 강진이

보았다.

채송화는 웃으며 오태산을 보고 있었다. 그런 채송화가 아닌 노 트를 보며 오태산이 입을 열었 다.

“나도 일찍 오고 싶었어. 그런 데 여기 올 수가 없었어. 나…… 많이 보고 싶었어?”

오태산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노 트에 적힌 글자를 손가락으로 천 천히 쓰다듬었다.

〈보고 싶었다니까!〉

채송화가 한 말이라 여기며 글 을 문지르던 오태산이 숨을 토해 냈다.

“후우!”

조금 길게 숨을 토해낸 오태산 이 글을 보았다.

이 글은 송화가 쓴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하지만 필체, 그리고 말하는 느낌이 송화의 것과 같았 다.

그러다 보니 이 글을 그대로 읽 으면 정말 송화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르륵! 주르륵!

오태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송화야……

그 모습에 강진이 그에게 다가 가려다가 멈췄다.

옆에 있던 채송화가 오태산의

머리를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내가 많이 보고 싶었구 나. 나도 그런데. 우리 정말 많이 다른데…… 정말 많이 닮았다.”

작게 중얼거리며 오태산의 머리 를 쓰다듬는 채송화를 보던 강진 이 슬며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현관으로 향하며 말했 다.

“노트 보고 계세요. 저 잠시 슈 퍼 좀 다녀올게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남의 집에서,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다 는 것에 오태산이 급히 일어나려 하자 강진이 서둘러 현관문을 열 고는 밖으로 나갔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집에 혼자 두고 나가는 거지만, 강진은 걱 정하지 않았다. 안에 채송화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태산은 물건 훔쳐 갈 사람도 아니었고…….

물론 정말 모르는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도

둑질을 당해도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 이니 말이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강진의 모습을 보던 오태산이 한숨을 쉬 고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는 노트를 잠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고 죄송하지 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송화라 생각을 하겠습니다.”

글씨의 주인에게 사과를 한 오

태산이 노트를 보다가 말했다.

“송화야, 네가 살던 집에 새로 오신 분이 참 좋으신 분인가 봐.”

“응. 정말 좋은 사람이야. 광현 이도, 강진이도 정말 좋고 착한 사람이야.”

들리지 않을 테지만 채송화는 웃으며 강진과 최광현에 대한 이 야기를 그에게 해 주었다.

최광현을 어떻게 만났는지, 그 리고 어떤 사람인지…….

채송화가 이야기하는 사이 오태 산은 노트 페이지를 한 장씩 넘 겼다. 그러다 예전 채송화와 나 눴을 법한 말이 보이면 입을 열 었다.

“오늘 날씨 정말 더웠는데

〈여름에는 당연히 더워야지. 추 울 줄 알았어?〉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에 오태산 이 웃었다.

‘이분 성격도 우리 송화처럼 정

말 장난이 아니구나.’

노트엔 여자친구의 글씨만 있었 다. 그러다 보니 여기 살던 사람 은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지만, 여자친구 쪽 말은 육성으로 듣는 것 같았다.

웃으며 책장을 넘긴 오태산은 노트 속 채송화와 대화를 이어나 갔다.

강진과 함께 빌라를 나온 배용 수가 입맛을 다시며 자취방 창문

을 보았다.

“뭔가 좀 짠하네.”

“그러게. 노트를 보면서 대화를 하실 줄은 몰랐네.”

“그만큼 보고 싶었나 봐.”

말을 하던 배용수가 고개를 저 었다.

“근데…… 사실 대화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지.”

채송화가 옆에서 오태산이 한 말에 답을 해 주고, 그와 비슷한

말이 노트에 적혀 있으니 대화를 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태산은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죽은 여자친구와 대화 를 하고 있었다. 노트라는 입을 빌려서 말이다.

빌라 창문을 올려다보던 강진이 말했다.

“그래도 노트가 있어서 다행이 다. 그렇게라도 송화 씨 흔적을 본 거니까.”

“그러게 말이다. 게다가 노트 안에 귀신 이야기나 이름이 없는 것도 다행이야.”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 이야기가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안 적은 것이다. 만약 노 트에 그런 내용이 있었으면 보여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노트에 그녀의 이름이 없 는 게 당연했다.

글을 적으면서 굳이 자신을 3인 칭으로 쓸 이유가 없었다.

마치 배용수가 ‘용수는 오늘 뭐 가 먹고 싶어.’, ‘용수는 오늘 뭐 가 하고 싶어.’라고 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채송화 성격상 더더욱 그런 글 을 적을 일도 없었다.

“그럼 이제 우리 뭐 하냐? 노트 볼 동안 밖에서 멍 때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씨익 웃었다. 그 웃음에 배 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너 또 왜 그래? 너 눈 이상해,

인마.”

강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강진이는 햄버거를 사러 갈 거 야. 왜냐면 강진이는 송화가 햄 버거를 좋아하는 것을 알거든. 그럼 송화는 태산 씨하고 같이 햄버거를 먹을 수 있을 거야. 둘 이 먹는 것을 보면 강진이는 너 무 기쁠 거야.”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며 말 하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그 를 멍하니 보다가 한숨을 쉬었

다.

“아이고야…… 병이 더 깊어졌 다. 더 깊어졌어.”

한숨을 쉬며 배용수가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웃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용수야, 강진이하고 같이 가야 지.”

“미친놈아.”

배용수가 서둘러 뛰어가자 강진 이 웃으며 그 뒤를 따라 뛰었다.

그렇게 배용수의 뒤를 쫓아 달 리던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야! 힘들어! 안 할 테니까 같 이 가자.”

“싫어. 떨어져서 와.”

“덥단 말이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는 그 자리에 멈췄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라 골목에서는 아지랑이가 솟구치고 있었다. 눈으로 열기가

보일 정도면 귀신인 자신은 몰라 도 사람인 강진은 더울 터였다.

덥다는 말에 멈춰 주는 배용수 의 옆에 강진이 와서 붙으며 걸 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사람들이 보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슥 보았다. 골목을 걷는 사람들 몇이 의아한 듯 강진을 보고 있 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스쳐 가는 사람들 신경 안 쓴 다. 그리고 저 사람들도 이상하 다고 생각만 하지, 쫓아와서 누 구와 이야기하냐고 하겠냐?”

말을 하며 강진이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혹 시라도 정말 다가오는 사람이 있 으면 통화 중이라고 말하기 위함 이었다.

그리고 실제 통화를 할 일도 있 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강진이 최 광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옆에서 화면을 힐끗 보던 배용수가 고개 를 끄덕였다.

“하긴, 광현 형한테 이야기를 하기는 해야겠네.”

“좋아할 거야.”

“그렇겠지. 광현 형은 좋은 사 람이 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최광현이 전화를 받았

다. 강진과 배용수의 생각대로 오태산을 집에 데려왔다는 이야 기에 최광현은 무척 기뻐했다.

[정말 잘 됐다. 정말 잘 됐어.]

“그러게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슈퍼에서 어르신들 냉면 해 드리 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만날 줄은 몰랐거든요.”

[송화 씨 안쓰러우니 하늘이 도 와준 거겠지.]

“그러게요.”

[나도 근처에 있으면 인사도 하

고 했으면 좋겠는데…….]

“거기 큰 사건이에요?”

[피해자가 있는 사건은 다 크 지. 작은 피해자가 있는 작은 사 건은 없어.]

“그것도 그러네요.”

[어쨌든 형은 오늘 못 들어갈 수도 있으니 잘 대접해서 보내 드려. 그리고 연락처 받아 놓고. 다음에 연락해서 식사 초대라도 하게.]

“알았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진은 할머니네 슈퍼를 지나쳐갔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와 장대방 부모님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슈퍼 안에 있을 테고, 장대방 부모님은 집에 갔을 터였 다.

“슈퍼에서 재료 안 사?”

“지금은 음식을 해 주지 말고 완성된 걸 사자.”

“왜? 송화는 네가 해 줘야 맛있 을 텐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해 줘도 되지만…… 그러 면 태산 씨가 조금 불편해할 수 도 있잖아. 친한 척을 해도 오늘 처음 본 사람인 건 변하지 않으 니까.”

강진이 옆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서 주려고 하면 오태산이 불편해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서 가 는 거라면 그냥 먹을 것이다.

“하긴, 그건 그러네.”

“그리고 빵집에서 사는 햄버거 도 송화는 맛있게 먹을 거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님과 함께 먹는 거면 뭐 가 맛이 없겠어.”

“그러니까.”

저승식당 사장 손맛이 아니더라 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배용수가 먼저 빵집으로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그의 뒤를 따라갔

다.

그렇게 빵집에서 햄버거 4개를 산 강진이 빌라로 돌아왔다. 최 광현 집 앞에 선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네가 먼저 들어가서 한 번 보 고 와.”

“알았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집 안으 로 들어갔다.

귀신이라고 해도 아무 집이나 막 들어갈 수는 없었다.

주인이 허락을 하거나 그 집에 생전에 살았다거나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배용수는 최광현이 이미 허락을 해 줘서 들어가는 데에 제약이 없었다.

문을 뚫고 들어간 배용수의 목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도 되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비밀번호 를 누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이 들어오자 오태산이 일어 났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좀 출출해서 햄버거를 좀 사 왔습니다.”

웃으며 강진이 밥상을 가져다가 소파 앞에 놓고는 그 위에 햄버 거가 담긴 봉투를 놓았다.

“빵집에서 사 온 거라 햄버거 전문점 맛은 아닐 거예요.”

강진이 햄버거를 꺼내 놓자, 오 태산이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이미 신세를 많이 졌는걸요.”

“혼자 먹으면 맛이 없어요. 그 리고 태산 씨 먹을 것도 이미 사 왔으니 같이 드세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잠시 머 뭇거리다가 소파 아래로 슬며시 내려와 앉았다.

그런 오태산을 보던 강진이 그 앞에 햄버거를 하나 놓고는 다른 쪽에도 햄버거를 하나씩 까서 놓 았다.

“두 개면 되는데 왜 다른 것도 다 까세요?”

햄버거 세 개의 포장지를 벗기 는 것에 오태산이 의아한 듯 보 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한참 많이 먹을 나이인데 하나 로 되겠어요? 하나 드시고 또 하 나 드세요.”

“저 그렇게 많이 안 먹는데요.”

“그럼 두세요. 제가 많이 먹으 니까요.”

말을 하며 강진이 채송화를 보 자, 그녀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 다.

“넌 정말 좋은 녀석이야.”

“그걸 이제야 알았어?”

배용수가 자리에 앉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좋은 시간 보냈고?”

배용수의 물음에 채송화가 웃으 며 오태산을 보았다.

“태산이하고 정말 많은 이야기 를 했어.”

채송화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 강진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

었다.

햄버거는 그냥 동네 빵집에서 흔히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안에 고기 패티 하나 들어 있 고, 양배추와 오이, 당근이 들어 있는…… 그래서 조금 빵이 눅눅 하고 끝은 소스를 흡수해서 걸쭉 한 스타일이었다.

말이 햄버거 빵이지, 고기 패티 가 들어간 야채빵이나 다름없었 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옛날 빵

집 스타일의 햄버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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